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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참치여자 ㅣ NFF (New Face of Fiction)
사비나 베르만 지음, 엄지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최초의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갑자기 떡하니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초의 인류는 털이 북실북실했을 것이고, 그렇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처음'이 되었지만 그래도 분명히 자기와는 조금 다른, 홀로 진화에 한 발짝 더 내딛었을 뿐 그 주변에도 분명 자신이 속해있던 공동체가 있지 않았을까.
그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부터 언어는 발달하기 시작했고, 인간은 언어를 갖추어 조금 더 나은 생활 방식을 모색하며 차츰차츰 발달했다. 그에 따라 상당히 직접적인 의사 표현만 했던 언어 체계 역시 점차 정교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사고가 언어에 앞서지는 않았을까.
분명 태어나면서부터 언어는 완벽하지 못했겠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우리는 사고마저 자연스럽게 습득한 모국어를 이용한다. 그렇게 나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비슷하게 '언어가 먼저냐, 사고가 먼저냐'와 같은 알쏭달쏭한 순환의 고리에 빠져들고 만다. 이미 말을 못하던 아기 시절의 내 사고는 어땠는지 기억할 방도가 없기에 뭐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세 가지 장점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1. 나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2. 나는 상상을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존재하지도 않는 것 때문에 쓸데없이 걱정하거나 속을 끓이지 않는다.
3. 그리고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은─사실 그게 훨씬 더 많지만─절대로 모른다.
전에도 말한 것처럼, 이는 스탠더드한 인간들에 비해 내가 지닌 커다란 장점이었다._p.44~45
이사벨 이모는 캘리포니아에서 살다가 유산 상속 소식을 듣고 멕시코 마사틀란을 찾아온다. 그녀가 상속할 유산이란 바로 '아투네스 콘수엘로'라는 이름의 참치 가공 공장이었다. 처음 공장을 방문한 그녀는 쉴새없이 참치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며 그 속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에 흥건한 장면을 보며 그 비린내에 바로 토악질을 하고 만다.
게다가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되어온 또 다른 유산인 집은 그야말로 보수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더불어 말도 없이 날뛰며 그 창문을 다 부숴버린 지하실에 갇힌 짐승 한 마리. 카렌과 이사벨 이모의 첫 만남은 그런 것이었다.
인간들과 나 사이의 거리를 이처럼 명료하게 표현해주는 문장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 문장을 처음 봤을 때, 나는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우선 존재하고, 그다음에 다른 것을 한다는 사실쯤은 두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것이다._p.53
그러나 이사벨 이모는 꾸준히 인내심을 가지고 카렌에게 언어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나' 그리고 '너'에 대한 구별을 잘 하지 못했던 카렌은 차츰 언어를 익혀가기 시작했고, 비록 조금은 뒤처지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약간의 자폐증'과 '부족한 능력'뿐 아니라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능력 역시 갖추고 있었기에 대학에서 축산학을 공부하며 자신의 재능을 키워나간다.
어느 자폐증 소녀가 뒤늦게 익힌 언어로 데카르트의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깨부수고 비유가 아닌 오로지 직설적인 대화를 하며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사유(思惟) 그리고 그녀의 재능이 참치 양식과 포획 과정에서의 '인도적 도살' 방법을 개발하며 꽃피워져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는 소설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그렇게 두 가지로 이야기하기에 이 소설은 너무나도 많은 색채를 띠고 있다. 굳이 큰 두 갈래로 말해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아주 가끔씩, 그것도 꼭 필요할 때만, 아주 느릿느릿 어렵사리] 생각한다.
