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멘타 하인학교 (양장)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의 손으로 결정짓게 된 소년의 감성과 혼란을 아름답게 묘사한 소설.

현실과 공상을 쉴 세 없이 오가는 바람에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야콥의 공상 속에 존재하는지 아니면 현실 속의 벤야멘타에 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묘사와 야콥이라는 매력적인 주인공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은 것 같다.

야콥은 잘사는 집안의 아들로서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스스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하인이 돼서 돈을 벌기 위해 벤야멘타 하인학교로 온다. 그러나 그 곳에서의 생활은 야콥이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이 참 많이도 나온다 싶었다. 마치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숨 막혀 죽기를 바라는 것처럼 작가는 여러 인간의 군상들을 소설 안에 옮겨 넣는다. 그 중에서 가장 중심적인 인물은 총 세 명. 주인공인 야콥까지 합하면 네 명이다. 크라우스, 벤야멘타 양, 벤야멘타 씨.

주변 사람들의 눈에 특별해 보이는 아이, 야콥은 이 세 명과 독특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크라우스는 야콥이 친구들 중 가장 좋아하는 학생이다. 야콥 본인의 입으로도 말했듯이 그는 크라우스를 상당히 아낀다. 그러나 그런 마음과 달리 야콥은 크라우스를 쉴 세 없이 괴롭혀댄다. 그러면서 그를 좋아한다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벤야멘타 양과는 순종적인 관계로 얽혀 있다. 야콥은 그녀에게 반항을 하지 않으며 기꺼이 몸을 낮추어 받들어 모신다. 이 관계는 벤야멘타 씨와 대비되는데 언뜻 야콥이 벤야멘타 씨에게 낮춰 주는 듯하면서 자세히 보면 오히려 고삐를 쥐고 있는 것은 야콥이다. 야콥은 영악하게도 그가 자신을 어떻게 여기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는 몸을 낮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야콥의 마음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과 공상, 서로 상반되는 감정들이 공존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것은 우리가 언젠가 겪어야 하는 혼돈과 비슷하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심술을 부리는 거나 그러면서 결코 미움 받고 싶어 하지는 않는 것, 못된 행동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강한 질책을 받고 싶어 하는 것, 착함과 영악함, 친절함과 차가움.

인간이 느끼는 모든 것을 야콥이라는 인물 안에 혼재시켜 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쩌면 그래서 벤야멘타 학원의 사람들이 야콥에게 특별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지.

야콥이 학원에 들어오면서부터, 학원은 서서히 무너져 간다. 아니, 야콥을 마지막으로 학생을 받는 일을 그만두고 학원은 홀로 스러져 간다. 야콥이 그렇게 좋아하던 크라우스마저 떠나가고 학원에는 결국 야콥과 벤야멘타 씨밖에 남지 않는다.

이것은 결코 야콥이 상상한 미래는 아닐 것이다. 그는 하인이 되어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는 것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미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닐까.
나 또한 평탄한 미래를 내버려두고 기꺼이 하인이 되기로 한 야콥의 선택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선택은 자신의 권리고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투덜대는 자의 끊임없는 중얼거림은
아름다운 일요일 오후 햇살 아래
반작이며 흐르는 숲속 시냇물 소리보다
더 아름답다.
사람들, 사람들, 오로지 사람들!
그렇다, 나는 생생하게 느낀다.
내가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어리석음과 건드리면
즉각 반응을 보이는 점이
나에게는 가장 고귀한 자연의 경이보다
더 사랑스럽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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