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국가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50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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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이름은 '국가'보다는 '정의'에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정의는 무엇인지 묻고 끝에서는 왜 우리가 정의롭게 살아야 하는가로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통치체제를 비교하는 것도 결국 어떤 체제가 더 정의로우냐의 문제이기도 하고.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페이라이에우스에서 열린 축제에 갔다가 폴레마르코스의 집에 들리게 되는데, 그곳에서 인생에서 뭐가 중요한지를 묻다가 누군가 정의로운 삶을 이야기해버린다. 맙소사. 그렇게 길고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곳에 몰려온 사람들과 문답해나가는데, 지루하지는 않다. 당시 사람들도 같은 인간이기에 '현실을 보면, 통치자(강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결국 정의 아니냐' 같은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그것을 계속해서 질문하고 반박한다. 질문자는 지친다. 그래서 결국 처형당한 걸까(?)

 

우리가 이런 토론에서 다양한 논박을 기대하긴 어렵고 플라톤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재미다. 반박하고 싶은 것이 한 두 개 가 아니지만 소크라테스는 말이 없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고 인간은 언젠가 죽고 소크라테스는 결국 죽기 때문이다... (?)

 

먼저 국가관에 대한 인식이 도드라진다. 우리가 알고 있듯 플라톤은 '지혜를 사랑하는 자'인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 말한다.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논리 구조를 쌓아나간다. 국가에 이로운 것은 온 힘을 다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전혀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통치자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통치자의 견제하는 국가의 체제를 만들기보다는 각종 시험을 통해서 살아남은 철인의 통치를 추구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가 나온다. 철학자는 이데아를 아는 자다. 국가 통치 또한 그래야 한다.

 

그는 '마르크스가 역사 발전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정치체제의 변화에 대해 설명한다. 왕도정은 하늘의 이치에 따라 완벽한 자식을 낳지 못하고, 내분을 통해 명예정으로 이어진 통치자는 명예욕과 승부욕이 강해져 자산평가를 기준으로 통치자를 세우는 과두정으로 넘어가고 사회는 두 층으로 양분되어 분열된다. 지배층은 무절제하게 되고 반란을 일으켜 피지배층이 같은 위치에 서게 되면 부자들의 쓸모를 의심하고 쫓아내고 시민들에게 부를 나눠줘 국가 관직을 제비뽑기로 배정하는 민주정이 탄생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자유로운 민주정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정치체제"라고 말한다. 왜냐, 자유롭게 무엇이든 선택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유분방함을 싫어한다. "반박시 네 말도 다 옳음"소피스트들을 반박했던 것처럼. 그는 무엇인가의 쓰임이 어느정도 정해져있고 규칙 있는 것으로 세상을 여겼기 때문이다.

 

민주정에서는 능력이 있어도 반드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평판만 좋으면 사람을 높이 평가해 적합하지 않은 사람도 고위직에 올려준다. 자유는 무정부 상태를 낳고 질서를 흩트린다. 결국 과두정이 지나쳐 민주정이 됐지만, 민주정이 지나쳐 참주정이 된다. 극단적인 자유에서 거대하고 야만적인 예속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부자와 같은 자들을 억제하자는 일종의 유토피아를 주장하는 민중의 지도자가 등장하고 그렇게 정상에 오른 민중의 지도자는 자기는 참주가 아니라며 많은 포퓰리즘적 약속을 행하며 전쟁을 벌이고 일부 반대 세력은 억압한다. 그렇게 주변을 하나하나 없애고 다 숙청한다. 이런 결말을 낳기에 소크라테스는 왕도정을 추구해야 한다 말한다.

 

마지막은 에르라는 남자의 이야기, 전투에서 죽었지만 살아나 저승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전해주는데, 여기서 굉장한 윤회사상을 엿볼 수 있다. 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혼에 대한 이야기는 파이돈에 더 잘 나와있다) 사람이 죽어 혼이 되어 자신의 다음 삶을 선택하는데, 아무리 질 나쁜 삶을 골랐다 하더라도 지혜를 추구하면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승에서의 삶에 따라 선택권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모든 건 자신의 선택이며 중용의 삶을 선택해 행복하게 살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사고란 참 비슷하지 않은가.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이런 윤회사상도 결국 인간의 정의추구와 맞닿아있다고 본다.

