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소년 - 박형근 장편 소설, 제5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작
박형근 지음 / 노블마인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기억나? 정말 이런 것들이 나오면 완벽한 유토피아가 될 줄 알았지.

공해없이 달리는 전기자동차가 나오는 세상은 완벽했어.

그런데 전기자동차가 돌아다니고, 액자보다 얇은 TV를 보고, 빌어먹을 영상통화 휴대폰을 쓰는데도 세상은 달라진 게 없잖아.

매일같이 죽어나가고, 불타고, 무너지고 있지. 아무도 행복해 하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아.

우리는 21세기가 유토피아가 될 거라고 철저하게 교육받았지. 완벽하게 속은 거야.

21세기는 우릴 배신했어.

-p.61

 

4월은 과학의 달, 이랍시고 항상 과학의 달 행사를 했다.

뭐 물의 날이면 물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거나 포스터를 그리거나 표어를 쓰거나 했는데, 과학의 달에는 언제나 그리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는 걸 잘 하지도 못하고 싫어하는 나로서는 '과학의 달 상상화 그리기'가 그렇게 고역스러울 수가 없었다. 뭐 그래도 언제나 레퍼토리는 정해져 있다.

 

그 때는 딴에 나는 그래도 너희들과는 달라, 라는 식으로 좀 다르게 그리는 어린이도 있었을지 몰라도 어쨌든 결론은 우주여행, 해저도시, 전기자동차, 무빙워크, 집안일을 다 해 주는 로봇, 화상전화기를 비롯한 지금의 스마트폰 역할을 할 것 같은 기기, 뭐 그 정도.

가끔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해 기발한 그림을 그렸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대부분의 그림 역시 이 정도로 끝났다.

 

여전히 2000년대는 그다지 먼 과거가 아닌듯하지만, 2003년이라던가 하고 딱 연도를 구체적으로 짚어보면 거기서부터도 꽤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을 절감하곤 한다.

벌써 2002년 월드컵과 붉은 악마의 열기로부터 월드컵이 두 번이나 더 개최되었으니 말이다. 정말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쨌든 2000년이라거나 2001년이라거나 하는 연도를 생각해보고 있으면 꼭 생각나는 말이 하나 있다.

'2000년이 되면 상상화에 그리던 게 진짜가 될 줄 알았는데.'

그 때는 진짜 직립보행하는 로봇이 일상화가 되고 사람이 운전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컬러 핸드폰으 물론이고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꽤 놀라웠던 일이 얼마 전이었는데 이제는 카메라에 mp3가 웬 말인가. 이건 기본 옵션에 화상통화는 당연히 가능, PC가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스마트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스마트한 세상이 되었는데.

 

어쨌든 '~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라는 발상으로 시작된 소설인 듯한 <20세기 소년>.

소설 속 21세기는 뭐 우리의 모습 그대로다. 뭔가 궁금한 게 있으면 인터넷으로 바로바로 검색해 보고,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기 벅차다.

뭐든지 검색, 또 검색이다. 새로고침, 그리고 새로고침. 클릭하고 또 클릭한다.

실시간 급상승 인기검색어. 어라? 이 사람 이름이 왜 여기에? 하고 클릭해보고, 시덥잖은 루머에 휘둘리든 진짜든 어쨌든, 다음 날의 훌륭한 대화 소재 중 하나가 되어주기도 한다.

뭐 더 있는 것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에 거의 의존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던 21세기의 모습은 아니다ㅡ라고 말하려니 어린 시절이 완전히 20세기에 있었다기보다는 경계에 놓여있었던 내가 말하기에는 좀 뻘쭘하긴 하다.

 

어쨌든 주인공 '신'은 그런 21세기를 살아가면서 의류 디자이너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은 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청계천' 등의 글자가 적힌 티셔츠를 파는, (문 닫기 일보 직전인) '20세기 소년'이라는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포털 사이트 메인의 뉴스를 업데이트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언제나 언제나, 최신 소식과 동향에 뒤처지지 않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만 한다.

늘 반복되는 업데이트, 그리고 언제나 트렌드를 좇는 여자친구를 만나는 주인공. 그런 그에게 은밀한 즐거움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새벽 4시부터, 3분간의 자그마한 일탈이다.

