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비밀의 책 1 판타 빌리지
캐서린 M. 밸런트 지음, 변용란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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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에는 많은 이야기꾼이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고, 또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이야기를 유난히 더 재미있게 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누가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서 이야기의 맛 또한 달라진다. 그리고 여기에 독특한 이야기를 하는 소녀가 있다. 소녀의 눈꺼풀은 화장을 한 것처럼 시커멓다. 어릴적 요정의 마법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때문에 소녀가 저주받았다고 여겨 피하고, 그래서 소녀에게는 친구가 없다. 하지만 늘상 혼자있는 소녀에게 호기심으로 다가가는 소년이 있듯이, 소녀에게는 소년이 생긴다. 그리고 소녀는 소년에게 자신이 가진 비밀과 마법을 풀어나간다. 눈꺼풀에 빼곡히 들어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소녀와 비밀의 책>>이라는 제목에서 '비밀의 책'은 소녀 그 자체이다. 그리고 소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마법이 되어 소년을 매혹시킨다. 그리고 독자는 소년이 되어 소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소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양하다. 모험을 떠난 왕자, 괴물 처녀, 집을 떠난 곰, 성녀 시그리드 등등. 그러나 재미있게도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아무런 관련이 없던 것 같던 이야기들도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으며 잘 짜인 그물망처럼 퍼져나간다. 1권의 이야기와 2권의 이야기도 다른 이야기지만 인물을 통해 연결이 된다. 이야기에서 이야기꾼은 소녀만이 아니다. 소녀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각자 목소리를 가지고 이야기꾼이 된다. 왕자, 처녀, 마녀, 불새, 비버 등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각 캐릭터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주요 줄거리에서 별 역할을 못 하는 인물이라도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남에게 들려줄만한 이야기 하나쯤은 있는 것이다. 보통 소설에서라면 무시될 조연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주연으로 탈바꿈한다. 그야말로 누구나 주인공인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처음에 소녀가 이야기를 들려줄 때 단순한 액자식 구성을 생각했는데 그 이상으로 흥미로운 구조를 보여줬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고, 그 안에 또 이야기가 있고, 그 와중에 이야기가 있다. 영화 <인셉션>에서 꿈 속의 꿈, 그 꿈 속의 꿈으로 꿈이 몇 번이나 중첩되며 진행되던 것이 연상된다. 이렇게 이야기가 중첩되다보면 최대 7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내가 정확히 셌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가장 안 쪽의 이야기가 끝나야 그 밖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꾼들은 상황에 맞춰서 알아서 이야기를 끊고 자신들 좀 쉬다가 다음 이야기를 해주고는 한다. 이야기를 하나씩 뚝뚝 떼어놓고 보면 어떤 이야기들은 정말 별 거 없어보이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들은 무척 흥미롭고, 어떤 것은 약간 허탈하기도 하다. 물론 이야기 자체도 독특하다. 모험을 찾아나선 왕자는 괴물과 싸우기는 커녕 다른 길을 걷게 되고, 탑에 갇힌 처녀는 마녀와 괴물이 풀어준다. 일반적인 이야기가 비틀려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들은 서로 엮이고 겹치며 더 매혹적인 이야기가 된다. 결코 보통 이야기꾼이 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한번은 소년이 자신의 누나에게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 적이 있다. 소년의 이야기를 들은 누나의 반응은 '너 미쳤니?'였다. 소년의 이야기는 소녀의 이야기와 같지만 전혀 다르다. 하지만 내가 소녀의 이야기를 옮기려고 노력한대도 소년보다 낫지는 못 할 것이다. 소녀가 해준 그 매혹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다른 사람이 펼칠 수 있을까. 소녀의 이야기 마법은 소녀밖에 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모두가 이야기를 가지고 있듯이, 나 또한 이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 훌륭한 이야기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얽히고설킨 이야기에서 나와의 연결고리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 것이 없더라도 소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마법에 걸리고 싶다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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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ss Academy (Paperback)
Shannon Hale 지음 / Bloomsbury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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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프린세스 아카데미'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는 책이다.
동화책에 있어 권위있다고 할 수 있는 뉴베리상을 수상했다.
 
