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 - 초대 정책실장 이정우가 기록한 참여정부의 결정적 순간들
이정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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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크게 와닿지 않는 사람이다.

그가 재임하던 2003년부터 2008년까지는 초등학생이었고 접점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노무현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부모님 몰래 피시방에 갔는데 '노무현이 죽었다'는 소리가 퍼지며 많은 이들이 놀라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소식은 그의 사후 책이나 뉴스같은 매체로 접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 정치에서 노무현이란 인물은 하나의 이정표이며 그는 수많은 씨앗을 뿌렸다. 보수측의 여러 인물들도 존경하는 인물로 노무현을 뽑지 않나. 정치인 대다수가 '노무현 정신'을 이어받겠다고 말한다. 과거에 그를 공격하고 수세로 몰고갔던 사람들조차 그를 칭송한다.


그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그 자신이 뇌물수수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검찰 수사와 언론에 의해 굉장한 압박과 모욕을 받았다. 물론 가족이 받은 것을 그가 관리하지 못한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고, 그가 스스로 세상을 등진 것은 무책임하다며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벼락까지 몰고간 수사와 언론의 행태를 생각하면 단순히 그의 선택을 비난하기 어려워진다. 더군다나 특활비 사용을 최소화 하고 예산 투명화를 추구한 그의 노력을 생각하면 더더욱 아쉬운 일이다.


많은 이들이 작금의 정치 상황을 보며 노무현 대통령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에는 굉장한 언론과 야당의 비난과 비판을 받았고 탄핵소추까지 당했다. 과거는 미화되는 것이라고도 말하만, 나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상징하는 것들이 있었기에 지금도 회자되고 존경하는 대통령 1,2위를 차지하지 않나 생각한다.


지금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극적인 대통령 당선부터 열린정부, 참여정부를 지향했던 노무현을 상징한 것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인수위시절부터 진행된 활발한 개혁 움직임과 개혁 과제들은 무엇인가 해보자는 마음, 그동안 하지 못했던 개혁을 하고자 모두가 합심하고 희망하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가 토론을 굉장히 좋아했고 권력자의 이미지를 국민의 눈높이로 낮춰놓았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더더욱 소통이 와해되고 정부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강조되는 이 시기에 그의 정치적 방향성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어도 인간으로서, 대통령으로서의 태도를 비난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은 노무현 대통령 정책 실장을 지낸, 또 노무현이 아꼈던 이정우가 노무현 정부 시절 틈틈이 기록했던 글들을 모아 낸 책이다. 그가 노무현과 일을 하면서 처리했던 굵직한 사건들과 개혁의 시도, 공과와 개인적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낸다. 정책실장이라는 직책이 정부 정책 방향을 나타내는 위치이기에 노무현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는지 그 방향성을 잘 나타낸다.


5년이란 긴 시간동안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 인수위시절은 대구 지하철 참사와 함께 시작했으며, 카드대란, 화물연대 파업, 민영화 문제, 미국 외교문제, 검찰과 언론과의 전쟁, 지방 발 등의 각종 사건과 문제들이 있었으며 이에 대해 개혁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책에서도 보여지지만 노무현은 많은 안건에 대해서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토론해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잘 됐는지는 둘째 치더라도 말이다. 그만큼 무엇을 많이 하려 했기에, 너무나 도려내려 시도했기에 공격받았기도 하다.


권위주의를 내려놓은만큼 언론의 공격을 많이 받았다. 당시 언론 문제가 많이 언급되는데, 언론은 해외 장관의 발언을 왜곡(172p) 하거나 저자 이정우를 미행하며 발언을 왜곡하고, 종북좌파 프레임을 씌우려고 했다. 언론은 노무현 정부 초기부터 공세를 퍼부었고 대통령에게 말을 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무현은 악의적 보도와 언론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웠다. "언론에 오보가 많고 희망사항을 사실인 양 보도하는 경우도 많았다. 노 대통령은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라 언론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일전 불사 태도였는데 장관과 참모들이 소극적인 것에 불만이 많았다."(196p) 더불어 언론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다. 특히 이는 '신문고시',와 '가판'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한 것으로 드러난다. 당시 삼성과 갈등을 겪었기에 중앙일보에선 정부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노무현은 그럼에도 자신을 비판하는 기자들까지 모아 오찬을 즐겼고 도움을 부탁했다.


