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유년의 기억, 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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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억의 더미를 파헤쳐 한 폭의 수채화로 완성한 날카롭게 빛나는 성장소설의 진수"

초등학생때였을까... 어릴 때부터 우리집 한켠에 꽂혀 있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매번 읽어 봐야지.. 읽어봐야지 하며 첫페이지만 펴고 뭐가 그리 바빴는지..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최근 박완서 선생님의 타계 10주기라는 것을 알고는 작년에 읽었던 박완서의 말을 읽으며 깨달았던 것들이 떠오르며 이번에는 박와서 선생님의 책을 꼭 읽어보자 마음을 먹었다.

그 첫번재 책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이번에 박완서 타계 19주기 헌정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자주색바탕에 싱아인듯한 꽃이 예쁘게 피어있다. 책 표지가 너무 예쁘다... 일단 싱아가 어떤 식물인지 궁금해서 검색을 하고 책을 읽었는데 실물을 보자마자... 어떤맛일지 궁금해졌다.

이 책은 박완서 작가님의 순전히 기억에 의지하여 자전적인 내용을 소설화했다. 1930년대 살던 시골의 풍속과 자연의 모습, 그 이후 일제 시대의 학창시절, 또 625전쟁을 겪은 우리나라 역사가 그대로 담겨져 있는 작가의 이야기이다. 나의 유년시절은 당연히 작가의 유년시절과 같을 수 없지만.. 첫장부터 묘사되는 것들은 나의 어린 시절 바쁜 부모님과 떨어져 시골에서 자랐던 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p30

갓을 쓰고 하얀 한복을 입은 증조할아버지와 곰방대, 그리고 콧물이 끊이지 않아 가슴에 달은 손수건.. 추수를 하며 풍악을 울리던 농악대.. 논밭을 뛰어넘으며 도깨비풀들이 옷에 붙기라도 하면 떼어내기 바쁘고 질경이로 끊기 놀이를 하던 나의 어린시절이 떠오른다. 작가의 어린 시절 묘사 문장과 단어 모두 하나하나를 보며..... 이런것들이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꺽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꺽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 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같았다.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금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p89

주인공이 느끼는 아카시아와 싱아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이 문장들은 왠지.. 모든게 함축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속에도...아카시아와 싱아같은 것들이 있기에 개인적으로도 많이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툭하면 울기 잘하는 년이 어쩌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눈물 한 방울을 안 흘리냐 안 흘리길? 너깐 년을 그렇게 귀애하시다니, 기르던 강아지도 그만큼 귀애 했으면 며칠 기니라도 굶겠다. 그저 딸년이고 손녀고 계집애 기르는 일은 말짱 헛일이라니까"p149

"드디어 오빠에게 징용 영장이 나온 것이다. 와타나베철공소가 군수공장이 됐기 때문에 징용은 안 나가도 된다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엄마는 오빠를 어디로 도망시키고 우리 식구도 다 야반도주를 하자고 했다. (중략) 우리 마을은 아니었지만 이웃 마을에서 갈잎 가리 속에 숨었던 소녀가 그 창끝에 옆구리를 찔렸다는 소문은 너무도 끔찍해 백주의 악몽이었다. 소녀가 거기 숨은 까닭은 정신대 때문이었다 "p175~179

"좌익을 탄압하는 정도가 아니라 근절을 신생독립국가의 기본 방침으로 삼고 있었다. 골수 공산주의자는 삼팔선을 넘어 월북을 하거나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오빠처럼 이상주의적인 얼치기 빨갱이에겐 보도연맹이라는 퇴로가 마련되어 있었다."p249

"동네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집을 거물 빨갱이라고 여기고 싶어 했다. 수복이 되고 나서 밖에 나간 엄마를 보고 옆집 사람이 질급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북으로 안 가고 남아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일 뿐 아니라 기분 나쁜 일이었을 것이다 "p293

어린시절 박적골에서 자연과 살던 주인공이 교육에 관심 많은 엄마를 따라 서울에서 살며 겪은 이야기, 일제 시대 창씨개명과 관련된 이야기, 오빠가 의용군에 끌려간 이야기까지 서울에서의 스무살까지의 자전적인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적 상황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는 이야기들. 이 짧으면 짧았을.. 아니 길다면 길었을... 몇십년 동안 수 많은 것들을 겪으며 이렇게 성장해온 작가의 이야기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이전 시대를 살았던 세대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덮으며 정말 잘 읽었다. 안 읽었으면 후회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 중간중간 모르는 단어들이 나와서 찾아보곤했는데, 새로운 단어를 알아가는 것도 꽤 괜찮았다

이제 그 다음 이야기는 "전쟁 직후 한국의 참혹한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낸 성년의 나날들"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이어진다. 너무 궁금해서 바로 읽고 싶어진다.

한정판 책의 말미에는 기억과 묘사라는 제목의 김윤식 문학평론가의 작품해설정이현 소설가의 읽고난 후 감상이 담겨져 있어 소설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솔직한 표현과 섬세한 묘사가 매력적인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불펌금지, 상업적사용금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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