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비고 콜렉션 [알라딘 특가]
장 비고 감독, 장 다스떼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장 비고의 아버지는 당대의 유명한 무정부주의자였다. 이름을 '똥처먹어'라고 개명할 정도로 파격적인 사람이었다. 감옥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을 때 병약한 비고는 열두 살, 반역자의 아들로 낙인찍힌 유년을 보냈다. 조숙한 아이는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품행제로』에서 실명 그대로 등장하는 문제아들과 함께 행실 점수 빵점의 십대를 보냈다.

『품행빵점』은 기숙사 생활을 하는 중학생들의 이야기다. 벌써 담배를 피우고 선생에게 욕을 해대고 학교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아이들. 이런 악동 영화가 또 있을까. 애들을 지속적으로 억압하는 교장은 난쟁이다. 가만보니 어린애가 수염을 쓰고 분장을 했다. 이런 역설적인 희화라니. 맨날 교사들한테 혼나기만 하는 애들이지만 젊은 교사인 위게는 아이들에게 묘기도 보여주고 채플린 흉내도 내고, 산책을 가서는 여자 꽁무니만 쫓는다. 교장에게 혼나긴 해도 마냥 즐겁다. 교사 하나가 아주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아이의 손을 만지는 등 의심스런(?) 행동을 하는데, 너무나 예쁘장하게 생긴 아니는 교사에게, "꺼져 병신아"라고. 교장이 찾아와서 징계를 주겠다니, 예쁜아이는 "지랄떨지마"라고. 우옷, 30년대에 이런 파격이라니. 나는 좀 놀랐다. 학교 축제 때 교장 뿐아니라, 시장, 군인 등 사회적 권위의 온상들이 모여 지루한 연설을 하는데, 아이들은 지붕에 올라서 식기를 던지고 책을 던지는 등 봉기(?)를 일으킨다. 정말이지 사랑스런 귀여운 것들이 아닐 수 없다. 한글자막 번역도 재밌다. '열나' '짱나' '쓰발' 등등. 기숙사에서 베개 싸움을 하는 장면은 영화사의 가장 아름다운 명장면이라고들 한다. 베갯잎이 모조리 폭발(?)해서 온 방 안에 하얀 눈처럼 나부끼는 슬로우 장면.

아탈랑트는 그리스 신화의 여신이란다. 『라탈랑트』는 너무나 귀여운 사랑이야기다. 라탈랑트호의 선장(품행제로의 위게 선생)은 예쁜 시골처녀와 결혼을 한다. 피로연도 없이 바로 승선해서 일을 한다. 일등항해사는 쥘영감, 심부름하는 소년도 함께다. 알콩달콩 신혼 생활을 하는가 싶더니, 호기심 많은 신부가 쥘영감의 방에 가서, 영감이 떠돌아 다니며 모은 여러 잡동사니들을 보며 즐거워하자, 젊은 선장은 쥘의 방을 마구 부숴버린다. 이렇게 설명하면 폭력적이다. 왜냐면 너무나 재밌는 장면이니까. 사실 쥘영감은 고약한 괴짜다. 행동거지도 더티하다. 침 뱉는 품새도 역하고, 거지같은 꼴을 해서는, 안주인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와서는 은근슬쩍 수작을 한다. 처음엔 "내숭 떨지 말라구"처럼 직접적인 수작을 걸더니, 잘 안 되자, 직접 만든 누더기 지휘자 인형으로 복화술을, 귀엽고 끔찍한(?) 아르골을 돌려서 눈길을 끌고, 아코디언을 켜면서 어리숙한 척, 그러나 능숙한 솜씨로 옛시절 바다사나이의 낭만적인 가락을 뽑아낸다. 어린 새댁은 노인이 선물한 빗으로 영감의 지저분한 머리를 손질해 주고, 영감은 능글맞게 "이런 부드러움엔 익숙하지 않단 말야, 헤헤헤…" 그 순간에 선장이 찾아와서 난동을……. 그런다고 쉽게 삐치는 쥘영감이 아니다. 선장 내외가 키스를 하자, 심술이 나서 레슬링을 하자고 시범을 보여주며 훼방을 좋기도 하고, 술을 잔뜩 먹고 와서는 사랑의 밤을 보내려는 부부의 방 앞에서 나팔을 불어대며 난리다.

