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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평점 :
<멜랑콜리 해피엔딩>, 저자: 강화길 외 28인 (구체적인 작가명은 하단에서 소개), 출판사: 작가정신,
초판 1쇄 발행: 2019년 1월 30일, 페이지: 335쪽
故박완서 선생님(1931~2011)의 8주기. 선생님의 문학 정신을 기리며 스물 아홉 명의 작가가 모여 단편 소설을 한 편씩 써 냈다. 한국대표작가 29인의 박완서 작가 콩트 오마주. 그를 작가정신 출판사에서 묶어 낸 책이 바로 <멜랑콜리 해피엔딩>이다. 저자의 소개가 상단에 무척 빈약해 한 분씩 이름을 읊어 본다. 강화길, 권지예, 김사과, 김성중, 김 숨, 김종광, 박민정, 백가흠, 백민석, 백수린, 손보미, 오한기, 윤고은, 윤이형, 이기호, 이장욱, 임 현, 전성태, 정세랑, 정용준, 정지돈, 조경란, 조남주, 조해진, 천운영, 최수철, 한유주, 한창훈, 함정임. 총 스물 아홉 분의 쟁쟁한 작가들이 한 데 뭉친 저력은 '박완서'라는 이름 세 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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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박완서 선생님은 어릴 적 책으로 만난 소녀 같은 사람이었다. 물론 당시의 내가 뵌 박완서 선생님은 물론 소녀는 아니셨다. 그러나 그 당시를 회고하며 그때의 자신으로 돌아가 서술하는 그 시점에서는 어린 소녀이기도 했다가, 젊은 대학생이기도 했다. 억척스럽지만 살림을 묵묵히 이끌어 가는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상경했던 그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질만큼 몰입력이 강했던 그 글.
나는 당시 유행했던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라는 프로그램을 보며 선생님의 책도 접했고, 김중미 작가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등을 읽으며 어린 내가 살아가는 삶과 너무 다른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본드 냄새(?) 매캐한 골목골목을 폭력적인 아버지가 잠드실 때까지 수도 없이 돌며 침을 뱉어내던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금도 이렇게 골목을 돌고 있는 아이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몸을 떨었던 저녁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박완서 선생님이 그렸던 모습 역시 이와 마찬가지였다.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겪으며 가족을 잃었던 슬픔 어린 이야기, 당시 대학생의 신분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가며 목도했던 우리나라의 현실... 그 모두를 덤덤한 문투로, 그러나 힘 있는 서술로 풀어 낸 사람. 그래서 (앞에서 언급했듯) 마냥 '소녀' 같지만도 않았던 사람. 나는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에 살아숨쉬는 또 한 사람의 박완서가 되어 같이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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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저마다 다른 인생들을 그리고 있다. 박완서 선생님의 이름으로 모였으나 저마다의 작가는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입장도 다른 인물들의 감정에 이입하고, 그 자신이 되어 서술하기도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누군가와 연애도 시작하고, 반대로 이별하기도 하고, 부모를 잃은 자식이 되기도 하고, 곧 입양될 곳을 맞이할 소녀가 되기도 한다. 커다란 냉동실에 애착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반짇고리를 고르며 맥주를 살까말까 고민도 하고, 햇빛도 들지 않는 철학과 과사에 앉아 따뜻한 차를 한 모금 홀짝이기도 한다. 이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고민하며 '펑 예정'인 글을 올리며 소수 의견에 고개를 열렬히 끄덕였다가, 누군가의 행복을 나의 불행으로 치환하며 괴로워 하기도 한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밤을 바라 보며, '그렇게 매끈하고 윤기 나고 달콤한 겉모습 속에 이런 걸 숨기고 있었어?' 생각한다.
나는 그 모두가 (성별과 나이 같은 조건들과는 또 상관 없이) 내 모습과도 일면 겹쳐져 있어 때론 씁쓸하고 때론 착잡하고 가슴 아팠다. 그와 동시에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 속, 평범한 일상에서 나는 그런 누군가들과 끊임 없이 스쳐지나가겠지만, 나는 그들의 이런 마음을 모를 것이고 그들 역시 나의 이런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새삼스럽게도 씁쓸해졌다. 아마 우리는 이런 무심함과 비공감을 타파하기 위해서, 그리고 누군가의 소소한 슬픔과 기쁨을 읽어내기 위해서 또 다시 책을, 그중에서도 소설을 읽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소리 지르며 화를 내는 저 치에게도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해 보고, 깔깔 경쾌하게 웃는 이 사람 뒤에 감춰진 그늘을 몰래 읽기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또 그렇게 생각해 봤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의 마음을 점점 잘 읽게 되면서 '나는 어른이구나' 감각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런 순간들은 오묘하게도 내가 읽었던 소설 어느 한 장면과 맞물려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순간들 속에서 비로소 주인공들의 마음을 제대로 알았다고 할 수가 있다. 읽기만 한다고, 머리로 이해한다고, 알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이 대사 하나에 눈을 고정하고 숨을 고르며 여러 차례 읽었다. 나에게 여러 사람들이 해 주었던 말과 너무도 흡사해서. 자기 자신을 탓할 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어쩔 수 없었다고, 너는 너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그 순간에는 누구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나 스스로를 모질게 다그칠 때 오히려 나보다도 나를 더 많이 안아 주었던 사람들의 말. 그것과 참 닮아 있었다.
10년 넘게 친구 관계를 이어오면서, 단 한 차례도 비추지 않았던 친구의 속마음과도 일면 닮아 있었던 이 말. 정말로 하고 싶은 말. 그 말을 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멀리 떨어져 점점 헤어지고 싶은 이가 있었으나 그러지 못해 힘들었다던 그 말과 닮아 마음이 아팠던... 그 순간의 말과 참 많이 닮은 글이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말을 적재적소에 해 주기도 참 힘들지만... 누군가에게 불필요한 말을 또 얼마나 쉽게 내뱉고 참지 못했나 생각하면. 그래서 그 말이 가시처럼 그네들의 마음에 박혀 상처가 되기도 했을 것이고, 또 깊은 마음까지 닿아 힘이 되기도 하고 그럴 것을 생각하면. 말이라는 것이 참 얼마나 이중적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난 또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살았나. 그 말을 하며 나는 오롯이 나와 마주하고 있었나. 나는 얼마나 그들과 거리를 두었을까. 그 순간에 했던 말은 정말 나의 진심에서 비롯된 것인가. 여러 번 곱씹어 본다. 그리고 살짝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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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모음집이기 때문에 줄거리를 하나하나 읊어드리지 않음을 양해 바란다. 글은 또 저마다의 경험과, 순간 느끼고 있는 감정, 만나는 사람, 하고 있는 일, 읽고 있는 책, 듣고 있는 노래... 그 모든 조합에 따라 다른 맛으로 읽히기에, 오롯이 자신의 마음을 대면하며 이 소설을 읽으시길 바란다. 박완서 작가를 위해 바치는 글이라고는 하나 그 한 편 한 편이 모두 작가들의 땀이고 눈물인 것을 잊지 말고 읽으시기도 감히 바라 본다. 편집자들의 공력이 많이 들어갔을 이 책에, 그리고 이런 기획을 통해 책을 만들어 주신 작가정신 출판사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