그의 행적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보수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당시 협의 요청을 무시하고 파업을 벌이는 노동운동의 비도덕성과 책임성에 대해 비판했고, 새만금 사업 당시 환경 단체와 농민들의 요구도 비판하며 "천하가 뒤집어지더라도 제대로 결정해야 한다"며 굉장히 신중한 자세를 취한다. 원칙과 토론을 중요시한, 이론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주의에 매우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국방예산에 있어서도 감축에 반대의견을 표했다.(273p) 더불어 토론을 중요시한 만큼 표현의 자유를 보장했는데, 노무현은 나이스(neis)문제를 다루는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이 자신의 소신을 마음껏 전달했고, 당시 전교조의 무조건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듣고 토론을 시도했다.(물론 이는 참모들의 반대에 의해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장기주의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하며 단기적 효과를 낼 수 있는 반칙들을 지양하는, 원칙주의적 성격을 보였고 급진적이고 용두사미적 개혁이 아닌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고 대화와 설득을 통해 점진적으로 조용히"(262p)개혁을 추진했다.


'노무현'이라는 인물은 마주해야 할것을 마주하는 대통령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책 전반에 걸쳐 강조되는 그의 모습은 '토론'과 '소통', '솔직함'이었다. 4.3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 이라크 전쟁 지원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말한 것, 개혁 안건들에 관해 다양한 사람들과 의논하며 국민 앞에 나와 토론한 것 등등의 이 모든 것이 그의 정치생활에 도움이 됐을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어떤 대통령도 이렇게 친절히 나와 이야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대북송금 특검법과 행자부 장관 해임건의안 모두 받아들였다. 참모들은 굉장한 반대의 의견을 냈지만, 그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계속해서 생각했고 토론을 중요시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노무현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그의 대통령 당선 과정과 결과 자체는 기적이었으며 정치학자 조귀동은 그가 정당을 통한 방식보다 대중을 직접적으로 동원한 대통령이라고 말할 만큼 대중에 큰 메시지를 전달할 힘이 있었던 대통령이었다. 세계를 포함해 정치적으로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 정치에 그가 풍기는 향수는 더더욱 강렬하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무엇인가 해볼 수 있던 시기가 아닐까 생각하는, 마지막 희망을 바라보는 시대가 아니었을까. 신행정수도 계획과 기업 분산, 균형발전, 재벌개혁, 예산개혁, 권위주의 타파, 연금개혁과 같은 굵은 개혁들에 그 누가 이렇게 도전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민주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이익보다 정의를 추구했다.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찾아가자 혜왕이 물었다. "선생께서 불원천리 찾아오셨으니 우리나라에 큰 이익을 주시겠지요?" 맹자가 답했다.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 노무현은 평생 이익 대신 정의를, 약자에 대한 배려를 앞세웠다. 늘 손해 보고 지는 길을 갔다. 397p


이 책은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저자 이정우(특히 후반부에 짧게 정리된)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그 시대의 독자들이라면 공감하면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포인트가 많다. 그의 인생사를 읽으면 세상은 언제나 역동적이고, 나는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 그가 글을 마치며 하는 말이다. 나에겐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행동하고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고백할 용기가 있을까.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에 대한 이야기도 간간이 나온다. 문재인 수석이 언론에 노출될 때 스스로도 그렇고 주변 인물도 그가 나서는 걸 꺼려했지만 당시엔 현안을 잘 알고 다양한 사람들도 알고있는 사람이 문재인이었기에 이후에 그가 노무현의 후예를 자처해서 나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가 노무현 정신을 실현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노무현이 뿌린 씨앗은 대중에게도, 정치권에도 상당함을 보여준다. 더불어 그 아래서 일했던 참모들의 노력 또한 상당했음을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을 읽으며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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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저자 이정우(특히 후반부에 짧게 정리된)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그 시대의 독자들이라면 공감하면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포인트가 많다. 그의 인생사를 읽으면 세상은 언제나 역동적이고, 나는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 그가 글을 마치며 하는 말이다. 나에겐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행동하고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고백할 용기가 있을까.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에 대한 이야기도 간간이 나온다. 문재인 수석이 언론에 노출될 때 스스로도 그렇고 주변 인물도 그가 나서는 걸 꺼려했지만 당시엔 현안을 잘 알고 다양한 사람들도 알고있는 사람이 문재인이었기에 이후에 그가 노무현의 후예를 자처해서 나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가 노무현 정신을 실현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노무현이 뿌린 씨앗은 대중에게도, 정치권에도 상당함을 보여준다. 더불어 그 아래서 일했던 참모들의 노력 또한 상당했음을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을 읽으며 느낄 수 있다.

참여정부는 5년 내내 보수 언론의 공격에 시달렸다. 공격받은 횟수에서 압도적 1위는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다. 2위는 누구일까? 아마 나일 것이다. 나는 대통령보다 훨씬 적지만 다른 참모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은 공격을 받았다. 그 정도 공격을 받으면 대게 대통령은 참모를 교체한다. 잘못이 없어도 교체하는 게 불문율이자 관례다. 내가 그토록 공격받으며 2년 반 동안 일한 건 예외 중의 예외다. 이건 오로지 노무현 대통령이 지켜 준 덕분이다. 언론의 압력에 굴하지 않은 이런 대통령은 일찍이 없었다. 그런 대통령 밑에서 일한 나는 행운아였다.

