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제국
외르겐 브레케 지음, 손화수 옮김 / 뿔(웅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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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달아 노르웨이 소설을 읽게 된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나 연달아 읽은 것이 아쉽기는 커녕 굉장히 즐겁다. <우아한 제국>까지 읽은 뒤에는 확실히, 야심차게 소개되었으나 국내에서의 반응은 영 미지근했었던 북유럽 스릴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줬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생긴다. 앞으로도 계속계속 읽을 수 있도록 말이다.



  <우아한 제국>은 외르겐 브레케의 데뷔작으로 실제로 작가가 데뷔작이니만큼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가 집필했다는 것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앞서 읽은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은 작가의 내공이 쌓일 대로 쌓여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융합한 느낌이었다면, 이 <우아한 제국>은 요 네스뵈의 뒤를 이어 나 역시 독특한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는 신인의 야심찬 의지가 느껴지는 것이다. 어떻게 힘 좀 주고 있는지 한 번 들여다볼까요.

 

 

 

 

  1528년과 2010년이라는 시간과 노르웨이의 베르겐과 트론헤임, 그리고 미국 레이먼드라는 공간을 넘나드는 방대한 스케일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비슷한 시기에 전혀 다른 장소에서 비슷한 형태의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500년 전 노르웨이를 여행하고 있는 수도사와 그의 과거의 단편이 병치되면서 살인사건을 둘러싼 요소가 어떻게 얽혀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그리고 그 궁금증을 쫓고 있노라면 상당한 속도로 책장을 넘길 수 밖에 없다. 고서에 숨겨진 이야기와 책을 둘러싼 저주에 관한 소문, 책을 만든 인간의 가죽과 범인의 살해 방법에 대한 연관성 등에서 잔혹한 범인의 광기를 되짚어가는 경찰의 수사를 쫓아가기 위해서 쉴새없이 책 속에 몰입해야만 했던 것이다.



  비슷한 느낌의 소설을 찾으려니 역시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가 떠오른다. 일단 과거에 꽁꽁 숨겨져 있는 비밀이나 저주를 둘러싼 살인사건의 진상을 쫓아가는 형태는 어느 정도 정착이 된 것 같은데, 이 <우아한 제국> 역시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건이 관련되어있음에 틀림없는 '요한네스 필사본'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양피지와 살해 방법이 중세의 서적과 해부학에 연결되면서 그에 관한 매혹적인 소재를 현대의 살인사건과 연관시키는 측면은 역시 익숙한 포맷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뭐 비슷한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는 것도,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좋다는 것도 가독성에 대한 이유일 것이다. 외르겐 브레케는 매혹적인 소재를 탄탄한 구성 속에 담아냄으로써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럼에도 역시 '데뷔작'이기에 엿보이는 허점이 눈에 많이 띈다. 떡밥은 상당히 훌륭했으나 그에 비해 스케일의 크기는 조금 부족했다. 중세의 수도사의 광기를 담아내는 이야기의 마무리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미스디렉션(misdirection)은 상당히 노골적이다. 그 노골적인 미스디렉션의 방향을 올바로 잡는 것, 다시 말하면 떡밥 회수 역시 놓치는 것은 없지만 빈 공간이 좀 많다. 거기에 또 다른 반전을 마련해 두었으면 재미있었지 싶다. 화려한 떡밥에 비해 현실은 그다지 화려하진 않다. 등장인물들의 과거 역시 뛰어난 가독성 덕분에 흐름을 크게 망치진 않지만 이 작품 하나만 두고 보면 어색할 수 밖에 없는데, 앞으로 시리즈로 이어질 가능성도 희박해 보이는(미국과 노르웨이를 계속 넘나들까? 과연?)지라 조금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에드거 앨런 포'와 '양피지'와 '해부학'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야기 역시 작가가 욕심을 부려 조금 많이 집어넣었다. 특히 에드거 앨런 포나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추리소설에 대한 애정과 지식을 뽐내는데, 작가는 '나는 여타 추리소설과 다르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의욕이 넘쳤던 것이 아닐까 싶다.ㅋㅋ


  하지만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몰입감과 함께 이야기에 푹 빠져들 수 있는 이야기였다. 앞서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을 읽은 직후 펼쳐든 북유럽 스릴러이기에 해리 홀레에 대한 후광에 가려 재미라고는 하나도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은 그저 나의 기우였다.

  각자의 다른 매력이 상당히 돋보인다.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은 자신의 이성에 따라 희생양을 깔끔하게 해치우는 반면, 외르만 브레케의 살인자는 칼을 들고 피 냄새를 갈구하며 눈 앞의 희생양을 어떻게 분해할지 고민하는 도살자이다.


