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수묵 일러스트 수업 - 아름다운 계절과 나를 담아 그리다
김희영 지음 / 성안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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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수묵일러스트 수업, 김희영, 성안북스, 초판 1쇄 발행: 2018년 4월 13일, 374쪽

 



그동안 서평단을 신청했던 대부분의 책이 거의 글로만 가득 차 있는 종류였고,

간혹 내용과 삽입된 그림과의 조화가 멋지다고 생각했던 그림에세이 한두 종을 제외하면
이렇게 그림으로 가득가득한 책에 대한 서평을 쓰리라고는 생각지 않아 왔다.

그런데 이 책, 감성 수묵일러스트 수업은 눈을 확 잡아끄는 무언가가 있다.

바로 알찬 내용과 친절한 설명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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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가장 많이 공을 들였겠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바로 이것이었는데,

그림을 그리는 위치를 잡거나
색을 채워넣을 때의 비율을
세세하게 하나씩 번호를 매겨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그림을 그려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요즘 시바견에 관심이 많은데,
귀여운 시바견 그림도 삽입해주어서
작가님의 센스가 돋보인다고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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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이접기 하나를 하더라도 이렇듯 그림 하나하나가 들어가며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는 책이 무척 좋았다.

상상하며 다음 순서를 생각해 접어야 하거나
어떤 포인트를 잡아 그림을 그려야 할 때
나처럼 감이 잘 오지 않는 독자들에게는 이런 친절한 책이 고마울 따름.

 


편집을 공부하고 있는 지금은
이런 작업이 얼마나 공이 많이 들어가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물론 단계 하나하나를 그리고 설명한 작가님도 그렇지만,
이걸 하나하나 삽입한 디자이너와 교정을 수차례 보았을 편집자님에게도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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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지만 그림 연습과 캘리그라피를 연습한 사진 몇 가지를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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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이름도 나름 응용해서 이것저것 적어보았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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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혹은
캘리그라피와 그림의 조화에 대해 좀 더 공부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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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하고 예쁜 책을 체험할 수 있도록 서평단으로 선택해주신 성안당 출판사
그리고 쓰며 공을 많이 들이셨을 김희영 작가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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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 상
오타 아이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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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오타 아이 지음, 김은모 옮김, 엘릭시르(문학동네), 초판 1쇄 발행: 2018.03.28,
241페이지(티저북이므로 상/하편 구분 없는 미완결판)

 

 

 

2005년 3월 25일, 금요일. 누군가를 만나기 참 좋을 햇살 가득한 오후 2시. 어느 역전.

저마다 약속이 있어 조용히 기다리던 다섯 명의 사람들.

 

그런데 어디에선가 다스베이더 차림을 한 남자가 나타나 약속 상대를 기다리던 그들에게 칼부림하기 시작한다. 

흩뿌려지는 빨간 비명. 범인은 하나 하나 차례대로 한 번씩 칼을 휘둘러 숨을 끊어 놓고는 '나'에게 다가온다.

 

옆구리에 그어지는 칼의 느낌에 '나'는 그의 헬멧을 깨서 정체를 밝히기 위해 

길에 버려진 갈색 영양드링크제 빈 병을 달려가 주우려 한다.

 

범인은 '나'를 제지하기 위해 왼손에 든 칼을 휘두르는 것을 멈춘 채 오른손으 '나'의 관자놀이를 세차게 내려친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분수에 내리 꽂힌 나를 질질 끌어 옮기는데......

칼날에 반사되는 빛을 바라보며 '나'는 정신을 잃는다.

그 날 칼에 맞은 피해자는 다섯. 그중 생존자는 하나.
바로 그 생존자는 '나',
시게토 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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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슈지.
경찰과 떨어져 있던 슈지에게 다가와 말을 건 의문의 남자.
무테 안경을 쓰고 있다.

“딱 열흘이면 돼. 열흘만 버티면 살 수 있어.”

이 남자는 누구일까.

