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일을 할 능력도 정신력도 없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마."


영화와 소설 즉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겐 이번 내란 사건은 빅잼 그 자체다. 내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조국, 빌런은 윤 씨, 조연은 이재명, 특별출연(영화 크레딧에서는 and) 박은정(너무 좋아!!)

윤 씨의 인생이 더 드라마인지, 조국의 인생이 더 드라마인지 아직은 모르겠으나 내 이야기에서는 조국이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고 윤 씨 사형 판결, 그 바톤은 이어받아 조국이 대통령이 되고 윤 씨 사형 집행. 이것이 내 이야기이다. 이것은 가장 단순한 영웅의 일대기이고 매우 훌륭한 정의 실현이다.

윤 씨가 저지른 모든 악행이 하나도 빠짐없이 윤 씨에게 돌아가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복선, 이삭 줍기, 니주깔기, 빌드업 등 뭐라고 부르든. 전반부에 이삭을 뿌려두고 후반부에서 그 이삭들을 남김없이 줍는 영화를 좋아하기에 윤 씨의 이야기는 더 없는 재미. 예를 들면 손바닥의 임금 왕은 의왕 서울구치소의 왕, 윤 씨가 교도소 예산을 줄여서 명절 특식이 없어졌는데, 그로 인해 이번 설에 윤 씨는 명절 특식을 먹지 못했다던가 하는 사소한 카더라 까지도 너무 재미있다.

윤 씨 내란 사건에 관한 뉴스가 배상훈의 크라임보다 더 재미있어서 요즘 크라임을 들을 시간이 없다. 심지어 내란 관련 뉴스와 그 뉴스 분석을 하는 영상을 더 편하게 듣기 위해서 얼마 전에 유튜브 프리미엄 결제했다!! 뉴스를 보고 듣느라 집에서는 영화 볼 시간이 도무지 없어서 OTT 구독은 취소했을 정도다! 


ps. 윤 씨의 대통령까지의 고속 승진과 김건희의 고속 재산 증식은 결국 깊은 추락을 위한 빌드업 아니었나 하는 게 내 결론. 


ps2. 나는 무속, 사주팔자, 명리 등은 사기, 헛소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강력한 증거가 이번에 추가되었다. 무속에 빠져서 지랄발광을 해도 결국은 사형수로 FINE!


ps3. 일정 비율의 인간들은 민주주의보다 전체주의를 더 갈망한다는 걸 인정하고, 제발 강강약약 전술로 가자! 여전히 <삼체>에 머물러 있는 관계로 삼체를 언급하자면, 세상만사 성선설로 귀결되는 삼체3의 주인공 성모마리아 '청신'(약해 빠진, 너무 착한 것=비겁) 너무 싫다. 착한 것 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청신이 아직 주인공으로 살아 있는 것은 청신 주변의 모든 사람이 강강약약으로 폭력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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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시간들을 혼자서 즐기며 보내고 있다. 이건 고독이고, 저건 외로움인가 하는 생각 자체도 없다. 나는 그저 물리적 실체적 타인과 같이 있는 것이 싫고, 혼자 있는 것이 지나치게 좋을 뿐. 


출퇴근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거나, 집 안을 돌본다. 그리고 충분한 수면.

천억은 없지만, 백억도 없지만, 아니 십억도 없지만, 나는 내 통장잔고가 충분히 넉넉하다고 생각한다. 내 소비규모를 보면 지금 있는 현금만으로도 20년은 살 수 있을 거 같다. 작년(2024)부터는 명품도 의류 소비도 줄였기에 연말정산 소득공제를 받을 항목마저도 없었다. 나는 서민계의 유재석(유재석은 대부분의 소비를 경비처리하지 않고 다 세금으로 낸다고 함)!!!

혼자 밥 먹고, 혼자 책 읽고, 혼자 영화 보고, 혼자, 혼자, 뭐든지 혼자 하는 나날들을 보내면 어떻게 되느냐
지금의 내가 된다.
지금의 나? 
그러니까 타인과 대화를 하는 게 너무 고통스러운 상태가 된다.
다시 말해, 설 명절로 인해서 마주한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심각한 속물 세속인) 여동생의 남편과 대화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간신히 정상 수치로 만든 나의 건강 수치가 나빠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동생의 남편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지방 비하, 지방대 비하를 한다. 우리 동네 1등이었던 나는 속으로 '야 인마 니가 그러든지 말든지 너보다 내가 더 똑똑하고 공부 잘했어.'라고 생각한다(이 나이에 아직도 고딩 때 성적 운운한다는 게 얼마나 유치하고 치졸한 일인지). 여동생의 남편과 성적이 비슷했던 그의 친구가 합격(특별전형)한 시험에 나도 합격(일반전형)했기 때문에 여동생의 남편은 지방대를 무시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그 친구는  일이 너무 힘들어 중간에 도피성 휴직을 했다. 반면 나는 유유자적 근속 중인 것이다. 

