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1. 태초에 ‘칙릿’이 있었다

이 소설은 제 4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이다. 1억 원이라는 국내 최고 상금의 문학상이기에 당선보다는 ‘당첨’의 느낌이 강하지만 1회 당선작 <미실>을 필두로 회를 거듭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운 또한 실력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스타일>은 칙릿 소설이다. 칙릿(chick-lit)이란, 젊은 여성을 뜻하는 속어 ‘chick’에 문학을 뜻하는 ‘literature’를 결합한 신조어로 젊은 도시여성들의 일과 연애, 취향 등을 다루는 소설을 말한다. 이에 질세라, 국립국어원에서는 발 빠르게도 대안어로 ‘꽃띠문학’을 제안했다. 꽃띠란, 한창 젊은 여자의 나이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칙릿을 두고 문학에 젊은 피의 수혈이라는 등의 수식이 난무하는 것을 볼 때, 젊은 감각을 표현한다는 면에서 ‘꽃띠’는 설득력 있는 이름이다. 하지만 이미 ‘chick’에서 비하된 뉘앙스가 꽃띠라고 다르진 않아 보인다. 총 1,717명이 투표에 참여해 43%의 지지를 얻었다고 하니 대세를 따라야 하겠지만 이상하게도 ‘꽃뱀’이 연상되는 것은 나뿐인 걸까.

본격적으로 칙릿 소설은 90년대 중반에 나온 <브릿지 존스의 일기>를 시점으로 해서 최근 히트를 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쇼퍼홀릭>, <가십걸> 국내작품으로는 <달콤한 나의 도시>, <걸프렌드>, <쿨하게 한걸음> 등의 작품이 있다. 그리고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평범한 여자와 백마탄 왕자님’이라는 영원한 테마의 전형인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만나게 된다.

몇 년 전 키이라 나이틀리가 출연한 영화 <오만과 편견>을 처음 봤을 때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고전 중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의 내용이 할러퀸류의 연애소설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18세기의 칙릿이라고 할까. 우리나라의 고전 작품에서도 이러한 구도는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몽룡의 신분이 더 높다는 점에서 춘향전 또한 같은 카테고리에 속한다. 그렇다면 칙릿은 90년대 중반도, 18세기도 아닌 태초부터 있어왔던 장르인지도 모른다. 생태학적으로 강한 숫컷을 고르려는 암컷의 유전자가 전승에 전승을 거듭하듯이.

2. 그녀의 스타일

타이의 (주)기도문

랜드마크(홍콩의 거대 쇼핑몰)에 계신 아르마니여,

아버지의 구두가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프라다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쇼핑이 파리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센트럴(홍콩의 거대 쇼핑몰)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저희에게 남편의 비자카드를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수수료를 떼어간 자들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바닥난 은행 잔고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미쓰코시 백화점에 빠지지 말게 하시며,

윙 온(wing on, 홍콩 최대 여행사)에서 구하소서.

샤넬과 코티에와 베르사체, D&G가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아멕스~

-데이비드 에반스《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라이 씨Lai See 칼럼에서

서문처럼 소설의 앞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이 시가 이 작품의 내용을 암시한다.  패션지의 에디터로 일했던 작가의 경험이 관록으로 고스란히 묻어나 현장감이 살아있다. 이러한 핍진성은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수많은 브랜드의 이름이 일사분란하게 열거되지만 허황된 소비문화에 대한 진부한 전언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패션지 기자라는 백조의 발과 같은 직업군에 대한 공허함,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수한 직물성을 무리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지점을 작가는 포착해 냈다.

‘아침은 커피, 점심도 커피, 저녁은 담배 한 갑 반. 다이어트 강박증에 빠진 도시여자들의 미니멀한 식단’으로 배를 채우는 주인공 이서정의 고향은 압구정동이다. 현대 백화점이 개장하던 날 엄마와 손을 붙잡고 입장했고 맥도날드 1호점이 한국에 상륙하던 날 ‘비장한 얼굴로 언니가 사온 치즈버거를 시식’ 했던 유년을 보냈다. 그리고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현장을 우유를 먹다가 목격한다. 그 다리를 건너던 버스 안에는 쌍둥이 언니 중 한 명이 타고 있었다. 그렇게 언니를 잃은 후 그녀는 삶은 언제든 갑자기 무너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재를 뺀다면 사람들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따라서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훌륭한 인생이라 생각한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원하는 것을 산다. 이것이 그녀 인생의 교리다. 그것은 에르메스라는 브랜드의 상표고 때로 샤넬이라는 이름의 레테르가 된다.

