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환상 소설
에드거 앨런 포 외 지음, 이탈로 칼비노 엮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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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는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요소가 이야기 속에 내비칠 때 나는 재미를 느낀다. 비현실적인 이야기, 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를 즐기는 이유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환상문학을 좋아한다는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환상소설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다고는 하지만, 잘 알지는 못한다. '환상문학'의 범주가 애매하기도 하고 넓기도 해 안 읽은 것도 수두룩 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정말 알 수 없는 분야의 환상소설들이 떨어졌으니 바로 이 책이다. 

이 선집은 19세기의 환상문학 26편을 모아놓았다. 제목만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든 책이었는데, 작가들을 보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모르는 작가도 많지만, 워낙 유명해 이름을 들어봤던 작가들도 다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여기 실린 작품들은 환상소설 중에서도 고전에 속하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제목에 쓰인 '세계'는 유럽, 미국을 말한다. 유럽과 미국 작가들의 작품밖에 없다. 원제인 '19세기 환상소설'이 이 선집 제목으로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한다. 

이 선집에 실린 환상소설들은 비일상이 일상을 침범하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세계를 그리는 판타지 소설들처럼 비현실적인 것도 그 세계 내부의 논리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것이다. 물론 설명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악마의 짓이었다거나,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식의 설명은 있다. 하지만 그것들 또한 미스터리다. 토도로프의 『환상문학 서설』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작년에 과제할 때 참고한 논문 여러 곳에서 그의 환상에 대한 정의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 옮긴이의 말에도 인용이 되어있다. '환상이란 자연의 법칙밖에 모르는 사람이 초자연적 양사을 가진 사건에 직면해서 체험하는 망설임' 환상에 대한 토도로프의 정의이다. 이 선집의 환상소설들은 괴기와 경의 사이에 위치한 환상을 보여준다. 

환상의 상징성, 시각적 환상과 일상적 환상 등을 파악하기에는 내 읽기의 깊이가 너무 얕아서 그런 것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읽으며 재미를 느꼈다는 것은 확실하다. 19세기 작품들이니 당연하겠지만 고전적인 분위기의 작품들이 다수다. 대부분의 환상이 유령, 악마 등의 부정적이고 죽음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을 이용해 나타난다. 아니, 대부분이 그렇다.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도, 대부분의 주인공이 불행하게 되는 것은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지의 현상은 두려운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환상이 공포의 분위기를 키운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소설은 고티에의 '죽은 여자의 사랑'이다. 클라리몽드라는 이름의 여자 흡혈귀에 관한 내용인데, 유일하게 내용을 알고 있던 소설이라 친근감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게다가 매혹적인 여주인공이 좋았다. 버넌 리의 '끝없는 사랑'도 이런 여자가 소재였는데,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그 안으로 들어서는 주인공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이 선집에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악마나 유령으로 표현되어 유혹과 욕망의 상징으로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하기도 한 작품이 여럿된다. 팜므파탈인데 이런 여성들이 왠지 좋다. 부정적으로 그려지지만 인간들의 나약함을 드러내주는 것 같아서,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표출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로버트 스티븐슨의 '악마의 호리병'은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램프를 떠올리게 한다. 그게 새롭게 각색된 느낌이라 좋았다. 동화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안데르센의 '그림자'도 동화를 떠오르게하는 분위기였다. 그림자가 자신이 되고 자신이 그림자가 되는 상황이 어떤 알레고리로 보인다. 소문과 가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되고 진실한 내가 가짜가 되어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떠오른다. 웰스의 '눈먼 자들의 나라'는 다른 베스트셀러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다. 앞선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환상에 SF적 요소가 들어있다. 배경이 되는 마을을 상상해보면 아름답고 이상적인 공동체가 떠오른다. 그러나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낙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호프만의 '모래남자'는 으스스한 분위기가 좋았다. 아버지의 죽음에 관련된 미스터리, 그리고 열렬한 사랑과 절망이 어우러져 멋진 이야기를 만들었다. 

26편의 이야기 제각각 다른 스타일과 재미를 갖추고 있다. 보통 단편집을 읽으면 하나하나 다 감상평을 쓰지만, 26편 모두를 쓰는 것은 무리인 듯 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들만 썼다. 고전적이면서 쉽게 볼 수 없는 작품들도 들어있는 만큼 환상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 쯤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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