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 - 노년의 심리를 이해하는 112개 키워드
사토 신이치 지음, 우윤식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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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전, 일본에서 흔하지 않았던 노인 연구를 시작하며 오랜 기간 노인을 연구해온 사토 신이치 교수가 노인의 심리 이해를 돕고, 노인을 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인에 대한 대중 교양서를 펴냈다.


우리는 노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먼저 신이치는 '노인'이라는 호칭이 아닌 고령자 씨라는 호칭으로 부르길 권하며 계속해서 고령자 씨라고 언급한다. 이는 노인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해 더욱 이해에 다가가도록 돕는 의도다. 저자가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하는 것은, 노인에게 '자기 효능감'을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회 내에서 필요하다고 여겨지거나, 존중받는 한 사람. 노인들이 그저 늙어서 예민하고 고집불통인 것일까? 나는 사회적인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인을 다그치고, 어렵게 대하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기에 더더욱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토 신이치의 말을 들으면 노인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고령자 씨가 자식이나 손주를 돌봐 주려고 하거나 여러 참견을 하는 것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기 위해서다. 경험에 의해 얻어진 지식과 인생에 대한 교훈을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것은, 고령자 씨가 자신의 사회적 유용성을 실감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설교 같은 말을 하게 되는데 '요즘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아요'하고 반론을 제공해서는 곤란하다. 적당히 상대방의 자존심을 살려 줄 수 있는 소통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131p


사회적 유용성, 자기 효능감은 고령자 씨가 아니더라도 모든 세대의 사람들, 인간이라면 필히 느끼고 싶은 감정이다. 그러나 노인은 사회에서 점점 배척되는 것처럼 느끼고, 자신의 가치를 찾기 때문에 이 사회적 유용성이 더욱 중요해진다. 노인은 생애 회상을 통해 과거 갈등의 해결과 자존감의 회복을 이끌기 때문에 과거 이야기를 하거나 참견하는 것처럼 말하는 노인을 비판하기 보다 그의 존재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고령자씨가 보이는 특유의 반사회적 행동의 원인은 대부분 고독이라고 말한다. 고독은 근래에 들어 청년에게도 문제가 되었지만, 노인은 고독 문제에 지속적으로 취약하다. 노인은 생채적 노화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격이 있기에 노화에 대한 공포까지 느끼는데, 노화에 대한 공포는 자신감을 상실하게 하며 우울증에 걸리기 쉽게 만든다. 이런 상태에선 운동과 같은 활발한 행동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알코올에 의존할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노화에 대한 공포와 고독이 치매 및 각종 질병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가 노인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문화와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개인으로는 조금씩 늙어가는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 중요함을 말한다.


앞으로의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간접 호혜성 커뮤니티라는 사고방식이다. 장기적인 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서로서로' 지탱해 주는 공동체가 아닌, 도와준 상대와는 다른 별개의 사람과 단체로부터 그 보답을 받는 것이 가능한 공동체다. 도움을 받은 쪽이 필요 이상으로 움츠러들 필요가 없고, 도와준 쪽도 '전혀 감사해하지 않는군' 등의 불만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가볍게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그런 공동체가 실현되면 더욱 많은 고령자 돌봄이 가능해질 것이다.

157p


우리는 튼튼한 노후를 꿈꾼다. 누구나 팔팔하게 살다 갑자기 죽는 걸 바란다. 이는 여러 나라에서 바라는 노후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몸이 쇠약해지면서 의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튼튼한 개인을 내세우기보다 다음과 같이 질문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누구든지 안심하고 도움을 받는 것이 가능한 사회,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진정 이상적인 사회가 아닐까요?"


이어서 저자는 "돌봄의 현장이 지향할 것은 '자립 지원'보다는 '자율 지원'쪽"이라 말한다. "자율이란 '나는 이렇게 하고 싶다'라고 생각한 것을 실행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홀로서기보단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돌봄을 만들자는 것이다. 의지할 땐 의지할 수 있는 사회 말이다.


동시에 '가족신화'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말한다. 노인은 가족이 무조건 돌봐야 하고, 가정의 일은 가정 내에서, 가족들이 처리해야 하는 가족신화는 지금도 존재한다. 그러나 돌봄은 균형이 필요하다.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도 지치지 않아야 한다. 더불어 사적인 돌봄을 국가가 어느 정도 부담할 필요도 있다. 그가 말하는 돌봄의 현실을 따라가다 보면 가사노동에서 드러나는 남녀의 돌봄 노동에 대한 부담 차이는 씁쓸함을 안겨준다.