여동생의 남편과 대화를 하면 언제나 등장하는 그의 친구들의 친구 이야기가 나온다. 친구들의 친구들은 대부분 집 안 좋고, 학벌 좋고(부모, 조부모마저도 학벌이 좋으며), 연봉은 기본 5억이고, 천억의 자산 등등. 여의도 금융회사, 변호사, 의사 그리고 서울대 어쩌고. 그러면 나는 속으로 '그렇게 잘난 친구들을 병풍 두르듯 에워싼 너는 왜 지방, 지방대 출신 내 여동생과 결혼해서 나랑 마주 보고 대화하고 있니? 그렇게 잘난 니가??' 라고 한심하게 생각한다. 남동생과 나는 속으로 '뭔데? 열폭이가. 한심하다 한심해.' 하고 만다. 

여동생의 남편과의 대화 주제는 헌법재판소였다. 나는 헌재 판사들의 위험과 권위에 대해서 블랙코미디적 관점에서 썰을 풀었고, 제부는 (니가 잘 모르나 본데 실세는 검사야 하는 식으로) 검사들의 기소권에 대해서 판에 박힌 얘기를 너는 잘 모르니 내가 A부터 Z까지 설명해 줄게 하면서 길고 긴 얘기를 했고, 나는 내란범 김용현의 개소리를 경청하는 헌법재판소 판사 같은 자세로(그래 니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나뿐이지?) 경청해 주었다. 

이 대화를 하면서 다시금 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깨달았다. 사실 여동생의 남편은 잘못이 없다. 그는 널리고 널린 평범한(신분상승, 돈, 인맥, 학벌, 특권, 낙오자 하대) 서울 사람일 뿐이다. 그 자신도 인정했듯 서울이라는 우물 속에 있으면 시야가 좁아진 서울 사람일 뿐. 반면 나는 혼자 있음으로 인해서 시야가 넓어졌달까, 달라졌달까. 소설 <삼체>에 비유하면 남들이 3차원 속에 있을 때 4차원을 경험해 버린 인물들처럼. 숫자에 비유하면 다들 실수의 세상에서 살 때, 혼자 허수까지 생각하는(이런 자화자찬ㅋㅋ). 아무튼 나는 세속의 셈법으로 살지 않고 있고, 이 내란 정국도 정치보다는 빌드업이 잘 된 수미상관적 이야기로써 즐기기 때문에 같은 당을 지지하고, 같은 당을 싫어하는 여동생의 남편과도 대화가 통하지는 않는다. 

타인과 대화가 통하지 않아서 혼자 있게 된 건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다보니 남들과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게 된 건지, 둘 다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인맥 자랑, 지인 자랑, 친구 많음이 곧 자존감인 동생의 남편보다는 친구가 거의 없는, 인맥 자체가 없는 내가 더 낫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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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도 진상, 양아치들을 보고 참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요즘은 '정신병자다, 정신병자, 피하자, 피하자' 하면서 많이 참는 편인데, 새해 되고 고작 일주일 사이에 굳이 지적을 해야 할 정도의 진상을 연달아 만난 건 오랜만이라서 기록해 둔다.


사례1. 

집 앞에 쭈그려 앉아서 담배를 피운 후 꽁초를 버리고, 다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계속 쳐다봤다. 그 사람도 뭔가를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러고도 계속 담배를 폈다. 나는 그걸 1분 정도 더 지켜봤다. 그러고 나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 "저기요, 담배꽁초 버리는 거 봤는데 그거 주우세요. 이 동네는 담배꽁초 버리면 과태료 10만원이에요."라고 했더니 남자는 놀란 듯 "네, 주울게요." 하면서 담배꽁초를 주웠다. 


사례2.