190p


한겨레 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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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이데올로기 - 수저 계급 사회에 던지는 20가지 질문
조돈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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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노동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학자 조돈문이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펴냈다. 그는 각종 통계와 이론을 통해 불평등을 설명하며 세계적 흐름과 한국 사회를 진단한다.

이 책은 필자가 기획한 불평등 시리즈 두 권 가운데 그 첫 번째 책으로서 우리 사회가 왜 불평등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벗어날 여지는 없는지를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26p

책 초반의 이야기는 <21세기 자본>, <자본과 이데올로기>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토마 피케티는 연구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지, 그 구조적 메커니즘을 증명했다. 자산 수익률(r)이 국민소득 증가율(g)보다 증가하면 불평등이 고착화되는데,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20세기를 제외하고 역사적으로 자산수익률(r)이 국민소득 증가율(g)보다 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자산 수익률이 국민소득 증가율보다 커져서 노동을 해도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특성에 비롯된 r > g 부등식 경향성으로 인해 '소득 불평등 심화 -> 자산 불평등 심화 -> 소득 불평등 심화'의 악순환으로 소득 불평등은 갈수록 더 악화된다." (50p)


저자는 현재 가장 불평등한 영미형 자유시장경제 모델과 가장 덜 불평등한 스칸디나비아형 사민주의 모델 두 모델을 대표적으로 논의를 이어간다. 스웨덴은 과거 불평등한 상태에서 현재 평등해졌고, 미국은 반대로 과거에는 평등했지만 현재는 불평등한 상황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시장경제 모델의 계급 역학관계를 검토해야 하는데, 핵심은 각국의 노동조합과 조직력 수준, 노동 계급의 정치 세력화 성공 정도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피케티는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면서 계급 역학관계도 물론 중요하지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메커니즘으로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을 말했다. 불평등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느냐, 평등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방향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저자는 불평등 이데올로기에서 주장하는 주요한 세 가지 기본명제를 나열하고 이에 하나씩 검토에 들어간다. 기본 명제는 다음과 같다.


1) 불평등은 없다

2) 불평등이 있다 하더라도, 불평등은 정당하다

3)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없다 하더라도, 대안적 평등 사회는 실현 불가능하다


데이터에 근거해 1번 명제의 근거는 모두 거부된다. 2번 명제의 근거인 낙수효과와 순기능 근거는 거부되었지만 상승 이동 기회 보장 근거는 거부되지 않았다. 3명제에서는 평등 사회 대안 부재 근거는 수용도 거부도 되지 않았으나 평등 사회 이행 불가 근거는 실질적으로 수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확실한 것은 한국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저자는 철학적인 '공정'을 논하기 위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인 공리주의적 평등과 롤스의 공정성 원칙으로의 평등을 논의한다. 롤스가 정의론에서 주장한 공정인 자유의 원칙과 기회 균동 보장의 원칙은 굉장히 이상주의적이기에 많은 나라가 달성하지 못했다고 평가하지만 소외된 사람들에게 이득이 가게 하는 원칙은 자유방임 자본주의와 복지국가 자본주의의 차이점을 드러낸다. 한국은 공리주의적으로도, 롤스의 공정으로도 공정하지 못한 사회다.


위의 분석에서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조금 낮은 수준으로 불평등하고 미래에 대해 비관적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평등과 공정의 인식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사회학자 박권일은 저서<한국의 능력주의>에서 한국인은 불평등에는 예민하지 않지만 불공정에는 예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저자는 ISSP의 조사를 인용해 박권일의 주장에 반대하며 한국인은 '불평등도 못 참고 불공정도 못 참는다'라고 이야기한다.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강한 미국은 이에 반해 불평등에 관대한 편이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데이터로 나타나는 실제 수준처럼 자신들의 처지가 불평등하다고 인식하지 않을까? 생각보다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불평등 체제의 전형적 피해자인 노동자들의 의식 수준이 불평등 체제의 심각성만큼 높지 않은 현상은 계급 이론의 오랜 연구 과제였다." 학자들은 이 현상을 계급 형상 이론, 정의로운 세상론, 체제 정당화론 등으로 설명했다. 실제 불평등 수준을 노동자 계급이 인식하지 못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다. 우린 여기서 노동자들의 불평등 이데올로기 싸움이 기본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평등은 결국 경제적 분배의 문제이고, 개개인의 철학적 인정의 문제일 것이다. 그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최근 공정 담론과 함께 '실력주의'논란이 부상했는데, 실력주의는 '실력대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인식된다. 실력주의의 실체는 무엇일까. 먼저 저자는 '실력주의'와 '노력주의' 용어를 구분한다. 선천적 지능과 후천적 노력은 구분할 필요가 있어서 광의의 개념은 실력주의로, 협의의 개념으로 능력주의를 말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래 인용구와 같이 '실력주의'는 동서양을 가르지 않고 중요시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능력주의'를 중시하는 것에 더 가깝다. 실력주의 비판은 실력주의 보상 방식이 소득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원인으로 작동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인이 기여 상응 보상의 형평 원칙을 중시하는 태도는 인류 보편적인 평등 감수성과 공정 감수성을 반영하는데, 서구 자본주의 시민들과 다르지 않다. 한국인도 필요 요인보다 실력 요인을 중시하고 있어 광의의 실력주의가 서구처럼 일정 정도 확산하고 있지만 출신 배경에 밀려 서구에 비해 실력주의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한편, 서구 자본주의 시민들이 노력을 경시하고 협의의 능력을 중시하는 반면 한국인은 협의의 능력 못지않게 노력도 중시하며 상대적으로 자본보다 노동에 더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221p