아직 뉴스기사도 나지 않아 내가 피해자인지도,

피해자 다섯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인지도 모를텐데

곧장 나에게 와서 서늘한 경고만 남기고 간 사람.

 

섬뜩한 느낌이 오감을 스치고 지나간다.

 

 

85p
사망한 네 사람의 부검 소견이 팩스로 왔다.
부검 소견을 읽어본 소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것이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남자의 범행이란 말인가.

오른쪽 등을 찔린 구보 다다시는 오른쪽 폐동맥을 찔려 실혈,

왼쪽 가슴 위편을 찔린 다케시타 미사토는 왼쪽 쇄골 아래 정맥과 동맥이...

이마이 기요코는...

마미야 유코는...

그런데 그 한 번이 죄다 치명상이다. 어디를 찌르면 사람이 죽는지 미리 알고 있던 것처럼 정확한 솜씨였다.

 

 

소마 료스케는 이번 사건의 담당 형사이다.

친구인 야리미즈의 도움을 받아 슈지의 신변을 보호하는 동시에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소마.

그런데 이 사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범인은 약을 들이마시고 자살했고, 흉기도 복장도 시간 정황도 목격자도 정확하게 확보된 상태.

그런데 왜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모든 것이 딱딱 들어맞는 것일까.

의심을 떨치지 못하는 소마.


'약을 들이마신 후 살인 충동으로 칼을 휘두른 사람이 한 번에 치명상을 입혔다?'
'전에 절도로 잡혀 들어간 이력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이 이렇게 교묘한 방식으로 단숨에 사람을 죽인다고?'
'왜 생존자인 시게토 슈지는 범인이 제정신이었다고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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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p
"난 1시 50분 넘어서 광장에 도착했어요. 그때 인쇄소 사장과 주부, 할머니는 이미 돌의자에 앉아 있었고요.

마지막으로 여대생이 달려온 게 2시 8분.

십오 분 남짓 지나는 동안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약속 상대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죠."

"그런데 다섯 명이 모인 순간." 야리미즈가 지포 라이터를 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헬멧으로 얼굴을 감춘 살인의 프로가 나타났다."

"범인은 처음부터 슈지를 포함한 다섯 명을 죽일 작정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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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p
"확실한 사실은 무테안경은 이 녀석이 죽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는 것.

또한 무테안경은 이 녀석이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야리미즈는 은색 포트를 내려놓고 소마를 쳐다보았다.


"죽이려는 쪽은 몹시 서두르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차례차례 밝혀지는 진실. 다섯 명에 대한 칼부림은 '계획된 살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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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라에서 시행하는 '스마일 키즈 캠페인'이라는 정책과

'멜트페이스증후군'이라는 병 사이에도 묘한 관련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한 비밀을 막기 위해

어두운 곳에서 권력을 이용하는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어

더욱 흥미를 자아낸다.

 

 

 

169p
"아니, '멜트페이스증후군'이라는 기이한 병, 몰라?"

그러고 보니 야리미즈도 작년에 몇몇 잡지에서 이 병명을 본 적이 있었다.

분명 재작년 말에 유유아 사이에 갑자기 퍼진 기병으로, 전국적으로 상당수의 환자가 나왔다.

멜트페이스증후군은 원인 불명의 고열이 나다가 안구를 포함한 안면 조직이 차례차례 괴사하는 무서운 병으로...

갓난아이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이 병은 신기하게도 재작년 말부터 작년 초까지 한 달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생했고,

그 후로는 피해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

 

 

 

 

 

77p
요즘 한창 인기가 좋은 총리가 함빡 웃는 얼굴로 아기를 높이 안아 올린 사진 아래

"스마일 키즈 캠페인"이라는 글자가 춤추고 있었다.

