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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합
한창훈 지음 / 한겨레출판 / 199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한창훈의 문체는 살아 팔딱팔딱 뛰는 것 같다. 결코 지적이거나 감미롭거나 하지 않다. 싱싱하다. 따라 읽는 맛이 솔솔하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 같이 힘없고 약하거나 혹은 거칠거나 소박하다. 그네들을 돌보는 한창훈의 시선은 익살스러우면서도 따스하다. 한창훈의 소설을 읽을때면 늘 드는 생각인데, 꼭 한 번 만나서 거하게 술먹고 같이 주정도 부리고 했음 싶다.
한창훈의 단편집들도 모두 좋은데, 장편인 <홍합>은 제목 그대로 홍합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풍경을 묘사한 소설이다. 나는 벌써 3년 전에 한창훈의 소설을 처음 읽었었는데(현대문학 홈페이지에 회원가입하면 <99년 올해의 좋은 소설>이란 책을 무료로 보내준다. 아직도 하려나..), 당시에는 임꺽정이 맹키로 수염이 더부룩한 그의 몰골을 보고 '흉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듯싶다.
인상과는 달리 필치는 세밀화를 그리는 듯 유려하다가도, 아낙의 한(恨)이며, 정(情)이며, 뚝뚝한 심성까지 못내는 독자로하여 울렁울렁거리게 할 정도로, 은근히 보여준다. 뿐아니라 임꺽정이가 연상되는 듯한 거칠고 투박한 입심도 발칵 까내보여주기도 한다. 요즘에 이런 작가가 있다는 건 정말이지 얼마나 위안되고 소박하게나마 기쁜 사실인지.
촌에 아부지 엄마는 한 철 농사를 하는 덕에 이 맘 때는 이런저런 부업도 할 때가 있는데, 작년만 해도 엄마는 내게 전화를 해서는 장바닥에서, 손수 재미삼아 심은 상추며 부추며 오이 그리고 집에 오리새끼가 낳은 오리알이며를 팔고 있다고 콜콜히 '아, 바쁘다'고 짜증내는 아들놈에게 얘기하곤 했었다. 또 어떤 날은 장바닥에 앉아 있는 엄마를 알아 본 아부지의 친구분이 허연 봉투를 던져주고 가서 쫓아가 한동안 실갱이를 벌이다가, 져서 결국 받고는 내게 전화를 걸어 '으메 쪽시렵다. 근데 오늘 들어갈 때 고기라도 좀 사가야겠다'라며 기뻐했던 적도 있다. 나는 이러한 소리가 정말 '사는 소리'로 들린다.
한창훈의 소설들엔 살아있는 소리로 가득하다. 내 아부지며 엄마 같은 촌부들이 대거 나온다. 소읍에서 주정부리며, 에고야 새깽이들만 아니면 고마 팍 디져뿔낀데, 하며 살아가는 이름없는 잡초같은 그네들이 '주인공'이다. 유례없이 많은 여성들이 주인공임에도 그 질펀한 욕설하며, 쏘주 같은 '캬~'하는 성격이며 심뽀를 가진 촌의 아낙들은, 아아, 고작해야 백면서생인 나를, 정말이지 울게 한다.
살아온 게 하도 잊고 싶은 거 투성이라 술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는 김씨 아저씨, 일찍이 남편 잃고 늙은 시부모에 줄줄이 자식들까지 바락바락 키우는 승희네, 그 승희네를 보며 '아, 내가 어쩌자고, 저 여인네를 바라는가' 번뇌하는 대학까지 나온 노총각 문기사, 그리고 무수한 아낙들. 나는 내가 떠나온 동네 풍경을 보는 것 같아, 과연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건지 이 사람들의 말을 직접 듣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가족중심주의의 틀에 묶여 노예처럼 혹사하면서도 그것이 여자의 팔자다고 생각하는(촌에는 아직도 이런 여자들이 많다) 승희엄마와 문기사와의 애절한 눈빛 로맨스는, 내가 본 그 어느 로맨스에 못잖은 애절한 사랑이야기였다. 이토록 우리네 민중들의 정서를 잘 솎아내는 작가가 있다는 게 독자로서는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소설읽기의 재미를 한껏 느끼게 해주는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픈 그러한 작품이다. 사는 소리란 걸, 이 소설을 읽으며 귀기울여 들어보길 당신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