'인천국제공항 사건'은 한국 내의 실력주의와 공정성, 또 노동에 대한 인식이 모두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비정규직 문제가 최우선 해결 과제로 뽑혔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격차가 두 배나 되며 비정규직 오남용을 일삼은 '인천국제공항'이 떠오른 것이었다. 저자는 이 사건이 "피고용자의 절반 이상을 점하는 과도한 비정규직 규모와 정규직-비정규직의 임금 등 노동 조건 격차"로 나타난 문제가 핵심이지만 언론과 정쟁을 통해 애초에 구조적 피해자인 비정규직이 취준생의 자리를 뺏은 것처럼 프레임이 씌워져 "인국공 사태를 개인적 이해관계의 제로섬 게임으로 설정하고 비정규직 오남용 문제를 탈쟁점화함으로써 비정규직 문제의 정책적 해결을 더 요원하게 만들었다"(251p)고 주장한다.


한국의 불평등, 불공정 논의는 재벌을 거쳐갈 수밖에 없다. 재벌은 "총수와 그 가족·혈족이 지배하는 대규모 기업 집단을 의미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정부 주도의 수출로 시작해 외환위기와 인수합병을 거쳐 현재의 재벌 체제가 형성됐다. 재벌 집단은 정경유착으로 법질서를 유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구조는 유럽은 물론이고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조차 보기 힘든 경우다. 경제 정의적 관점에서도, 사법 정의, 사회도덕의 관점에서도 재벌 구조는 개혁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저자는 삼풍 백화점 판결 사례와 삼성 엑스 파일, 삼성의 불법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드러난 이재용-박근혜 게이트, 제일모직-삼성물산 인수합병 사건을 언급한다. "법원은 자본의 살육 행위에 매우 관대"했고, 다른 불법적 행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한국 시민들의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70%가 넘어가는 것에 일조했다. 저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상호성'을 말하며 이타주의의 상징이 된 스웨덴 발렌베리가를 한국 재벌과 비교한다. "한국 재벌은 경제적 수탈로 이득을 취할 뿐만 아니라 온갖 불법·비리·악행으로 명백하게 상호성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 상호성 원칙을 위반하는 재벌들은 시민들의 마음속에 신뢰와 존경이 아니라 불신과 질시의 정서가 자라나게 한다. 재벌 혐오감은 그렇게 형성되었고, 시민들의 상호적 공정성 원칙이 발현된 것이다."(285p)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들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며 문재인 대통령을 선출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 유명한 캐치프레이즈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을 내세워 사회·경제 개혁 정책을 제시하면서 힘차게 출발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시민들의 기대와 응원만큼, 초반에 제시했던 만큼의 사회·경제적 개혁을 단행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초반의 높은 지지율과 신뢰에 비판정신을 잊어버리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초반에 문재인 정권에 대한 높은 긍정 평가율이 의미하는 것은 "직무 수행 성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향후 직무 수행에 대한 기대감이 표현된 것으로서 촛불 정부를 자임한 정권에 투사된 촛불 항쟁의 '후광 효과'"(307p)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그 믿음을 져버리고 정권은 교체되었다. "촛불 민중이 공동선을 위해 상당한 위험 부담까지 감수하는 비합리적 선택을 한 것은 국가 권력과 지배 세력이 사회 계약의 상호성 원칙을 위반한 데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303p) 촛불 항쟁은 위에 언급된 부조리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과 분노가 이재용-박근혜 게이트로써 촉발된 것이었다.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저자는 앞서 한국 사회를 비판한 내용들을 짚어보며 대안을 찾는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미국에 의존한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미국식 자유시장경제 모델에 익숙하고 이를 선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불평등 체제의 정당화 및 불평등 심화로"나타났다. 저자는 스칸디나비아 방식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얻는다. 우리 사회의 구조와 제도를 다양하게 비교하고 조금 더 넓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도 조세 부담률이 높아지는 것을 어느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스웨덴을 벤치마킹하되 우리 사회의 객관적 조건을 고려하여 장기적 전망에서 점진적 변화를 추진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지배 체제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 개혁을 추진하되 개혁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노퓨은 수준의 변혁을 지향하는 '비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이다. 비 개혁주의적 개혁 전략은 두 가지 하위 전략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주체 형성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평등 사회를 위한 제도 개혁 전략이다."(325p) 인용한 글에서 알 수 있듯이 개혁해야 할 것이 산더미다.