  경찰의 치밀한 추적과 분석보다는 피 냄새가 철철 흘러넘치는 매혹적인 소재의 소설을 읽고 싶다면, 도살자의 <우아한 제국>에 들어서 보는 것은 어떨까.

 

 

 

 

 

덧. 그나저나 노르웨이에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나? 툭하면 노르웨이에는 연쇄살인범 같은 건 없고 미국에만 있는거래. 노르웨이의 두 명의 작가의 작품에 모두 이런 게 언급되니 참 재미지다. ㅋㅋㅋ 요 네스뵈는 '하지만 있다'는 것으로, 외르겐 브레케의 미국에서도 살인사건을 벌이고 미국 경찰을 끌어들이는 등 나름대로 '노르웨이인'들의 머릿속에 박힌 '노르웨이에는 연쇄살인범이 없다'는 통념에 나름 개연성을 부여하려 한 듯하다.







군 브리타 달레의 시체를 바라보던 그는 문득, 머리가 떨어져나가고 피부가 벗겨진 인간의 죽은 몸뚱어리가 짐승의 그것과 너무도 닮았다는 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죽은 몸은 마치 사냥꾼의 포획물처럼 보였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죽은 짐승들은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시체 밑에 피 웅덩이를 만들어내는 것이었고, 군 브리타 달레는 서고 바닥을 1제곱미터 정도 가린 채 누워 있다는 사실이었다._p.141


"노르웨이에도 연쇄살인범 전문가가 있습니까?"

"오슬로 경찰서에 연쇄살인범 전문가가 있어요. 이름이 뭐라더라……." 옌센이 말했다. "90년대에 호주에서 일어났던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했어요. 그 후엔 계속 술에 취해 다닌다는 소문도 들리던데."_p.178


아버지는 살인범이 피해자의 살가죽으로 무엇을 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 이성적인 대답이 있을 수 있을까? 이성적인 사람이 인간의 피부로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그럼에도 그녀는 대답을 알고 있었다. 살인범은 그 인간의 가죽에 기록을 했다._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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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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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나는 눈사람이 익숙하진 않다. 살면서 눈이 펑펑 내리는 걸 보는 건 한 손으로 꼽아볼 수 있을 정도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어린 시절에 난생 처음으로 직접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눈에 환호하며 눈사람을 만들어본적은 있다는 것일까. 그러나 나의 겨울은 언제나 '한겨울에 밀짚모자 꼬마눈사람~' 노래만 부를 수 밖에. 쿨쩍.

 

 

  그래서 막 대놓고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우리나라의 눈사람은 꼬마 눈사람이 대부분인 것 같다.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본 눈사람은 늘 눈덩이 두 개를 쌓아올린 뒤 나뭇가지로 팔을, 그리고 김을 찢어 실눈에 웃고 있는 입을 만들었었다.

  덕분에 내가 처음으로 외국의 눈사람을 봤을 때는 상당히 충격을 받았는데, 그들의 스노우맨은 상당히 키가 컸다. 머리, 몸통, 다리로 딱 나뉘어진 세 개의 눈덩이(그래, 너네 키 크다!), 당근을 갖다붙인 코(그래, 너네 코 높다!), 그리고 조약돌로 만든 동그란 눈과 웃고있는 입까지 상당히 입체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친근함보다는 광대같은 슬픔..은 아니고 좀 무서웠더랬다. 익숙한 것이 낯설게 변하는 순간…이 아닌 난 처음부터 [스노우맨]이 너무 무서웠던 것이다.

 

 

 

  그러나 아마 노르웨이에서는 눈사람 같은 게 익숙하지 않다는 둥, 뭐 그런 거 없다! 메이드 인 노르웨이,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이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울과 함께 찾아왔다. 벌써 3월이지만...크흑!

  <스노우맨>의 출간 소식과 함께 요 네스뵈라는 이름을 각인한 동안 의외의 곳에서 <헤드헌터>가 출간되면서 나는 그를 다른 작품으로 먼저 만나게 되었다. 두 남자의 추격전이 상당히 긴박감있게 그려져 있어 책을 펼친 뒤 정말 손에서 놓지도 못하고 끝까지 읽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대결을 그려냈던 <헤드헌터> 이상이 눈사람의 표정에 담겨 있을까.

