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독 꿈꾸는돌 15
다케우치 마코토 지음, 윤수정 옮김 / 돌베개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돌이켜보자면 나의 중고교 시절은 한없이 무난하게 지나갔던 것 같다.

요즘 아해들도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별다른 사건은 -그래봐야 누가 연애를 하는지 누가 고백했다 차였다던가

일생에 그닥 도움이 되지 않았던 시덥지 않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고 발랑 까진 몇 놈들과 몰래 술을 먹는다던가 아니면 200원짜리 백자 담배를 친구 아빠의 주머니를 뒤져 훔쳐 빨아대던 한심한 나날들이 끝없이 이어질 줄 알았던, 지루해서 미칠 것 같아 무협지나 야설을 탐독하며 벌겋게 달아오는 얼굴이 가끔 생각이 나 실없이 웃을 때가 있다. 그래도 동물은 제법 좋아하는 편이었고(지금도 개 한마리를 집에서 키우고 있는데 가끔은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싶어 눈이 시큰거리기도 한다만) 큰 누이가 얻어온 잡종 발바리를 꽤나 예뻐했는데 엄마나 아버지는 그 녀석 이름을 얼룩이라는 촌스런 이름을 붙여 주셨다. 이유는 다들 그럼 그렇지 싶을 정도로 아주 단순했는데 그저 온몸이 얼룩이 져서 였다. 하긴 얼룩덜룩이라 짓지 않는게 어디였겠는가. 아마도 이름이 길면 부르기 귀찮아 덜룩을 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무심한 이름이었지만 이내 친숙해지면 그런 불만따위는 없이 얼룩아 하고 그 흔하디 흔한 - 아마 1988년에는 전국의 개 100만마리 정도의 이름은 죄다 얼룩이였을 것이라고 내 새끼손톱 1센치 정도를 걸어 볼 정도로 자신이 있다. 한동안 개를 키우지 않던 부모님께 몇 년 전 혈통이 좋다던 진도개 한마리를 사다 드렸는데 어엿하게 내가 이름을 지어 드렸음에도 불구하고(나도 어쩔 수 없이 늙었거나 귀찮았거나 아니면 짱구를 좋아하던 아들 놈이 붙여 준 흰둥이란 네이밍을 그럭저럭 마음에 들어 했었는데) 당장에 백구라 명명 하셨으니 뭐라 할말도 없다. 아버지는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 말씀하셨지만 정작 자신의 첫 손자가 태어났을때는 온갖 좋다는 한자들의 궁합과 부수와 글자의 획수까지 점검하시면서 멋진 이름을 지어주셨다가 며느리에게 까임을 당하시고 그래도 고집을 꺽지는 못하시고 임씨 문중에는 본인이 정한 이름을 올리시고는 못내 아쉬워 하셨는데 사실 돌림자를 쓰는 항렬이 하필이면 '순'자이었으니 여간해서는 어울리지 못했으리라. 그 아래 항렬이 '빈'이라 아마 내 손자나 손주는 멋진 이름을 가질 수 있겠다. 하긴 요즘 항렬을 누가 따져 쓰겠는가 더군다나 '순'이라니 아내가 고집을 피울만도 했고 나는 뭐 중간에 병신처럼 웃다 눈총만 받았었던 기억이 새롭다. 


뭐 그러했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처지와 기억과 삶을 비교해 볼 것이며 기승전나(我)로 욕을 하던지 눈물을 흘리던지(늙으면 역시 눈물이 많아진다) 아니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한시간 내로 사라지는 경험을 수시로 하게 된다. '원더독'은 사실 나에게 있어서는 환상소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묘하게도 이 소설이 처음 시작되는 1989년 고등학교 입학식 배경은 나와 동일한 시간 선상에 존재한다. 그때 이 소설에는 이후 원더독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유기견을 발견하여 학교로 데리고 오다 교통사고를 당해 교복이 찢어지고 관자놀이에도 덜마른 피가 엉켜붙어 있는 고마치 겐타로가 등장한다. 아.... 한없이 착한 녀석의 등장이다. 나의 고등학교 입학식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 기억도 없다. 지나가는 개에게 돌을 던졌을지도 모를 일이고 친구녀석들과 킬킬대며 같은 반이 된 여자들을 훔쳐보며 평판을 해댔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병신같은 머리를 쥐어 뜯으며 생각을 해봐도 - 하긴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해도 아마 입학식때 첫사랑의 열병을 앓던 누구누구라면 뭐 생생히 기억날 수도 있겠다 싶다....지만 이건 아무래도 확률상 공리주의 입각해 보자면 반칙에 가깝다.