사회 서비스의 상품화가 아니라 공공성을 강화하여 사회적으로 제공하고, 공기업을 사유화하지 않고 공공재를 위한 국가 지자채의 정책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며, 기업 지배 구조를 주주 지배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 협력 업체와 지역 공동체 등 이해 당사자가 지배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원청 대기업의 전횡을 막고 원 하청이 이익을 공유하도록 하여 중소기업의 이윤율을 정상화하고, 재벌이 지배 경영권을 독점 세습하지 못하도록 하고 전문 경영인 체제를 정착시키는 한편 공동 결정제와 임노동자 기금제 같은 경제민주주의 장치들도 도입 강화해야 한다.

노동자 중심 주체 형성 전략과 소득 재분배 과제가 잘 진행되어야 이행 주체와 폭넓은 지지 기반이 형성될 수 있어서 시장경제 모델의 제도 개혁도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

329p


굉장히 잘 쓰인 불평등 교양서라고 생각하며 저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불평등을 통계와 이론으로 논의하는 과정부터, 불평등 논의에 대한 반론까지 피하지 않고 하나씩 검토해서 건너간다. 사회학 서적 기준으로도 잘 쓰인 책이다. 더불어 후반부에 나오는 재벌과 관련한 부정의한 현실은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가 얼마나 뒤틀려있는지, 또한 사법정의가 재벌에게 얼마나 관대한지 잘 나타내주어 단순 불평등 문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불공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피케티나 롤스와 같은 학자들의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사회학 지식이 조금은 필요할 수 있다. 지배계급 이데올로기가 펼치는 불평등 정당화에 맞서 무엇이 본질인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경제 사회구조는 한반도라는 위치와 역사라는 특수한 시공간 아래서 특수한 방식으로 발전했는데, 그 결과 빠른 경제성장이라는 대단한 업적을 달성했지만 그 부작용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굉장히 적은 편이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최대한의 인건비 감축으로 노동의 제값,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불공정을 해소하는 것이 아닌, 기계적 실력주의에 갇혀 '불만 있으면 너도 출세하든가'라는 식으로 지배계급 이대올로기에 지배받는다. 실질적으론 "실력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습 자본주의 성격까지 보여"(333p)주는 현실인데 말이다. 적어도 미국식 경제체제를 지향할 거면, 경제 범죄도 강하게 처벌하라는 주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적 경제적 파이는 재벌들의 부조리에 눈감아 주거나 단순히 법인세를 깎으면 해결될 것처럼 재벌들을 응원하면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불공정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고 시장과 사회를 합리적으로 되돌려 놓을때 정의의 측면에서도, 경제의 측면에서도 확장될 것이다. 우리 사회는 파이를 더 넓혀갈 수 있을까.


한국 사회는 불평등과 불공정 수준이 높고 시민들의 불만도 강하며, 자본의 일방적 계급 지배 방식에 대한 노동의 저항도 강력하다. 또한 시민들의 상대적 공정성 원칙에 대한 헌신도가 높고 공정성 원칙 위반에 대한 응징 의지도 강하다. 한국의 불평등 체제는 소수의 최대 수혜자들이 불만이 누적된 압도적 다수의 피해자들에 둘러싸여 언제든 갈등이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촛불항쟁이 우연히 발발한 일회적 사건이 아닌 것도 한국의 불평등 체제가 구조적으로 불안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지배 세력은 불안한 가운데 상생을 거부하고 상당한 사회적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네거티브섬 게임을 고집하고 있다.

그래서, 99% 민중이 1% 엘리트에게 묻는다. "당신들의 잠은 편안합니까?"

345p



한겨레 서포터즈 활동으로, 출판사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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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복지 - 공장식 축산을 넘어, 한국식 동물복지 농장의 모든 것
윤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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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사 
<1명당 한해 240개 먹는데…농장서 식탁까지 ‘달걀 공포’>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07426.html 


지금(2024년)으로부터 7년 전인 2017년. 살충제 달걀 파동이 크게 일어났고, 이후에도 간간이 보도되었다. 달걀에서 기준치 이상의 항생제 성분이 나온 것이다. 현대 공장식 축산에서는 최소 장소에서 최대의 생산량을 만들기 위해 좁은 곳에 동물을 가둬 키운다. 그렇게 되면 면역력이 나빠지기 때문에 항생제를 계속해서 주입하거나 먹인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만들어내는 생산물과 그 스스로는 항생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살충제 달걀 파동'은 이런 공장식 축산의 실태가 드러난 것이었다. 아래 링크는 2017년의 글인데, 당시에도, 아니 그전에도 공장식 축산에 대한 비판 여론은 존재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51532