저자는 나이가 들면 지적 능력은 쇠퇴하더라도 결정 지능은 올라간다고 말한다. 결정 지능은 "이해력과 통찰력, 소통 능력과 같은 사고의 축적에 의해 높아지는" 지능이다. 노인도 나름의 능력을 펼치며 때론 누군가에게 기대며 제공할 때는 제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삶의 목적은 늙음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우린 늙음에 따라 그 목적을 향한 방법을 달리할 뿐이다. 인간이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듯이, 남은 인생도 그런 식으로 각자가 잘 분배하며, 각자의 방법을 찾아가며 다 같이 살아가야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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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 세월호참사 10년, 약속의 자리를 지킨 피해자와 연대자 이야기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 기획, 박내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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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기억난다.

학교에서 일찍 집에 돌아오던날 티비를 보던 아빠가 말했다.

"너네 친구들 사고났다"



4월 16일이 돌아온다.

누군가에겐 아직도 의문으로 남겨진, 슬픔으로 점철된 그날의 일.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는 그날의 고통을 경험한, 그리고 연대하며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다. 유가족들은 그날의 일을 확실히 알기 위해, 그날을 기억하며 잊히지 않도록 다양한 일들을 했다. 그들 앞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놓여있었다. 어떻게 벌어진 사고인지조차 몰랐던 때부터, 진상이 완벽히 밝혀지지 않은 지금까지 10년이란 시간 동안 진실을 밝히며 기억관을 만들고 상처받은 이들을 치료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그러나 당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활동을 방해받았고 대통령은 진상 규명을 약속했지만, 말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는 인간의 탐욕과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회의 법과 제도, 무능한 행정체계와 정치권력, 잔혹한 인간들의 얼굴이 드러난 일이었다. 더욱이 잔혹한 것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참사의 적절한 대처조차 실패했다는 것이다. 참사 이후 국가가 스스로 나서서 유가족들의 슬픔을 다듬고 발 빠른 조사와 진상 규명을 해서 결과를 내놓았을까? 전혀 그러지 못했다. 누군가 책임지려고 먼저 나섰나? 그러지 않았다. 모두 회피했다. 그리고 지금의 이태원 참사, 오송 참사까지. 국가의 책임이란 모습은 보이지 않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이, 얼마나 변화했나.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진도로 모이고, 각종 단체와 시민들이 연대해 시민운동을 벌이고 각자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슬픔에 공감하며 다시 일상으로 설 수 있도록, 정신을 차리고 진상 규명을 하고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같은 사고가 나지 않도록 서로를 보듬었다. 기억관을 만들고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과 시민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고 추모예배를 드리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고 2차적인 상처를 받기도 했다. 희생자 부모들은 합창과 연극을 하며, 목공일을 하며 비참한 현실을 버텨냈고, 위로받기보단 되려 봉사활동을 하며 타인을 도왔다. 십자가 순례 동참을 자처한 정기열님은 말한다. "전부터 아이들한테 항상 이야기해 왔거든요. 세상은 혼자 능력으로는 절대 살아갈 수 없으니 5퍼센트라도 사회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요." 이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느냐 못 느끼냐에 따라 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달라지며 책임의식의 차이가 발생한다. 나는 무기력한 소시민이다. 하지만 뜻을 모으고 함께 하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고 믿는다. 그러리란 희망을 갖고 있고 사회의 변화를 꿈꾼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나도록 묵과한, 방치한, 심지어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크게 기여한 것이 없는 나는 오늘도 죄책감 한 조각을 갖고 더 나은 사회가 되길 바라고, 또 나아지는 데에 힘을 보탠다. 적어도, 그들의 삶과 고통을 비웃거나 가벼이 대하지 않으려 한다. 당신에게는 뜻을 모아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갈 의지가 있는가. ​ 기억하지 못하면 잊는다. 참사에 지겹다는 말이 붙을 순 없다. 아직도 세상 어딘가엔 구멍이 있다. 우린 이 구멍들을 메꾸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여야 한다. 더불어 운 좋게 살아있는 나의 삶은 누군가의 그 메꾸는 행위로 보호받고 있다.