 

 

 

  <스노우맨>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소설은 내내 눈으로 뒤덮힌 하얀 분위기를 자랑한다.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커플의 정사를 들여다보던 눈사람의 눈동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단란한 가정의 집 내부를 들여다보는 또 다른 눈사람의 출현과 잇다른 여자들의 실종으로 이어진다. 일반적인 실종 신고와는 달리 '눈사람'과 함께 자신을 찾아온 편지로 인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음을 직감한 해리 홀레 반장은 실종된 여인들의 공통점을 찾아내기 위해 자신만의 수사팀을 꾸린다. 노르웨이의 서늘한 추위에 맞서 해리 홀레는 끈덕지게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 요 네스뵈는 상당히 영리하게 플롯을 짜내려갔다. 해리 홀레의 수사 뿐 아니라 '뭔가 또 있는 것 같지?'하고 새로운 사건이나 관련 인물들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인상이 팍팍 풍기는 떡밥을 떡하니 던져주며 독자들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이 정도 패턴쯤이야!'하고 그것을 가볍게 넘길 수 있을 법한 스릴러 팬에게도 허를 찌를 수 있을 법한 장치를 어느정도 숨겨놓지 않았을까 싶다.


  그럴듯한 컨셉을 활용해 첫눈과 눈사람과 살인사건을 연관시킴으로서 친숙한 눈사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꾸어버린 '스노우맨'의 존재를 추적나가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롭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장면은 왜 집어넣었을까 싶었던 요소마저 버릴 것 하나 없이 범인과 범인의 행보를 암시하는 지표로 바꾸어놓는 이야기의 전개는 이 <스노우맨>을 시리즈물이 아닌 하나의 스탠드얼론으로서도 손색없는 타이틀로─아니 오히려 앞으로 다른 시리즈에도 여전히 등장할 인물들을 생각하면, 그 시리즈는 두고두고 뭔가 비어있는 듯한 아쉬움을 남길 것이 틀림없다! 그만큼 너무 완벽했다!─만들어냈다. 시리즈 전반을 관통할 것이 틀림없는(아직 안 읽어봤으니까요^^;;) 해리 홀레라는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 사이의 관계마저 그가 휘말린 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스노우맨'의 계략과 함께 그려내고 있다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기 때문에. <스노우맨>의 가장 결정적인 아쉬움은 그렇게 다른 시리즈를 조금 아쉽게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스노우맨>을 두 번째 읽으면서 더더욱 확실해졌다. 모든 진상을 알아차린 다음 다시 읽는 <스노우맨>은 처음 읽을 때 만큼이나 상당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시점에서 읽어내려가는 이야기는 모든 화살표가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뭐 미스터리를 다시 읽는 즐거움 중 하나가 그렇게 숨겨져 있던 복선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재미이고, 스노우맨은 여러 반전의 장치들을 겹겹이 설치해뒀기 때문에 그 즐거움이 훨씬 더 돋보였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복선을 하나 하나 짚어가며 웃고 있는 스노우맨의 미소를 한 번 일그러뜨려 보시라.

 

 

 

  <스노우맨>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해리 홀레'라는 캐릭터다. 작가의 페르소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당히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인물인 그는 그러나 마냥 유쾌하고 매력적인 사람은 아니다. 솔직히 우리는 이미 이러한 안티히어로적인 캐릭터는 꽤나 많이 접해봤기에 굉장히 신선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해리 홀레라는 캐릭터를 둘러싼 관계 마저 너무나도 훌륭하게 소설 속에 녹여낸 이상 그 밖의 다른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조금 어려운지라, 캐릭터의 생생함은 오히려 다른 작품에서 더 돋보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기대가 된다. 아니 이미 이 소설 속에서 그런 아쉬움을 발견했다 한들, 그럼에도 이 아저씨는 결코 만만치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중독에 찌들려 안정감을 원했던 연인은 이별을 고했지만 여전히 드라이하고 쿨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연인의 아이에게는 누구보다 더없이 소중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다해주고 있으며, 알코올 중독이라는 전력과 동료를 잃은 아픔 속에서도 타협점을 찾아 경찰청 속에서 관계를 만들어내려한다. <스노우맨> 속에서 엿보였던 그 모습을 다른 작품 속에서는 조금 더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뭐 말 할 필요가 있으려나.


  거기에 서서히 사회를 잠식하고 있는 암적인 존재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을 군데군데 삽입해둔 것 역시 나름대로 틀이 잡힌 영미 스릴러의 공식을 어느 정도 극복해 보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꽤나 소개가 되었음에도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국내에서는 꽤나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북유럽 스릴러지만, 요 네스뵈를 필두로 다시 서서히 그 서늘한 바람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눈과 입은 조약돌로 코는 당근으로 만들었다. 모자도, 목도리도 두르지 않은 채 산울타리에서 꺾은 나뭇가지로 만든 듯한, 앙상한 팔 하나만 있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바라보는 방향이 잘못됐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눈사람이란 원래 길가 쪽, 그러니까 열린 공간을 바라보며 서 있는 법인데._p.39