 

'불의한 자는 더욱 불의해진다' 의로운 자는 자기 혼을 훌륭한 본성의 지배를 받게 할 것이고 그렇게 만드는 학문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데아에선 불의한 자는 통치할 수 없다. 그는 화합을 이뤄 이성 격정 욕구가 자기들의 최적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추구했다. 플라톤은 모든 것은 고유의 역할이 있고 이것을 잘 해내는 것을 조화로서 강조하지만 플라톤도 이것이 힘들 것임을 안다. 마지막에 신의 축복이 없는 한 이런 철인이 통치하는 일은 드물 것이라 말한다.

 

물론 오래된 논의다. 그리고 현재의 민주주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입장에서 본다면 소크라테스의 논의는 의외로 구시대적이고 다양한 논의를 이끌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중요성은, 통치체제들을 비교하고, 정의에 따라 어떤 체제가 옳은 가 하는 논의를 구체적으로 다뤘기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의 논의들은 이데아론으로 향하기에 적어도 통일성이 있다고 여길 수 있으려나. '니코마코스 윤리학'보다는 쉽게 읽히며 각주 또한 친절하게 돼있다. 이제 현대지성 클래식은 믿고 읽는다. 교양서적으로 더욱 쉽게 읽게 하는 것에 초점이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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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한길그레이트북스 40
윌리엄 제임스 지음, 김재영 옮김 / 한길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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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 교회를 다니면서 어떤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내가 믿고 있는 신의 개념과 타인의 개념은 일치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같은 텍스트를 읽고 '같은 신'을 섬긴다고 하지만, 같은 종파를 가진 저 멀리 떨어진 곳의 신도와 나의 신앙이 100% 일치할 수 있을까? 또, 현대의 종교라고 하는 과학적 믿음 자체도 그 세부적 가설과 믿음이 다양한데 우리가 '믿음'이라는 체계를 하나의 공통담론으로 여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살기 피곤해진다) 그니까 쉽게 말하면, 텍스트로만 배워서 너와 내가 믿는 게 100% 같은 것이냐는 말이다. 사실 경험하는 것은 달랐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와 체화하지, 외부의 것으로부터 뇌에 달달 외워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외부적으로 받아들여진 종교는 너와 나를 구분하는 잣대가 될 뿐이었다.

자 그렇다면, 우리에게 종교적 의미란 무엇일까? 윌리엄 제임스는 '경험'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갑자기 "신내림을 받았다" 혹은 "번개를 맞았는데, 갑자기 천국이 보였다"라며 자신이 신과의 어떤 관계를 경험하고 획기적인 이론을 들고 오는 종교인들을 몇 보지 않았나. 사실 농담으로 말한 것이지만,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 속에 종교의 근원적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프래그머티즘, 실용주의 학자로 알려져 있는 윌리엄 제임스의 대표 저작<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이다. 먼저 프래그머티즘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흔히 '실용주의'로 불리는 현대철학의 한 학파로, '경험'을 강조한다. 프래그머티즘에 대한 입문서로 [듀이&로티: 미국의 철학적 유산, 프래그머티즘]을 추천한다.

제임스는 지식으로 우리의 삶이 개선되거나 향상되는 것을 원했다. 그 초점이 어떤 '올바름'이 아니었기 때문에 종교적 문제에 관해서 조금 더 너그러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고를 가졌던 제임스는 집에 박혀서 연구하는 칸트 같은 스타일이 아니었다. 너무 깊은 과학적 논쟁도 지양했으며 같은 의미에서 너무나도 (그의 입장에서) 의미 없는 신학적 다툼 같은 것도 의미가 없었다. 내가 보는 그의 의미지는 어느 정도 중간선상에서 삶을 개선하는 입장에 있다. 그런 관점은 종교 연구에서도 보인다.