그런 그녀에겐 또 다른 욕망도 존재한다.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월드비전에 기부금을 내는 일이다. ‘굶주려 뼈만 남은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무너지고, 새로 나온 마놀로 블라닉을 보면 그게 갖고 싶어서 잠도 안 온다. 이것도 저것도 해야겠고, 이쪽도 저쪽도 놓칠 수 없다.’ 이 두 개의 욕망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이서정은 또 다른 딜레마에도 봉착한다. 나는 레스토랑 체험기 칼럼을 쓰며 멋지게 나온 스테이크의 사진을 담아가야 하는 직업을 가졌다. 그러나 채식에 관한 책을 읽으며 윤리적이 되기 위해선 스테이크를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문으로 혼란스럽다. 또 박우진을 이토록 미워하면서도 나는 왜 경외에 찬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인지.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구도의 ‘애증’이라는 감정선이다- ‘프라다에 대한 속물적인 욕망과 제 3세계 아이들에게 기부하고 싶은 선량한 욕망은 어떻게 화해’ 해야 할까. 이것은 작가의 고민이자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고민이다. 

3. 통속 앞에 무릎 꿇다

‘텔레비전 전파의 세례를 받은 드라마 키드’ 세대답게 주인공 이서정은 통속의 힘을 믿는다. 통속通俗에는 세상과 통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삶의 고단함을 세상의 모습을 보면서 위안 받고 희망을 품게 하는 힘이다. ‘노인과 아이를 동시에 열광하게 만드는 것.’ 어떤 장르가 이런 파급성을 가질 수 있을까. 나에게 안톤 체홉이 있다면 우리 엄마에겐 김수현이 있고 새언니에겐 공지영이 있다. 각자의 영웅으로부터 우리는 위로 받는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장르를 분명하게 구분할 것인가.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문학에 있어 가능한 일이고 의미가 있는 일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일본의 경우, 순수문학을 대상으로 한 아쿠타가와상이 있다면 대중문학을 지원하기 위한 나오키상1)도 존재한다.

한 예로 2004년 130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와타야 리사의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과 나오키상을 수상한 바 있는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은 문학성의 수준과 장르에 있어서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현재 국내 굴지의 문학상 수상작들로 우후죽순 칙릿류가 쏟아져 나오는 한국문단 현상은 문제가 있다. 올해의 화려한 수상작들을 열거하자면 세계 문학상에 백영옥의 <스타일>이, 오늘의 작가상에 고예나의 <마이 짝퉁 라이프>가, 창비장편소설상에 서유미의 <쿨하게 한걸음>이 당선됐다. 그나마 한겨레문학상의 <무중력 증후군>이 살짝 비껴간 셈이다.

칙릿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칙릿이면서 칙릿이 아닌 듯 포장하는 자기부정과 아예 작정하고 썼다라고 딱지가 붙는 자기비하식 발언이 나쁘다. 건강한 장르로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아가씨 문학이라 일컫는 칙릿에는 된장녀와 쇼퍼홀릭이 등장해 재미와 소비만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 어디, 고도를 기다리는 베케트의 고상한 고뇌만이 통찰인가. 칙릿 안에는 통속적인 통찰이 존재한다. 그것이 장르 문학이 가진 특성이자 미덕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런 장점을 키우지 못하는 데는 기존의 문학제도가 가지고 있는 고루한 권위의식이 한 부분을 차지한다. 수상작을 심사하는 심사위원들은 ‘칙릿’의 작가도, 평론가도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칙릿을 칙릿으로 보지 않거나 혹은 볼 수 없는 관점을 가졌다. A를 A가 아닌 B`로 해석해서 그 특성과 미덕을 희석시킨다. 여기에는 출판사 및 언론사의 사심도 개입된다. 상업성에서도 흥행하고 문학적 권위에서도 승리하려는 그들의 욕망 또한 프라다와 아프리카 난민 사이에서 고뇌하고 있는 이 ‘아가씨’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문학은 분명 대중과 함께 가야 한다. 칙릿을 두고 자본이 개입한 문학의 한 현상으로 보는 시각도 특정 독서소비층을 타깃으로 양산되었기 때문이다. 국내 굴지의 권위 있는 출판사 및 언론사의 이름을 등에 업고 고액의 상금을 내거는 데에는 그이상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이러한 전략은 <브릿지 존스의 일기>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영화화되고 국내에선 <달콤한 나의 도시>와 <스타일>이 드라마화 되는 (<스타일>은 올 12월 방영을 앞두고 있다)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어디 이뿐인가. 조선일보가 주최한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의 첫 당선작 <진시황 프로젝트>의 경우 제작비 300억을 투입하는 대작으로 뤽베송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헐리우드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문학과 영상예술이 상생하는 긍정적인 구도다.

다양한 많은 장르들이 제각각 발전 할 때 문학이란 숲은 좀 더 풍요로워 진다. 이렇게 기특한 장르 문학을 위해 ‘꽃띠문학상’을 제정해 주는 건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