그럼 반장님 생각이 틀렸다는 것도 알겠네? 연쇄살인범 타령을 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도. 반장님은 연쇄살인범에게 병적으로 집착해. 여기가 미국인 줄 아나 봐._p.86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죠. 쭈그렁 할아버지 둘에게 극약을 투입한 그 간호사를 제외하고, 노르웨이에서는 아직 단 한 명의 연쇄살인범도 나오지 않았어요.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 연쇄살인범들은 미국에나 있다고요. 미국에서도 주로 영화 속에만 있고요._p.106


그의 입은 삼 같은 거친 실로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들쭉날쭉 오가며 꿰매져 있었다. 턱을 가로질러 볼까지 올라간 미소는 볼 안에 박아 넣은 일련의 검은 못들이 만들어낸 미소였다. 특히 해리의 시선을 끈 것은 코였다. 그는 순전히 반항심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우선 코뼈와 연골이 제거됐을 것이다. 당근은 냉동고의 냉기에 색이 바래져 있었다. 완벽한 눈사람이었다._p.251


해리는 이불 위에 손을 올렸다. 순간적으로 공포심에 몸이 굳었다. 그를 신체적 위험에 빠뜨릴 만한 물건은 방 안에 없었지만 그는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그의 예전 상사인 비아르네 묄레르 경정이 그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말해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인간미가 두려웠다._p.336


그게 바로 곰팡이의 특징입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있다는 거죠._p.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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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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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는 것은 그래도 역시 그 수식어의 주인공이 심상치 않음을 뜻하는 것일 게다. 이 사람 역시 자신의 소명 앞에 '국민'이라는 칭호를 달고 있으니 바로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인 것이다. 지금은 밀려났으나 일본 화폐에 자신의 얼굴을 등장시켰다니 오호라, 모든 작품은 다 읽지 않았다 한들 전국민이 그의 얼굴은 알고 있었다는 뜻이렷다.


  그러나 나는 나쓰메 소세키라는 이름에 상당히 겁을 먹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도전했다 나가떨어진 주변의 수많은 고뇌를 지켜본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일단 그의 '대표'로 꼽힌 작품이 그렇게 힘이 든다는데,라고나 할까.(게다가 동생 역시 <산시로>에 도전했다 포기. 주변에 나쓰메 소세키에 도전했다 나가떨어진 사람이 내 주변엔 너무 많았다.)

 

 

 

 

  그러다가 나쓰메 소세키의 <문>을 읽게 되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세계를 처음 만난 것으로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지금까지 겁을 먹었던 게 우스울 정도로 굉장히 재미가 있었다!



  소스케와 오요네는 부부로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매일매일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고 이웃과의 교류가 활발한 것도 아니지만, 서로가 있어 나름대로 행복하고 평화롭다.

  그런 부부 생활에 어린 시절 숙부댁에서 자라온 소스케의 동생 고로쿠의 거취를 새로 결정하면서 동생과 함께 살게 되고, 주인집에 도둑이 들면서 그와 친분이 생기기도 한다. 별다른 극적인 사건 없이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설이 진행되어 갈수록 그 젊은 부부의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과거가 차츰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사히 신문에서 <그 후>에 이어 다음 차기 연재작을 결정해야 했을 때, 나쓰메 소세키는 어느 정도 이야기를 구상하고는 있었으나 마땅한 제목을 짓지 못해 고심하고 있었다 한다. 그래서 부탁한 것이 자신의 제자에게 제목을 지어달라고 한 것인데, 그렇게 '우연히' 탄생하게 된 것이 <문>이라는 제목이다.

  하지만 그렇게 얼렁뚱땅 지어진 제목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막바지에 이르러 그 제목의 상징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그렇게 작품의 탄생 비화를 어느 정도 듣고 난 뒤에 <문>이라는 작품을 풀어나간 나쓰메 소세키의 작가적인 역량에 감탄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사실 그 이야기만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이 소설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에피소드를 가운데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보다는 그야말로 20세기 초반 도쿄에서 살아가고 있는 부부의 일상을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일요일에 방 한가운데에 누워 빈둥거리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지켜보는 아내의 대화에서 시작해 '고로쿠'라는 인물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스리슬쩍 비집고 들어오고, 집 주인과의 끈이 연결되고, 그렇게 살아가는 부부가 품고 있는 사연이 등장한다. 시간의 흐름 역시 언제 가을에서 겨울, 그리고 또 다시 봄이 다가오고 있나 싶을 정도로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그 자연스럽고 고요하면서도 그들이 안고 있는 사연이 차츰 드러나면서 그 재미에 푹 빠져 정말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길 수 밖에 없었다. 나쓰메 소세키라는 이름에, '국민작가'라는 칭호에 납득하고도 남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문>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부부의 일상을 묘사하는 것에서 시작되어 그 둘을 강하게 감싸고 있는 연대감과 애정, 그리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과거사가 살짝 드러나는 과정─그리고 이것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과 마지막 소스케가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며 짧은 수행을 떠나 그 곳에서 발견한, 앞을 가로막는 '문'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장면이다. 특히 결말 부분의 '문'은 그로 인해 이 소설이 <문>인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그리고 물론 그러려고 연재 중 작가가 구현해 낸 것이겠지만) 강렬하다.

