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도서관 - 황경신의 이야기노트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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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작가인데 묘하게 낯이 익었다. 서점에서 이 분의 책이 일렬로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 중 하나를 덥석 집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사실 다 읽은 지금도 잘 고른 책인지, 아니면 단지 어디에선가 본 적 있는 것 같다는 이유로 함부로 돈을 낭비한 건 아닌지 고민이 되지만…… 어쨌든 돈 낭비라는 말은 책을 쓴 작가님에게 실례가 될 뿐더러, 책 자체는 전혀 거부감 없이 술술 읽혔으니까. 다만, 소설과 에세이의 중간 지점 같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읽는 내내, 내가 지금 소설을 읽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작가가 가끔 가다가 종이에 끼적여 놨던 것을 출판한 책을 읽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명확하게 이건 소설이다 싶은 이야기가 있는 반면, 소설일까? 싶은 이야기도 있고…… 무엇보다 소설 자체가 무척 짧아서, 개인적으로 단편 소설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읽기에는 어딘가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뭐, 이 정도로 짧은 소설을 언급하자면, 이기호 작가님의「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도 있지만. 그건 정말 예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고.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갑작스럽게 시작된다는 말이 어울린다. 어? 내가 중반 부분부터 펼쳐 들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이 갑작스럽게 시작하고 어어 하는 순간에 끝이 난다. 그게 묘하게 중독성이 있기도 하고 다소 독특하게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참고로 말하자면, 이 작가님은 셰익스피어를 정말 좋아하시는 듯하다. 이야기 중에서 몇 몇 실존인물이 등장하고는 하는데 그 인물들이 중복적으로 등장하는 경향이 있어서(아예 인물로 등장을 한다던가, 대사 안에 언급이 된다던가) 본의 아니게 독자로서 작가님의 취향을 알게 되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딱히 좋다고도 싫다고도 할 수 없는 소설이지만 매 편마다 매우 짧게 끊어져 있어서 어디론가 이동을 할 때나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난 뒤에, 혹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잠깐 쉬는 시간이 찾아올 때 소소하게 읽기 좋은 책인 것 같다.

슬픔이나 고통 같은 건 지긋지긋해.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내일은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잠에서 깨어나면 할 수 있었던 건
작곡밖에 없었고.
이제 와서 사람들이
그걸 알아주든 말든 상관도 없어.
다만…….
다만?
나의 슬픔에서 태어난 것들이
아직도 세상에 남아있어.
그게 누군가의 위로가 된다는 건…….
멋진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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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2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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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낡은 저택에 가정교사가 온다. 그녀는 자신이 가르치게 될 아이들을 만나고 매력있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한 순간에 매료된다. 그러던 중, 그녀는 저택에서 유령들을 목격하게 되고 그 유령들이 아이들을 노리고 있다고 확신을 한다. 그녀는 유령들의 손에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믿을 수가 있는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확한 진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가.

나사의 회전은, 타인의 시선은 철저하게 배제한 채 오로지 화자가 보고 느끼는 것만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독자는 그녀가 보는 것만을 보고 그녀가 하는 말만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녀는 계속해서 유령을 보지만 여기에서 이상한 것은, 유령을 직접적으로 목격하는 것은 오로지 그녀뿐이라는 거다. 그녀는 아이들도 유령을 볼 수 있다고 믿지만 그건 오로지 그녀의 생각일 뿐, 아이들이 진짜로 유령을 보는지 어떤지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녀에게만 보이는 유령들의 정체, 저택에 감추어진 어떤 비밀, 비밀스럽고 조용한 아이들. 초반에만 잠깐 모습을 나타낸 저택의 주인.
소설 전체가 어딘가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가득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는 그 순간까지 독자는 어떤 것도 명확하게 결말을 내릴 수가 없다. 여기에서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한 가지 의심을 가지게 된다.
유령은 존재하는가. 그녀는 진짜 유령을 본 것이 맞는가. 혹은 그녀의 두려움이 불러낸 환영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설명하는 유령의 모습이 너무 생생하기에, 단지 그녀의 망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왠지 찜찜하다.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아이들과 유령을 쫓으며 긴장감의 정점으로 치달아가는 전개, 소설 내부에 무수하게 깔린 복선들.
다 읽고 나서도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다닐 정도로, 모호한 소설이지만 이 모든 걸 다 합쳐봤을 때 꽤 괜찮게 읽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안에 숨겨진 복선들을 찾으려면 몇 번은 읽고 또 읽어봐야겠지만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을 정도로 재미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한 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소설 속의 분위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 나서 어떻게 되었나요?"
부인이 오랫동안 머뭇거렸기 때문에
난 더욱 어리둥절했다.
"그 사람도 가버렸어요."
마침내 부인이 말을 꺼냈다.
"어디로 갔나요?"
이 말을 듣고 부인의 표정이 몹시 이상해졌다.
"누가 알겠어요! 죽었거든요."
"죽었다고요?"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이 불가사의한 말을 꺼내며,
부인은 실제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을 더욱 단단히 추스리려는 듯 보였다.
"아무렴요. 퀸트 씨는 죽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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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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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오기 얼마 전에 「희랍어 시간」이라는 샘플북이 왔었는데 그것을 읽고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또 며칠 뒤, 이 작가가 맨부커 상을 수상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고.

