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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ㅣ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평점 :
알로하, 나의 엄마들
때는 1917년, 어진말 출신의 세 소녀 버들, 홍주, 송화는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사진신부가 되어 머나먼 미지의 땅인 하와이(포와)로 떠난다. 사진신부란 신랑이 신부에게 약간의 지참금을 보내면 신부는 신랑이 사는 나라에 가서 결혼하는 여인을 일컫는다.
주인공 버들의 아버지는 가난한 집안의 훈장으로 서당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아버지가 의병으로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하면서 버들은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 어머니를 도와 삯바느질을 하면서 동생들을 돌본다. 늘 가슴속에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던 그녀는 사진신부가 되면 호의호식 하면서 원하는 공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박물장수의 권유에 심하게 동요한다. 딸이 자신처럼 지긋지긋한 가난에 허덕이며 살다 죽을까봐 안타까웠던 버들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만큼은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가 사진신부가 되어 하와이(포와)로 떠날 것을 허락한다.
늘 가슴 속 깊은 곳에 배움에 대한 열망을 숨겨두고 살아야만 했던 버들, 일찍이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어 조선에서 낙인찍힌 채 더는 살기 싫었던 홍주, 무녀의 손녀이자 정신이상자 어머니로 인해 돌팔매를 맞으며 살아야 했던 송화, 이 세 소녀는 서로 다른 사연을 뒤로한 채 머나먼 이국땅이자 꿈에 그리던 파라다이스인 하와이(포와)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는다.
세월이 흐르고 세 여인도 각자의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지만 하와이(포와)에서의 삶은 상상해왔던 것과는 다르게 고된 노동과 반복되는 혹독한 일상으로 녹록치 않았다. 그러나 버들, 홍주, 송화는 각기 다른 지역에서 살다 이사하며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도 늘 서로를 위하며 돌봐준다.
버들의 남편이 일본으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중국으로 떠났을 때도, 홍주의 남편이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본처가 있는 조선으로 홍주만 홀로 남겨둔 채 떠났을 때도, 남편이 세상을 뜨고 아이를 밴 송화가 홀로 시름시름 앓며 시들어가고 있을 때에도 세 여인은 서로를 친자매 이상으로 아끼며 자신들을 향해 닥쳐오는 온갖 고난, 역경, 분노, 좌절, 슬픔에 굴하지 않고 힘을 합쳐 당당하게 맞서 살아나간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던 장면들이 나로 하여금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고 그녀들의 기쁨, 눈물, 위로, 용기가 '너 잘 살아나가고 있어!'라고 응원해주는 것만 같았다.
" 저 아들이 꼭 우리 같다. 우리 인생도 파도타기 아이가." (중략) 버들은 홍주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저쪽에서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송화를 바라보았다. 함께 조선을 떠나온 자신들은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마다 무지개가 섰다. - P324
"부모 자식 간에 인사는 무신. 우리 어무이는 왜놈 없는 시상에서 살라꼬 내를 여로 보냈지만 내는 공부시켜 준다 캐서 온 기다. 돌이켜 보면 내는 새 시상 살라꼬 어무이, 동생들 다 버리고 이 먼 데까지 왔으면서 딸은 내 곁에 잡아 둘라 카는 기 사나운 욕심인 기라. 내는 여까지 오는 것만도 벅차게 왔다. 인자는 니가 꿈꾸는 시상 찾아가 내보다 멀리 훨훨 날아가그레이. 그라고 니 이름처럼 고귀한 사람이 되그라. 암만 멀리 가도 여가 니 집인 걸 잊어삐리지 말고." - P384
책을 펼친 순간부터 휘몰아치는 감정의 변화와 극강의 몰입감,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장면 묘사 등으로 마치 영화를 보듯 순식간에 책장이 넘어갔다. 주요 장면마다 등장하는 스콜(열대 지방에서 대류에 의하여 나타나는 세찬 소나기)이 그친 후 피어오르는 무지개는 모진 풍파와 역경 후 빛을 향해 걸어가는 그녀들의 인생을 빗댄게 아닌가 싶다. 내가 만약 그녀들이 살아온 굴곡진 인생을 살아야만 했더라면 나는 매 순간 용기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책을 덮는 순간, 가슴 속 깊은 한켠에서 뜨끈하고 찌릿찌릿한 무언가가 솟아오른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의 여운이 쉬이 사라지지 않은 채 그녀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아프게, 뜨겁게, 기쁘게 인생의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