최근 들어 공장식 축산을 비판하는 기사와 저서, 환경운동가들이 많아졌고 대체 육류도 개발 중일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의식도 향상되어 어떤 환경에서 자란 동물인지 확인하는 경우가 늘었다. 무항생제 마크를 신경 쓰는 소비자도 늘었고 가격보다는 품질이나 원산지를 따지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축산업계가 변화했을까? 돼지를 중심으로 동물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윤진현 교수가 우리나라의 동물복지 현실을 짚어보고 비판점과 해결책을 제시하는, <돼지 복지>를 저술했다.


저자 윤진현 교수는 동물자원학부에 지원해 입학하게 되고, 양돈장 실습에서 돼지와 처음 만난다. 좁은 케이지 안에 돼지들을 모아 키우는 스톨사육의 모습과 분뇨로 뒤덮여 창문조차 없는 비육사의 모습, 무기력한 돼지들의 모습을 보며 과연 이런 방식으로 돼지를 키우는 것이 괜찮은가 생각했다.

그 만남은 내가 무엇이 되고 싶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깨닫게 한 꽤 강렬한 사건이었다. 38p

FTA 채결 당시 동물복지 기반이 하나도 없었던 한국의 현실을 경험한 저자는 한국의 동물복지 발전을 발전시키기 위해 헬싱키 대학 안나 발로스 교수에게 직접 연락해 결국 핀란드 동물복지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연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가 유럽에 가서 보니 한국은 동물 연구에 너무나도 뒤처져 있었다. 윤진현 교수는 책 전반에 걸쳐 자신이 경험한 현실과 자신이 연구했던 것들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가 한국에서 연구했던 것들과는 다른 사실들을 마주하며 계속해서 배워나갔다.


우리는 왜 동물 복지를 해야 할까. 축산 산업 중에서도 양돈 산업은 항생제 사용이 최고 수준이라 말한다.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는 것이다. 더불어 과거에 무분별하게 사용된 항생제는 환경에 남아있어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방역 처리를 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검출된다. 항생제는 슈퍼박테리아라고 부르는, 내성균이 생기기 때문에 이것이 사람에게 전파되면 치료할 수 없기 때문에 굉장한 심각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과 가축은 같은 환경에서 공존하기에 우리는 원헬스 개념으로 축산 산업을 바라보며 항생제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양돈 농가에서 항생제 사용을 줄이려면 돼지가 건강해야 한다. 병든 돼지를 항생제로 살리는 개념보다 애초에 건강하게 돼지를 키우는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동물복지농장의 성공 사례로 핀란드의 올릭깔라 농장의 사례가 나온다. 관행적인 농장을 운영하다 돼지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은 올릭깔라 농장과 협업해 동물복지형 농장으로 돼지의 스트레스를 줄이도록, 새끼의 생존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설계로 다시 제작해 최적의 그룹분만사를 만든 이야기가 소개된다. 효율을 추구하는 관행적 농장은 돼지에게 스트레스를 주었기에 기존의 구조와 약품 사용을 없앴다. 결국 올릭깔라 농장은 성공해 유명해져 조금 비싸더라도 팝업스토어로 열린 올릭낄라의 고기가 완판되고 판매량이 올라가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는 판매자의 노력과 사람들의 인식 향상이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함을 나타낸다. 우리나라에도 동물복지에 꾸준한 관심을 갖고 변화를 추구하는 '더불어 행복한 농장' 김문조 대표의 사례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은 한국의 현실대로 맞춰서 바꿔나가야 함을 강조한다.

저자는 돼지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과정에서 분만 전 '둥지 짓기'와 '환경 풍부화 물질', '분뇨 처리 방식'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돼지의 본능, 야생성을 이해하여 둥지 짓기 환경을 조성하며, 공과 같은 환경 풍부화 물질을 제공하며 결론적으로 스트레스를 줄이고, 압사로 죽거나 안락사 당하는 새끼 돼지의 수를 줄이며, 항생제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건강한 돼지를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하는 선순환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단순히 동물복지를 해야 한다고 밀어붙이고 있지 않다. 현실적으로 대응해가며 점진적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생산자 뿐만 아니라 소비자 의식 또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에서 하고 있는 깔짚을 깔아두는 방식은 한국에서 어려움이 있으니, 톱밥같은 대체제를 사용해 한국에 맞는 방식으로 바꾸는 모습처럼 계속해서 연구하며 현실적인,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 제도의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는 양돈 농가가 동물복지에 무관심하기 때문이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동물복지 농장을 운영하는 것이 투자 대비 수익이 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307p