어쨌든 「희랍어 시간」에 적혀 있는 단어와 문장들이 감각적이고 아름다워서 보는 순간 이 작가에게 관심이 생겼다. 원래는 처음 내 관심을 가져갔던 그 책을 사려고 했으나 「흰」을 예약판매 하는 바람에(심지어 초판 양장) 어쩔 수 없이 이것부터 구매했다. 요새 나오는 몇 몇 책들이 초판 양장으로 나오던데 치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돈 조금 더 붙여서 양장으로 팔아도 충분히 살 텐데.

책을 받고나서 깜짝 놀랐던 것이, 사실은 좀 더 두꺼울 줄 알았다. 그런데 200페이지도 채 안 되는 얇은 두께에 그다지 많지 않은 글자들.
덕분에 속도감있게 하루도 되지 않아 다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런 방식으로 쓰는 소설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이 책이 오던 날, 다른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에게 먼저 빌려줬었는데 그 친구가 절반 정도 읽더니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끝까지 다 읽고 나서는 괜찮은 소설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자전적 소설 같기도 하고 마치 에세이 같기도 한 이 소설은, 짧게 끊어지는 이야기들이 연작처럼 이어진다. 처음에는 이게 과연 하나의 이야기가 맞나 싶다가도 중간 중간 보이는 연관성이 흥미를 끌었다. 아리송하기도 하고 옅은 안개가 낀 것 같은 느낌의 소설이 나를 어디까지 안내할 수 있나 내심 기대도 되었다.

나와 그녀의 이야기. 혹은 삶과 죽음.

만일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면,
지금 나는 이 삶을
살고 있지 않아야 한다.
지금 내가 살아 있다면
당신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이 소설이 내 마음에 더욱 와 닿았던 이유는 나 또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막내 동생을 잃은 경험이 있어서였다. 조산과 낙태라는 점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상실에서 오는 허전함은 그 일을 겪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가 있다.

내가 살아있으면 그녀는 존재하지 않고, 그녀가 존재했다면 나는 결코 살아있을 수 없는 이 세상. 마치 내 삶이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묘함.
그녀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 그리움 그 모든 복합적인 감정의 집합체. 흰이라는 소설은 그녀에게 바치는 일종의 진혼곡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죽지 마라 제발.
가느다란 소리로 우는
손바닥만한 아기를 안으며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처음엔 꼭 감겨 있던
아기의 눈꺼풀이,
한 시간이 흐르자 거짓말처럼
방긋 열렸다.
그 까만 눈에 눈을 맞추며
다시 중얼거렸다.
제발 죽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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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의 야간열차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8
다와다 요코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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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실 두꺼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얇아서 깜짝 놀란 책이었다. 원래 책을 사자마자 읽는 타입은 아닌지라 이 책도 방치했다가 나중에 읽어야지 했었는데 고작 200 쪽도 되지 않는 두께에 용기를 얻어 하루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읽는 내내 재미있었다고는 할 수 없고 초반에 흥미진진하다가 중반쯤에 좀 늘어지다가 다시 마지막에 가서야 흥미를 강하게 끌어당긴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다와다 요코라는 작가님은 단어를 낯설게 만드는 작가님, 이라고 한다. 이 분 소설을 처음 읽어보는 나로서는 단지 그렇구나. 하지만. 쨌든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눈을 감은 채 수면 위를 부유해 가는 느낌으로 가득한 소설이었다.

처음 읽을 때부터 이상하게 생각했던 사실인데,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이라고 지칭한다. 마치 옆의 누군가가 여행하는 내내 내가 할 말을 대신 해주듯, 당신은 이라는 문장으로 도배되어 있다.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야 왜 그 단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지 의아해졌다. 하긴 어느 누가, 작가님이 글 쓰는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이건 좀 이상한데? 라고 의문을 표하겠느냐마는.

