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사랑 - 시그마 북스 022 시그마 북스 22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주영아 옮김 / 시공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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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지금껏 자신의 사랑스러운 회색 뇌세포를 굴리며 그 자리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안락의자 탐정들에게 익숙해져 있던 나는 필립 말로우가 좌충우돌하며 뛰어다니는 폼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미리 고백하고 소설에서 받은 불편함에 대한 인상을 적으려 한다.-챈들러의 팬이 있다면 나의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에 대한 무지함에서 비롯된 편협한 글로 보고 부디 용서하시라-

소설은 필립 말로우라는 탐정이 8년 전 애인을 찾는 무스 맬로이라는 거구의 사내가 살인하는 장면을 목격하곤 그 이후로 계속되는 살인사건과 정체모를 사람들에 의한 위기를 겪는다. 서로 연관되어 있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왜, 이 소설은 추리소설임이 분명하니까) 좀처럼 실마리가 잡히지 않던 일련의 사건들은 말로우의 재치에 의해 어느날 밤 그 연결고리를 드러낸다.

그런데 그 모든 사건들의 전모가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내가 이 소설에서 받는 불편함의 가장 큰 원인이 된다.

소설의 흥미진진함에 적지않은 기여를 하는 심령술사나 박사같은 사기꾼들의 등장은 그저 말로우를 힘들게 하기위한 의미없는 장치였을 뿐 정작 사건 해결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는 것이 허탈감을 준다. 실컷 뭔가 감춰져 있는 듯이 냄새를 풍기다 결국 ‘이 사관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네’ 라고 넘겨버리기엔 소설에서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아닌가. 모든 사건들이 다 사건과 관련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에서 그들이 말로우에게 미친 영향으로 볼 때 적어도 사건의 주모자와 어떤 식으로든-자신에게 몰리는 초점을 돌리기 위한 방편으로든- 연관시켜야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추리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의 반전도 이미 예측한 것이었기에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 없었던 것도 재미를 반감시키는 큰 원인이 되었다. 마치 영화 <식스센스>에서 브루스 윌리스의 정체를 미리 알고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추리소설적 즐거움보단 작가의 필력이나 전형적 마초의 풍모가 배어있는 탐정 필립 말로우라는 인물에 관심을 두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디선가 본 사이트에 적힌 글처럼 하드보일드는 정말 ‘아무나’ 좋아하는 장르가 아닌가보다. 그동안 너무 비슷한 류의 헐리우드 영화를 많이 봐서 식상한 것일지도… 그저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고전을 읽어봤다는 것으로 의미를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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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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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주째 아폴로 눈병이 기승이다. 그래서인지 읽은 지 꽤 지났는데도 나를 두려움에 떨게하는 소설 하나가 떠오른다. 느낌표와 쉼표로만 이어지고 띄어쓰기도 거의 없는 문장이 내게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게 하는 촉진제가 된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난 느낌은 공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공포, 바로 그 자체였다.

눈 먼 사람을 보기만 해도 눈이 먼다는 설정부터 수용소에 수감된 눈먼 자들과 보균자들의 신경전, 눈먼 자들간의 아귀다툼, 음식 냄새를 찾아 킁킁거리며 다니는 유령 같은 사람들, 그리고 질펀한 오물.

수감자들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군인들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격리 수용소를 지키는 군인들이 사라졌을 때 그 곳에서 나갈 수 있다고 좋아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그것은 모든 사회가 마비되었다는 의미의 또다른 섬뜩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들에게 빛 같은 존재,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의사의 아내는 그 모든 구역질나는 것들을 목도하며 이들을 인도한다.

썩어버린 세상에 혼자 제 정신갖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의사 아내의 보이는 눈을 통해 우리에게 여실히 알려준다. 이 세상은 또 얼마나 눈먼 자들이 많은가. 그렇지만 쓸모도 없는 보석 나부랭이를 갈취하는 진짜 눈먼 자들이 있는 반면에 간혹 그녀같이 눈 뜬 사람이 있기에 이리저리 휩쓸려다니는 나 같은 사람들이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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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 - 프랑스문학 3
드니 디드로 지음, 이봉지 옮김 / 장원 / 199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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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부터 수녀에 대한,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수녀원이나 수도원 생활에 대한 동경 비슷한 감정이 있었다. 필요이상의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는 내 성격이 둥지를 틀 곳을 찾아 수녀원의 조용하고 단정한 삶의 이미지를 포착해 주위의 누가 한마디의 권유라도 한다면 서슴지않고 그 곳으로 들어가겠다고 내심 다짐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카톨릭 신자가 아닌 것을. 물론 각종 미사나 봉사활동에는 기꺼이 참여할 수 있지만 종교에 대한 신념 또는 확신없인 그 모든 것이 가식적인 잘난체에 불과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 모든 것을 한 켠으로 잠시 치우고 들어가려 한들 그 곳에서 나를 받아줄리 만무하고. 게다가, 이젠 수녀원의 피상적 이미지‘만’을 떠올리기엔 내가 너무 커버렸다.