KTX일반석 칸에서 노망(비슷한)이 난 노인을 봤다. 다른 승객들의 민원을 여러 개 받은 승무원이 노인에게 이런저런 수정 사항을 말했다. 노인은 "왜 자꾸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해. 내가 알아서 한다. 가라. 안 그래도 아프다. 귀도 잘 안 들린다. 가라. 왜 나한테만 이러는데." (실제 이렇게 반 말로 말 함) 노인은 밀양에서 탔고 그때부터 시작해서 오산에 도착할 때까지도 승무원들에게 저랬다. 승무원들은 순번을 바꿔서 오면서 노인을 3세 아이 달래듯 했다. 노인은 내 대각선에 있었고, 나는 <너는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를 계속 읽고 있었다.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죽어 마땅한 자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스티븐 킹의 신념이기도 합니다." 나는 해당 문장에 빨강 플래그를 붙였다. 죽어 마땅한 자, 죽어 마땅한 자!! 그리고 오산에서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할머니, 할머니 같은 승객을 관리하는 게 저 분 업무잖아요. 왜 계속 그러세요?"라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놀란 승무원은 내 쪽으로 뒤돌아 보면서 괜찮다는 손짓과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례3.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의 영화였다. 일찍이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에서 어둠을 보이게 찍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이 장면은 좀 에러 아닌가 생각하면서 봤다. 스크린의 절반(왼쪽)이 어둠이고 그 어둠의 가장자리에 앉은 주인공의 얼굴도 역시나 절반은 암흑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장면에서 내 자리에서 세 줄 앞의 왼쪽 관객이 갤럭시 폴더를 펼쳤다. 나는 3초쯤 기다렸다가 "눈부시니까 폰 넣으세요."라고 크게 말했다. 하지만 그 관객은 카톡으로 추정되는 화면을 스크롤하면서 볼 거 다 보고 폰을 접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나오지 직전, 영화가 끝나서인지 같은 관객이 또 폰을 펼쳤다. 엔딩 크레딧은 검은 화면에 흰색 글자였고, 진심 어두웠다. 그랬기에 상대적으로 휴대폰 화면의 불빛은 더 눈 부셨다. 나는 복근에 힘을 주고 "저기요, 폰 좀 끄세요. 영화 보는데 방해되잖아요." 했는데 안 끄길래 더 크게 소리(고성에 가까운)를 질렸다. 그랬더니 폰을 넣었다. 난 그 관객이 엔딩 크레딧을 안 보고 나갈 줄 알았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앉아 있었고, 극장에 조명이 들어오자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는 것을 보고, 다다다다 재빠르게 그 관객에게 가서 따졌다. "왜 어두운 화면 나올 때마다 폰 켜세요? 왜 두 번이나 그래요? 어두운 화면 나올 때 폰 화면 때문에 영화 장면 놓치 잖아요? 왜 그러냐구요. 아 진짜 돌겠네." 했더니 그 관객은 건성으로 작게 "미안합니다."하고 극장을 나갔고 나는 바로 뒤에 이이서 나가면서 " 아 씨 진짜 짜증 나네."라고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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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부에서 긴가민가 했으나 3부에서 초반에 확신하게 됨.


지자의 자가 아들 자의 일본식 여자 이름이라는 것에 빈정 팍 상하고

지자가 코스튬으로 택한 것이 기모노를 입은 연약해 보이는 일본 여자라는 것에 썩소를 지었고

별생각 없이 쓰레기처럼 살던 뤄지가 느닷없이 강인한 남성상의 표상이 되어 인류를 지키고 있다는 것에 아연실색하고

검잡이 대관식에서 청신을 여.자.였.다. 라고 서술한 부분에서 뒷골이 땅기면서

아 ㅅㅂ 이거 계속 읽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ㅋㅋㅋ 그리고 여혐 대표 청신에 대한 여혐을 멈추지 않는다. 

갑자기 웨이드가 등장해서 그가 검잡이였으면 지구를 지켰다고 하는데


이걸 견뎌가면서 삼체를 읽어야 하나...아

그래그래, 쇼펜하우어도 여혐 앞에서는 이성을 잃고 왈왈 짖었으니까.

류츠신이라고 별 수 있었겠냐.

여혐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남자 소설가들의 비루한 상상력이란!!

절필해라!



167

지금은 지자라는 단어가 삼체 세계에서 온, 강력하고 기이한 지능을 가진 초소형 입자가 아니라 여자의 이름이라는 것을 청신도 알고 있었다.(지자는 일본어로 도모코라는 여자 이름이다.)


168

아담한 키에 날씬한 몸을 화려한 기모노로 둘러 사람이 꽃밭 가운데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이 가까워질수록 꽃들은 빛을 잃었다. 이렇게 완벽한 얼굴이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미모에 진정한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그녀를 통제하고 있는 영혼이었다. 지자가 엷게 미소 짓자 연못에 미풍이 불어와 잔잔한 물결이 이는 듯했다. 


185

그래비티호가 출발할 때 지구상의 남자들은 인류 역사상 마지막으로 남은 남성적인 남자들이었고, 데번은 그중에서도 가장 남성적이었다. 강인해 보이는 외모 때문에 종종 서기인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그는 또 사형 제도를 부활시켜 어둠의 전쟁을 일으킨 전범들을 엄격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론자였다.