 

 

 

 

 

  비록 일본 근대 문학 속의 등장인물이지만 소스케라는 캐릭터는 '그 당시 사회 속을 살아가는 이는 이랬구나'가 아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인물상이다. 나는 소설 속 그의 성정을 비난하고 배척하기는 커녕 그는 나와 참 많이도 닮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몫을 해 내는 인간이 되고 싶으면서도 과거 어디엔가 얽매여 마음 속에서 죄의식과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소스케를 온전히 야단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가 있을까. 문 앞에 섰으나 그 문을 열지 못한 채 일상으로 되돌아간 소스케를 누가 과연 비난할 수 있을까.


  소스케와 오요네는 그렇게 여전히 또 하루하루를 살아갔을 것이다. 다만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감에도 둘의 모습은 나름대로 아름다워서, 그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자업자득으로 그들의 미래를 지워버렸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걸어가는 앞에는 미래 같은 희망은 있을 수 없다고 체념하고 있었다. 둘은 그저 손을 마주 잡고 같이 걸을 뿐이었다._p.44


그렇긴 해도 하루에 한 번쯤은 고로쿠의 모습이 어렴풋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가 있었고, 그때만은 소스케에게도 그 녀석의 장래 문제를 어떻게든 생각해봐야 한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러나 금방, 뭐 그렇게까지 서두를 것까지는 없지, 라고 스스로 지워버리고 마는 게 예사였다._p.63


부부는 여느 때처럼 램프 아래에서 얼굴을 마주 댔다. 넓은 세상에 자기들이 앉아 있는 곳만이 밝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밝은 그늘에서 소스케는 오요네만을, 오요네는 소스케만을 의식하며 램프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어두운 사회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들은 매일 밤 이렇게 살아가는 동안 자기들의 생명을 발견하고 있었던 것이다._p.75~76


두 사람은 세상에서 본다면 여전히 두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볼 적에는 도의상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였다. 두 사람의 정신을 조립하고 있는 신경줄은 마지막 섬유질에 이르기까지 서로를 부둥켜안게 돼 있었다._p.172


서로 부둥켜안고 둥근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생활은 쓸쓸한 대로 안정되어갔다. 그 쓸쓸한 안정 속에서 일종의 달콤한 비애를 맛보았다._p.218


나는 문을 열어달라고 왔다. 그렇지만 문지기는 문 안쪽에 있어서 아무리 두드려도 끝내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다. 단지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힘으로 열고 들어오너라"라는 목소리만 들려왔을 뿐이었다.

…그는 앞을 바라다보았다. 앞에는 육중한 문짝이 언제까지나 전망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는 문을 통과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문을 통과하지 않고 끝날 사람도 아니었다. 결국 그는 그 문 아래에 꼼짝달싹 못하고 서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_p.26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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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죽음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서유리 옮김 / 뿔(웅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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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작 <사라진 소녀들>로 상당히 많은 인기를 끌며 넬레 노이하우스에 이어 일단은, 독일발 스릴러의 또 다른 한 축을 세우고 있는 안드레아스 빙켈만의 네 번째 소설이 국내에서는 두 번째로 출간되었다.


  지난 번 작품에서는 독자의 '시각'을 차단시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포를 실감나게 묘사하며 나를 꽤 공포로 몰아넣었는데, 이번 작품 역시 그만큼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다만, 너무 비슷하면 안 될 텐데.

 

 

 

  100명 중 4명, 그러니까 25명 중 1명은 소시오패스다! 개인적으로는 사이코패스에 이어 소시오패스 역시 상당히 일상적(?)인 용어가 되어버린 듯하다. 굳이 말하자면 소시오패스의 범주에 사이코패스가 포함된다고 보면 되는데, 간단히 말하면 '양심이 없는' 사람이다. 양심이 없기에 자기가 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고, 남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것이 극대화되어 오히려 쾌감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사이코패스라고 보면 될까. (그러나 이거 정말 야매로 주워들은 지식이라 정확하진 않슴미다.....;;)




  알 수 없는 공간에 갇혀버린 채 움직일 수 없는 한 여인은, 점차 자신을 부식시키는 정체불명의 액체에 뒤덮인다. 그렇게 그녀는 서서히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뒤바뀐 화면에서는, 형사 넬레 카르민터가 경찰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에 참석하고 있다. 사람 100명 중 4명은 소시오패스다, 소시오패스를 구별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가, 등등 지난 사건에서의 상처를 넘어서기 위한 그녀의 노력이라고 봐도 좋겠다.