어느 날 댄스장이 있는 카페에 찾아간 부부. 거기서 젊은 장사치가 부부에게 다가와 재주를 부린다. 신랑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지만 신부는 너무나 좋아한다. 장사치가 신부를 데리고 가서 춤을 춘다. 엉덩이를 어찌나 방정맞게 흔들어대는지. 열 받은 신랑은 장사치를 밀치고 신부를 데리고 배에 간다. 다음 날 장사치가 배 근처에서 북치고 피리 불며 신부를 유혹하고, 신부에게 파리로 가자, 파리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헛바람을 잔뜩 불어넣는다. 마침 신랑이 와서 쫓아보내지만 신부는 그날 밤 기차를 타고 파리로 떠난다. 쥘영감은 기다리자고 하지만 열 받은 신랑은 떠나버린다. 파리에서 날치기 당하고, 변태 같은 신사차림의 남자에게 수작을 당하고 군중들 틈에서 두려움만 느끼던 신부는 다시 돌아가 보지만 배는 떠났다.

나는 당신을 만나기도 전에 당신을 봤어요. 내가 보이지 않을 때는 물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떠 보세요. 신부의 이 말을 상기하며 선장은 물에도 뛰어들고, 쥘영감의 오물(?)이 잔뜩 넘치는 양동이에 얼굴을 처박기도 한다. 침대에서 신부를 생각하며 자위하긴 신부도 마찬가지. 쯧쯧쯧. 그러나 귀여운 것들. 선장은 거의 폐인이 되고, 쥘영감이 신부를 찾아 나선다. 신부는 음악다방(?)에서 "시간을 더 허락해 주세요 / 오랜 시간 항해하는 청년들은 / 태양을 닮아가요"라는, 영화의 초반부에 쥘영감과 꼬마가 부른 노래를 듣는다. 그 노래가 나오는 곳을 찾아 간 쥘영감이 신부를 라탈랑트로 데려오고, 선장과 신부는 아무 말도 필요 없이 만나자 마자 껴 안고 키스하고 뒹군다.

라탈랑트의 모든 장면이 아름답지만 내가 사랑하는 장면들은, 쥘영감의 방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다. 별의 별 볼거리가 즐비하다. 사람의 손도 있다. 친구의 손인데 기억하기 위해서라나. 선장이 찾아 왔을 때 쥘이 하는 변명은, 내 젊은 시절 사진을 보여줬어, 인데, 쥘이 다급했던 모양이다. 젊은 여자의 나체 사진이었던 것. 다른 장면은, 쥘이 에피소드인데, 폐인 상태인 선장과 쥘이 체스를 둔다. 선장은 멍한 상태에서도 쥘에게 체스메이트를 먹이는데, 쥘은 꼬마와 짜고 고양이를 던져서 판을 엎어버린다. 또한 쥘의 에피소드. 쥘이 고물 축음기를 고치다가 지쳐서 음반을 손가락으로 긁어본다. 그러자 아코디언 음악이 나온다! 손을 멈추자 음악도 멈춘다. 손을 움직이니 음악이, 손을 멈추니 음악이, 반복. 갑자기 쥘이 고개를 돌리자 꼬마가 아코디언을 들고 씨익 웃는다. 허풍선이 장사치의 재주도 재밌다. 마술 부리는 틈틈이 "까꿍!" 거리는 통에 신부 뿐아니라 나도 넋이 나갈 뻔했다.

장 비고는 라탈랑트의 개봉을 몇 달 앞 두고 요절했다. 스물아홉이었다. 50년 동안 20분이 넘게 삭제된 필름으로 상영되다가 지난 90년에 지금의 필름을 되찾았다고 한다. 백문이불여일견이다. 마돈나의 우상이었던 전설적인 배우 디타 팔로의 매력, 당시 마흔 살도 되지 않았지만 육십 먹은 노인의 연기를 익살맞게 펼친 미셀 시몽의 에드립, 너무나 아름다운 영상을 꼭 보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