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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비용
아룬다티 로이 지음, 최인숙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어쩐 일인지 로이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황보석 옮김)은 품절이다. 이 책 『생존의 비용』에는 「공공의 더 큰 이익」과 「상상력의 종말」 두 개의 글이 실렸다. 셋 다 제목 참 기똥차게 잘 지었다. 발표순으로 상상력의 종말이 먼저인데, 이 책에는 뒤에 실렸다(우리 나라 편집자는 대체 왜 그랬을까?). 뒤에 실린 상상력의 종말부터 먼저 읽기를 권한다. 왜냐면 공공의 더 큰 이익을 읽는 도중에 "내가 전에 쓴 상상력의 종말에서는…" 이런 식의 인용이 몇 번 나오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종말은 핵폭탄에 관한 글이다(역자에 따르면 정치평론이라나. 그다지 평론스러운 것 같지는 않다). 인도 정부는 카슈미르 지역 분쟁을 빌미로 1998년 핵실험을 했다. 카슈미르 지역은 현재 인도의 영토인데, 인도, 중국, 파키스탄의 국경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이슬람교도들이다. 그런 이유로 힌두가 국교인 인도와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에서 영토+종교 분쟁 중이다. 인도에 뒤이어 파키스탄도 질세라 핵실험을 했다. 로이의 글에 따르면, 인도 국방부장관은 "우리 것이 더 크고 강하다"고 국민들에게 말했다고. 마침 신문 헤드라인에는 핵폭탄과 비아그라가 뒤섞여 있었는데, 로이는 장관의 말이 어느 것을 지칭하는지 헷갈렸단다.
인도 정부는 핵폭탄과 평화를 같은 선상에서 언급한다. 우리를 무시하지 못한다, 는 것. 그래서 두 나라는 서로 핵폭탄을 갖고서, 종래의 재래식 전쟁처럼 총구를 마주하는 게 아니라, 서로 더 도발하지 않으면서 긴장에 긴장만을 거듭한다. 분쟁이 줄었으니 더 나은 걸까? 한 방이면 모든 게 화염에 휩싸일 건데. 그런 공포 속에 나날을 살아가는 게 과연 평화로운 걸까? 서구문화라며 코카콜라를 하수구에 처넣은 인도의 청년들은 주체적인 힘을 얻었다며 핵폭탄을 찬양했단다. 핵폭탄은 과연 인도 고유의 발명품인가? 핵이며 폭탄들을 거부하지는 않으면서, 서구의 소설, 영화, 미술, 음악을 무던히도 거부한다. 이 무슨 억울한 코미디일까. 이런 희비극은 지도자들의 모든 걸 쓸어버릴만한 핵폭탄과도 맞먹을 무식과 관련하고, 그건 곧 상상력의 종말을 뜻한다. 핵을 앞세우는 한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공공의 더 큰 이익은 나르마다 강에 댐건설문제에 관한 정치평론이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목 하에 무수한 개개인들이 희생당한다. 수 만 명이 댐 건설로 인해 고향을 잃고 이주민 신세가 돼야 한다. 댐을 건설하면 물과 전력이 풍족해질 거라는데, 실상은 그와는 반대다. 인도 정부는 수 십여 차례의 댐 건설 후, 조사를 단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았다. 로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건설비용의 몇 배나 되는 빚을 세계은행에 지게 되었고, 수자원은 전혀 득을 보지 못했으며, 댐 관리를 제대로 못해 드는 피해가 막심하다고 한다. 생태계는 파괴되며, 이주민들이 많아져서 (가뜩이나 인구밀도도 심각한 판국에) 빈민들이 양산되는데, 정부는 근거 없는 이득을 빌미로 자꾸만 댐을 만든다. 왜 이렇게 댐을 만드는지, 지배계층의 멘탈리티를 파헤쳐보니, 1960년대에 네루가 댐 건설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했던 연설 때문이라고. 그러나 네루는 생전에 댐을 긍정했던 그 연설을 후회했다고 한다. 로이도 오죽 답답했으면 이런 조사까지 했을까. 댐 건설 후 조사 한 번 안했다는 건 정부가 그토록 무책임하다는 증거다. 게다가 건설 전에 근거 없는 이익 예상은 대체 누가 다 하는 걸까. 그런 예상은 말짱 허구다. 나토가 공습하던 베오그라드의 동물원에서는 호랑이가 제 살을 뜯어먹었다고 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라는 명목으로 무수한 개인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정책은, 제 살 씹어 먹기에 다름 아니다.
우리 나라에도 이런 비슷한 일들이 다반사다. 얼마 전에는 천성산 관통터널공사 문제로 한 개인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다. 그런 일이 없도록 개인, 개인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 공공의 더 큰 이익이라는, 리바이어던 같은 괴물은 대체 언제쯤 사라질까.
덧붙임. 로이의 문장은 어떤 경우에 불필요하게 감정적이 되거나, 유치할 정도로 과장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로이 자신은 그것을 잘 알고, 부러 끝까지 밀어붙인다. 독자는 충분히 이해해 줘야 한다. 그만큼 격하게 감정을 쏟고 물고 늘어져도 부족할만치, 부당함과 싸움을 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