사회적 참사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비극이다. 우리는 공동의 비극을 개인이 짊어지는 부끄러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도 공감하고 연대하며 함께한 이들이 만들어낸 추모의 공간들.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반영한다. (...) 안전한 사회를 위한 약속에는 나와 사랑하는 내 가족의 안전도 포함되어 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참사를 공간화하고 형상화하는 것은 희생된 아이들의 비극과 고통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아픔에 공감함으로써 공동체의 안전한 미래를 약속한다는 의미이다. 57p

+나는 세월호 이야기를 하면 항상 천안함을 들먹이며 왜 세월호만 챙기냐는 글들과 본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먼저 맞다. 천안함 사건도 우리가 굉장히 안타까워하고 기억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세월호를 추모한다고 해서 천안함을 가치 없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또한 천안함은 북한의 소행으로 인한, 방위 과정에서 전사했다는 명예라도 있지 세월호는 아직도 정확한 책임소재까지 불분명한 채 종결 나지 않은 사건이다. 누가 확실한 책임이 있는지, 적이 누구인가조차 찾기 어려운 사건이다. 비극적 사건들을 비교 대조해가며 비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 수많은 참사를 왜 기억하지 않냐고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사고들을 비교하며 세월호 추모를 비난할 일인가? 좋다. 사고들은 최대한 기억하는 게 좋다. 나서지 않아도 적어도 개선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인간은 사고를 통해 배우고 고쳐나가며 발전한다. 적어도 후퇴하지 않는 것이다. 세월호를 둘러싸고 개인적 이익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보이고 가짜 뉴스까지 퍼진 현실이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지 추모 자체와 기억하는 행위를 비난할 것이 아니지 않나. 기억해야 바뀐다. 기억해야 미래로 나아간다. 먼저 신경 쓰지 않으면 이후의 부담은 커진다. 나는 슬픔에 공감을 해주는 것까지 바라지 않지만, 그 슬픔을 조롱의 유희로 삼던 이들을 보았다. 인간을 위한다는 생각을 해본 사람이 과연 할 수 있는 일일지 생각이 들 정도의 모습을. 감정이 메말라버려 모든 것을 잘난 위치에서 재단 내리는 그 알량한 자존심이 너무나 우습고 안타까울 뿐이다. 죽음이란 내 앞에서 맞기 전까지 온몸으로 느낄 수 없다. 사람은 가까운 것에서부터 느낀다. 그렇기에 붙어있어도 그 슬픔에 온전히 젖을 수 없고, 다만 그 눈물 닦을 휴지 한 장 건네줄 뿐이다.



이 책을 기획했던 사람으로서 마지막 바람은 이 책을 읽은 분들이 세월호참사 기억공간을 찾아가서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 그리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일입니다. 기억은 힘이 셉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면 세상은 더 위험해질 것입니다. 10년 뒤에는 우리가 지닌 기억의 힘으로 세상은 더 안전해졌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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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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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여관방에 들어가 극단적인 시도를 하는 남자.

그는 가정, 재산, 건강 모든 것을 잃었다. 죽기 전, 그는 생각한다. 인생이 왜 이렇게 됐는지.

내 인생이 삐끗한 단 한 순간, 그것을 찾아야 한다. 22p

주인공 원도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주는 일을 했다. 가정을 꾸리고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 돈을 훔치기 시작한다. 아파트 한 채 값을 마련했지만 더욱 욕심을 부렸고, 결국 투기에 실패하고 횡령이 적발되어 모든 것을 잃고 도망쳤다. 그는 실체 없는 신용과 약속을 사고파는 것에 집착했다. 감도 안잡히는 수많은 돈에서 일부를 빼면 어떤가 생각했다.

어머니는 돌봄노동을 했는데, 원도의 같은 반 아이 장민석을 돌보게 된다. 원도의 부모는 장민석을 집에 들였고 장민석을 원도보다 더 챙기게 된다. 원도는 질투심을 느끼며 장민석과 싸우게 된다. 장민석보다 항상 잘하고 싶었고, 잘나 보이는 장민석이 되고 싶었다. 얼마 뒤 장민석은 친부모를 따라 집을 떠나지만, 장민석의 그림자는 늘 원도를 따라다닌다.

근원적 무지, 순수해서 무지막지한 폭력이다. (...) 뭐가 여백이고 뭐가 결핍인지. 원근감이 생겨버렸다. 빈틈없이 가득 차 충분한 줄 알았는데 텅 비었다.

무섭다.

