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뒷모습 안규철의 내 이야기로 그린 그림 2
안규철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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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규철의 내 이야기로 그린 그림, 그 두번째 이야기"

이 책은 월간 현대문학에 2014년 1월호부터 2020년 12월호까지 수록된 '안규철의 내 이야기로 그린 그림'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안규철님은 조각을 전공하여 예술가로서 활동을 하고 계시다.

요즘 홀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아졌다. 그럴때마다 생각도 많이 하게 되는데..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바라만 보았지 그 뒷모습에 대한 어떠한 생각은 깊게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 안규철님의 사물의 뒷모습을 정말 잘 읽었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에 지나치고 눈으로만 바라보던 것들에 대한 시선을 멈춤으로서 그 멈춤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는 다른 각도의 이야기들은 새롭고 신선하며 더욱 더 길게 사물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되는 정지의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죽은 가지들은, 살아서 싱싱한 잎을 펼쳐내는 가지들 사이에 정지 화면으로 멈춰 선 채 자신들이 지나온 길들을 가리키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가지 않는 지도 속의 외딴길처럼 하얗게 말라버린 꽃나무 가지들, 무수한 실패의 기억들이 화려한 꽃나무의 몸속에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다. 그것은 완전한 선 하나를 찾아내기 위해 수없이 많은 선들을 긋고 지우는 화가들의 소묘를 닮았다" p68

시간 속을 걷다보면 가끔씩 가지치기를 해야할 때가 존재한다. 꼭 하고 싶었던 가지의 욕망은 어떠한 절제나 어쩔 수 없는 압력에 의해 가지치기 당하곤 하는데 ... 세월이 흘러 그 일부는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있고 다른 일부는 아쉬움 속에 존재하기도 한다. 작가의 표현을 빌려 " 가지들 사이에 정지 화면으로 멈춰 선 채 자신들이 지나온 길들을 가리키고" 있는 죽은 가지들이 가끔 눈에 보일 때 그래도 나는 잘 하고 있었다고 나를 더 다독여주는 흔적같은 것이라 생각이 되었다.

"내가 지나온 시간과 머물렀던 공간이, 내가 한 선택과 선택할 수 없었던 조건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내 운명이라는 천을 짠다. (중략) 그러나 언젠가 반드시 끝나게 되어 있는 실타래를 가지고 나는 결국 미완성으로 끝날 이 일을 매 순간 계속할 뿐이다"p173

내 인생이 어떤 무늬를 갖고 있는 천으로 만들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를 직조하고 있는 씨줄과 날줄들이 나로 하여금 짜여지고 있으며 나의 선택으로 짜여져 있다는 생각을 번뜩하게 되니 조금 더 괜찮은 천을 짜고 싶어졌다. 앞으로 내 천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매순간순간을 조금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

같은 사물을 보고 있었는데도... 아~ 사유란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작가의 깊고 넓은 안목은 나를 더 깨우치게 하는 것 같다. 글을 읽으며 문득문득 떠오르는 나의 생각을 덧붙이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구나라는 즐거움을 준 책이다. 앞으로 어떤 사물을 볼 때 그냥 시선으로서의 멈춤이 아니라 그 뒷모습을 생각하게 되는 호기심이 생길 것 같다.

불펌금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제공받았지만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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