210

뤄지는 삼체 세계와 54년 동안 마주 보고 있었다. 염세주의자였던 그가 54년 동안 면벽한 진정한 면벽자이자 54년 동안 검을 들고 서 있는 지구 문명의 수호자로 변해 있었다.

이 54년을 채운 건 뤄지의 침묵이었다. 그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누구든 10~15년 동안 침묵한다면 언어능력을 상실해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뤄지도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가 하고 싶은 모든 말은 벽에 고정된 그의 형형한 눈빛 속에 담겨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협 기계로 만들었다. 반세기라는 긴 세월 동안 그의 전체가 일촉측발의 지뢰가 되어 두 세계의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216

청신의 무의식 속에서 그녀는 파괴자가 아니라 수호자였다. 또 그녀는 전사가 아니라 여자였다. 그녀는 자기 일생으로 두 세계의 균형을 지키고 삼체의 과학기술을 통해 지구를 더 강하게 하며, 지구의 문화를 통해 삼체를 더 문명 사회로 만들려 했다. 


220

"안 돼."

청신이 새된 비명을 지르며 스위치를 집어 던졌다. 그리고 악마를 본 사람처럼 멀리 떨어져 나뒹구는 스위치를 응시했다. 


231

"그거 알아? 우리의 인격 분석 시스템에서 너의 위협력은 10퍼센트 선을 벗어나지 못하지. 기어다니는 지렁이처럼. 뤄지의 위협력 곡선은 사나운 코브라처럼 90퍼센트 선에서 요동치고. 하지만 웨이드는....그는 곡선이 없어. 외부 환경을 어떻게 바꾸든 그의 위협력은 100퍼센트에서 움직이지 않았어. 그는 악마야! 그가 검잡이가 됐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지속됐겠지. 우린 62년이나 기다렸지만 계속 기다려야 했을거야."


<삼체3부 사신의 영생 / 류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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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경우, 고독한 행복이 언제 변질하기 시작하여 고립된 절망으로 변형되는가? 하루가 지나면? 열흘? 한 달? 세상을 차단해버리고 싶은 충동은 언제 닥치며, 그 진정한 동기는 무엇인가? 당신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낫기 위해서인가, 숨기 위해서인가?
<명랑한 은둔자 / 캐럴라인 냅>

작년 12월, 호흡기 질환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코로나19 때보다 더 열심히 필사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독감, 백일해 등의 질병이 유행처럼 유행하고 있었지만 무사했다. 그랬는데 작년 마지막 일요일 하루종일 제주항공 사고 뉴스에 나도 모르게 매달려있었던 것이 문제였을까. 일요일 밤 오한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가서 감기약을 처방받을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작년 하반기는 검사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대학병원 과 3곳을 돌아다니면서 이 검사 저 검사를 받아야만 했다. 의료대란은 계속 진행 중이었지만 나의 검사 일정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연초 사소한 감기약에도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나를 가장 중요한 검사가 예약되어 있었기에 나는 차마 감기약을 먹을 수가 없었다. 오한이 너무 심할 때는 생리통 약을 먹으면서 견디고 버텼다. 뉴스에서는 연일 독감, 호흡기 질환 환자 사상 최대, 병실 부족 등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처방은 마스크, 생리통약, 휴식 말고는 없었다. 


감기는 어느 정도 나았고, 기대가 없었던 검사 결과는 놀랍게도 30개월 만에 처음으로 정상 범위였다. 이번에 또 최악을 갱신하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자고 나를 다독였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무속도 없이, 사이비 교주의 생명수도 없이, 현대의학(나는 검사만 받는 것, 약도 치료도 받지 않는다)도 없이 오직 정신력 하나만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다음 검사에는 다시 나쁨 범위로 추락할 수도 있겠으나)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치성을 드리듯 하고 있는 모닝 홈트, 하루 수면 8시간을 사수하기 위한 노력, 이젠 토템이 되어버린 양배추 샐러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대소사가 싫어서 의도적으로 실시한 은둔과 고립.


최근 나는 나의 은둔과 고립, 고독에 대해서 이걸 계속할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를 두고 고민 중이었다. 고립과 고독에 대한 책, 유튜브, 영화 등을 곱씹어 보면서 새해(2025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를 두고 고민했었다. 그런데 이번 검사 결과가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주었다. 나는 과일 껍데기에 날파리가 꼬이듯이 사는 삶보다는 항균 작용을 피톤치드 같은 삶이 더 체질에 맞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각자의 건강 라이프 방식은 다른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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