외로움도 고독도 쓸쓸함도 슬픔도 아니다. 두려움도 아니지만 그것에 가장 가깝다.

원도가 운다.

목 놓아 운다.


85p

장민석이라는 인물이 집에 들어와 나와 대립되었다. 죽은 아버지는 산 아버지와 대립되었고, 어머니가 장민석에게 준 애정은 나에게 쏟는 애정이랑 대립되었다. 그저 생겨난 구멍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밀고 들어와 다른 한 편의 공간이 생겼다. 원도는 확실한 것을 원했다. 원도에게 세상은 이해하고, 돌아가는 대상이 아니었다.

학창 시절 학교폭력을 당하던 친구 야똘은 원도에게 "우리는 선택하지 않아. 선택 당하지"라 말한다. 타인에게 선택당하는 삶. 구애하는 삶. 원도는 지위에서 오는 박탈감과 즐거움 모두 누렸다. 은행 VIP 인생이 자신이 주어진 인생이라 믿었고, 부모님의 아들로서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이라 생각했지만 모두 무너졌다. 절대적인 믿음 앞에서 세상은 비웃었다. 어릴 적 목말라서 선택한 물이 원도가 가장 자유롭게 선택했던 유일한 것이었을까.

극단적 시도를 하는 원도를 발견한 여관 주인은 돈을 더 쥐여주면서 나가라고, 그리고 그냥 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일단 오늘만 버티라고 말한다. 그냥 사는 법. 그것을 원도는 몰랐다. 세상이 모르게 만들었을까. 여관 주인의 말이 최근 들은 말 중에 가장 따듯했다.

원도에게 어머니는 분명 존재했지만 그 자리는 비어있었다. 텅 빈 그곳을 온갖 상상과 환상으로 채우다 어느 순간 잊었다 잊고 살다 가끔 절감했다. 절감할 때마다 사랑하고 싶었다.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아니다. 사랑받고 싶었다. 누구에든, 무엇에게든. 장민석과 함께 살 때, 어머니는 달랐다. 그랬다고, 원도는 기억한다. 왜 그랬을까. 장민석의 무엇이 어머니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원도의 키가 30센티미터 이상 자라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변치 않았다. 평생 단 한 사람만을 위해 기도하는 수녀처럼, 아무 요동도 갈등도 없이, 티 나지 않게 조금씩 늙어갈 뿐이었다. 222p

원도는 부모의 사랑을 그 자체로 받지 못했다. 어머니는 원도에게 어느 순간부터 차갑게 대했다. 반면 장민석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어머니를 변화시켰다. 어머니를 웃게 했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장민석이 했다. 사랑받지 못한 것도 고통이었지만 사람과 조응하며 그 사람을 긍정적으로 증폭시켜줄 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것, 장민석이 하는 것을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 거기서 자괴감을 느꼈을 것이다.

원도의 어머니에게 장민석은 삶의 의지였을지도 모른다. 원래는 자신이 약을 먹고 죽을 거였지만, 원도의 아버지가 대신 먹고 죽으면서 남겨진 어머니에겐 자신에게 힘을 쏟는 것이 아닌, 타인에게 정신을 쏟는 게 삶의 의지였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도의 가족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그저 그 욕망을 감싸줄 이해. 그러나 살아있는 아버지의 합리적 이해는 원도의 마음에 완전하게 다가설 수 없었다.

<원도>는 최진영의 세 번째 소설이자, 그의 소설이 나타내는 우울함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다. 원도라는 인물을 통해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말하는데, 상당히 불안하고 흔들리는 모습으로 그려나간다. 그런 점에서 불안한 사람의 심리 묘사가 효과적으로 전달되지만(중간중간 나오는 속마음의 표현까지), 한편으론 인물의 성격이 짜임새 있다거나 심리의 일관성이 잘 유지되었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원도의 캐릭터 설정이 처음부터 이도 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것이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등장인물들이 말끔히 정리가 안된 느낌도 든다.

한편으론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가 <원도>에서 겹쳐 보인다. 원도는 욕망을 쫓다 인생이 무너졌고, 그것을 정당화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나타내지만 일종의 찌질함이 엿든다. '여관으로부터의 수기'다. 하지만 원도는 사랑받지 못했다. 최진영은 원도의 삶을 단순히 개인의 잘못으로만 볼 수 있는가 의문을 제기한다. 원도의 삶 자체가 '정신을 차리고 선한 일을 행하자' 따위의 정신 극복이 가능한 삶이었을까?