나와 당신의 경계선.
마지막 챕터의 바로 전 챕터, 그 챕터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독자는 비로소 이 망할 작가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고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껴질 것이다. 딱히 기분 나쁜 배신감은 아니라는 것이 문제지만.

각 챕터마다 여행하는 곳의 이름이 적혀 있는 이 소설은 마치 단편 소설과 같다. 단편 소설은 아닌데도 어쩐지 기억의 마디가 끊어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일부러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인공의 정보가 제대로 나와 있지가 않다. ˝당신˝은 일 때문에 여행을 하고 있고 성별도 이름도 나이도 정확히 언급이 되어 있지 않다. 거의 끝에 가서야 이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대략적인 표상이 등장하긴 하지만. 어쩌면 이것도 작가의 계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의자의 야간열차」라는 제목은 일본어 유희라고 한다. 해설에 그것에 관해서 나와 있다고 하는데 나는 원래 책을 읽을 때 해설은 잘 보지 않는 편이고 여전히 제목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겠다. 나중에 그 부분을 찾아봐야 하려나.

사실, 새벽쯤에 읽은 책인 데다가 조금 졸면서 읽는 통에 내가 제대로 읽은 건지 구분이 되지가 않는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서 쇠공에 머리를 맞은 것처럼 강한 충격에 눈이 번쩍 뜨였다는 것밖에는.
무튼 누군가에게는 느긋한 여행을 하듯 다소 지루한 소설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강한 충격을 건네는 소설일 수도 있겠다. 나중에 천천히 다시 읽어봐야지. 졸리지 않은 시간에.

"당신 얼굴, 텔레비전에서 본 것 같은데,
피아니스트였나요?"
상대의 목소리는 여자라면 마음을 끌어당기는
나지막한 쉰 목소리고,
남자라면 맑고 청아한 미남의 목소리다.
그런 꿀빛 만남의 기회를 눈앞에 두고 당신은,
"버스는 대체 몇 시나 돼야 올까요."
라는 시시한 말로 대꾸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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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의 신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5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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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홍수 속에 휩쓸리는 느낌이었다. 딱 그런 느낌의 언어와 문장들. 이어질 듯 이어질 듯 교묘하게 어긋나는 대화.
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인도의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그 안에 숨겨진 추악한 이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동등하게 보지 않을 때 어떤 참상이 벌어지는가를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작은 것들의 신.
작은 것.
연약한 것, 더러운 것, 추한 것. 혹은 어린아이, 늙은이, 여자, 낮은 지위의 사람들.

읽는 내내 알 수 없는 슬픔이 내 마음속을 맴돌았다. 목구멍에 걸린 듯 나오지도 않고 가슴 어딘가에 그저 머무는 형태로. 먹먹함이 이슬처럼 맺혀있었다. 가끔 그것은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기도 하고 분노로 표출되어 책장을 강하게 움켜쥐게 만들었다.

어쩌면 이 소설은 신분의 차이가 나는 한 연인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느 쌍둥이의 풀지 못한 죄책감에 대한 것일 수도, 사고로 죽은 한 여자아이의 억울함, 혹은 그들이 사랑한 작은 것들의 신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만약 그들이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태어났더라면 행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어쩐지 아련하고 짠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이 소설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일 것이다. 단지 허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인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일 것이다. 인도에는, 아니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작은 것들이 있고 그들의 신이 있다. 아무도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여준다.
한 여자아이가 물에 빠져 죽었고 쌍둥이는 진실을 말했으며 그들의 어머니는 작은 것들의 신과 사랑에 빠졌다. 그녀의 가족은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어 진실을 외면했고 결국 희생당한 것은 작은 것들의 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고 나서 나도 모르게 아, 하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그게 안타까움인지 분노인지 슬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것이 합쳐진 탄성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그 장면을 보면서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세상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고작해야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것일 텐데도 세상의 매서운 눈길을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단지 그것뿐인데도.
그들에게 있어 이 세상은 과연 무엇일까.

지옥이 아니기만을 바랄 뿐이다.

파파치의 장례식장에서,
맘마치는 콘택트렌즈가
눈동자에서 빠질 정도로 울었다.
암무는 쌍둥이에게 맘마치가 우는 것은
파파치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그에게 익숙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구부정하게 피클 공장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에 익숙했고,
때때로 그에게 구타당하던 일에 익숙했다.
암무는 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며,
별 희한한 것들에다 익숙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주위를 둘러보기만 해도
놋쇠 꽃병으로 때리는 것은 약과란다.
하고 암무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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