에스켈 산에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다. 채석장에서 돌을 캐서 상인들과의 물물교환으로 살아가는 동네이다. 미리(Miri)는 이 마을에서 사는 14살 소녀인데, 어머니는 미리를 낳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이 작은 마을에 이변이 생긴다. 14~17세의 소녀들이 프린세스 아카데미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 나라는 사제들이 왕자비가 나올 지역을 선택하고, 그 지역에 사는 왕자보다 나이가 적은 소녀들이 모두 프린세스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수업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소녀들 중에서 왕자가 그의 신부를 선택하고, 그 선택 받은 소녀는 궁으로 들어가 공주로 대접받게 된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미리의 마을 소녀들 중에서 왕자의 신부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인 미리는 친구들 사이의 따돌림도 겪고, 왕따 당하는 다른 친구에게 손을 먼저 내밀고, 부당한 처벌에 항의하는 정의롭고 당당한 소녀이다. 공부도 무척 잘 한다. 주인공 역할을 하기에 딱 좋달까.
 
여기까지 이야기만 들으면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동화답게 유치하고 대리만족적인 공주 이야기를 그려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결국 왕자와 결혼해서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미리는 책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왕자와의 결혼에 대해 고민한다. 과연 한 번도 못 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가능한가, 공주가 되면 어떤 삶을 살까. 가끔은 공주가 되기를 꿈꾸지만 그 또래 소녀들이 한 번 쯤 꿈꿔보는 정도로 그칠 뿐이다. 

 

이 이야기는 왕자와의 결혼이 아닌 소녀들의 성장과 배움, 지식과 공부가 어떻게 소녀들의 꿈을 키워주는지 보여주는 데 최선을 다한다. 미리라는 소녀가 어떻게 왜소한 자신을 딛고 성장해가는지를 볼 수 있다. 특히 미리가 처음 글을 배워서 책을 읽는 장면은 인상 깊었다. 글을 배우고 책을 읽음으로서 미리는 많은 것들을 바꿔나간다.
 
이 소설에서 나오는 Quarry-speech는 또 하나의 인상적인 요소이다.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난감한데, 채석장 말이라고 해야하나? 여튼 마을 사람들은 돌을 통해 대화하고 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를테면 자연과의 대화이다. 이 능력이 없었다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갔을지 감이 안 잡힌다. 또한 이 Quarry-Speech는 마을 사람들을 내적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풋풋하고 달콤한 해피엔딩이 마음에 들었던 소설이다. 동화라고는 하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미리가 성장해나가는 모습도 뿌듯했고,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가 얽히는 것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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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s (Paperback, Reprint)
Westerfeld, Scott / Simon Pulse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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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웨스터펠드의 어글리 시리즈의 외전 격인 소설 'Extras'이다 외전이라서, 주인공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다. 때는 디에고 전쟁으로부터 3년 후, 세계는 많이 변한다. mind-rain, 즉, 사람들의 레전이 없어지고 자유 

 의사가 생기고 나서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된다. Face Rank. 사람들의 명성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모든 도시에서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Extras의 주인공인 Aya의 고향도시에서만 쓰이는 독특한 것인 듯 하다. 참고로 일본의 도시인 듯 하다. 작가가 이국적인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본편은 아무래도 미국 이야기 같았는데, 여기는 일본. 일본어들도 가끔 나온다. 3년이 지났기에 아직 예쁜이들이 더 대접 받고 못난이들은 여전히 16살을 기다린다.  

그 리고 주인공 아야는 15살이다. 아야는 명성을 좇는 사람들 중에 하나인데, 그녀의 얼굴 순위를 올리기 위해 별별 짓을 다한다. 그녀의 행동의 기준은 얼굴 순위이다. 읽다보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야가 다른 어떤 기준, 대의명분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얼굴순위라는 것은 참 보다보면 안타깝기까지 하다.  