어린 시절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집안의 비밀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일종의 추리소설 같기도 하다. 충족되지 못한 욕구는 가정의 구성원인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문제에서 비롯되었지만, 아버지가 죽으며 생긴 트라우마로 시작되는 원도의 결핍은 인생을 돌돌 꼬아버리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만족스럽다고 말한 것은 자신의 죽음이 만족스러운 것인지, 모든 상황이 죽음으로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끌어 낸다는 것인지 그 의미는 확실치 않지만, 원도는 상황 자체에 만족스러움을 느끼진 못했고 죽지도 못했다. 몫은 살아있는 원도에게 넘겨진 것이다.

장민석은 정상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합리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계속해서 강조하는 세상의 환영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욕심이 많고 고집이 센 원도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보이는 대로 반응했다. 장민석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세상은 바로 죽는 독약과 서서히 죽어가는 독약 중 하나를 마시는 것에 불과했다. 원도의 인생에서 삐끗한 '그 순간'이란 게 있었을까? 하나 둘 기억을 살피는 것은 어쩌면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공허함을 향한 하나의 현상들이지 않았을까.

원도를 죽어 마땅했을까, 아니면 감싸 안아 줘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과응보인 것일까

원도가 '만족스럽다'라는 의미를 알았다면 지금쯤 따듯한 집안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원도는 계속해서 혼자였다. 앞으로도 혼자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원도(遠逃), 멀리 도망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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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블루칼라 여자 - 힘 좀 쓰는 언니들의 남초 직군 생존기
박정연 지음, 황지현 사진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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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여성 버스기사를 만날 때마다 색다른 느낌이 든다. 이것이 어떤 편견일지도, 어떤 응원의 마음일지도 모르겠지만 남성이 기본값이 된 직업세계에 여성이 들어선다는 것은 어떤 형식으로든 주목받거나 특별히 대해지는 일이다. 이제는 '여성' 블루칼라 노동자들이라는 주제가 조금 흔해진 것 같지만, 아직도 남성이 주류로 존재하는 다양한 분야, 특히 강한 근력을 요구하는 일에서 여성은 소수로 존재한다. 문화란 생각보다 길게 남지 않는가. 아직도 많은 직업 문화나 체계가 남성 중심으로 남아있고 이 세계에 진입한 여성들은 다양한 일을 겪는다. 


<나, 블루칼라 여자>는 이런 노동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고, 버텨낸 여성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이야기는 여성이기에 힘들었음을 어필한다는 서사가 아니다. 사회에서 여성 노동자로서 살아간 매우 현실적인 이이기다. 실력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그들이 극복해야 할 것은 단순히 근력만은 아니었다. 이들은 스스로 방법을 찾고, 더 나아가 타인을 위해 직업의 문턱을 낮추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화물 노동자 김지나

플랜트 용접 노동자 김신혜

먹매김 노동자 김혜숙

형틀 목수 신연옥

건설현장 자재정리, 세대청소 노동자 권원영

레미콘 운전 노동자 정정숙

철도차량정비원 하현아

자동차 시트 제조 공장 노동자 황점순

주택 수리 기사 안형선

빌더 목수 이아진


힘을 쓰는 직업이란, 남성들만 존재하는 직업이라 할 정도로 여성이 적은 일이었다. 용접 노동자 김신혜는 여자용접사라는 이유로 임금을 덜 받았다. 그것이 가능한 시절이었다. 작업장에서 남성 노동자에게 젖을 짜달라는 성희롱을 듣기도 했고, 일을 하기 위해서 생리의 부담을 줄이는 미레나 시술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는 적성에 맞았고 그저 재밌어서 일을 한다고, 정년까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목표라 말한다.


화물 노동자 김지나 또한 편견에서 살았다. '운전 못하는 여성'의 편견부터 맞서야 했다. 게다가 일을 하러 온 곳에서, 그를 우습게 보거나 고백도 받았다. 그는 무엇이 성희롱이고 잘못된 것인지를 설명해야 했다. 그런 환경에서도 열심히 살았고 조합원들의 신뢰를 얻어 화물연대 지부장까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안전운임제를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는다.


먹매김 노동자 김혜숙은 성희롱을 당해도 그저 노동을 통해 스스로 돈을 번다는 자부심으로 일했다. 그는 그저 자신만 만족하며 일하지 않았다. 같은 설움을 당하지 않도록 동료 여성노동자에게 기술과 살아남는 법을 잘 알려준다.