"제임스는 어떤 특정한 종파나 종교의 관점에서 종교현상을 연구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해서 어떤 특정한 철학 사조나 학파의 관점에서 철학을 연구하지도 않았다. 그 둘을 엮을 수 있는 전인적인 인간 이해의 관점, 즉 종교연구로부터는 감정적 측면, 그리고 철학연구로부터는 지적 측면을 모두 포함시키는 관점에서 종교와 철학의 관계를 연구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윌리엄 제임스의 전반적 사상을 프래그머티즘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실러가 처음 사용한 휴머니즘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적절할 것이다. (p.27)

이론에 조금은 오류가 있어도 그 종교가 삶에 의미를 주면 참이라고 여겼다. 그는 과정과 경험을 강조했다. 그니까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이론보다는 경험이 더 우선된다. 제임스는 애초에 종교연구에서 실증주의, 과학적인 연구가 가능하지 않다고 여겼다.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 삶의 다양한 현상들이란 관념적이고 논리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연결고리들을 하나의 현상 안에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연결점들의 상호 관련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는 어떤 현상의 실재도 분명하게 드러내놓을 수 없다."

물론 이 책은 '종교란 무엇인가' 따위를 묻는 내용은 아니다. 종교적 경험은 그 현상 자체,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 그것들을 입증하기 위한 수많은 사례들이 내용으로 꽉꽉 차있다. 그러면 그런 현상들에서 공통적인 몇 가지 특징들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이고, 자신이 어떤 진리를 발견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에게 종교적 삶이라는 것은, 그저 역사적으로 이어져온 인간 사회 혹은 개인의 본질적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종교에 있어서 우리가 제도화한 것이 믿음으로 연결되려면 그 간극을 어떻게 채워야 하나,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세계사에서 서양 종교를 전파할 때 보였던 그 간극을 폭력으로 극복했던 모습과 문화 간 일치점을 기반으로 극복한 모습이 동시에 떠오른다. 그에게 종교의 의미는 다양한 여러가지 종교적 모습 속에서 보인 본질적으로 같은, "공통적인 종교적 경험의 표현"이라 말할 수 있다.

"인간이 성스러운 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것과 관련지어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한, 종교는 인간 개개인들이 고독 가운데 표현한 감정들, 행위들 그리고 경험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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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날 - 출판인 김언호가 만난 우리 시대의 현인들
김언호 지음 / 한길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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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인생을 살아가다 한 시대가 끝났음을 느낄 때가 있는데, 가령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은퇴했거나, 그들의 부고 소식이 들려올 때다. 나에게 그것은 최근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와 조세희의 작고 소식이 들려올 때였다. 그들은 이제 책 속이나 많은 이들의 기억 한 편에 남아 간간이 들춰진다. 


출판사 「한길사」의 대표이사인 김언호는 세대의 인물들을 기억하고 다시 한 번 알리기 위해 팬을 들었다. <그해 봄날>은 유신시대를 거쳤던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에 대해 출판사 대표가 직접 바라보며 서술한 이야기다. 출판사 대표인 김언호가 만났거나 한길사를 통해 책을 출판한 인물들과 함께했던 한길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세대의 기억을 봄날로 이름지었다.



함석헌, 김대중, 송건호, 리영희, 윤이상, 강원용, 안병무, 신영복, 이우성, 김진균, 이이화, 최영준, 이오덕, 이광주, 박태순, 최명


출판인 김언호가 만난 이들은 시대의 인물들이다. 익숙한 이름들이 보일 것이다. 일단 그가 가장 애정하는 사람이 함석헌 선생이었다. 특히 그는 함석헌 선생의 씨알사상을 그토록 좋아했는데, 함선생은 선비 그 자체였다. 할 말은 하고 사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박정희조차 쉽게 다루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꼽은 인물중 리영희같은 논란의 인물도 존재하지만, 나는 그가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자유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논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저작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는데, 나는 다시 한 번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정주행했다. 생각보다 우리가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 단순하게 평가할 수 있는 지점은 적다. 시대의 인물은 시대의 담론과 함께한다. 북한에 가족을 둔 강원용 목사와 리영희 선생, 고국을 떠났지만 고국을 생각하며 작고할때까지 통일을 염원한 윤이상 선생과 같은 인물의 의지가 풍긴다.