출생률이 계속 떨어져 속병을 앓던 정부가 요란하게 내놓은 저출산화 대책을 선전하는 포스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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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아까 애도의 꽃을 든 남자는 어째서 스마일 키즈 캠페인 포스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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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등사
다와다 요코 지음, 남상욱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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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등사, 다와다 요코 지음, 남상욱 옮김, 자음과 모음, 초판 1쇄 발행: 2018년 3월 9일, 303페이지

 

 

 

*참고: 헌등사는 <헌등사>/<끝도 없이 달리는>/<불사의 섬>/<피안>/<동물들의 바벨>, 총 다섯 가지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중 책의 제목이자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헌등사>를 중심으로 하여 서평을 작성할 것입니다.

 

 

 

 

"증조할아버지, 토스트는 피 맛이 나네요."

 

이렇게 말하니 증조할아버지가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지어서 그런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증조할아버지는 눈썹이 짙고 턱이 나와 있어 강해 보이지만, 실은 매우 상처받기 쉽고 금방 눈물을 글썽인다. 왠지 나를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 134p

 

 

 

 

무메이. 無名. '이름이 없다'는 뜻으로 증조할아버지가 지어준 증손자의 이름. 아버지는 어딘가에 있는지 알 수가 없고 어머니는 아이를 낳고 며칠 후 숨을 거둔 상황이어서 부모를 대신하여 증조할아버지가 지은 이름이었다. 아이 이름의 뜻이 '이름이 없다' 라니. 어쩐지 무미건조하고 아이에 대한 사랑이 단 한 톨의 쌀만큼도 없어서 이렇게 지은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증조할아버지 '요시로'에게 증손자 '무메이'는 사랑스럽고 대견하고 안타깝고 귀여운 대상이다.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아이에게 쏟는 이유는 부모의 부재 때문도 있지만,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너무나 연약했기 때문이다.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나고 자연재해가 휩쓸고 간 시기. 방사능이 여기저기에 닿고 퍼진지도 오래된 일이다. 도시는 황폐해졌고 더 이상 외국과의 교류도 없다. 오히려 그들의 언어를 쓰다가는 잡혀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다. 새로 태어난 세대(요시로의 자녀 세대이자 무메이의 부모 세대)부터는 on/off 의 구분도 잘 모른다. 요시로의 딸과 사위는 아들을 아버지에게 맡긴 채 오키나와로 가 과수원에서 일한다. 오키나와로 갈 때 아이를 데려가지 못한 이유도 인구 이동량을 조절하려는 정부의 조처 때문이었다. 딸이 가끔씩 보내오는 편지는 검열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불에 한참 달구면 글이 올라오는 투명한 레몬즙으로 쓰여 있다. 별 이야기는 없다. 아버지 보고 싶어요, 아들은 잘 있나요? 와 같은 내용이 아닌, 여기에서 과일 재배를 하는데... 와 같은 일상 이야기뿐이다.

 

 

 

 

폐허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번화한 간판들, 자동차 따위는 한 대도 달리고 있지 않은데 규칙적으로 빨갛게 되거나 파랗게 되곤 하는 신호기, 사원이 없는 회사 입구의 자동문이 열리거나 닫히거나 하는 것은 바람으로 가로수의 커다란 가지들이 휘어졌기 때문일까.

연회장에서는 식어버린 담배 냄새가 수은색으로 적막하게 얼어붙었고, 테이블이 꽉 차 있었던 잡거빌딩의 어느 층도 부재라는 이름의 손님이 술을 무한 리필로 마시며 떠들어댔으며, 빌릴 사람이 없는 대부금 이자가 녹슬고, 아무도 사지 않는, 할인 판매 중인 속옷 더미가 눅눅해졌으며, 빗물이 고인 쇼윈도에 장식된 핸드백에는 곰팡이가 피고, 하이힐 속에 쥐 한 마리가 유유자적하게 낮잠을 자고 있다.