형틀 목수 신연옥은 경력단절 여성으로,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 과거와 달리 일반팀이 아니라 노조 팀에서 일한다. 노조 팀 속에서는 각종 범죄, 특히 성희롱을 예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 자재정리, 세대 청소를 하는 권원영은 여성뿐만 아니라 직업적 편견에 맞서며 살아간다. 그는 2030세대 친구들이 들어와서 일했으면 하는 바람, 또 생각보다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마음이 있고, 자신의 일뿐 아니라 노동환경 자체를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레미콘 운전 노동자 정정숙은 사회뿐 아니라 집안 편견을 버텨야 했다. 그가 레미콘 운전 일을 한다는 소식이 가정에 들려오자 응원이 아닌 비난만을 들었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했다. 그의 인터뷰에서는 운전하면서 사계절을 느낄 수 있다며 긍정적인 부분들을 이야기한다. 그 말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들이 숨어있을까. 그는 유일한 응원자들인 아이들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철도차량정비원 하현아는 일을 못하면 여자 꼬리표가 달릴까봐, 여자라는 이유로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더욱 열심히 했다. 일을 뺏기지 않기 위해 남성 노동자들의 도움도 거절하며 틈날 때 근력운동까지 했다. 하지만 장비 규격들이 남성에 맞춰져 있어 불편하다 말한다. 그는 남성 노동자들에게 '형님' 호칭을 부른다. 그게 그녀의 생존방식이었다. '오빠라는 호칭'의 사회적 맥락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오빠는 수동적 여성을 연상시킨다. 여성에겐 상사나 동료를 부르는 것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자동차 시트 제조 공장 노동자 황점순은 딸에게 투자를 하지 않고 아들만 밀어주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하며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김해의 한일합섬 방직공장에 입사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그는 그저 일할 수 있는 즐거움을 느끼며 일을 했다. 공장엔 기초적인 여자화장실 같은 시설이 부족했지만 버텨냈고, 발전하는 그 역사 속에 있었다.


주택수리기사 안형선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들을 보면서 '여성을 위한 집수리 서비스'를 생각한다. 많은 집 수리기사들이 남성들이었고 의뢰자의 전화번호와 주소가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람을 모집할 때 어려움을 느꼈다. 여성기술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직접 나섰다. 일을 배우면서도 성적 편견에 대한 말들이 오고 갔다. 누군가 그의 서비스에 살아남아달라고 했던 것처럼 그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다.


빌더 목수 이아진은 집을 짓는다. 목수 일이 좋아 18살부터 현장에서 일을 했지만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 편견들을 없애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일했다. 어린 시절 호주 유학을 다녀왔던 그는 '노가다'라는 편견을 싫어한다. 호주에서는 여성이 목수와 같은 노동을 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고 응원받을 일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블루컬러 노동은 노가다라는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소비된다. 그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유튜브를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그런 방식으로 자랑스러워하길 바란다. 노동은 무시당할 것이 아니라 자부심을 가질 일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현장일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혹시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부딪쳐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참 자랑스러워요.

먹매김 노동자 김혜숙, 70p


이들은 여성 노동자이지만,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노동에 대한 긍지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모두 공통되게 말하는 것이 성희롱과 같은 성적인 편견과 학대였다. 남성 노동자들은 몰라서 그랬다고 말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그러기도 했다. 하지만 불의에 항의하기 보다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혹은 참아가거나. 그래도 일이 좋거나 생계를 위해 일을 했다. 그렇게 사회적으로 단단하게 굳어갔다.


어느 여성 노동자들과 같이 중년의 여성들은 경력단절 여성으로 생계를 위해 직업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그런 그들의 목표는 여성들을 위한 노동이나 서비스 같은 신세대 여성 노동자들과는 다르게 정년까지 일하는 것, 가장으로서 일하는 것과 같이 다른 느낌을 내고 있다.