  알렉산더 자이츠는 온전한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 별장에서 맡은 의뢰를 처리하는 사립탐정이다. 그는 한 실종된 소녀를 찾아달라는 부모의 의뢰를 받아 그녀의 행방을 뒤쫓고있다.


  미리암 징거는 차를 운전하는 도중 환각이 보여 상당히 당혹스럽다. 힘겹게 차를 세우고 잠시 쉬려는 찰나, 그녀를 도와주겠다는 낯선 남자가 다가온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납치하려 한다! 미리암은 지금까지 배워온 호신술을 생각하며 필사적으로 그의 손길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언제나 남편의 학대를 받으며 살아가는 니콜라가 있다. 언제나 차고에 연결되는 문은 굳게 닫혀 그녀와 남편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남편은 도대체 차고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남편의 학대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소설은 크게 미리암 징거의 납치 미수, 그리고 그를 수사하던 중 시체가 발견되면서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을 수사하는 경찰 넬레 카르민터의 시점과 실종된 딸 다니엘라를 찾아달라는 부모의 의뢰를 받아들인 알렉산더 자이츠가 소녀의 행적을 뒤쫓는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진행된다.


  별 상관없어 보이는 이들이지만, 끝내 이들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모여들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전작 <사라진 소녀들>에서도 상당히 비슷한 서술 방식을 택했던지라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구성은 낯설지 않았다. 게다가 늘 보던 '사이코패스' 대신 조금 더 넓은 범주의 '소시오패스'라는 용어를 등장시켜 잔혹하게 살인을 저지르기만 하는 미친놈이 아닌 우리의 감정에 함께 공감할 수 없는, 하지만 그 감정을 너무나도 잘 꿰뚫어 동정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모든 게임에서 '승리'하려 하는 범인의 몽타주를 그려내는 색다른 시도를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결국은 '사이코패스'인 것이다. 왜냐,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소시오패스 중의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니까!


  하지만 그렇게 뻔하게도 느껴질 수 있는 소재로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간다 해서 딱히 재미가 없고 지루한 것은 아니었다. 상당히 잔혹한 범인의 방식과 계속되는 잔혹한 살인, 그리고 그 범인의 그림자가 경찰마저 안전하지 못하게 어둠으로 뒤덮게 되는 긴장감은 탁월했다.

  또 '반전을 위한 반전'이랍시고 전혀 소시오패스라고는 짐작할 수도 없는 '주인공들 주변의 의외의 인물'을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어찌보면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결말보다는 물흐르듯 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귀결되는 결말 역시 흡족했다. 특히 마지막에 범인과 그를 심문하는 넬레 형사의 대화는 소시오패스의 심리 상태를 참으로 잘 드러내고 있었는데, 실제 작가는 '작가가 소시오패스인 것 아니냐'라는 질문까지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조금 빤하게 느껴지는 소재와 그 구성을 극복하게 해 준 것은, 무엇보다 이 소설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바로 소설 속에서 움직이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다.

  소설 초반에 넬레 카르민터 형사와 그녀의 동료이자 연인인 아누슈카 로스베르크 형사는 얼마 전 사이코패스의 위협을 받았던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실제로 범인에게 납치당해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아누슈카는 상당히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애써 억누르며 지내고 있고, 넬레는 미처 범인을 일찌감치 눈치채지 못해 아누를 위험에 빠뜨리게 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들의 위태로운 관계 역시 종종 삐걱거리곤 하는데,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가에 대한 궁금증은 캐릭터에 상당히 매력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자꾸 장단이 계속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조금 그렇긴 한데 그래도 짚을 건 짚고 넘어가 보자. 이처럼 대단한 경력과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은 정작 범인을 검거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별다른 활약이 없다. 사설탐정 알렉스가 다니엘라의 행적을 뒤쫓으면서 좁혀둔 장소에 갑자기 나타나 용의자를 확보하고, 또 정작 범죄심리학자의 프로파일에 들어맞는 인물상을 찾아내는 것은 다름아닌 다른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이다. 소설의 진행을 위해서는 우연이 아니었지만 전반적인 현실을 기반으로 바라보면 그야말로 '우연'으로 범인을 체포하게 된다. '마침' 그 프로파일에 들어맞는 인물이 등장해 버린 것이다.(물론 우연히 용의자를 찾아내는 사례 역시 실제로 많기 때문에 뭐 그런가보다 할 수 있긴 하다.)