도로 아스팔트는 금이 갔고, 그 금에서 똑바로 하늘을 향해 뻗고 있는 냉이는 높이가 2미터나 된다. 옛날에는 인도 옆에 빗자루처럼 가늘고 조심스럽게 서 있었던 벚나무도 도심에서 인간들이 모습을 감춘 후에는 둘레가 두꺼워졌고, 가지는 사방으로 기세 넘치게 손을 뻗쳤으며, 울창하게 우거진 녹색의 아프리칸 스타일의 헤어가 상공에서 천천히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 39p

 

 

 

목요일은 나무의 날이니까 교정의 벚나무가 쓰러져 깔릴지도 몰라. 최근 나무들은 겉으로 보면 건강한 듯 보여도 실은 병에 걸려 있고 줄기 속이 뻥 뚫려 있는 경우도 있어서, 누군가가 가까이서 한숨을 쉬는 것만으로 쓰러진 적도 있었어. 그러니까 '나무 가까이에서는 한숨을 쉬지 말 것'이라는 푯말까지 있지.

아, 벚나무들이 멀리부터 순서대로 차례차례 쓰러져. 나는 달려서 도망쳐. 다리가 빠르니까 가지 하나 닿지 않지. 기분 좋네. / 133~134p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일상이 이들에게는 사치다. 따뜻한 햇살, 시원하게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푸르게 깔린 초원을 침대 삼아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 그늘 아래 누워 낮잠 자는 모습을 어린 아이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무메이 역시 증조할아버지는 무척 건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증조할아버지도 100세를 넘긴 고령(高齡)이다. 그럼에도 아이인 무메이보다 더 건강하다.

<헌등사> 속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먹는 것도, 옷 입는 것도, 걷는 것도...... 모두가 힘겨운 일이다. 어린 무메이는 여름에는 더위를 먹을까 염려하고 햇빛 아래에 있으면 건조해서 살갗이 갈라진다. 이렇게 덥다가도 그늘 아래에 있다 땀이 식으면 오한으로 뼈가 시리고, 겨울에는 혹여 감기에 걸릴까 애를 먹는다. 요시로는 손자를 잘 챙기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이 시대의 노인들은 100세를 넘어도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방사능의 영향이다. 지금의 우리에겐 60대가 정년이자 은퇴 시기이지만, 이 이야기 속의 60대는 그야말로 '한창'이다.

 

 

 

 

요시로는 그림엽서를 사러 가는 김에 계산대 옆 기둥에 기대어 이 사람과 딸의 풍문을 이야기하는 것이 낙이었다.
"아마나는 잘 지내고 있나요?"
"병에 걸리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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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에 미코시부에서 몸을 단련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육상부였잖아요?"
"단거리 주자 따위는 오늘날 실생활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아요. 동물이 없는 들판에 사냥을 나서는 것도 허무하잖아요."
그렇게 말하고 연필을 창처럼 들고, 무릎이 가슴에 닿을 정도로 높게 한 팔을 올리는 오시바나 아티스트는 아직 70대의 젊은 노인으로, 젓가락이 굴러가는 것만으로도 웃어대는 한창 때의 연령이었다. / 79p

 

 

 

 

점점 나이들어가지만 죽지 않는 신체를 물려 받은, 돌아오지 않는 딸과 손자를 대신해 증손자를 키워내는 요시로. 휘청거리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무메이. 그들의 모습을 그려낸 다와다 요코의 세계관이 두렵기까지 하지만, 이것이 그저 상상 속의 모습일 것이라며 낙관할 수도 없다.

독일과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는 저자 '다와다 요코'의 소설 <헌등사>.

이 소설은 현재라는 시간이 붕괴될 것 같은 불안감에도 필사적으로 눈을 부릅뜨고 있는 요시로의 모습을 보며 독자들이 본인 안에 내재되어 있는 불안감을 계속해서 지각하도록 만든다. 일본 작가가 쓴 일본 상황에 대한 고찰 같기도 한 이 책은 압도적 재난 앞에서 인력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현실을 그리고 있다. 이와 더불어 무기력함이 둘러 싸고 있는 이 '평범한' 삶들에 대해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읽으면 읽을 수록 전달되는 묘한 현실감에 소름이 돋아오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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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비의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김순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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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비의,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김순희 옮김, 위즈덤하우스, 초판1쇄 발행: 2018.03.20, 183p