그렇다. 이 책은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출판사 대표라는 인물이 해설자가 되어서 인물들을 설명한다.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이야기해주는 옛날이야기 같아서 술술 읽히기도 한다. 읽고 나면 마음속에 무엇인가 잔잔히 물결치는데, 이것은 아마 시대의 정신이라고 하는, 인간들만이 전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할만한 것이 우리의 마음과 공명하는 걸지도 모른다. 인간은 인간의 이야기에 감응한다.


한길사와 김언호는 파주출판도시의 기획과 건설에 앞장선 개척자다. 한길사는 이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파주로, 강남 신사동에 있던 회사를 옮겼다. 김언호에게는 꿈이 있었다. 책의 도시, 책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꿈이었다. 그것은 출판인들의 꿈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꿈은 결국 이뤄졌다.



책을 읽고 출판사 직원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물론 한국 현대 역사를 건너온 출판사 대표이사 '김언호'라는 특수한 인물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읽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는 시대의 인물들과 힘듦, 고난을 함께했다.  「한길사」의 사무실은 창고 같은 곳이기도 했고 그는 정부에게 위험인물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일종의 기억 혹은 추억이 되어 봄날로 불릴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는 일종의 '기자'이기도 했다. 이처럼 시대의 주역과 함께할 수 있음은 축복이기도 하다. 나도 언젠간 나의 세대를 기억하며, 나만의 세대를 봄날로 기억하겠지


사실 나에게 한길사가 좋은 큰 이유는 많은 고전을 번역해 읽을 수 있게 해줬다는 것(?)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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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 사이 - 정치사상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 연습 한길그레이트북스 182
한나 아렌트 지음, 서유경 옮김 / 한길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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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유머가 있지 않나, 만약 책이 어렵게 읽힌다면 저자가 독일인인지 확인하라고. 한나 아렌트는 말을 어렵게 한다. 그녀의 사상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그녀의 글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계속해서 읽다 보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이 온다. 나도 그랬다.


『과거와 미래 사이』는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 에세이 모음집이다. 8장으로 이루어져 전통과 현대, 역사 개념, 권위와 자유란 무엇인가, 교육과 문화의 위기와 진실과 정치, 우주 정복과 인간의 위상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해결점을 제시하기보단 현대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이 저서는 한나 아렌트의 말로 "정치사상에 관한 철학 연습"을 위한 글이다.


'과거와 미래 사이'는 어디인가? 그렇다 지금 여기 현재다. 한나 아렌트의 시간관에서는 무한한 과거와 미래가 부딪히는 곳이 과거와 미래 사이인데, 여기서 우리는 사유할 공간을 확보한다. 한나 아렌트는 과거와 현재의 역사관을 비교하면서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살펴보며 전통적인 자연관을 벗어난 인간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왜 이것이 문제인지 고찰한다.


'전통의 단절'이 주요 포인트인데, 한나 아렌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 서구 정치사상의 전통이 키르케고르, 마르크스, 니체 각각의 이론에서 보여지는 특성에 의해 붕괴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플라톤 이래로 기존 사물을 재고 판단하며 또 그것의 의미를 부여한다고 추정되었던 초감각적이고 초월적인 이데아들에 대항해 니체가 감각적이고 물질적으로 주어진 것과 삶에 대해 강조한 일은 일반적으로 허무주의라고 불리는 것으로 귀결되었다."(p.117)라고 말한 것처럼, (물질왕 마르크스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시대의 인물들은 저 너머에 있는 이데아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


현대 역사 개념은 16-17세기 자연과학의 거대한 발전을 예고한 시기에 일어났다고 설명하는데, 이 가운데 '세계-소외 현상'이 있음을 말한다. 이것의 한 측면으로 "인간의 지각에 '객관적으로'주어진 어떤 불변하며 변할 수 없는 대상인 외부 세계의 실재에 대한 회의" 즉, 현대적 회의의 중요한 결과로, "'감지된' 대상보다 더욱 '실재적'인 것으로서, 그리고 어쨌거나 경험의 유일하게 안전한 근거인 감각을 감각으로서 강조한 일"을 들었다.


이는 세상을 이해했던 인간의 사고 변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감각을 믿은 인간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이해했고, 과거에 신적으로 의미부여가 되었던 것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 또 그것은 객관적 의미추구로 이어졌다.