 여튼 학교에서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그래봤자 국민학교때나 토끼나 닭 그리고 꿩(우리때에는 칠면조도 키웠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꽤 독특한 교육 철학을 가지셨는지도...)같은 조류나 키웠지 개를 키운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물론 관사에 홀로 기숙하시는 당시 선생님들이 목줄을 메어 키우다 복날 다릿간에 목 매달리는 가여운 신세가 될 똥개가 아주 잠시 있어 주기는 했지만 아이들도 녀석의 신분 상태를 알았는지 지나칠때마다 발로 걷어 차 낑 낑 우는 처지였지 원더독처럼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순진함에서 묻어나오는 그 무지의 잔인함에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자신에게 치를 떨 때도 있지만 보통은 중학교를 졸업할 수준의 지식과 그에 걸맞는 인성을 가지게 되면 보통의 아이들처럼 가여움과 동정심으로 무장을 하게 되지만 다 그런 것도 아니니..... 여튼 그런 점에서 보자면 원더독은 아까 말한대로 해피엔딩으로 가득찬 환상소설임을 재확인해 주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기껏해야 악인으로 등장하는 단 하나의 인물이 개 키우는 것에 반대하다 그나마 허락해 주시는 교감선생님이니 말이다. 하긴 1318이 읽는 소설이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늙은 꼰대의 시큰하고 시니컬한 냉소적인 눈으로 보자면 헛웃음이 나올 법도 한 소설인데 여튼 잘 읽힌다. 그러다가 예전에 키웠던 얼룩이와 시골집에서 부모님을 지키고 있는 백구와 지금 내 곁에서 얕은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별이와 원더독이 겹쳐진다.


같은 세월을 공유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싶다. 꼬맹이로 내 곁에 처음 왔을때 다리를 들고 영역표시를 처음으로 하던 날, 같이 달리기를 하고 산책을 하다 볕 좋은 가을 날 돋자리에서 나란히 누워 달콤한 낮잠을 즐겼던 어느 일요일 오후, 불현듯 보니 어느새 나이를 나보다 먼저 먹어 산책하기도 어려운 날에 가슴에 안고 쓸쓸한 겨울 밤을 한바퀴 돌고 들어왔을때, 그리고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내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다 눈을 마주치고 떠났던 날...... 원더독처럼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소설을 읽으면 녀석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하였고 행복했노라는 결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지만 그레 뭐 대수랴......


 원더독이 커가면 갈수록 아이들도 자라고 학년이 올라가고 떠나 가지만 학교에 들어오는 아이들로 다시 채워지고 그 아이들이 같이 커가고 그리고 마침내 처음 원더독을 주웠던 고마치 겐타로가 교생이 되어 학교로 돌아왔을때 그리고 원더독을 기억하고 사랑했던 반갤부원의 세대차이를 뛰어넘는 동창회를 열기까지 십여년의 세월동안 까까머리였던 누구는 회사원이 되었고 선생님이 되었지만 여전히 원더독은 그 자리에서 있는 마지막 장면은 흐믓함이 느껴질 수 밖에 없으리라.


원더독은 학교에서 키우는 개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개를 키워 나아가면서 같이 배워 나가는 아이들의 여러 모습을 통해 결국엔 한마리의 유기견에 불과했던 원더독이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배품을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뭐 청소년 뿐만이 아니고 어른도 읽어볼만한 상큼한 책인 것 같다.


문체는 가볍고 경쾌하여 서너시간이면 충분히 읽을만한 분량이니 금요일 저녁 꽃청춘이 끝이 나면 심야책방에 드른 것 처럼 한시가 넘어가기 전까지 한번에 눈으로, 가슴으로 기분좋게 읽어봄이 어떨지 싶다.     

아주 귀여운 유기견이예요. 제발 누가 키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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