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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 - 세월호참사 10년, 약속의 자리를 지킨 피해자와 연대자 이야기
세월호참사 10주기 위원회 기획, 박내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평점 :
나는 아직도 기억난다.
학교에서 일찍 집에 돌아오던날 티비를 보던 아빠가 말했다.
"너네 친구들 사고났다"
4월 16일이 돌아온다.
누군가에겐 아직도 의문으로 남겨진, 슬픔으로 점철된 그날의 일.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는 그날의 고통을 경험한, 그리고 연대하며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다. 유가족들은 그날의 일을 확실히 알기 위해, 그날을 기억하며 잊히지 않도록 다양한 일들을 했다. 그들 앞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놓여있었다. 어떻게 벌어진 사고인지조차 몰랐던 때부터, 진상이 완벽히 밝혀지지 않은 지금까지 10년이란 시간 동안 진실을 밝히며 기억관을 만들고 상처받은 이들을 치료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그러나 당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활동을 방해받았고 대통령은 진상 규명을 약속했지만, 말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는 인간의 탐욕과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회의 법과 제도, 무능한 행정체계와 정치권력, 잔혹한 인간들의 얼굴이 드러난 일이었다. 더욱이 잔혹한 것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참사의 적절한 대처조차 실패했다는 것이다. 참사 이후 국가가 스스로 나서서 유가족들의 슬픔을 다듬고 발 빠른 조사와 진상 규명을 해서 결과를 내놓았을까? 전혀 그러지 못했다. 누군가 책임지려고 먼저 나섰나? 그러지 않았다. 모두 회피했다. 그리고 지금의 이태원 참사, 오송 참사까지. 국가의 책임이란 모습은 보이지 않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이, 얼마나 변화했나.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진도로 모이고, 각종 단체와 시민들이 연대해 시민운동을 벌이고 각자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슬픔에 공감하며 다시 일상으로 설 수 있도록, 정신을 차리고 진상 규명을 하고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같은 사고가 나지 않도록 서로를 보듬었다. 기억관을 만들고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과 시민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고 추모예배를 드리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고 2차적인 상처를 받기도 했다. 희생자 부모들은 합창과 연극을 하며, 목공일을 하며 비참한 현실을 버텨냈고, 위로받기보단 되려 봉사활동을 하며 타인을 도왔다.
십자가 순례 동참을 자처한 정기열님은 말한다. "전부터 아이들한테 항상 이야기해 왔거든요. 세상은 혼자 능력으로는 절대 살아갈 수 없으니 5퍼센트라도 사회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요." 이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느냐 못 느끼냐에 따라 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달라지며 책임의식의 차이가 발생한다.
나는 무기력한 소시민이다. 하지만 뜻을 모으고 함께 하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고 믿는다. 그러리란 희망을 갖고 있고 사회의 변화를 꿈꾼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나도록 묵과한, 방치한, 심지어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크게 기여한 것이 없는 나는 오늘도 죄책감 한 조각을 갖고 더 나은 사회가 되길 바라고, 또 나아지는 데에 힘을 보탠다. 적어도, 그들의 삶과 고통을 비웃거나 가벼이 대하지 않으려 한다. 당신에게는 뜻을 모아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갈 의지가 있는가.
기억하지 못하면 잊는다. 참사에 지겹다는 말이 붙을 순 없다. 아직도 세상 어딘가엔 구멍이 있다. 우린 이 구멍들을 메꾸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여야 한다. 더불어 운 좋게 살아있는 나의 삶은 누군가의 그 메꾸는 행위로 보호받고 있다.
사회적 참사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비극이다. 우리는 공동의 비극을 개인이 짊어지는 부끄러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서도 공감하고 연대하며 함께한 이들이 만들어낸 추모의 공간들.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반영한다. (...) 안전한 사회를 위한 약속에는 나와 사랑하는 내 가족의 안전도 포함되어 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참사를 공간화하고 형상화하는 것은 희생된 아이들의 비극과 고통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아픔에 공감함으로써 공동체의 안전한 미래를 약속한다는 의미이다.
57p
+나는 세월호 이야기를 하면 항상 천안함을 들먹이며 왜 세월호만 챙기냐는 글들과 본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먼저 맞다. 천안함 사건도 우리가 굉장히 안타까워하고 기억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세월호를 추모한다고 해서 천안함을 가치 없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또한 천안함은 북한의 소행으로 인한, 방위 과정에서 전사했다는 명예라도 있지 세월호는 아직도 정확한 책임소재까지 불분명한 채 종결 나지 않은 사건이다. 누가 확실한 책임이 있는지, 적이 누구인가조차 찾기 어려운 사건이다. 비극적 사건들을 비교 대조해가며 비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수많은 참사를 왜 기억하지 않냐고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사고들을 비교하며 세월호 추모를 비난할 일인가? 좋다. 사고들은 최대한 기억하는 게 좋다. 나서지 않아도 적어도 개선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인간은 사고를 통해 배우고 고쳐나가며 발전한다. 적어도 후퇴하지 않는 것이다. 세월호를 둘러싸고 개인적 이익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보이고 가짜 뉴스까지 퍼진 현실이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지 추모 자체와 기억하는 행위를 비난할 것이 아니지 않나. 기억해야 바뀐다. 기억해야 미래로 나아간다. 먼저 신경 쓰지 않으면 이후의 부담은 커진다.
나는 슬픔에 공감을 해주는 것까지 바라지 않지만, 그 슬픔을 조롱의 유희로 삼던 이들을 보았다. 인간을 위한다는 생각을 해본 사람이 과연 할 수 있는 일일지 생각이 들 정도의 모습을. 감정이 메말라버려 모든 것을 잘난 위치에서 재단 내리는 그 알량한 자존심이 너무나 우습고 안타까울 뿐이다. 죽음이란 내 앞에서 맞기 전까지 온몸으로 느낄 수 없다. 사람은 가까운 것에서부터 느낀다. 그렇기에 붙어있어도 그 슬픔에 온전히 젖을 수 없고, 다만 그 눈물 닦을 휴지 한 장 건네줄 뿐이다.
이 책을 기획했던 사람으로서 마지막 바람은 이 책을 읽은 분들이 세월호참사 기억공간을 찾아가서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 그리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일입니다. 기억은 힘이 셉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면 세상은 더 위험해질 것입니다. 10년 뒤에는 우리가 지닌 기억의 힘으로 세상은 더 안전해졌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15P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