본편의 주인공 탤리와 외전의 주인공 아야는 닮은 꼴이다. 하지만 다르다. 두 사람은 못난이면서, 사회 제도에 철저히 순응적이다. 빨리 예쁜이가 되기를 원했던 탤리와 얼굴 순위를 높이기 위해 애쓰는 아야는 사회에서 요구하고 일반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가치를 따른다. 그러나 시작은 비슷했으나 이야기가 전개되며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탤리는 예쁜이가 되기를 거부하는 스모키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치관을 서서히 바꿔나간다. 제도에서 벗어나 제도 밖의 눈으로 사회를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자기 자신과 맹렬히 투쟁하는 탤리는 투사이다. 아야는 얼굴 순위를 낮춘 채로 유지하는 슬라이 걸들과 만나고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아니,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을 고려하지는 않은 채로 끝까지 자신의 영욕을 채우기 위해 거짓말을 시도한다. 자신의 태도로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기도 하지만 끝까지 변화하지 않는 인물이다.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인물이다. 또한 자기 태도의 모순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반성도 뉘우침도 없는 그런 인물이다. 성장하는 탤리와 변함없는 아야. 독자들은 그렇기에 이런 아야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특히나 이런 아이가 영웅처럼 알려진다면 탐탁치 않을 것이다.  

사실 탤리와 아야만이 아니다. 대체로 본편의 인물들(데이비드, 셰이, 제인 등)은 자신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불편함도 감수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Extras의 인물들(히로, 렌, 프리즈)는 체제에 편입하여 편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특히 프리즈는 탤리가 지적했듯이 자기자신과 싸워보려고 시도 하지도 않은 패배자이다. 이래저래 본편에 비해 정이 가지 않는 인물들이다. 이들이 속한 사회가 경쟁을 중시하고 서열화시키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이기적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뭐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이들이니 편한 것에 익숙해서 나약해졌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탤리 일행은 싸움의 최전선에 있어야 했던 이들이니만큼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일테다.  

Extras에서는 본편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잠깐씩 얼굴을 내비춘다. 보고 있자니 반갑다. 아야 일행에 비해 확실히 더 정감가는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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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전쟁 이타카 新괴담문학 시리즈 1
진산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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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카 新괴담문학 프로젝트 첫 번째 주자 바리전쟁이다.  

다음 문학 속 세상에서 연재를 했었다지만 읽지 않았기에 어떤 이야기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전무했던 상태이다. 그러던 차에 괴담문학이라고 이름 붙고, 북트레일러도 음산한 분위기로 만들어놨기에 공포소설인가 했다. 그런데 공포를 기대하면 좀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무속을 소재로 한 현대 판타지라는 게 맞을 듯 하다. 그러고 보니 원래 현대 판타지라고 광고했던 것 같다. 소설의 느낌을 말하자면 꿈 속에서 퍼즐 맞추기 하는 것 같다.  

바리데기 설화는 아마 우리나라 옛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이지 싶다. 이야기의 의미나 어려운 분석 같은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무척이나 재미있으니까. 그 때문에 계속해서 변용되고 재창조되는 것일테다. 같은 바리데기 설화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피리새>>와 <<바리전쟁>>은 상당히 다르다. 둘 다 판타지로 바꾼 것인데도 말이다.  

주인공은 대학원생이다. 북트레일러 볼 때는 여자인 줄 알았더니, 남자였다. 진영이라니, 이름도 여자같잖아...라는 건 넘기고 그는 10년 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데려온 이복 여동생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영은 소설 속에서 시종일관 여동생 수영을 '그것'으로 칭한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동생을 감정도 없는 무서운 괴물 취급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계속 주무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그것과 십년만에 조우했다. 그리고나서 기이한 일들을 겪기 시작한다. 그것과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이후로 한국의 무속에 관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국의 무속. 무당과 신내림, 바리공주와 관련된 기이한 이야기들이 차근차근히 진행된다. 귀신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이 세상에서 무당들의 설 자리는 사라져간다. 변말을 사용하는 그들의 대화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피안과 차안이라는 개념 또한 나에게는 어렵다. 나는 그저 차안의 사람일 뿐이니까.  

잊혀져가는 한국의 무속 신앙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엄마가 점 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점괘 같은 건 잘 안 믿는 나. 그러면서도 외국의 타로점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 은연 중에 한국의 무속을 비하하고 무시하던 게 아니었을까. 하나도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무가가 다시 힘을 갖게 되는 것처럼, 나 또한 한국의 무속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야겠다.  

