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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 ㅣ 동문선 현대신서 104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박형섭 옮김 / 동문선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코뿔소에서 느낄 수 있는 이미지는 날카롭고 우악스럽다. 마초를 상징하듯 우뚝 솟은 코의 뿔. 동물농장의 '돼지', '도그'빌, '상어'가 사람이라면… 등등의 짐승을 간판 삼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코뿔소>도 동물적 성향의 우악스런 전체주의를 풍자한 극이다. 일반적으로 이오네스코가 파시즘을 풍자한 극이다, 라고들 한다. 맞다.
이 책이 나온지 50년쯤 되는데 아직도 파시즘 풍자로 읽는 건 재미가 덜하다. 그 시대 유럽인들에겐 엄청시리 카타르시스를 줬겠지만. 현대의 우리들에겐 시대적 배경은 없고, 극만 너무 재미있기 때문에 속뜻이 살갑게 읽히지는 않는다. 자칫하면 도락으로써 읽히는 소비성 텍스트로 전락될 수도 있을 듯….
작금이 다양성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사회는 확장될만큼 되었고 이제는 통합(정리)되는 대세인 듯. 아도르노가 말한 '관리되는 사회' 로 착착 이행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과학의 유령, 통계의 미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죄다 '등록'되고, 인간은 숫자가 돼버리는. 게다가, 여전히, 도그마와 폭력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 요 정도의 삐딱함만 있으면 코뿔소는 시대극이라는 틀 따위를 벗어나 그 세련된 멋을 한껏 독자에게 뽐낸다.
등장인물 거의가 제 각각의 할 일이 있고 바쁘지만, 그것에 갑갑해 하는, 그래서 친구 장에게 멸시 당하는 몽상가 베랑제만이 코뿔소로 변하지 않는다. 사회에 순응하며 그것이 인간의 길인 듯, 그게 누가 만들고 정해준 일이고 삶인지도 모른 채, 그런 쳇바퀴적 일상에 순응치 못하는 이들을 배척하는 것들 - 그리하여 코뿔소로 쉽게 변해버리는 것들. 어떤 이는 코뿔소의 출현을 믿지 못하다가, 제 눈으로 보자마자 변해버린다. 또 어떤 이는 인간성에 대해 한참 설교를 하다가도 야만적인 과정을 거쳐 코뿔소로 변한다. 논리학자로 자처하며 사람들을 계몽시키고 다니는 노인네도 코뿔소가 된다.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우수한 두뇌로 옳은 판단만 하는 것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 변한다. 기회주의, 이중인격, 속물근성, 비겁한 지식인들…, 웃는 낯짝으로 손을 내밀다가 언제 야수로 돌변할지 모를 그것들!…. 이런 와중에 베랑제와 사랑을 확인하던 데지는 찰라의 사소한 흔들림으로 '당신의 아이를 낳지 않을 거예요.'라며 코뿔소들에게로 가버린다. 인간이 인간을 낳지 않겠다니!
모두가 코뿔소로 변했지만 몽상가였던 베랑제만이, 관리되는 사회에 의문을 품었던 단 한 명만이 인간으로 남아 짐슴으로 변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막을 내린다. 이러한 결말이기에 극단적 염세나 비관보다는 우스꽝스럽고 재밌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 세상은 웃긴다. 무지막지하고 일방적인 코뿔소들의 헤게모니에 놀아나지 말지어다…, (<자본>의 서문 끄트머리를 빌려) 누가 뭐래도 나의 길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