야, 너 잘 나왔는데. 군살도 없고. 완전 근육질 몸매야.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는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그건 합성이란 말이야. 망할 놈의 비유를 자꾸 사용하다보면 결국엔 터무니없는 거짓말이 되어버린단 말이야. 그래서 나는 비유를 일절 사용하지 않아. 비유는 현실에 대한 정보를 왜곡시키는 거야.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 빌어먹을 비유가 없으면 못 살 것처럼 그러는 걸까?_p.331
사비나 베르만이 소설 속에서 그려내고 있는 문장은, 다시 말해 화자 카렌이 쓰고 있는 문장은 그렇기에 상당히 이채롭다.
비유도, 대화를 구별하기 위한 문장부호도 없다. 거짓말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녀는 자신의 감정과 그 감정에서 비롯된 표현은 솔직하고, 상상을 하지 않는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 '신이 살고 있는 세계'와 같이 자신이 모르는 세계에 대한 공상을 펼쳐나가지 않으며, 도면마저 간략한 부호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담아낸다.
'스탠더드한 인간'은 문득 깨닫는다. 자신의 사고가 견고해질 무렵이면, 언어의 틀에 완벽하게 갇혀진 스스로의 사고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이사벨 이모와의 만남 이전에는 '언어'라는 것과는 담을 쌓고 지냈던 카렌은 처음으로 '나' 그리고 '너'에 대한 인식을 시작으로 언어라는 도구를 이용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차츰차츰 축적되어가는 언어이지만 그녀는 그 '언어'라는 감옥에 갇혀 거기에 지배당하고 스스로를 얽매이지 않는다.
그녀는 존재한다. 고로 가끔씩, 아주 가끔씩 필요할 때 느릿느릿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서서히 카렌은 '세상의 중심을 향해 잠수해 들어간다'.
공기총을 쏠 때는 시선을 돌리던 이들이, 지금은 연한 고기 맛을 즐긴다
이야기의 또 다른 하나의 흐름은, 대학에서 축산학을 배우면서 이모와 자신의 참치 가공 공장을 위한 참치 양식법과 '인도적인 도살 방법'을 극대화시키는 '성공시대'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공장의 참치 포획 방법에 대해 미국의 동물보호단체에서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면서 '아투네스 콘수엘로'는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다. 그로 인해 참치 포획과 가공이 주요한 생계 수단이었던 마사틀란의 주민들은 미국의 횡포로 인해 생계 수단을 잃고 가난에 허덕이기 시작한다.
공장을 살리려고 카렌은 다양한 방법을 물색한다. 그 과정에서 카렌은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만난다.
참치가 죽을 땐 시선을 돌릴 게 분명한 사람들이 참치 뱃살 한 점을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하고, 막상 접시 위에 놓이면 맛있게 먹을 것이면서 그 음식이 되어줄 참치가 죽을 땐 시선을 돌려버리고, 자연산 참치는 돌고래에게 피해를 입히니 잡지 말라고 하지를 않나, 그래서 양식을 하려니 좁은 공간에서 참치가 스트레스를 받는단다.
데카르트 그리고 참치
이참에 비밀 하나 말해줄게. 이모는 내게로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면서 말했다. 인간이 아닌 종들과 비교해보면, 인간은 모두 자폐증 환자란다._p.361
소설은 전반적으로 카렌의 삶과 그에 따른 그녀의 사유를 그녀만의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크게 관계가 없을 듯한 참치 도살과 본격적인 사업 그리고 그 주변을 압박해 들어오는 몇몇 세력들이 등장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카렌의 '조금 다른 언어'는 '스탠더드'에 맞선다는 것. 카렌과 도살당하는 참치와 소와 돼지가 인간과 자본의 다른 얼굴에 맞서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스탠더드'하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말이다.
그렇게 카렌이라는 존재가 '세상의 중심으로 잠수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이 소설은 매력적이다.
나 역시 완벽하게 언어로 사고를 하는 틀에 갇혀 있는 이로서, 하필이면 또 이런 시기에 멕시코에서 미국의 거대한 힘에 무자비하게 휩쓸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카렌의 언어와 사고가 데카르트에 맞서고 참치와 함께 하며 DHA를 마음껏 흡수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