 

'생각해보면 당연하지만 우리는 단 한순간도 똑같은 존재일 수가 없다. 지금의 나는 내일의 나와 다르다. 나는 매순간 변화하고 있다.' 와카마쓰 에이스케가 이 글의 끝머리에 남긴 말이다. 실은 초·중·고교를 거쳐 대학에서 공부하고, 취업을 해 일하고, 2주 간의 시간 동안 재충전(?)하고, 또 다시 일하기까지의 내 과정들을 보면 나는 한 사람으로 수렴되었다가 또 다시 여러 면의 나로 분할되어 왔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지금의 나로 완성되어왔고, 또 오늘까지의 나를 수렴한 다른 모습으로 점점 바뀌어갈 것이다. 미래의 내가 계속해서 달라질 것이라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안다.

작가 와카마쓰 에이스케는 글을 쓰기까지 한 사람으로의 몫을 잘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치밀어오르는 두려움, 그리고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슬픔을 차례로 겪어 왔다. 물론 이 말고도 그가 겪어온 다양한 일들과 감정, 읽었던 책과 다녀보았던 여행지들이 그를 더 풍성하고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내가 아주 특별한 일을 겪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되레 일상적이고 편안한 감정들을 풀어놓고 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이나 읽었던 책들의 인용, 누군가의 말들을 우리에게 하나의 주제 하에서 짧은 산문으로 풀어 들려주고 있다.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필요한 것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신이 바라고 있는 것이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 세상은 의미 있는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새로운 인생의 기회가 될지도 모를 만남을 가로막는 것은 알고 보면 우리가 만들어낸 의도와 계획일지도 모른다. / '낮고 농밀한 장소', 24p

 

 

 

그는 한 권의 책 안에서 총 스물 다섯 가지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데, 전부는 아니지만 그 책에 담겨 있는 메시지 중 하나는 '작품은 작가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독자는 작가가 쓴 글을 읽고 자신만의 해석을 보탬으로 작품을 완벽하게 만들어 내는 존재이며, 작가와 다른 눈높이를 가지고 자신의 삶에 그 내용을 적용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말을 다시 해석하면... 책을 쓰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은 모두 의미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A라는 내용을 썼지만 그 내용이 여러 독자를 거치면서 A, G, H, Z 등 다양한 모양으로 바뀌는 일. 천편일률적인 삶은 없고 백이면 백 저마다의 향기를 뿜어내면서 살아나가는 사람들. 그들의 면면을 대할 때-가령 책을 읽을 때, 이야기를 나눌 때, 구글링 할 때- 무척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말'이 주는 힘은 얼마나 위대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한 마디의 말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말. 더없이 의좋았던 사이를 갈라놓기도 하지만, 실의에 빠져 있던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도 하는 말. 한편으로 건강했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어 없던 병도 만들게 하고, 반대로 나을 수 없을 것 같던 병을 치료하게도 하는(플라세보 효과처럼) 말. 이러한 비슷한 이야기는 책 속 인용구에서도 나온다. 철학자 이케다 아키코의 '말의 비의에 대한' 인용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 절망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의료가 아니라 말이다. 종교도 아니며 그저 말이다. - 이케다 아키코(池田晶子), 『전부 당연한 것이다』

/ 각오에 대한 자각, 69p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에도 이와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이 역시 <슬픔의 비의> 안에 언급된 작품이다.

 

영감님에게는 우리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영감님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일은 가벼워지기도 하고 무거워지기도 하지요. 즐거움이 될 수도 있는가 하면 고통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영감님의 그 힘은 말이나 얼굴 표정처럼 하나하나가 사소한 거라서 숫자로 합계를 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얻은 행복은 재산 한 몫을 떼어준다고 해도 살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죠. -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912~1870), 『크리스마스 캐럴』

/ 신뢰의 눈길, 99~100p

 

 

 

이런 말에 대한 인용들은 우리가 순간순간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고 상처 입히기도 하는지 떠올리게 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 무섭고 그를 곱씹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용기의 원천이 되기도, 폭력이 되기도 하는 말.