이들은 진입장벽을 무너뜨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직도 성적 편견과 제도를 고쳐야 할 노동 환경이 많다. 물론 남성의 진입 또한 편리한 환경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이 남성이 기본으로 깔린 노동 사회에서는 여성이 견뎌야 할 몫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이 여성들은 어떤 직업이든 의지만 있다면 해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에겐 이들이 희망이고, 세상일 것이다.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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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오래 산다 - 30년 문학전문기자 생애 첫 비평에세이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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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오래 산다>는 30년 동안 문학 전문기자로 일한 최재봉이 그동안 쓴 글들을 정리하며 덧붙인 글이다. 작가들과의 인터뷰, 저자의 서평과 부고들이 담겨 있다. 문학계의 시대적 문제와 고뇌들, 문학사의 논쟁거리, 가령 단편 위주의 창작 문화, 서구 중심의 노벨문학상, 신경숙 표절 문제 등을 넘나든다.


이야기는 의미 없는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고, 그런 이야기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다.

6p

문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 중 하나는 창작이기에, 문학사에서 크게 논란된 사건은 표절 사건일 것이다. 신경숙 표절 사건은 2015년 이응준 작가가 신경숙의 표절을 폭로하면서 벌어진 것으로, 이후에 신경숙은 다양한 작가의 글을 표절한 걸로 드러났다. 당시에 출판사 창비는 신경숙의 표절을 감쌌는데, 많은 논자들이 창비가 신경숙이라는 작가가 지닌 상업적 가치에 눈멀었음을 비판했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문단에 만연했던 '문단 보험 카르텔'을 비판한다. "자신이 편집위원으로 있는 문학잡지를 내는 출판사의 상업적 이익을 챙겨 주려는 평론가들의 이해관계와, 문학상으로 상징되는 문단 내 평판을 좇는 작가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 그런 카르텔 구조가 나타났다는 것이 비판적 관찰자들의 견해다."(153p) 출판문화에는 물론 출판산업을 위한 상업적 가치를 쫓아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지식이라는, 정직이라는 바탕을 두고 있음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더불어 그는 비판적인 서평을 시도했다가 작가나 출판사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듣고 사이가 나빠진 경우를 언급하며, 글 쓰는 사람으로서 비평과 후기는 그저 좋게만 작성해야 하는가 질문한다. "비평의 가치는 타당성과 설득력의 다과로써 판단되어야 한다. 타당성과 설득력이 떨어지는 비평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생존 근거를 제공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건강한 토론 문화다." (143p)


그의 책은 2000년대에 쓴 글을 모은 것이기도 하기에 과거의 쓴 글을 돌아보는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 2007년 그는 한국소설이 독자와 더불어 호흡하는 데에 단편보다는 장편이 요구된다 말하면서도 장편이 나오기 힘든 문학계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안타까워했지만, 현재엔 그 바람이 어느 정도 이뤄졌음을 현재에 와서 돌아본다. 


한때 많은 학문에서 언급되었던 노벨문학상에 관한 문제도 짚고 넘어간다. 그는 노벨문학상이 서구 중심적인 현실이지만, 최근 한국을 포함한 비 서구권 작가들의 작품이 부커상 후보에 오르는 현실을 보고 최선을 다해 보면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것이라 희망한다. 조금이 지난 후, 우리 문학계를 돌아본다면 그만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까?


카뮈의 <페스트>에 관한 글을 쓰며 주인공 의사 리외의 말, "문학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는, "문학은 발언이며 증언이고 추억이라는 것,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찬양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말하면서 그는 문학과 문인들이 사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찰한다. 


과거 그의 글에 언급된 작가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저자는 박태순의 장례식에 찾아오지 않는 문인들, 마땅히 얼굴을 비쳤어야 할 이들을 비판한다. 부고를 읽으며 문인이란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작가들은 의미 없는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이었고, 나름의 지향점들을 제시했기에 우리는 이 의미들을 따라가본다.


조세희, 박완서, 안도현과 같은 고전 작가들부터 김초엽, 최은영과 같은 최근에 흥행한 작가들까지 작가 최재봉은 한국 문학사를 훑는다. 그의 글에서 아는 책이 나올 때면 평론에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과 문학사 및 문예 창작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책장에서 빛나는 문학 작품들과 몰랐던, 기억될 미래에 존재하는 책들이 새로이 반짝인다.  이렇게 이야기는 오래 산다. 가장 좋았던 황현산의 말로 마무리한다.


일단 아름답고 완벽한 세계를 보고 나면, 현실에서 벽에 부닥치고 실패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그런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꿈이 있기 때문이다. 신비주의자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은 설사 밖으로 표현되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든 세상사에 영향을 끼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 건 이미 세상에 그런 물질적 기반이 조성돼 있기 때문인 것이다.

102p

한겨레 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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