 내가 볼 수 없는 피안의 세계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비록 기대했던 으스스함은 없었지만,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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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환상 소설
에드거 앨런 포 외 지음, 이탈로 칼비노 엮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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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는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요소가 이야기 속에 내비칠 때 나는 재미를 느낀다. 비현실적인 이야기, 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를 즐기는 이유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환상문학을 좋아한다는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환상소설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다고는 하지만, 잘 알지는 못한다. '환상문학'의 범주가 애매하기도 하고 넓기도 해 안 읽은 것도 수두룩 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정말 알 수 없는 분야의 환상소설들이 떨어졌으니 바로 이 책이다. 

이 선집은 19세기의 환상문학 26편을 모아놓았다. 제목만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든 책이었는데, 작가들을 보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모르는 작가도 많지만, 워낙 유명해 이름을 들어봤던 작가들도 다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여기 실린 작품들은 환상소설 중에서도 고전에 속하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제목에 쓰인 '세계'는 유럽, 미국을 말한다. 유럽과 미국 작가들의 작품밖에 없다. 원제인 '19세기 환상소설'이 이 선집 제목으로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한다. 

이 선집에 실린 환상소설들은 비일상이 일상을 침범하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세계를 그리는 판타지 소설들처럼 비현실적인 것도 그 세계 내부의 논리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것이다. 물론 설명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악마의 짓이었다거나,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식의 설명은 있다. 하지만 그것들 또한 미스터리다. 토도로프의 『환상문학 서설』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작년에 과제할 때 참고한 논문 여러 곳에서 그의 환상에 대한 정의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 옮긴이의 말에도 인용이 되어있다. '환상이란 자연의 법칙밖에 모르는 사람이 초자연적 양사을 가진 사건에 직면해서 체험하는 망설임' 환상에 대한 토도로프의 정의이다. 이 선집의 환상소설들은 괴기와 경의 사이에 위치한 환상을 보여준다. 

환상의 상징성, 시각적 환상과 일상적 환상 등을 파악하기에는 내 읽기의 깊이가 너무 얕아서 그런 것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읽으며 재미를 느꼈다는 것은 확실하다. 19세기 작품들이니 당연하겠지만 고전적인 분위기의 작품들이 다수다. 대부분의 환상이 유령, 악마 등의 부정적이고 죽음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을 이용해 나타난다. 아니, 대부분이 그렇다.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도, 대부분의 주인공이 불행하게 되는 것은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지의 현상은 두려운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환상이 공포의 분위기를 키운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소설은 고티에의 '죽은 여자의 사랑'이다. 클라리몽드라는 이름의 여자 흡혈귀에 관한 내용인데, 유일하게 내용을 알고 있던 소설이라 친근감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게다가 매혹적인 여주인공이 좋았다. 버넌 리의 '끝없는 사랑'도 이런 여자가 소재였는데,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그 안으로 들어서는 주인공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이 선집에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악마나 유령으로 표현되어 유혹과 욕망의 상징으로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하기도 한 작품이 여럿된다. 팜므파탈인데 이런 여성들이 왠지 좋다. 부정적으로 그려지지만 인간들의 나약함을 드러내주는 것 같아서,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표출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로버트 스티븐슨의 '악마의 호리병'은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램프를 떠올리게 한다. 그게 새롭게 각색된 느낌이라 좋았다. 동화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안데르센의 '그림자'도 동화를 떠오르게하는 분위기였다. 그림자가 자신이 되고 자신이 그림자가 되는 상황이 어떤 알레고리로 보인다. 소문과 가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되고 진실한 내가 가짜가 되어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떠오른다. 웰스의 '눈먼 자들의 나라'는 다른 베스트셀러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다. 앞선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환상에 SF적 요소가 들어있다. 배경이 되는 마을을 상상해보면 아름답고 이상적인 공동체가 떠오른다. 그러나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낙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호프만의 '모래남자'는 으스스한 분위기가 좋았다. 아버지의 죽음에 관련된 미스터리, 그리고 열렬한 사랑과 절망이 어우러져 멋진 이야기를 만들었다. 

26편의 이야기 제각각 다른 스타일과 재미를 갖추고 있다. 보통 단편집을 읽으면 하나하나 다 감상평을 쓰지만, 26편 모두를 쓰는 것은 무리인 듯 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들만 썼다. 고전적이면서 쉽게 볼 수 없는 작품들도 들어있는 만큼 환상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 쯤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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