더불어 우리는 손을 베거나 감기에 걸리거나 체하거나 하는 몸의 고통에는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푹 쉬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유난스럽기까지 한 사람도 많다. 그런데 마음의 문제에는 무감한 사람들이 많다.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일까.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다시 내일을 위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어서 빨리 잠자리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일이 힘들고 사람에 북받치고 한계에 한계를 쥐어짜내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실은 상처입은 근원부터 돌아보지 않았기에 우리는 매일매일 힘들다. 성찰은 힘든 일이지만, 더 이상 상처를 곪게 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한 번 더 느낀다. 아프기 때문에 상처를 곱씹고 헤집는 일은 괴롭고 또 외롭지만 그 과정을 통해 다시 용기를 내 타인에게 손 내밀기도 하고 나 자신을 독려하며 내일을 살아나갈 수 있다. 절실히 혼자 같은 순간이 있지만 실은 그 고독도 꽤 달콤한 순간이라는 걸 겪고 나면 안다. 작가가 말하는 나와의 조우는 바로 이러한 통찰에서 온다.

 

 

 

"내가 고독을 느끼지 못한다면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가 없다. 그런 식으로 나의 생존과 의지에 권위와 축복을 부여하는 것이다. 인간은 고독을 붙잡지 않고서는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 기시다 류세이( 岸田劉生, 1891~1929)

우리의 인생은 고독을 느끼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고독을 느낄 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인생의 비밀과 조우한다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우리가 진심으로 타인과 만나는 것도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과정 중의 하나이다. 고독의 경험은 우리를 고립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과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를 인류라고 하는 영역으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 고독을 붙잡는다, 118~119p

 

 

 

육체적인 아픔은 고통의 원인일 뿐만 아니라 치유가 필요하다고 알려주는 몸의 신호이기도 하다. 마음도 마찬가지여서 '비통함'이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가끔은 치유를 받아야 하지 않겠냐는 인생의 가르침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의 괴로움을 바라볼 줄만 알고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쉽게 간과한다. 눈물은 심신이 휴식과 위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눈물을 흘렸을 때 비로소 자신이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지금 느끼고 있는 슬픔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눈물은 가르쳐준다. 고바야시 히데오는 '말'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슬픔과 눈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슬픔을 가라앉혀 보려고 육체가 눈물을 필요로 하듯이 / 슬픔에 대해서 정신은 슬픔의 언어를 필요로 한다." -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말' (『생각하는 힌트』에 수록)

/ 저편 세상에 닿을 수 있는 노래, 41~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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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 -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종활 일기
하시다 스가코 지음, 김정환 옮김 / 21세기북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나답게 살다 나답게 죽고 싶다-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종활 일기, 하시다 스가코 지음, 김정환 옮김,
21세기북스, 1판 1쇄 발행: 2018.03.06, 261p

 

 

 

 

잘 사는 것만큼 죽음을 예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실은 살아가는 데 급급하고...

잘 사는 것 자체에 너무 많은 집중력을 쏟기 때문에,

혹은 마지막 순간에 대해 상상하는 것이 두렵기에 잘 생각하게 되지 않는 죽음.

그러나 삶을 잘 정리하는 것 역시 품위 있는 태도라고, 일본의 드라마 작가 ‘하시다 스가코’는 말한다.

하시다 스가코는 현재 아흔둘의 나이로,

<오싱>이라는 일본 내에서 가장 히트한 일본 드라마의 각본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불어 2016년 12월에「분게이 슌주」는 일본의 한 월간지에 '나는 안락사로 죽고 싶다'라는 글을 실어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주목 받기도 했다.


아직 일본 내에서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헌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은 데다,

본인이 직접 안락사로 죽음에 이르고 싶다고 당당하게 밝힌 경우였기에 더욱 주목받았을 것이다.


일본 오사카에 직접 방문했을 때를 떠올리면, 일본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예의바른 느낌이었다.