과거의 인간에 대한 수사인 정치적 동물, 언어적 동물, 이성적 동물이 아닌, 현대의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 따위로 해석되어 '행위하는 인간'이 되었다. 이 행위하는 인간에겐 역사란 하나의 '과정'이다. 그렇게 발전 진보와 같은 하나의 '과정'으로서 자연과 역사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렌트가 "행위 능력이 인간의 모든 능력 및 가능성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 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왜? "자연의 행위를 가하는 일, 즉 우리가 결코 믿을 만한 수준으로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기초적 힘들과 직면하는 영역에 인간의 예측 불가능성을 끌고 들어가는 일은 위험 천만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행위 능력이 여타 능력들ㅡ관조를 통한 경이(wonder)와 사유(thought)의 능력 못지않게 호모 파베르 [즉 제작자]로서 인간과 애니멀 래보란즈 [즉 노동하는 동물]로서 인간의 능력도 여기 포함된다ㅡ을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일일 듯 하다." (p.164)


​한나 아렌트는 역사를 돌아보며 전통의 붕괴와 인간 사고의 변화 즉, 사유능력의 퇴보를 지적했다. 그 사이에 역사를 그저 하나의 '과정'으로 보고있는 '행위하는 인간'이 있다. 행위가 사유를 압도해버렸다.


현대 과학의 목표는 훨씬 더 인간의 감각들과 정신에 스스로 드러나는 저 자연현상의 이면에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관점에서 인간세상을 본다면, 그것은 단지 외화된 행태일 뿐이다.여기서 아렌트가 우주정복의 시대에 들어서 우리는 이런 인간의 모습이 '위태로울 정도로의 지점'에 가까워졌다 비판하는 것이다. 이 관점을 추구하는 현대는 "발언과 일상 언어가 의미 있는 발화가 되지 못한 것"으로 정치적 공간이 사라진 것이다. 아렌트 사상의 핵심은 '인간의 복수성'이다. 인간은 발화를 기반으로 다양한 의견을 가진 정치를 만든다. 우주를 정복한 인간의 위상은 나아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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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 2023-07-28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떠한 책인가 가늠하고자 읽은 댓글인데
발화를 느끼고 말았습니다.
저같은 청년 중 철학함과 사유의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극히 드물죠.
지금의 청년들이 전통이라는 유산의 단점은 차치하고 장점 까지도 모조리 감각의 어둠 이면으로
묻어버린 것이 아닌가 염려스럽습니다.
더 거대해진 군중들과
더 거대해진 소통창구
더 거대해진 정치세력
이 모든 감각의 조합들이 과연 어떤 22세기 미망의
역사를 만들어버릴까요.
 
과학의 반쪽사 - 과학은 어떻게 패권을 움직이고 불편한 역사를 만들었는가
제임스 포스켓 지음, 김아림 옮김 / 블랙피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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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는 흥미롭다. 과학 그 자체만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사는 인류 발전 과정을 보여주며 특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든지 ’뉴턴의 사고‘와 같은 인류사상 발전의 발자국을 보여준다. 과학지식과 세계사 배경이 합쳐져 과학사라는 흥미로운 분야가 탄생했다.

먼저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양 중심적인 과학사관에 의문을 제기하며, 인류의 발전은 세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주장한다. 저자는 다양한 예시를 들면서 과학의 발전은 주로 정치적 변혁, 시대의 흐름과 동반함을 증명한다.

“이 책에서 나는 근대과학의 기원에 대해 아주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고자 한다. 과학은 유럽만의 특별한 문화적 산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근대과학은 언제나 전 세계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모인 사람과 아이디어에 의존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과학사의 중요한 인물을 뽑는다면 아리스토텔레스, 코페르니쿠스, 뉴턴, 다윈, 모스, 맥스웰, 아인슈타인, 크릭, 왓슨과 같은 서양 중심의 인물들을 들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몰랐던, 이들의 사상이 나오기 위해서 필요했던 인물들과 그들과 교류했던 학자들의 이름과 사상들을 밝혀낸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알려진 이야기로 논의를 시작한다. 우리가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고대의 부활을 추구한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아랍의 문헌들이었다. 로마 멸망 후 고대의 서적들은 아랍 학자들에 의해 번역되고 또 연구되었다. 이렇게 보관된 도서들은 르네상스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고 서양 국가들 또한 아랍 서적을 공부하고 다시 번역해야 했다.