3분동안, 메인 뉴스의 링크를 바꿔놓는 것. 두 국가의 정치인이 악수하는 사진을 원숭이 사진으로 바꿔놓는다거나 하는 일이다. 아무도 모르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어느날 부턴가 그 시간, 링크에 덧글이 달린다.

 

 

'팬이에요.'

 

 

이 즐거움마저 빼앗길 것 같아 미칠 것만 같은 신이지만, 정작 팬이라는 이 사람은 신을 직접 찾아오기까지 한다.

고등학교때부터 해외 구매 대행 서비스를 하면서 떼돈을 번 그, 호제는, 삶에 목표도 즐거움도 없다며 새벽 4시의 그 일탈을, 자신이 할 수 없겠냐고 물어온다.

뭐 아르바이트비는 자기가 받겠다, 그러라고 했더니 아예 자신이 살고 있는 방에 눌러앉는다, 호제라는 녀석.

 

그러나 그 뒤로도 새벽 4시의 은밀한 행각을 지켜보는 이는 존재하고 있었으니, 골때리는 마조히스트 소녀 혜지였다. 그렇게 20세기 소년의 회원을은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들은 세상을 뒤집을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ㅡ.

 

언제부터인가, 인터넷이라는 녀석은 우리 생활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마 내 기억으로 어린 시절 게임 말고 인터넷의 가장 커다란 용도는, 바로 독후감이었다. 지금도 가끔 방학의 끝무렵 네이버를 미칠듯이 검색하고 뒤지고 있을 '독후감 숙제'라는 키워드를 볼 수가 있는데, 어쨌든 그렇다. 독후감이랍시고 읽어보지도 않고 남의 글을 슥 베껴 고대로 제출하니, 선생님들도 꽤나 꼼수가 생겨 일부 구절을 검색해봤더니 똑같더라..라는 식으로 무단 도용을 색출해내기도 했고ㅡ물론 내가 이런 걸 베꼈다는 건 아니다. 난 성실한 학생이었으니까.. 음하하..

숙제의 가장 좋은 길잡이는 바로 이 인터넷,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식*N 뭐 그런 거다. 그 밖에도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생활을 하면서 발생하곤 하는 소소한 문제들을 물어보고 답변을 하는 등 정보 교환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데, 그 넓고 넓은 인터넷의 바다를 두고 한정된 포털 사이트의 지식 관련 활동을 그저 받아들일 정도로, 이들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프랜차이즈의 수많은 이벤트와 쿠폰을 뿌리며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블로거들의 영향력 역시 커지면서 맛집, 책, 영화 등등 수없이 많은 상품에 대한 정보와 평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단이다(얼마 전 파워블로거라는 것을 빌미로 한 식당에서 좋게 올려줄테니 밥값을 면제 해 달라는 말도 안 되는 생떼를 쓰고는 안 된다니 악평을 올리겠다고 협박을 하는 목격담도 본 적 있다ㅡ이 마저도 인터넷으로 확인하다니! 어찌되었든 그 사람은 분명 파워블로거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_-;;).

 

개인 정보,라는 것도 무시할 수가 없다. 어느샌가 방송에 출연해 이름이 공개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파헤쳐질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한 사람이 있다면네티즌들은 바로 촬영 정보를 바탕으로 소위 '신상 털기'에 돌입하기도 하는데, 그 행동력이 정말 놀랍기까지 하다.

 

어쨌든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너무나도 길들여져 버린 것이다.

 

바로 '20세기 소년'들은 이러한 점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첫째, 프랜차이즈의 로고를 닥치는대로 모아 '가짜 쿠폰'을 퍼뜨린다.

둘째, 인터넷에 친절한 답변을 통해 전문적인 수준까지 내공을 쌓아 누구든지 그들의 말을 들어줄 수 있게되었을 때 쯤, '가짜 지식'으로 세상을 점령하기 시작한다.

