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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평점 :
사랑이란 어떤 의미인가. 좋아할수록 책임이 생긴다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가벼운 점심>의 주인공은 10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가벼운 점심을 통해 대화를 나눈다. 미국인과 바람이 나서 해외로 간 아버지. 어머니와의 생활은 사랑이 아니었다 말한다. 그저 자신의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결혼이었다. 모든 걸 버리고 떠날 만큼 자신과 맞는 사람, 자신을 완전히 이해해 줄 사람을 찾아 떠났다. 모두가 욕을 하고, 가문의 수치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떠났다. 그리고 아버지를 증오하지만, 아버지의 것들을 쉽게 없애지 못하는 어머니가 있다. 자신에게 마음이 없는 사람과 관성으로 살아질 수 있을까. 삶의 목적이 사랑이라면 대상은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일까. 또 책임은 어디로 갈까. 장은진은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사랑인지 묻는다. 사랑이란 어떤 모양인 건가. 사랑이란 점심과 같이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일까. 메뉴처럼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있는 것인가.
어느 한쪽이 받아주지 않으면 둘 다 존재하지 않게 된다. 존재하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게 된다.
<하품>, 113p
<하품>은 유산을 거듭 한 아내가 헌책방을 하고 싶다고 말해 헌책방을 운영하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아내는 유산을 겪고 점점 행동과 생각이 느려져 주인공의 말에도 쉽게 반응하지 않지만, 고양이와 놀아주며, 주인공의 후배를 만나며 웃음꽃을 피운다. 자신이 해줄 수 없는 것을 다른 이들이 하는 것을 볼 때 무엇을 느꼈을까. 후배가 책방 개업 축하 선물로 주었던 머니트리는 사랑은 계속해서 닦아주고 물을 부어주는 것이 아닐까를 질문하게 만드는 형상이다. 그것은 <고전적인 시간>에서 집에 대한 비유로 이어진다. 계속해서 가꾸고 관리해 줘야 유지되고 살아나는 집처럼, 사랑도 그런 것이 아니냐고.
왜 마음을 준 것들은 항상 예고도 없이 떠나버리는 걸까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 260p
이 소설들은 떠나감의 이야기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상대방을 어떤 식으로든 떠나보낸다. 사람은 사랑을 할 때 사랑을 향해 살아가고 사랑에 의해 살아간다. 그러나 그 열정이 식어버리거나 조응하지 못하거나, 때를 놓쳐버리면 떠나감을 선택한다. 마음을 주는 것은 나의 관점이다. 내가 주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상대에게 받아들여져야 선물이 되고, 사랑이 된다. 떠나감은 이별이기도 하나, 외면이거나 거절이기도 하다. 사랑과 이별에 예고란 있을까.
건널목을 지키면서 수없이 많은 열차를 떠나보냈지만 그 뒤에 찾아오는 허전함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것은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파수꾼>, 279p
장은진은 이 여섯 편의 소설을 통해 '나의 인생'과 '너의 인생'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을 너무 소유하려고 한다면 상실의 충격도 거세게 따라붙는다. 누군가 사랑이라는 것은 헤어질 결심을 하는 일이라 하지 않았나. 우리의 최선은 그저 그 자리에만이라도, 마음 한 켠에라도 그대가 잔잔히 잘 남아있길 바라는 것이 아닌가. <파수꾼>의 주인공 강 씨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기찻길에서 같이 죽으려 했지만 고양이는 그의 품에서 탈출한다. 소유하려고 하면 품 속에서 꿈틀꿈틀 대며 도망가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두 존재가 조응하는 그 순간, 그 시간의 파동을 사랑이라 하는 것이 아닐까. 무엇이 사랑이고, 어떤 모양새가 사랑이라 불릴 수 있을까. 우린 또 언제까지 그 사랑의 파동을 이어갈 수 있을까.
한겨레출판에게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