  그 와중에 또 사설탐정 알렉스의 과거는 왜 굳이 등장시켜야 했을까.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작가가 앞으로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렸다. 넬레와 아누의 과거 뿐 아니라 알렉스 역시 계속 등장시킬 것인가? 넬레와 아누의 사연은 참으로 매력적이고 앞으로의 그들의 행보라거나 그들의 과거 있었던 일들에 조금 더 궁금증을 가지게 만들지만, 그 이야기들이 앞으로도 만들어질 의도가 없다면 등장인물들의 과거는 소설을 오히려 산만하게 만드는 요소에 불과하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들을 계속 만날 수 있다면, 시리즈의 하나로서 초석을 잘 깔아둔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창백한 죽음>의 후속편을 간절히 기다린다. 그리하여 매력적인 두 형사 커플의 이야기를 앞으로 지켜볼 수 있기를.









100명 중 4명은 양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심리학자들은 이를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들이라 지칭하고 그런 사람들을 소시오패스라고 부릅니다._p.21


그런 사람들을 사람으로 보지 말고 외계인이나 아무튼 우리의 생각을 벗어나는 다른 존재로 바라볼 수 있으면 도움이 돼요. 그렇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서 못 견딜 겁니다._p.97


그는 자기 이야기만 했다. 그는 아내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고 자기가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어 했다._p.171


"그렇게 생각하세요? 채어서 비틀거리는 사람의 몸 위를 주저 없이 짓밟고 올라설 수 있을 때 높게 설정한 목표를 훨씬 더 빠르게 달성할 수 있죠."

넬레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런 목표라면 달성하고 싶지도 않아요."_p.219


하지만 그녀는 지금 정말로 이 사회의 인간 망종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걸까? 아니면 오히려 그 사회 자체가 아닐까? 사회의 한가운데서 이런 짐승들이 나타나 밤하늘에 있는 별똥별처럼 잠시 끔찍하게 반짝거리다가 다시 일상의 어두움 속으로 숨어든다. 그러고는 다시 남편, 아버지, 그리고 친절한 이웃의 모습으로 돌아간다._p.288


평온한 세상은 없어요. …마찬가지로 파괴된 세상도 없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행하는 세상만 존재해요._p.357


여러 명 중 한 명. 다른 사람과 같은 한 명. 하지만 매혹적인 껍데기 아래 감춰져 있었다._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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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생활 풍경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모스 오즈 지음, 최정수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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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나의 일상을, 그리고 지금까지의 나의 인생을 서술해 보라고 한다면 그 방식에 있어 '서사'가 아닌 '묘사'를 택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나의 인생을 서사적인 구조 속에 담아내기에는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만큼의 우여곡절이 없다. 그렇다고 딱히 묘사를 한다고 해서 다채로울 수 있느냐, 그건 또 아니다. 비슷비슷한 하루하루가 지속되고 있을 뿐인걸. 아마 한 장면 써 보면 끝나지 싶다.


  하지만 감히 묻는다. 과연 당신의 일상을, 당신의 일생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내러티브는 서사인가 묘사인가. 그리 다양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런저런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 더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아니 정말 나만 그런가?ㅎㅎ

 

 

 

  그러나 소설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는 역시 어느 정도의 구조를 갖춘 채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중심 인물을 설정하고─꼭 한 명이 아니어도 좋다. 몇 명의 중심인물들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그를 중심으로 역시 중심을 잡아 굵직한 사건을 이어나가는 것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독자들을 소설 속 세계에 끌어들이는 것이 적합해 보인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읽는 것이 무엇보다 재미가 있다.


  또 다른 질문 하나. 그렇다면 한가로워 보이는 시골 생활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연작 소설집은 재미가 있을까요?

  나의 '재미있는 이야기'의 기준에, 다시 말해 서사적인 요소를 갖추었느냐의 기준에 따르자면 이 책은 '그다지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한가로운 시골 생활 풍경 속 흔들리는 일상은 지역과 문화를 뛰어넘는 공감과 연륜있는 작가의 깊이있는 시선이 담겨 있다. 마냥 읽기에 재미가 없다고 그저 지나칠 수는 없다,라는 것이다.




  <시골 생활 풍경>은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의 작품이다. 이스라엘 소설이라고? 뭐니뭐니해도 역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오랜 갈등을 그려낼 수밖에 없겠군! 이라는 나의 예상은 책을 넘기자마자 박살이 나고 만다. 책의 시작과 함께 '그런 거 아니거든?'하고 친절하게 알려주시니.

