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과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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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해도 되는 일은 안 한다. 해야 하는 일은 간략하게」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는 오레키는 자칭 에너지 절약주의자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별다른 동호회 활동 없이 그저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향으로 평탄하게 보내려는 찰나, 여행 중인 누나에게서 편지가 도착한다.
오레키는 누나의 당부에 의해 폐부될지도 모르는 고전부에 가입하게 되고 그 곳에서 자신과는 상반되는 인물인 지탄다를 만난다.
가능하면 조용하게 회색빛으로…… 라는 원래 계획과는 달리 오레키는 지탄다를 비롯한 고전부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모종의 이유로 고전부에 가입한 지탄다는 오레키에게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것을 요청하고 오레키와 고전부 멤버들은 33년 전 있었던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 아무리 : 결코 그럴 리가 없다는 뜻의 감탄사 *
→ 이 책을 읽으며 아무리에 감탄사의 뜻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무리의 뜻을 몰랐을 때는 이 말이 이상한 곳에 쓰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참 불편했는데 뜻을 알고 나니까 납득이 되었다.

고전부의 첫 번째 이야기이다. 이 책은 처음 번역이 되어 출판 했을 때부터 말이 많았던 것 같은데 바로 여주인공의 이름 때문이다.
지탄다 에루 / 치탄다 에루
간혹 애니를 먼저 접한 팬들이 치탄다인지 지탄다인지를 두고 불만이 많은 것 같은데 나 또한 애니를 먼저 봤음에도 불구하고(초반에 보다가 말았지만) 애니를 본 것이 오래전 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원체 그런 걸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라 그런지 그냥 별 감흥이 없었다.
치탄다든 지탄다든 둘 다 마음에 든다.

「빙과」라는 제목은 고전부의 문집 이름이다. 표면을 장식하는 커다란 사건 하나와 그에 대비되는 자잘한 미스터리들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딱히 살인사건이 아니라 일상에 담긴 자그마한 미스터리라 할지라도 이렇게 사람을 옭아맬 수 있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

책 자체가 읽기 쉽고 단 문장에 단어들도 주변에서 접하기 쉬운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놀라울 정도로 빨리 읽었다. 말 그대로 휙휙 넘어가는 소설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넘기면서 읽다가 모든 진실이 밝혀진 다음에야 머리에 뭔가로 강하게 얻어맞은 듯 타격감이 느껴졌다.

33년 전에 있었던 어떤 사건과 그 사건에 얽힌 잔인한 진실, 빙과라는 이름에 담긴 누군가의 호소.
당혹감과 가슴을 싸하게 만드는 충격, 그 사람이 느꼈을 억울함.

사람이 이렇게 잔인하고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는 한다는 걸 잠깐 잊고 있었다. 아마 혼자가 아니라 모두 함께였다는 점이 더욱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모호해진 죄책감을 애써 부인한 채 다른 사람에게로 화살을 돌렸을 테니까.

다 읽고 나서도 한참동안 빙과라는 이름을 입 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그 이름의 의미를 알고 나자 어쩐지 안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읽는 동안에는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담긴 것들을 생각해보면 마냥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나는 가끔 특이하다는 말을 듣는데,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사람 보는 눈이 없다는 증거다.
나는 위쪽의 맑은 물도,
바닥에 가라앉은 앙금도 아니다.
상승도, 하강도 지향해 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사토시의 말이 맞았다.
‘회색으로 살고 있는 건 호타루 너뿐인 것 같은데.’
학력만 그런 게 아니다.
특별 활동, 스포츠, 취미, 연애…….
요는 인간성의 문제이리라.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는 말도 있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도 있다.
국어사전에도 이제 곧 등재될 텐데,
고교 생활하면 장밋빛이다.
그리고 장미는 필 장소를 얻어야
비로소 장밋빛이 될 수 있다.
나는 적합한 토양이 아니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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