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평점 :
앵무새 죽이기를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지금까지 다른 책 읽느라 묵혀뒀던 파수꾼을 읽으려니 전작의 등장인물들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매우 난감했다. 뭐, 읽다 보면 대략 기억이 나겠지 싶어 한 장 두 장 읽고 있노라니 정말 그 생각처럼 과거에 읽어 내려갔던 단편적인 기억들이 놀라울 만큼 선명하게 내 머릿속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진 루이즈라는 이름에는 무감각하다가, 스카웃이라고 불리자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서로의 비밀을 터놓고 공유하듯 장난스러운 미소가.
앵무새 죽이기에서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소녀 스카웃이 숙녀 진 루이즈가 되어 마을로 다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작에서 노예 제도에 대해 단지 지저귀기만 하는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설명했다면 이번에는 우리가 지고지순하게 믿고 있던 모든 것이 파괴당한다.
스카웃은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나쁜 일이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여전히 맹목적으로 믿고 있다. 그런 그녀가 한참 뒤, 마을로 돌아오자 모든 것은 이상할 정도로 변해있다. 극명하게 나뉘어 서로 적대시하는 마을 사람들, 과거와는 다른 행동을 보이는 아버지, 가족처럼 지냈으나 현재는 그들을 거의 증오하다시피 하는 전 사용인.
그녀에게 있어서 그저 혼란을 초래할 뿐인 것들. 그녀는 무언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고 바꾸려고 하지만 아무것도 바뀌는 것은 없다. 그녀는 이 분노와 실망감을 아버지에게로 돌린다.
순진하게 맹목적으로 맹신하던 것에 배신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나 또한 스카웃과 마찬가지로 참 맹목적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토록 배신감에 몸을 떨면서 눈물을 뚝뚝 흘릴 리야 없지 않은가.
어쩐지 한껏 들떴던 마음이 축 가라앉으면서 바보 취급을 당한 기분마저 들었다. 심지어는 더 이상 다음 장을 넘기고 싶어지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계속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래도 끝까지 읽은 것은 아마, 나와 같은 배신감을 경험한 스카웃이 그들에게 한 방 강력하게 먹여주기를 바라서였을 것이다. 내심 통쾌한 한 방을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도리어 한 방 맞은 것은 스카웃과 나였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던 것이, 그럴 거라 믿고 있던 것이, 사실은 진실의 한 이면이었으며 결국 우리 또한 하나의 편견 섞인 시선으로 그것들을 보고 있었다는 걸 불연 듯 깨달아버린 것이다.
어쩐지 분하지만 반박할 말도 없고 자존심도 무척 상해서 펑펑 울고 말았다.
그래도, 그것을 깨달은 순간, 마음만은 놀라울 정도로 편하게 가라앉았다.
파수꾼은, 기대했던 것처럼 유쾌하지도, 마냥 편하지도, 즐겁기만 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쩐지 한 템포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우리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것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가끔 그것만이 진실은 아니라는 걸 깨달을 필요성이 있다.
오랫동안 메이콤 교회는 좋은 목사를 모셔오기에는 규모가 크지 않았고, 범용한 목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던 터라, 관계자들이 지난번 교단 당회에서 젊고 정력적인 목사를 파송하기로 결정했을 때 메이콤 주민들은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1년도 채 못 되어 그 목사가 회중에게 준 느낌은, 어느 일요일 핀치 박사가 무심코 내뱉은 말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빵을 달랬는데 돌을 주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