그런 연유로 내게 수녀원이란 공간은 실제로 갈 순 없지만 그저 때때로 떠올리며 잠시나마 마음의 안식을 찾는, 미지의 고향 같은 상상의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곤 가끔씩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수녀들의 생활과 고뇌를 살짝살짝 엿본다. 그러다보면 얼마나 다양한 내면의 삶을 포착할 수 있는지…

작년에 감명깊게 본 영화 <파계>에서 오드리 헵번이 분한 고귀한 수녀 가브리엘은 말했다. 자신은 자비와 겸손과 복종이 결여되어 더 이상 수녀복을 입고 있을 수가 없다고. 이처럼 자신의 양심에 끝없는 부족함을 느껴 수녀원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절박한 이유로 간절하게 수녀원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수녀>의 등장인물이 그 주인공인데, 이 소설은 부모의 강요로 인해 수녀로서의 소명의식 없는 수녀 생활을 하게 된 쉬잔느 시모넹이 여러 수녀원을 전전하면서 겪는 수녀원 생활의 비인간성과 그 안에서 파멸하고야 마는 인간들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여러 번 결단을 내리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집단을 이탈하려 했던 돌출행동에 대한 결과로 얻는 것은 모진 박해와 지쳐가는 몸과 마음일 뿐이다.
그녀는 자유의지가 아닌 타인의 강요에 의한 삶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를 첫머리에서부터 일찌감치 강조한다. 그리고는 수녀원이라는 닫힌 공간 안에서 뒤틀려가는 인간들의 광폭함을 고발한다. 그런데 사실 이건 그네들의 잘못이 아니라 수녀원이라는 공간이 원천적으로 비인간적인 공간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고발하기 위한 작가의 사회적 메시지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인지 쉬잔느는 그들 모두를 용서하고 불쌍하게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수녀>는 기본적으로 서간체 소설의 형식을 띠며 작품 말미에 이 소설의 관련 기원에 관한 기사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관련기사를 읽고서야 이 소설이 픽션과 논픽션이 적절히 버무려진 꽤 치밀한 계략으로 이뤄진 작품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약간의 충격과 함께.

40여년 전 이 소설이 영화화되었을 때도 프랑스에서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고 하니 이 소설이 처음 발간되었을 당시 얼마나 많은 기득권자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았는지를 상상해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것은 비단 그 시대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 얼마나 많은 의미없는 제도로 인해 그 안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이 소설은 지금뿐만 아니라 먼 훗날에도 자유와 제도에 대한 의미를 곱씹어보게 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 조심스레 전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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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과 탐정들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26
에리히 캐스트너 글, 발터 트리어 그림, 장영은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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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소년이 있다. 속 깊은 아이 에밀은 그토록 조심했건만 베를린 행 기차 안에서 돈을 잃어버린 후 새로 사귀게 된 친구들과 범인 쫓기 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그 와중에 새로 얻게 된 친구들과의 우정 등으로 <에밀과 탐정>들은 유쾌한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어린 아이들의 도둑잡기라고 우습게 보지 마시라. 그들은 나름대로 사람 포섭하는 법도 알고 변장에도 능하며, 미행의 기본 수칙도 잘 알고 있는 어엿한 탐정들이니까.(게다가 수사반장의 지휘아래 조직적이기까지!) 게다가 탐정 ‘놀이’를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재미있기까지 하니 나 또한 책 속에 뛰어들어 그들과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주책없이 절로 든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단순하지만 재미있는 삽화가 읽는 즐거움을 두 배로 증폭시켜 주는 이 작품은 케스트너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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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지 못하는 당신에게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사민서각(다정원)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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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짝사랑했던 사람들은 나에게 호감을 가지기는커녕 나란 존재를 알고나 있었을까? 혹은 반대로 내가 눈여겨보지 않았던 어떤 사람이 나를 짝사랑하지는 않았을까? 아주 가끔씩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잊혀져가는 사람들을 떠올리다보면 어느새 미소를 띄우고 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된다. 언젠가 그들과 만나게 되면 가볍게 웃으면서 추억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 가볍지 않은 짝사랑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한 남자에게 두툼한 편지가 배달된다. 발신인은 그가 알지 못하는 어떤 여자이다. 그리고 편지엔 그 여자의 거의 평생에 걸친 짝사랑의 고백이 시작된다. 만약 사랑은 꼭 두사람의 결합으로 이루어져야만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읽고 다른 걸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아픈 사랑이지만 그 아픈 사랑을 행복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고귀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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