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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우유신화 1
MASA, JOANA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소년만화, 그 중에서도 능력자 배틀로 분류되는 장르는 필연적으로 구도자적인 성격을 가진다. 초능력이든 스탠드이든 넨이든 능력자 배틀의 화두는 주인공이 어떻게 최강의 자리에 오르느냐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장르에서는 물리학적 이론에서 오컬트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지식을 통해 어떤 것이 가장 강한 것이며 이 경지에 오르는 수련법을 연마해 절대적이라고 생각되는 악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데 어찌 이 장르의 주인공이 구도자가 아니겠는가.
얼마 전 완결된 마사토끼와 조안나의 [커피우유신화]는 이 능력자 배틀에 있어서 경지에 이른 작품이다. 마사토끼는 이 작품으로 신의 존재나 운명의 문제,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하여 철학적으로 명쾌하면서 알기 쉽게 풀어내는데 성공하였다. 작가는 스스로를 이과적인 작가라고 한계를 짓지만 이는 너무 겸손한 태도다. 마사토끼는 사랑에 대하여 그저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였을 뿐이나 그 집요함을 통해 자연스레 철학으로서의 깊이를 이끌어내었다. 운명과 자유, 신과 인간 그리고 윤리와 이윤의 대립되는 화두를 마사토끼는 철두철미한 논지와 개드립을 통해 자연스레 하나의 결론으로 화답하는 것이다.
[커피우유신화]는 두뇌배틀을 주로 그렸던 마사토끼답게 세계관이 복잡하니 정리하고 넘어가자. [커피우유신화]의 세계에는 세 가지 '힘'이 존재한다. 첫째는 '신'이다. 신이라고 하여도 전능한 초월자를 일컫는 것은 아니며 일정 조건을 클리어하여 자신이 믿는 것이 현실이 되는 능력을 갖게 된 사람을 가리킨다. 지금의 시대에는 커피의 신과 우유의 신이 있으며 미래에 이 둘이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아 커피우유라는 새로운 존재가 세계에 편입되며 신들은 그 능력을 잃고 인간으로 돌아올 운명이 주어져 있다.
둘째로 신들을 음지에서 보좌하는 '회원'과 이들이 모여 이룬 단체인 '협회'가 존재한다. 이들은 인간을 초월한 생명력을 갖고 있으며 원근감을 무시해 물리력을 펼치거나 중력을 무시하는 식의 다양한 초능력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우주의 법칙이 있다. 이 법칙에는 두 신은 반드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거나 신의 힘은 회원과 상대방 신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 등이 있다.
이 독특하면서도 평화로워 보이는 세계에 균열이 생긴다. 바로 가짜신의 등장이다. 앞서 말한대로 신이 되기 위해선 어떤 조건을 클리어해야 한다. 커피신의 경우에는 커피를 한잔을 마시고 5년 동안, 정확히 1억 5776만 6400초가 될 때까지 1만 잔을 마셔야 한다는 조건이다. 그리고 이 법칙을 알아낸 회원 '로우위'가 신이 되는 조건에 도전해 운명이 정한 신과는 달리 정화된 세계를 만들도록 노력하는 신이 되겠다고 나선 것. 몇몇 회원들은 로우위의 의견에 동조하고 커피신이 될 예정으로 점지된 고등학생 '리하이'를 암살하기로 결정하면서 협회간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얼마전까지 평범했던 고등학생인 리하이는 한시바삐 우유의 여신 '오선지'를 만나 임신을 시켜 신의 능력을 지우지 않는 한 암살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고만 것이다.
이렇게 주인공이자 원조 커피신 리하이가 해야 할 일은 두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운명을 따라 우유여신 오선지와 사랑에 빠질 것. 다른 하나는 로우위의 위협에서 자신과 주변 인물들을 지킬 것. 그러나 이 두 문제 모두 해결이 녹록치가 않다. 우선 리하이는 우연으로 인해 우유여신 오선지가 아닌 다른 사람을 오선지로 착각해 오선지 본인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또한 로우위는 협회를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슈톨렌이라는 강력한 회원의 도움을 받고 있다. 슈톨렌은 신이 된 로우위 덕에 능력을 개화한 회원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미래만을 선취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 슈톨렌이 로우위를 신처럼 여기기에 우주의 모든 것들이 로우위에게 최상의 결과만을 가져다주게 되었다.
마사토끼가 이 이야기를 통해 제시하는 화두는 바로 운명과 자유의 문제이다. 운명적으로 정해진 사랑에 따르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가?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면 인간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러한 주제를 러브코미디식 능력자 배틀물로 엮어내는데 어찌 구도자적이 아니랄 수 있을까? [커피우유신화]는 이 화두를 리하이와 오선지의 사랑의 가치와 리하이와 로우위의 싸움의 의미를 통해 묻는 것이다.
