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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평점 :
-니들, 사장님이 어떤 분인지 내가 딱 한 가지만 얘기해줄까? 만약에 사람이 손발이 다 묶인 채 흙구덩이에 파묻혔다, 이거야. 한 마디로 산 채로 매장을 당한 거지. 그것도 삼 일씩이나. 그러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당연히 죽겠죠.
-그래, 보통 사람 같으면 죽겠지. 그런데 사장님은 죽지 않았어. 파묻힌 지 사흘 만에 구덩이를 꿇고 살아 나왔거든.
-어, 어떻게요?
-그건 나도 몰라. 어떻게 살아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살아 나왔어. 그러고 나서 자기를 파묻은 놈들을 한 명씩 찾아다녔지. 사장님을 직접 파묻은 놈들은 물론, 파묻는데 옆에서 지켜본 놈들, 파묻혔다는 걸 알고 박수치면서 좋아한 놈들, 파묻는 데 쓴 삽을 빌려준 놈들까지 몽땅! 한 놈도 빼놓지 않고 다 찾아내서 죄다 인천 앞바다에 던져버렸어. 허리에 큰 돌을 하나씩 매달아서. 그리고 이 바닥을 통일한 사람이야. (천명관,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10-12쪽)
'카더라' 전설이 난무한 인천 연안파의 양 사장. 뒷골목의 노회한 조폭 두목인 그는 다이아몬드를 밀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그걸 노린 전국 각지의 건달들은 인천으로 몰려온다. '나 몰라? 나 인천 연안파 양 사장이야!'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음에 늙은 두목은 어쩔 수 없는 노화와 무상감에 시달리고, 그의 얼굴도 쳐다보지 못 했던 어리고 순박한 건달 꿈나무는 두목의 심부름을 갔다가 우연히 다른 건달 두목 소유인 35억짜리 종마를 훔쳐와 몰래 키우게 된다. 여기에다 도박 빚을 갚으려 강도 짓을 하는 대리운전기사들, 삼류 포르노 영화감독, 조선족 마사지사로 행세하는 유흥가 출신 여성, 감옥에서 만난 남자를 사랑하게 된 조폭 중간 보스 등이 얽히고설켜 한바탕 난장이 펼쳐진다.
천명관이 무려 4년 만에 펴낸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4개월 동안 카카오 페이지에서 사전 연재를 통해 독자들과 먼저 만났다. 문학보다 장르소설이 사랑받는 플랫폼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8만여 독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영화로 만들어달라는 댓글이 쇄도했었다고 한다. (실로 이 소설은 장르소설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 비슷한 성격을 띠기는 한다) 읽어보면, 역시 천명관 특유의 흡입력이 있다. 건달들의 삶을 한껏 희화화시켜 조롱하면서도 특유의 문체와 입담으로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하는(자의인지 타의인지는 모르겠다만) 남자들의 거친 삶을 표현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인천 뒷골목 건달-하면 딱 떠오르는 그 이미지의 건달들이, 딱 상상할 수 있는 거기까지의 일들만 한다. 웹 소설로 쓰였기 때문일까.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의 구미에 딱 맞게, 아니 더 정확히는 스마트폰으로 슬슬 스크롤 해 가며 읽기 좋도록 쓰였다. 그러니까 쉽고 간결하게. 문체뿐만 아니라 서사도, 인물들도. 해서 종이책으로 만났지만 같은 방식으로 술술 책장을 넘겼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긴 했는데, 다 읽었을 때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던가, 마음 가는 인물이라던가,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은 장면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술술 넘어가다가 탁, 하고 덮었다. 간혹 키득거리기는 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