자기 의견을 표현할 때도 무척 나긋해서 일본 개그나 영화에서 보았던 유난스러운 반응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물론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만!) 

 

그런데 유명인이 갑자기 '안락사로 죽고 싶다'니.

이 적극적 의사 표현에 대해 그들의 국민성(?)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놀랍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



 

하시다 스가코의 어린 시절은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다.

 

언제 죽을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끼니는 어떻게 때워야 할지, 언제 집으로 포탄이 날아와 불타고 부서질지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그녀는 죽음과 항상 손을 잡고 다녔다.

그랬기에 그녀가, 아니 그 시대의 일본인 모두가 죽음을 '한없이 가벼운' 것으로 보아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대학에 다닐 시절, 어머니와 잠시 떨어져 있던 중 집이 있던 도시에 포탄이 마구 떨어져

사상자가 엄청나게 발생했을 때, 그녀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슬픔에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리며 안심했다.

왜일까?

.

.

그 당시에는 어떻게 죽을지 예상할 수 없었고, 여자의 몸으로 자칫 몹쓸 짓을 당할까 늘 두려움에 떨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다행이라고 느꼈던 딸의 비정상적인 모습이

전쟁이 도려낸 인간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도 느껴졌다. 

어머니의 죽음을 보며 안심하는 딸의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그랬다고 한다.


 하기야 광복 직전 시기의 일본이었으니 더욱 심했을 것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제 자신에게 들이닥칠지 모를 죽음에 대해 매일매일 곱씹으며 살았다고,

하시다 스가코는 회상한다.


 

 

 

 

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내 생명은 내가 마음대로 좌우해도 괜찮은 것일까?

살고 싶으면 살고, 죽고 싶으면 마음대로 생명을 포기하면 되는 걸까?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일까?

어떤 태도가 나의 존엄을 지키는 것일까?


현재 안락사를 합법으로 하고 있는 나라는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으로

회복할 수 없는 중병에 걸린 환자들에게만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왜 이들은 제한을 둘까?

자신의 생명을 언제든 좌우할 수 있다고 여기게끔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이런 문제에는 기준이 필요할까?

법으로 꼼꼼히 적시하여 시행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또 뭘까?

생각해 볼 일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생과 사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해왔지만 ‘미 비포 유’라는 영화를 보며

존엄사, 죽음을 결정하는 태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주인공 커플의 마음에 동화되어 슬픔을 느끼기도 했지만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더 신중하게 행복해지려는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만약 내가,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제 몸 하나 움직이는 데에도 자기 결정권이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흐르는 눈물 한 번 닦아주지 못해 더 비참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삶을 살아간다면......

존엄사를 선택한다고 해도 마냥 반대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한 명의 삶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도 말고, 책임감도 말고,

그저 오롯이 자신의 행복과 가치를 생각했을 때 내려진 결정이라면

그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싶었다.

왜 너는 네 생명을 함부로 하느냐고, 차마 입을 뗄 수 없을 것 같았다.


누가 내게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했다.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을 것도 같았지만

그냥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내버려둘 수 없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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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년 종합 건강검진을 받는다. ... 내일 죽어도 좋다고 말해놓고는 모순이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분명 검사를 받거나 약을 먹는 것은 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제대로 살고 싶다.

죽기 전까지는 건강하게 살고 싶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존엄성이다." / 135~136p



하지만 하시다 스가코의 태도는 결코 비관주의적이지 않다.

건강하게 살아갈 동안은 최선을 다해 '웰-리빙'하겠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여러 사람을 고용해 식사와 청소를 부탁하고 운동을 게을리 하지도 않고,

끼니와 약을 제 때 챙겨먹으며 건강하게 살기 위한 스케줄을 성실히 이행하는 그녀.


그렇다. 그녀의 말대로 이건 선택의 문제이다.

 내 마음이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할 것인지 그걸 선택하는 것이 우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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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어떻게 죽을지를 생각하면
어떻게 살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 하시다 스가코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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