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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요 몇 주째 아폴로 눈병이 기승이다. 그래서인지 읽은 지 꽤 지났는데도 나를 두려움에 떨게하는 소설 하나가 떠오른다. 느낌표와 쉼표로만 이어지고 띄어쓰기도 거의 없는 문장이 내게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게 하는 촉진제가 된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난 느낌은 공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공포, 바로 그 자체였다.
눈 먼 사람을 보기만 해도 눈이 먼다는 설정부터 수용소에 수감된 눈먼 자들과 보균자들의 신경전, 눈먼 자들간의 아귀다툼, 음식 냄새를 찾아 킁킁거리며 다니는 유령 같은 사람들, 그리고 질펀한 오물.
수감자들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군인들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격리 수용소를 지키는 군인들이 사라졌을 때 그 곳에서 나갈 수 있다고 좋아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그것은 모든 사회가 마비되었다는 의미의 또다른 섬뜩함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들에게 빛 같은 존재,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의사의 아내는 그 모든 구역질나는 것들을 목도하며 이들을 인도한다.
썩어버린 세상에 혼자 제 정신갖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의사 아내의 보이는 눈을 통해 우리에게 여실히 알려준다. 이 세상은 또 얼마나 눈먼 자들이 많은가. 그렇지만 쓸모도 없는 보석 나부랭이를 갈취하는 진짜 눈먼 자들이 있는 반면에 간혹 그녀같이 눈 뜬 사람이 있기에 이리저리 휩쓸려다니는 나 같은 사람들이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