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
소포클레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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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의 비극을 재밌게 보려면 <아이러니>에 주목하길 바란다. 아이러니의 난장이다. 비의를 찾아내는 재미가 여간한 게 아니다. 극의 숨은 장치들을 찾아낼 때마다 소포클레스의 치밀함에 치를 떨게 될 것이다. 대표적인 아이러니는 잘 알려진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아침엔 네 발, 낮엔 두 발, 밤엔 세 발로 걷는 게 무엇이냐는 스핑크스의 질문에 <사람>이라고 대답한 오이디푸스는 나중에 무시무시한 비밀을 알게 된 후 제 눈을 찔러, 말년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세 발로 산다. 그 답은, 엄밀히 말하자면 오이디푸스 자신이었던 것.

(놀랍게도) 스핑크스와 라이오스는 극의 외부에 배치돼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18장에서 모든 비극에는 얽힘과 풀림이 있다고 했다. 얽힘은 극의 외부에 존재하고, 풀어가는 과정은 극이다. 『오이디푸스 왕』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극중에 스핑크스와 라이오스가 등장하는 줄 알 것이지만, 등장하지 않는다(^^). 헬라스 비극을 읽을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얽힘과 풀림을 유념하면 흥미로울 성싶다.

인물들의 등퇴장과 성격에도 관심을 좀더 기울이면 흥미로울 것이다. 이오카스테는 진실을 이미 예감하고 더 이상 파헤치지 말기를 오이디푸스에게 애원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예감하면서도 끝내 비밀을 밝혀내고 만다.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다른 비극에서도 등장하는데, 지혜의 신 아테네의 알몸을 훔쳐봐서 눈이 멀었다고 한다. <많은 것을 알게 되면 볼 수 없게 된다>는 패러독스의 현현이다. 그는 자신의 앎으로 인해 박해 당한다. 이오카스테의 오라비인 크레온은 오이디푸스의 다혈질적이고 완곡한 성격을 드러내는데 일조한다. 크레온과의 대화에서 오이디푸스는 꽉 막힌 성격을 보여준다. 재밌는 것은, 후에 『안티고네』에서 크레온은 오이디푸스가 했던 짓을 그대로 반복한다.

코로스는 원로원과 시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좌, 우, 코로스장. 그들은 적소에 튀어나와 중재를 하거나, 합창을 해서 극의 분위기를 조율한다. 어조는 영탄법이 과장되게 많이 섞였고, 메타-시적이다. 사료에 의하면 이들은 검은옷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본래의 역할은 오이디푸스를 재판하는 배심원이었던 것.

헬라스 시대에는 비극이 국가 제전이었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야외극장에서 공연했다(때문에 암전이 없었다). 배우들이 대사를 뱉으면 바람을 타고 몇 킬로미터 밖까지 들렸다고 한다. 배우들은 특수 제작된 가면을 쓰고 연기했다. 그러니 헬라스의 장중한 비극들을 오늘날의 소극장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코로스들의 현란한 시적 수사와 오이디푸스의 장황한 고뇌는 지루하긴 하다. 판에 박힌 <운명의 굴레>는 짜증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 도저히 견줄 만한 비극이 없는 『오이디푸스 왕』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모름지기 필독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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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04-04-06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의 제목은 오이디푸스의 대사에서 따왔다.
같은 역자의 『소포클레스 비극』을 강력추천하지만, 비싸다. 본서는 소포클레스의 스승 아이퀼로스의 비극 두 편이 앞에 실렸다. 때문에, 비싸더라도 소포클레스 비극을 추천한다.

chaire 2004-04-0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저히 견줄 만한 비극이 없다는 말에 동감!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모름지기 필독할 만하다는 말에도 동감! 그리고, 알고 보면, 참 많은 사람들이 오이디푸스적인 생을 사는 것 같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