우선 리하이와 오선지의 사랑부터 다루어보자. 리하이는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우유여신의 협력이 필수적이며 둘 사이의 사랑의 결실인 임신을 통해 이 세계에서 신의 능력을 지워야만 한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으로 리하이는 다른 여학생을 오선지로 착각하고 오선지를 평범한 사람이라 착각한다. (실은 엑스트라)오선지에게 접근해야 자신의 생명과 세계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음에도 리하이의 마음은 (실은 오선지)엑스트라에게 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이런 우연에 의해서만 리하이의 사랑이 증명된다. 세계의 운명따위는 엿바꿔 먹으라고 하고 스스로가 원하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리하이는 오선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끊임없이 의심해야 했을 것이다. 목숨 때문에 한 여성의 마음을 이용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리하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스스로의 생명마저도 포기함으로써, 운명을 저버림으로써 도리어 그의 운명과 진정성을 증명하는데 성공한다.
둘의 사랑은 잘 되었다치자. 그렇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둘의 사랑이 결국 운명이 정해준 것이고, 스스로의 마음을 증명해내기 위해 운명의 장난으로 우연과 우연이 겹쳐 힘든 과정을 통해야 했다고 하자. 하지만 그저 운명이 모든 것을 정해놓았다면 인간의 선택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작중인물인 C.발 렌타인의 입을 빌어 제기되는 이 문제는 또 다른 신 로우위와의 결착을 통해 해결된다.
아닌게 아니라 로우위는 그 자체로는 위협적이지 않지만 그를 보위하는 회원 슈톨렌의 능력은 절대적이다. 슈톨렌에게는 자신과 로우위에게 유리한 운명만이 남아있으며 그가 능력을 얻은 그 순간부터 이미 그의 승리는 결정된 일방통행일 뿐이다. 실제로 리하이를 따르는 회원들이 로우위를 공격하려 했지만 말도 안되는 우연으로 습격은 실패한다. 그러나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언제나 최상의 결과만을 알려주는 선지자를 둔 로우위는 리하이에게 패배하고 만다. 우유여신 오선지의 리하이에 대한 사랑과 믿음으로 모든 것을 꿈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로우위가 얻은 최상의 결과라는 것은 그저 꿈 속의 이야기로 전락해버렸다. 그렇다. 인간은 운명이 결정한 것이 아니라 운명을 만드는 것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자질구레한 조건들이 아무 상관도 없게 느껴질 때. 모든 조건들을 저버리고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칠 때 증명된다. 이 선택은 그 어떤 타율도 아닌 자율로만 가능하다. 자율이라고 하지만 이를 이기적인 것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감싸안는 새로운 법을 정립하는 것, 그것만이 사랑이다. 이런 점에서 로우위의(슈톨렌의) 능력은 미래를, 운명을 선택한다지만 실상 전혀 선택이라고 볼 수 없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그냥 당연한 일이다. 누구나 그런 상황이 되면 그럴 일이다.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자유로운 일은 아니다. 당연한 일을 하는 것,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을 선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선택이 아니므로 자유도 아니다. 사랑은 당연히 당연이 아니다.
사랑은 얼핏 모순으로 보인다.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것만이 선택이라면, 상대방을 위한 윤리에 복종하는 것만이 자유로운 일이다. 이 복종은 자유에 복종하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자유로우라는 명령을 따르는 것은 자유다. 사랑은 선택 가능한 단 하나의 것이다. 유일하지만 모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바치지만 모든 것을 다 얻는다. 복종하지만 자유롭다. 다시 정리해보자. 유일하기에 모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바치기에 모든 것을 다 얻는다. 복종하기에 자유롭다. 최상이 아닌 최선의 길을 걷기에 최상의 결과를 얻을 자격을 가진다. 최강이다. 사랑은 모순이 아니다.
운명의 연인이라는 것은 운명이 정해준, 운명이 점찍어준 연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운명을 쥐고 흔드는, 모든 운명을 결정 짓는 그 연인이 바로 운명의 연인이다. 당신은 우주에서 최고인 사람을 찾아냈기에 그 사람을 연인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연인으로 선택하였기에 그 사람이 우주에서 최고라는 진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우주의 중심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당신이 그 사람을 사랑할 때 당신의 우주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새로이 태어나니까.
[커피우유신화]에서 '너는 나의 여신이야'라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유치한 말이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 진리를 적확하게 논리적으로 구성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 외의 모든 것은 거짓이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사랑은 행복의 방법이 아닌 조건이다. 최저의 전제이자 최상의 목표이다. 사랑하는 이를 여신이라고 숭배하는 것은 어린애 생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건 진리에 대한 너무나 당연한 서술일 뿐이다. 여신의 존재 아닌 전제 하에, 그 절대적 가치를 향해 매진하는 것 외에 어떤 윤리적 존재론적 선택지도 불가하다. 이제 김꽃비는 여신이라는 나의 주장은 털끝만한 논리적 결함도 없이 완벽하게 명증하다는 것을, 김꽃비를 향한 나의 사랑이 날카롭고도 냉철함으로 가득 찬 이성과 논리의 결과물임을, 김꽃비가 온 우주의 중심이라는 과학적 검증을 모두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만장하신 여러분. 김꽃비가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