 

 

 

  그렇다, 그런 분쟁 지역의 특성 대신 <시골 생활 풍경>은 이스라엘이 건국되기도 전 개척자들에 의해 세워진 '텔일란'이라는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그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연작 단편집이다.


  마을 사람들의 일상은 그저 평화롭고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한 단편에서 주인공으로 초점이 맞춰진 마을 주민 한 명은 또 다른 단편 속에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의 이웃으로 등장한다. 별다른 일 없어 보였던 이웃들의 일상에 아모스 오즈는 돋보기를 가져다 댄다. 그리고 그가 갖다댄 돋보기 속  그들의 일상에는 균열과 흔들림이 있다.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잠깐 들여다보자.

  아내와 헤어지고 노모와 함께 살고 있는 아리에 젤니크 앞에 「상속자」의 권리에 손을 대려는 남자가 나타난다. 여의사 길리 스타이너 박사는「친척」인 조카 기드온의 방문을 애타게 기다린다. 전직 국회의원이었으나 지금은 교사인 딸과 함께 말년을 보내는 노인 페사크 케뎀은 누군가가 「땅 파기」를 하는 소리를 듣는다. 마을의 고옥을 사들여 새로운 건물로 지으려는 부동산 중개업자 요시 새슨은 독특한 구조의 고옥 안에서 「길을 잃(는)다」. 마을 면장 베니 아브니는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씁쓸하게, 그리고 외롭게 「기다리기」로 한다. 17세 소년 코비 아즈라는 「낯선 사람들」 속에서 마을 우체국장이자 도서관 사서인 서른 살의 이혼녀, 하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단 한 명의 여인을 발견한다. 십대 아들을 자살로 잃은 한 부부는 이웃들을 초대해 「노래하기」로 그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다른 시간, 먼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낯선 이방인은 더 이상 자신이 할 일이 없음을 깨닫는다.



  어느 순간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이야기 속에서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이웃에 불과하기도 한 일곱 단편 속에 등장하는 '텔일란'의 주민들은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모스 오즈는 그의 펜 끝에서 그들의 일상 속에서 그들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함께 그려내고 있다.


  그들을 지켜보는 나는 그 마을 속에서 벌어지는 일 모든 것에 함께 울고 웃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일상이 낯선 존재로부터 침범당하는 것에서 당혹감을 느꼈고, 처지는 다를지라도 언제나 함께 있으리라 생각했던 존재의 부재에서 찾아오는 상실감에 오롯이 공감하기도 했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면' 분명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도 <시골 생활 풍경> 속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해보려 했고, 혹은 '도대체 이건 뭐 어쩌라는건가' 싶은, 작가의 메시지를 도무지 눈치챌 수 없는 이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을 전해보고도 싶다.

 

 

 

 

  그렇게 조금은 이질감을 또는 동질감을 느끼며 아모스 오즈가 묘사하고 있는 <시골 생활 풍경>을 지켜봤다. 지역과 문화와 처한 상황 모두를 초월하는 '인간'의 실존을 담아낼 뿐이라는 작가의 의도를 조금은 알 수 있겠노라고 어렴풋이 말해 보련다. 도무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놓인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시도도, 또는 모든 것이 다른 처지에 놓인 사람이나 단 하나의 공통요인을 통해 오롯이 공감하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시골 생활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아모스 오즈의 내러티브는 그렇게 비슷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나의 일상'과 어느 정도 통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책을 덮은 후의 여운이 잔잔하게 남았던 것은 아닐까.

 

 

 

 

 

덧1. '침묵하지 않는 작가' 아모스 오즈는 침묵하지 않고 작품과 실생활을 넘나들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작가라고 한다. 이 소설의 말머리에서 '인간 실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뿐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단편 「땅 파기」 속에서는 전직 국회의원의 입을 통해 그 갈등을 직접적으로 또는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고, 그럼에도 '아버지와 딸'의 관계 속에서 지역과 문화를 초월하는 보편성을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덧2.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같은 거다. 그런 거지 뭐:)






그 녀석이 여기에 온 이유는 아마 어떤 반환권을 주장하려는 것일 게다. 오스만 제국 시절에, 아니면 십자군 시절에 여기 살았을지도 모르는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 이름으로 땅과 집에 대한 권리를 차지하려는 음모일 거야._p.79, 「땅 파기」


그는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과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이리저리 방황했다. …그래서 그도 기념공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두세 시간 전에 아내가 앉아 있다가 아델에게 쪽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벤치에 앉았다. …그렇게 앉아서 아내를 기다렸다._p.165~166, 「기다리기」


혹시 상대방이 당신의 사랑에 보답해줄 거라는 희망 없이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있어요?_p.183, 「낯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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