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대한 고독 - 토리노 하늘 아래의 두 고아 니체와 파베세
프레데릭 파작 지음, 이재룡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이것은 평전도 그림책도 만화책도 아닌 규정짓기 애매한, 규정을 거부하는 책이다. 번역자의 말대로 잉크 대신 커피 진액에 찍어 그렸는지 글과 그림이 쓰고 그 뒷맛이 우울하다. 너무나 아폴론적인, 환하고 명랑하며 분주한 세계, 그림자와 괴괴함과 느림과 우울이 결핍된ㅡ결핍된 것처럼 가장된ㅡ시대에 선사하는 더 없이 디오니소스적인 멜랑콜리.
이 책은 이태리 북부 도시 토리노다. 악마의 유적들이 남아 있는 토리노, 에서 정신을 놓은 니체다. 모두를 용서하고 모두에게 용서를 구한다, 면서 자살한 파베세다. 키리코이며 고흐이며 폴록이며 프레데릭 파작이다. 예술이 문화상품이 된 시대에, 이 책은 온통 예술가에 대해 고민한다. 니체를 소환하고 파베세를 읊는 당신에게, 응, 응, 제대로 인식하지는 못해도 나도 느껴, 우울하다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종교보다도 햇빛 속을 걸어가는 한 남자의 그림자 속에 훨씬 더 많은 수수께끼가 있다. 수수께끼의 남자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스스로를 찾으러 다녔다. 토리노에 당도했다. 이들은 토리노에서 한결같이 희열했다. 니체는 그곳에서 늙은 말의 목을 껴안고 울다 쓰러졌다. (이전까지 내가 읽은 니체에 관한 책은, 모두 여기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쓰러진 그 후의 이야기를 그 어느 책보다 상세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깨어나서 즉흥곡을 연주했다. 멜로디를 잃은 자신의 괴성과 함께, 끝을 모르고 연주했다. 탈진해서 의자에 파묻힌 그의 손에는 최후의 저작 「니체 대 바그너」가 들려 있었다. 니체의 어머니는 그를 정신병원에 넣었고, 니체는 수다스럽다는 이유로 진정제를 과다하게 맞고, 격리되고, 미친놈이 되고, 후세에는 그런 광기의 나날이 묻혀진다. 니체는 질투심 많은 여동생에 의해 괴롭힘 당하고, 니체가 죽어서는 그의 유고를 여동생이 왜곡하고, 나치즘의 선동에 이용당했다. 오해는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풀렸다.
그림과 글을 오가는 작가는, 니체와 파베세를 오가며, 고흐의 빈 의자가 뉴욕경매장과 어째서 관계가 있어야 하냐고, 니체가 히틀러의 총구와 어째서 관계가 있어야 하냐고, 밀밭의 까마귀를 누가 쫓았냐고, 폴록의 그림과 니체의 언어에는 본질적인 공통점이 있다고, 키리코의 우울과 이제껏 거론했던 모두의 우울은 일맥한다고, 토리노에서, 예술가들의 인생을 빌어 수줍게 말한다. 정신으로나 창자로나 굶주렸던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그의 우울한 헌사가 못 견디게 아프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