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반쪽사 - 과학은 어떻게 패권을 움직이고 불편한 역사를 만들었는가
제임스 포스켓 지음, 김아림 옮김 / 블랙피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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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는 흥미롭다. 과학 그 자체만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사는 인류 발전 과정을 보여주며 특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든지 ’뉴턴의 사고‘와 같은 인류사상 발전의 발자국을 보여준다. 과학지식과 세계사 배경이 합쳐져 과학사라는 흥미로운 분야가 탄생했다.

먼저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양 중심적인 과학사관에 의문을 제기하며, 인류의 발전은 세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주장한다. 저자는 다양한 예시를 들면서 과학의 발전은 주로 정치적 변혁, 시대의 흐름과 동반함을 증명한다.

“이 책에서 나는 근대과학의 기원에 대해 아주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고자 한다. 과학은 유럽만의 특별한 문화적 산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근대과학은 언제나 전 세계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모인 사람과 아이디어에 의존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과학사의 중요한 인물을 뽑는다면 아리스토텔레스, 코페르니쿠스, 뉴턴, 다윈, 모스, 맥스웰, 아인슈타인, 크릭, 왓슨과 같은 서양 중심의 인물들을 들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몰랐던, 이들의 사상이 나오기 위해서 필요했던 인물들과 그들과 교류했던 학자들의 이름과 사상들을 밝혀낸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알려진 이야기로 논의를 시작한다. 우리가 르네상스라고 부르는, 고대의 부활을 추구한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아랍의 문헌들이었다. 로마 멸망 후 고대의 서적들은 아랍 학자들에 의해 번역되고 또 연구되었다. 이렇게 보관된 도서들은 르네상스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고 서양 국가들 또한 아랍 서적을 공부하고 다시 번역해야 했다.

대항해시대와 제국주의 시대에서 선진국의 주요 과제는 어떻게 다스릴까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현지 지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서구의 탐험 일지에는 원주민들의 천문학적 지식에 감탄하는 내용이 나타나며, 서구는 이들을 지배하기 위해 이들에게 의존했다. 또한 원주민이나 아시아인들에게 배우면서 자신들의 과학적 지식을 발전시켰다. 역설적이지만, 협력적 지배였다.

심지어 우리가 알고 있는 뉴턴이나 기타 천문학자들은 해외 소식을 기록한 문서나 연구서에 의존했는데, 이런 현지 연구는 보통 현지인들이 하거나 그들이 연구해왔던 것들을 번역한 것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뉴턴역학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국가적인 경쟁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면서 국가를 개선하는, 특히 군사적 목표를 위한 실용적 과학이 중요해졌다. 그렇게 러시아와 일본과 같은 국가들은 서구의 과학을 받아들이고 자체적으로 수많은 예산을 들여가며 과학을 발전시켰다. 다양한 국가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서로가 영향을 주고받는 모습이 더욱 자연스러워졌다.

이제 과학은 모든 국가의 ’임무‘ 혹은 ‘의무’가 되었다. 이데올로기를 위한 도구가 되기도 했고, 국가의 존립과 정치적 생존을 위한 도구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경쟁을 통해 과학은 더더욱 발전했다. 하지만 과학이 그 자체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위하거나 특정 목적을 위한 단순 수단에 그칠 때 비극이 탄생했다. 멘델의 법칙을 마르크스주의로 눌러버린 러시아의 리센코 주의와 마오쩌둥의 정책은 수많은 굶주림과 죽음을 만들었다.

DNA 연구가 현대 과학의 떠오르는 화제거리였다면 게놈 프로젝트와 컴퓨터의 발전 이후 우리의 논의는 인공지능, 우주탐사, 기후 과학의 세 가지 주요 분야로 옮겨져 왔고, “이들 각 분야의 미래는 과학자와 정치인들이 어떻게 세계화와 민족주의라는 두 힘에 맞서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는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고조되는 신냉전의 시대며 이에 따른 과학기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저자는 중국의 AI 개발이 빠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개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거나 쉽게 무시하는 무자비한 정보 습득을 꼽는데, 이는 서양에서는 하기 힘든 일이다. (물론 이들은 저개발 국가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정보를 얻는다)

이런 모습들을 본다면, 과학기술은 정치적 움직임에 의해 폭발적으로 진전되거나, 저지되거나 천천히 발전할 수 있음을 느낀다. 또한 이 세계는 국가 간 기술의 차이가 대항해시대의 서양과 원주민처럼 구조적으로 큰 차이가 존재하는 시대는 아니다. 개인과 문화를 포함한 국가 간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제는 전 세계적인 프로젝트가 쉽게 이루어진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세계 과학의 발전은 어느 하나만으로 비롯된 것이 아니며, 또 한 국가가 오로지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앞으로 나타날 수많은 문제에 대해서 미국과 같은 한 국가가 아닌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고, 매우 정치적인 맥락 속에서 다뤄야 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학사 속에서 숨겨졌던 중요 인물들을 밝히고, 현대 사상 발전의 인과관계를 밝혀주기에 과학의 세계적 관점 혹은 과학의 세계사라는 점에서 훌륭한 책이다. 하지만 새로운 의제를 던졌다거나 앞으로의 과학 발전을 어떤 방식으로 또 어떤 시점에서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서는 너무 넓은 관점에서, 어찌 보면 세계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단순한 방식으로 바라보기에 아쉬운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장마다의 논의와 근거가 풍부해 자료수집으로 매우 좋다는 것이다.

인류의 발전은 한 문화나 한 국가가 주도해 온 것이 아님을 조금 더 상세하게 밝혀주는 좋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더불어 한국에서 출간되지 않은 책의 내용도 들어있어 유익하다. 앞으로의 과학 발전을 우리는 어떤 정치적 맥락에서, 어떤 철학적인 고민을 가지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개선하거나 저지해야 할까 저자는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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