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뷰]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카렐 차페크 지음, 정찬형 옮김 / 모비딕 / 2014년 11월

체코 작가인 카렐 차페크.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이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지만, 카프카, 엘러리 퀸, 쿤데라…… 이름만 들어도 헉 소리가 나는 작가들과 견줄 정도로 아주 유명한 작가분이셨다. 체코에서는 카프카나 쿤데라보다도 높게 쳐준다고 하니…….
처음에는 너무 과한 칭찬 아닌가 생각했는데 순전히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풋내기의 생각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뭐, 카프카고 쿤데라고 유명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 책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깔끔한 표지와 왼쪽-오른쪽으로 나누어진 쌍둥이 책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식으로 펴낸 책을 좋아하는 터라.

이 작가는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 창시한 분인데 사실, 추리 미스터리보다는 SF와 환상문학 쪽에서 더 유명하신 분이다. 애초에 추리 미스터리도 좋아했다고는 하지만.
이 책으로 인해 추리 미스터리도 철학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다고 한다.

추리가 이렇게 짧을 수도 있나 싶을 정도로 엄청 짧은(5분 안에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은) 단편 소설들이 책 속에 한 가득인데 어쩐지 완벽한 추리라고 하기 보다는 추리와 환상 소설을 절묘하게 버무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미스터리 작가는 독자를 더 깊은 미스터리에 빠지게 만들어야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말에 적극 공감이 간다.
그리고 분명히 이야기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이고 각각의 특성을 갖고 있는데 어쩐지 모든 이야기가 통합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옴니버스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이 이야기에 나왔던 등장인물이 저 이야기에 나오고, 전 편에서 사용했던 키워드가 그 다음 이야기로 이어져 들어가고 그런 것 때문인 것 같은데 꽤 독특하게 느껴지는 구성이었다.

한 가지 굳이 단점을 꼽으라면, 철학적이라고는 해도 내가 보기에는 너무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불쾌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아마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식이라 그런 걸까. 어쨌든 기분 나쁘지는 않은 정도.

특히 마음에 들었던 점은, 유머러스하고 개성적인 캐릭터들이었다. 분명 살인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유쾌한 기분마저 들게 만드니.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추리 소설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 책을 살 때 왼쪽부터 산 뒤 오른쪽을 사자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 즐거웠기 때문에 왜 오른쪽도 같이 사지 않았을까 뼈저리게 후회를 했다. 오른쪽 주머니 이야기도 얼른 읽고 싶다.
참고로 중간 중간 들어간 삽화는 화가인, 카렐 차페크의 동생이 그린 그림인데(이름이 기억 안 난다…….)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그림 덕분에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단지 그가 뛰어내리다 다쳤는지
살펴보았을 뿐입니다.
다친 데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난 뒤
그를 꾸짖은 게 다입니다."
"정말로 심하게 꾸짖은 모양입니다."
변호사가 만면에 더할 수 없이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의사 보고서에 따르면,
내 의뢰인은 갈비뼈가 세 개나 부러지고
등을 중심으로 온몸에 피멍이 들어 있었는데다,
그게 다 꾸짖음의 결과이니 말입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마도 그가 그 꾸짖음을
매우 아프게 받아들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