윤 교수는 신뢰도가 높은 인증 제도의 개발의 필요성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기준 평가를 연구할 인력과 자원이 부족하다. 동물이 아닌 시설에 기준이 맞춰진 경우가 많다. 인증 제도 또한 현실에 맞춰서, 혹은 단계에 따른 인증 제도를 주는 등의 농장주들의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제도가 필요함을 말한다. 결국 정부 혹은 지자체가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증 제도는 사기업이나 단체가 만들고 운영하기엔 힘들고 지원하는 주체로서 활동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사회를 개선하는 비용으로 생각하고, 정부도 발맞춰 세계 기준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농장주들은 동물복지를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기에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소비자로서 관심을 갖고 동물복지 시장을 확대하고 현대 축산산업의 개선을 정부에 요구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더 좋은 생산물과 더 좋은 순환을 이끄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돼지 복지>를 통해 돼지 농가가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동물 복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논의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동물 복지와 실질적인 축산 산업의 모습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돼지가 간식으로 빵을 먹는다거나 공을 차며 노는 모습을 보는 것도 한 귀여움 한다. 흥미롭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한겨레출판 서포터즈 활동으로, 한겨레 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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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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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들판이 있다면, 난 끝없이 들판을 걸어보고 싶다. 반대 방향으로 걸었을 때 우연히 진짜 삶을 발견하게 되어 지금까지의 삶을,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전혀 다르게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니까. 한국과 정반대에 있는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유를 발견한 것과 같이. 그것은 들판이 내게 준 것이었다.
6p

저자 문보영은 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 IWP, International Writing Program은 30여 개국에서 온 작가들이 3개월간 한 호텔에 묵으며 리딩, 강연, 토론 등 여러 문학 행사에 참여하는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2023년 가을, 한국 시인으로 아이오와에 가게 되었다."(13p)

한국을 떠나 비행기를 타고 아이오와로 향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공항에서 IWP에 참여하는 작가들을 보게 되고 인사를 나눈 뒤 숙소를 배정받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최승자 시인은 아이오와 대학의 요청으로 4개월간 체류하며 산문집을 썼는데, 문보영은 많은 책을 가져온 작가들과 달리 최승자의 책 하나만을 들고 간다.

새로운 친구도 사귀며 서로 글을 쓰고 피드백을 받고, 영감을 떠올리며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저자의 가장 친한 친구는 코토미로, 대만 작가이자 일본 작가였다. 대만 사람이지만 일본 문화에 빠져든 후 일본어 책만 읽는 등 일본인처럼 살아갔다. 저자가 만나는 사람들은 이런 '이중 문화', 이중언어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저자도 한국인이지만 영어로 글을 써야 하는, 이중언어의 상황에 있었다. 이런 '이중'의 관계 속에서 겪는 다양한 인물들의 일화를 소개한다.

낭독회, 영화 관람, 발표, 피드백 등등...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경험을 함께 하는데, 사실 저자는 영어를 잘 못해서 어려움을 겪었다. 간단히 소통하는 것은 괜찮지만 작품은 설명이 필요했기에 서로의 작품에 대한 뜻과 마음을 나누려면 영어로 설명할 줄 알아야 했다. 특히 시를 통역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똑같이 풀어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다른 언어로 바꾸는 것은 다른 세계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어디서 말하기를, 제2외국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내려놔야 하는 것 중 하나가 100퍼센트 같은 단어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라고 한다. 언어와 언어는 1 대 1로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언어가 빨리 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대체어가 없다면, 아주 멀어지는 건 어떤가? 새라는 단어를 손전등으로 번역하기, 바꿔버리기, 강탈하기, 중간에 탈환하기, 가로채기, 사기 치기.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를 건드려 쓰러지게 하며,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것이 내가 지니고 있는 번역에 관한 희미한 인상이다. 쓰러짐과 옮김. 들것으로 싣고 가다가 엎어버림. 그것의 반복.
158P

번역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장면에서 어쩌면 인생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세계가 다른 언어로 쓰여있다면, 우리는 완벽한 소통을 할 수 없기에 다양한 대체어와 해석을 만들어내며 살고 있지 않나. 그리고 거기서 답답함을 느끼기보단 즐거움을 얻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것이 시를 번역해야 하는 저자의 입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느끼는 것들도 그 범주 안에 있지 않나 생각했다.

