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점거사건
이은 지음 / 고즈넉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때 김진명씨의 소설을 열심히 읽던 시절이 있었다. <제3의 시나리오>가 출간된 소식을 듣고 난 뒤 그 책 부터 이후에 출간된 작품은 거의 손도 대지 못했지만, 그 전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던가 <황태자비 납치사건> 등 꽤나 열심히 읽었는데.

미국이나 일본에 눌린 채 당하고만(?) 있는 정부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조금 비틀어 그려내곤 했던 그의 소설은,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일만큼은 꽤나 통쾌했고, 그럼에도 이것은 현실이 아닌 픽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참 아쉽고 씁쓸하기도 했었다. 묘하게도 애국심이 그렇게 심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그런 소설만 읽으면 참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뭐 그런다고 그저 지금 있는 내가 당장이라도 박차고 일어나 뭔가를 바꿔보겠다고 나설 수도 없는 일이니, 그렇게 유쾌한 상상을 해 봤다는 것으로, 그리고 역사에 이런 일이 있었다, 라는 것을, 그것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위안을 삼을 뿐이다.

 

이은,이라는 작가, 낯설진 않다. 한국문학에서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은 편이고, 그렇기에 그 와중에 두각을 드러내는 작가님이 있으면 일단은 기억을 하게 되고, 그리고 그렇게 반가움이 앞서게 되는 것이다. 그래봤자 나는 <수상한 미술관>이라는 작품밖에 들어보지 못한 차에 이 소설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고보니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미술관의 쥐>는 일본 고단샤 선정 '아시아 본격 미스터리 선집'에 한국 대표작으로 실렸고, 프랑스의 필립 피키에 출판사에서 출간되기도 했단다. 아, 얼마나 등잔 밑이 어두웠던가.

 

어쨌든, 그렇게 이은 작가의 신작으로 그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소설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은 작가는 추리소설가이자 미술학 박사로 미술과 미스터리를 녹여낸 작품을 그려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들이 미술관을 점거한 것인지, 그 사연이 궁금해진다.



미문화원 점거사건, 정당 사무실 점거사건, (중략), 크레인 점거사건 등등, 특정 집단이 상징성을 지닌 공간을 점거해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강하게 주장하는 일은 많았다.

그런데 그런 험하고 극단적인 것과는 안 어울릴 미술관이라는 장소가 점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p.11

 

 

개관을 앞두고 미국의 유명 여류 화가 조지아 오키프전(展)을 준비하던 아르스 미술관에, 전혀 다른 두 성격의 집단이 미술관으로 쳐들어왔다.

홍콩과 러시아의 마피아를 중개하는 한국의 조직폭력단 9·5파의 일원 4명, 그리고 서울 아트 인스티튜트의 학생으로 동아리 한국문화재연구회 회원 16명.

그리고 언제나 미술관을 지키고 있던 관리실 직원인 주민수와, 학예연구실장 고진미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게 됐다.

다른 목적으로 함께 미술관을 점거하게 된 이들. 이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짐작하신대로, 조폭의 일원들은 당연히! 무언가의 '거래'를 위해 미술관을 찾아온다. 거래처(?)에서 미술관에 '그것'을 갖다두었으니 찾아보면 된다,는 말에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미술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학생들. 그들은,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주장하기 위해 미술관을 점거한다. 요구 사항은 바로 속칭 헨더슨 컬렉션이라 불리는, 그레고리 헨더슨이 주한미국대사관 정무참사관으로 근무하면서 약탈해 간 한국 문화재 컬렉션의 반환이다. 미술관이라는, 시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서 미술학도이자 한국문화재를 연구하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반환을 하지 않으면,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을 하루에 하나씩 불태우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세운 채.

 

 

서로 대립되는 두 그룹과, 그 둘을 잇는 역할을 하는 두 명. 하지만 서로의 목적이 다르니 그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자기들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겠다고 협정을 맺는다.

그러나 미술관을 지켜야 하는 미술관의 직원은, 하루빨리 조폭을 내보내고 학생들로부터 그림 역시 지켜내야만 한다. 그 '미술관 점거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뭐 지금까지는 몰랐다 하더라도, 알게 된 이상 잊을 수는 없는,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 역사,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마봉춘에서 !느낌표,라고 상당히 공공의 선? 공공의 이익?을 나름대로 추구한 예능 프로그램을 했었더랬다. 전국민에게 독서 열풍을 불러 일으키거나 각막 기증을 통해 시력을 되찾게 하는 등 감동을 주는 코너가 대부분이었는데, 역시 기억에 남는 코너 중 하나는 '위대한 유산 74434'였다. 해외에 반출(약탈)되어 흩어져있는 우리의 문화재가 74434점이라는 뜻의 제목이었는데, 결국 이 코너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부의 비협조, 시민의 무관심 등 열악한 조건 속에서는 TV 프로그램의 한계는 당연했으리라. 그래도 당시 이 코너의 폐지가 아쉬웠던 시청자들의 목소리도 상당히 강했었는데.

 

최근에는 지식채널 e에서 프랑스 도서관 창고에서 묵혀져 가던 외규장각 의궤를, 프랑스 도서관의 비협조와 한국 정부의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 모든 도서를 정리하고 반환하기 위해 노력한 박병선 박사의 이야기를 보기도 했다. 정부의 무능함과 무관심은, 결국 소유권은 프랑스에 둔 채 5년마다 갱신 가능한 대여,라는 조건으로 외규장각 의궤를 한국으로 되돌려왔지만.





이은 작가는 이 소설의 가장 중심 테마가 되는 헨더슨 컬렉션의 반환을 비롯해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냉혹한 문화재 약탈자였던 프랑스와 영국, 미국 그리고 무관심하게 문화재 반환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정부를 고발하는 내용을 '미술관 점거'라는, 아트 테러리스트와는 조금 다른 테러리스트들을 등장시켜 꽤 흥미로운 이야기로 엮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였을까. 의미는 다르고 스케일도 상상력의 허용 범위(?)도 김진명 작가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왠지 김진명 작가의 작품들이 생각났다. 뭐 개인적으로는 너무 산으로 가버린 통쾌한 상상보다는 덜 부담스러운 스케일로 그려낸 것이 더 마음에 들었지만. 이은 작가 역시 그만의 상상력을 발휘해 이들 테러리스트들의 자그마한 반란을 나름대로 훈훈하게 마무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너무 메시지가 직접적인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한없이 무거워질 수도 있는 소재를 재미와 긴박감을 더해 그려내기로 시도한 작가의 시도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씁쓸하지만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유쾌한 소동을 그려낸 이은 작가와의 첫 만남은, 그래서 상당히 산뜻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