대항해시대와 제국주의 시대에서 선진국의 주요 과제는 어떻게 다스릴까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현지 지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서구의 탐험 일지에는 원주민들의 천문학적 지식에 감탄하는 내용이 나타나며, 서구는 이들을 지배하기 위해 이들에게 의존했다. 또한 원주민이나 아시아인들에게 배우면서 자신들의 과학적 지식을 발전시켰다. 역설적이지만, 협력적 지배였다.

심지어 우리가 알고 있는 뉴턴이나 기타 천문학자들은 해외 소식을 기록한 문서나 연구서에 의존했는데, 이런 현지 연구는 보통 현지인들이 하거나 그들이 연구해왔던 것들을 번역한 것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뉴턴역학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국가적인 경쟁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면서 국가를 개선하는, 특히 군사적 목표를 위한 실용적 과학이 중요해졌다. 그렇게 러시아와 일본과 같은 국가들은 서구의 과학을 받아들이고 자체적으로 수많은 예산을 들여가며 과학을 발전시켰다. 다양한 국가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이 더욱 자연스러워졌다.

이제 과학은 모든 국가의 ’임무‘ 혹은 ‘의무’가 되었다. 이데올로기를 위한 도구가 되기도 했고, 국가의 존립과 정치적 생존을 위한 도구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경쟁을 통해 과학은 더더욱 발전했다. 하지만 과학이 그 자체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위하거나 특정 목적을 위한 단순 수단에 그칠 때 비극이 탄생했다. 멘델의 법칙을 마르크스주의로 눌러버린 러시아의 리센코 주의와 마오쩌둥의 정책은 수많은 굶주림과 죽음을 만들었다.

DNA 연구가 현대 과학의 떠오르는 화제거리였다면 게놈 프로젝트와 컴퓨터의 발전 이후 우리의 논의는 인공지능, 우주탐사, 기후 과학의 세 가지 주요 분야로 옮겨져 왔고, “이들 각 분야의 미래는 과학자와 정치인들이 어떻게 세계화와 민족주의라는 두 힘에 맞서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는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고조되는 신냉전의 시대며 이에 따른 과학기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저자는 중국의 AI 개발이 빠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개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거나 쉽게 무시하는 무자비한 정보 습득을 꼽는데, 이는 서양에서는 하기 힘든 일이다. (물론 이들은 저개발 국가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정보를 얻는다)

이런 모습들을 본다면, 과학기술은 정치적 움직임에 의해 폭발적으로 진전되거나, 저지되거나 천천히 발전할 수 있음을 느낀다. 또한 이 세계는 국가 간 기술의 차이가 대항해시대의 서양과 원주민처럼 구조적으로 큰 차이가 존재하는 시대는 아니다. 개인과 문화를 포함한 국가 간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제는 전 세계적인 프로젝트가 쉽게 이루어진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세계 과학의 발전은 어느 하나만으로 비롯된 것이 아니며, 또 한 국가가 오로지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앞으로 나타날 수많은 문제에 대해서 미국과 같은 한 국가가 아닌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고, 매우 정치적인 맥락 속에서 다뤄야 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학사 속에서 숨겨졌던 중요 인물들을 밝히고, 현대 사상 발전의 인과관계를 밝혀주기에 과학의 세계적 관점 혹은 과학의 세계사라는 점에서 훌륭한 책이다. 하지만 새로운 의제를 던졌다거나 앞으로의 과학 발전을 어떤 방식으로 또 어떤 시점에서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서는 너무 넓은 관점에서, 어찌 보면 세계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단순한 방식으로 바라보기에 아쉬운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장마다의 논의와 근거가 풍부해 자료수집으로 매우 좋다는 것이다.

인류의 발전은 한 문화나 한 국가가 주도해 온 것이 아님을 조금 더 상세하게 밝혀주는 좋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더불어 한국에서 출간되지 않은 책의 내용도 들어있어 유익하다. 앞으로의 과학 발전을 우리는 어떤 정치적 맥락에서, 어떤 철학적인 고민을 가지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개선하거나 저지해야 할까 저자는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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