아이오와에서 나는 처음으로 영어로 시를 쓰게 되었다. 그 시는 사랑이 있어 가능했다. 오릿에게 주려고 쓴 시였으니까. 사랑으로 밀어붙이면 모르는 언어로도 시를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선오의 경우, 피자를 주문하거나, 사람들과 스몰토크를 한다거나, 뭐 그런 종류의 영어는 부족할지 몰라도, 문학에 관해서라면 일시적으로 영어 천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게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도 사랑하는 것들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219P

저자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영어 실력이 늘고, 자신을 조금 더 잘, 더 정확히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그 애매한 순간 또한 가치 있고 또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는 영역일 수 있기에 어떤 작가는 이 순간을 잘 기억하라는 말들을 하지만, 저자가 아이오와에서 겪은 경험들은 세상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줬다. 숙소 뷰가 안 좋았던 것, 수상한 남자를 쫓아갔던 것, 코토미가 시카고에서 인종차별을 당한 것 모두가 공유하지만 다르게 표현하는 경험이었고, 끝없이 뽑아낼 수 있는 글감이었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저자 문보영은 작가들과 작별 인사를 한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오와를 떠난다. 그리워할 아이오와와 인사하며, 미래를 확신할 수 없지만 또 굳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자세로, 다른 언어로 다른 세계로 들어가듯, 또 다른 나의 세계로. 삶의 들판을 계속해서 걸어나간다.

여러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처럼 세상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새로운 땅에서 저에게는 영원토록 낯설 수밖에 없는 영어로 글을 쓰는 것이 저를 어느 길로 이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걷다가 힘들면 항복 나무처럼 조금 항복한 자세로 살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요.
2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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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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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어떤 의미인가. 좋아할수록 책임이 생긴다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가벼운 점심>의 주인공은 10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가벼운 점심을 통해 대화를 나눈다. 미국인과 바람이 나서 해외로 간 아버지. 어머니와의 생활은 사랑이 아니었다 말한다. 그저 자신의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결혼이었다. 모든 걸 버리고 떠날 만큼 자신과 맞는 사람, 자신을 완전히 이해해 줄 사람을 찾아 떠났다. 모두가 욕을 하고, 가문의 수치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떠났다. 그리고 아버지를 증오하지만, 아버지의 것들을 쉽게 없애지 못하는 어머니가 있다. 자신에게 마음이 없는 사람과 관성으로 살아질 수 있을까. 삶의 목적이 사랑이라면 대상은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일까. 또 책임은 어디로 갈까. 장은진은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사랑인지 묻는다. 사랑이란 어떤 모양인 건가. 사랑이란 점심과 같이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일까. 메뉴처럼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있는 것인가.


어느 한쪽이 받아주지 않으면 둘 다 존재하지 않게 된다. 존재하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게 된다.

<하품>, 113p


<하품>은 유산을 거듭 한 아내가 헌책방을 하고 싶다고 말해 헌책방을 운영하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아내는 유산을 겪고 점점 행동과 생각이 느려져 주인공의 말에도 쉽게 반응하지 않지만, 고양이와 놀아주며, 주인공의 후배를 만나며 웃음꽃을 피운다. 자신이 해줄 수 없는 것을 다른 이들이 하는 것을 볼 때 무엇을 느꼈을까. 후배가 책방 개업 축하 선물로 주었던 머니트리는 사랑은 계속해서 닦아주고 물을 부어주는 것이 아닐까를 질문하게 만드는 형상이다. 그것은 <고전적인 시간>에서 집에 대한 비유로 이어진다. 계속해서 가꾸고 관리해 줘야 유지되고 살아나는 집처럼,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니냐고.


왜 마음을 준 것들은 항상 예고도 없이 떠나버리는 걸까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 260p


이 소설들은 떠나감의 이야기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상대방을 어떤 식으로든 떠나보낸다. 사람은 사랑을 할 때 사랑을 향해 살아가고 사랑에 의해 살아간다. 그러나 그 열정이 식어버리거나 조응하지 못하거나, 때를 놓쳐버리면 떠나감을 선택한다. 마음을 주는 것은 나의 관점이다. 내가 주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상대에게 받아들여져야 선물이 되고, 사랑이 된다. 떠나감은 이별이기도 하나, 외면이거나 거절이기도 하다. 사랑과 이별에 예고란 있을까.


건널목을 지키면서 수없이 많은 열차를 떠나보냈지만 그 뒤에 찾아오는 허전함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것은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파수꾼>, 279p


장은진은 이 여섯 편의 소설을 통해 '나의 인생'과 '너의 인생'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을 너무 소유하려고 한다면 상실의 충격도 거세게 따라붙는다. 누군가 사랑이라는 것은 헤어질 결심을 하는 일이라 하지 않았나. 우리의 최선은 그저 그 자리에만이라도, 마음 한 켠에라도 그대가 잔잔히 잘 남아있길 바라는 것이 아닌가. <파수꾼>의 주인공 강 씨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기찻길에서 같이 죽으려 했지만 고양이는 그의 품에서 탈출한다. 소유하려고 하면 품 속에서 꿈틀꿈틀 대며 도망가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두 존재가 조응하는 그 순간, 그 시간의 파동을 사랑이라 하는 것이 아닐까. 무엇이 사랑이고, 어떤 모양새가 사랑이라 불릴 수 있을까. 우린 또 언제까지 그 사랑의 파동을 이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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