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1960년대의 월간 종합교양지.  


『사상(思想)』(1952. 8. 1. 창간)을 개제하여 1953년 4월 1일 장준하(張俊河)의 주재로 창간되었다. 창간호는 국판 200쪽. 창간호에는 권두언 「인간과 인격」을 비롯하여 김계숙(金桂淑)‧김재준(金在俊)‧배성룡(裵成龍)‧지동식(池東植)‧임한영(林漢永)‧권상로(權相老)‧김기석(金基錫) 등의 논문과 김광주(金光洲)의 소설이 실려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내용을 수록했고, 특히 자유당정권에 항거하는 논문 등을 많이 수록했다. 

 

 또한 1955년부터 동인문학상(東仁文學賞)을 제정하여 역량있는 소설가들을 배출했으며, 1960년부터 신인문학상을 통해 많은 문인들을 등단시켰다. 이 잡지를 통해 등단한 문인으로는 시인 허의령(許儀寧)‧신중신(愼重信)‧김만옥(金萬玉)‧강은교(姜恩喬), 소설가 강용준(姜龍俊)‧서정인(徐廷仁)‧황석영(黃晳暎)‧이청준(李淸俊)‧박태순(朴泰洵)‧박상륭(朴常隆)‧박경수(朴敬洙) 등이 있다. 1970년 9월 종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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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http://terms.naver.com/item.nhn?dirId=1605&docId=1474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94659

사상계 [ 思想界 ]

  • 창간-종간

    1953.4 ~ 1970.5

  • 발간주기

    월간

  • 발행인

    장준하, 부완혁

1953년 4월에 창간되어 1970년 5월 통권 205호로 종간된 월간종합교양잡지. 사상계사 발행으로 발행인은 장준하(張俊河)였으며 뒤에는 부완혁(夫琓爀)이었다. 이 잡지는 당초 1952년 8월 문교부산하 국민사상연구원(원장 백낙준)의 기관지 《사상(思想)》으로 출발하여, 당시 6 ∙ 25의 와중에서 국민사상의 통일, 자유민주주의의 확립 및 반공정신앙양 등 전시하에 있는 지식인층의 사상운동을 주도하는 사상지(思想誌)로 창간되어 통권 4호를 낸 뒤, 이 잡지의 편집에 참여하였던 장준하가 1953년 4월에 단독 인수하여 《사상계(思想界)》라는 제호로 시판함으로써 본격적인 종합교양지로 출발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A5판 100면 내외로 발행되다가 400면 내외로 증면하였으며, 창간호 3,000부가 발간과 동시에 매진되고 전후(戰後)의 사상적 자양으로서 1950년대 지식인층 및 학생층 간에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편집의 기본방향은 ① 민족통일문제, ② 민주사상의 함양, ③ 경제발전, ④ 새로운 문화창조, ⑤ 민족적 자존심의 양성으로 요약된다. 그래서 창간취지로 편집후기에 "사상계란‥‥‥동서고금 사상을 밝히고 바른 세계관 ∙ 인생관을 수립해보려고 기도한다."라고 밝힘으로써 발행 초기에는 정치성을 배제하고, "종으로 5000년의 역사를 밝혀 우리의 전통을 바로잡고, 횡으로 만방의 지적 소산을 매개하고 공기로서 자유 ∙ 평등 ∙ 평화 ∙ 번영의 민주사회건설"에 이바지하였다.

그뒤 사세확장에 따라 '동인문학상' ∙ '사상계논문상' ∙ '사상계번역상' ∙ '신인문학상' 등 사상 및 문예활동의 본산역할을 하였다. 아울러 제3공화국 아래에서 자유언론투쟁에 앞장섬으로써 1962년에는 발행인 장준하가 막사이사 이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특히, 제3공화국 때 저항적 ∙ 정치비판적 민족주의 논조에 비중을 둔 정치평론이 빈번하여짐에 따라 정치탄압의 수난을 당하게 되고, 발행인 장준하가 정계에 진출함에 따라 1968년에 발행권을 부완혁에게 넘기게 되었다.
그뒤 계속되는 경영난의 어려움에다 1970년 5월에 김지하(金芝河)의 <오적시(五賊詩)>를 게재한 것이 문제되어 당국의 폐간처분을 받아 문을 닫았다. 당시로서는 최장수의 지령을 기록하였고, 학계 ∙ 문화계에 많은 문필가를 배출한 공적을 남겼는데, 1950~1960년대의 계몽적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를 둔 이념지향적인 면에서 한국잡지사에 높이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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