셋째, 너무나도 많은 재산을 어찌할 바 모르는 호제. 그의 재산 탕진을 위해 '고칼로리, 트랜스 지방'에 '불친절'을 모토로 내세운 햄버거 가게를 차린다. 그러나 그 곳이 망하기는 커녕, 사람들은 더더욱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조지 오웰의 <1984>는 모든 이가 감시받는 1984년이라는 미래를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일거수 일투족을 하나도 빠짐없이 검사받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는 커녕 뭔가 그들이 보기에 불순해 보이는 자그마한, 행동 하나마저도 용납할 수 없는 세상.

그 곳에서 자신을 찾으려는 탈출구를 찾으려는 조지 윈스턴의 몸부림은 눈물겹다. 그리고 생각한다. 조지 오웰이 그려냈던 1984년이나,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21세기의 빅브라더는, 21세기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21세기가 되어 화상통화가 일상화, 아니 솔직히 일상화는 아니지만 일단 가능해졌다. 공공장소에서 눈쌀을 찌푸릴만한 행동을 하면 순식간에 사람들은 손에 들고다니는 자그마한 핸드폰,이라는 이름의 카메라를 들이대고 순식간에 그 사실이 퍼지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렇게 잠깐 나온 얼굴을 가지고 어디에 사는 누구라더라, 라는 식으로 평소 그 사람의 행실까지 조목조목 되짚기까지 한다. 물론 그 사람이 잘 했다는 건 아니지만, 익명이라는 이름으로 잘못한 사람의 행동과 그의 모든 것은 까발려도 된다는 논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이렇게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는', '익명의 공간'이 세상의 모두를 감시한다.

 

그리고, 그렇게 익숙해진 우리들은 그 많다는 다양성 대신 모두가 비슷비슷한 생각을 하다 결국은 조지 오웰이, 그리고 모두가 두려워했던 '전체주의'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21세기의 이 문명의 이기를 폐해만을 바라보며 심각하고 나쁘게만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편리함을 누리고, 앞으로도 누리며 살아가려는, 살아갈 수 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다.

 

<20세기 소년>들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21세기 사람들을 비웃어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을 뒤집어보려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참 통쾌하고 유쾌한 소설이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보였듯 <1984>의 21세기 버전 같은 요소도 있다. 맞다. 나는 '20세기 소년'들이 벌이는 일을 지켜보며 스스로가 뜨끔했으며, 그럼에도 이들의 이야기에 공감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메시지, 주제가 소설 속에 직접 써놓은 듯 너무나도 명확하다. 그래, 너네도 그렇지? 뜨끔하지?라고.

호제, 그리고 혜지라는 캐릭터에도 공감이 좀 가질 않았다. 자신의 주체성을 찾아 공부는 일찌감치 때려치고 구매대행,이라는 특별한 분야를 처음이다시피 뚫고 성공한 호제나 정말 골때리는 마조히스트이자 관련 카페를 운영하는 여중생(그것도 중학생!) 혜지,라니.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실을 나를 둘러싸고 있는데, 말도 안되는 젊은 CEO와 마조히스트는 갑자기 뚝, 소설과 현실을 갈라버리는 벽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 덕분에, 소설은 조금 더 활기를 띠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소설의 요소가 되어주었으니까.

 

 

 

비틀즈의 무지개
흑백 텔레비전에 오즈의 마법사
듀란듀란의 노래
달나라에 간사람 마돈나의 가슴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왔을 법한
화상전화기를 든 소년들
너무 빨리 어른의 세상에 눈을 뜬
아직 말간 눈을 한 소녀들


밤하늘에 가득히 떠올라 빛나던 별 투명하던 바람
무지개와 새들과 꽃이 피어오르던 봄날의 언덕
천진했던 소년들 순진했던 소녀들 20세기의 아이들


비틀즈의 무지개
흑백 텔레비전에 오즈의 마법사
듀란듀란의 노래
달나라에 간사람 마돈나의 가슴


밤하늘에 가득히 떠올라 빛나던 별 투명하던 바람
무지개와 새들과 꽃이 피어오르던 봄날의 언덕

올리비아 핫세는 세월이 흘러도
청순한 소녀일 것 같았고
나는 언제까지나 어른의 세상을 모를 것만 같았지 아이인 채


 

-자우림, 20세기 소년소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