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자들 창비청소년문학 76
김남중 지음 / 창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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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해방자들>의 배경은 낯설다. '렌막'이라는 말도 쉬이 입에 붙지 않는다. 그 어감이 어딘지 모르게 미래적이어서, 과연 이 지구에 존재하기나 하는걸까, 하는 의구심이 자꾸 든다. 어쩌면 그곳은 미래의 어떤 곳일지 모른다. 아직 오지 않은 곳, 아직 닥치지 않은 일. 그런 설정이 어딘지 모르게 순진하다고 여겨졌다. 그것이 그들의 급박한 상황들을 저만치 떨어져서 관망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관망하는 자세를 취할수는 없었다. 그것이 비단 '그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사랑과 출산이 엄격하게 통제된 그곳은 '삼포'를 넘어 '오포'를 향해 가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으며, 부유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어떻게든 가고자 하는 마음은 이주민 문제나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기위한 전쟁같은 학구열과 직결된다. 그러니까 소설 <해방자들>은 '렌막시티'라는 낯선 곳을 빌어 우리 사회에 감춰진 부조리함과 물밑의 갈등을 내밀하게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단연 자유 지역 사람들이 진압군을 향해 투쟁하던 장면. 그것은 흡사 프랑스혁명이나 5.18민주항쟁의 한 장면이기도 했으며, 오늘의 촛불정국의 단면이기도 했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는 진압군의 확성기 소리에 누군가 사람들을 불러모아 "이럴 때 칵테일 한 잔 어때요?"(183쪽)라고 했을때는 나도 모르게 작은 희열이 일기도 했다.

소설은 묻는다. '정부가 사랑을 검열해도 괜찮은가?' 그것은 곧, 전체주의 사회가 국민들을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느냐, 혹은 어디까지 통제해도 되는가와 직결된다. (아니 사실은, 전체주의 사회가 가능한가-의 물음일지도 모르겠다) 통제하려는 힘이 클수록, 자유를 찾는 힘도 커진다. 그 팽팽한 줄다리기 사이에서 열여덟 살 지니와 소우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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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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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하면 된다'는 약속 위에 서 있다. 누구든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근대 사회는 신분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이 그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사회를 말한다. 이 약속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기 위해 개인들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취된 능력에 따라 자기 삶을 성찰하고 생애를 기획해 나간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노력이 아닌 '노오력'을 해도 쉽사리 삶의 방향이 보이지 않았다. 삶을 기획하기는커녕 누군가 기획해놓은 삶에 나를 끼워 넣는 것도 어렵기만 했다. "너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를 들으며 자라왔는데, 막상 사회에 나와 부딪힌 벽은 "할 수 있으면 해보라지"를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삶을 긍정하려 했고, 할 수 있는 갖은 노오력들을 해가며 벽에 오르길 시도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허무해져버렸다.

2016년 10월, 우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앞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비단 국정 농단의 처참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까지 해왔던 노오력들이 정말이지 부질없었음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사건이었고, 나아가서는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던 최소한의 약속조차 지켜지고 있지 않음이 확인되는 사건이었다. 다시 말해 232만 촛불이 말하는 것, 그것은 애써 믿어왔던 긍정의 신화를 무너뜨림에 대한 분노였고, 어디를 향해야 좋을지 몰랐던 우울의 정체를 실체화함으로써 드러난 것이기도 했다. 내 안을 향해 뻗어있던 화가 방향을 틀어 누군가를 향해 나아간 것이다.

표적이 없는 화는 쉬이 해소가 안된다. 지난 20년간 쌓인 그것이 이제야 터져 나온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표적이 생겼다. 누가 뭐래도 잘못한 것,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가 없이 명백한 죄. 그 앞에서 우리는 드디어 그 오랜 화를 꺼내 보인다. 아마도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국민적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탄핵이 통과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어쩌면 (정말이지 아이러니하게도) 그 경험들이 우리 시대의 우울을 위로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이 책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는 "이게 나라냐", "싸그리 망해버려라"라고 말하는 우리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지난 3년간 박근혜 정부가 얼마나 우리를 '주변화'시켜왔는지, 우리는 얼마나 처참하게 국가로부터 내버려진 국민이었는지를 직면하게 된다. 세월호, 메르스, 가습기 살균제, 강남역 10번 출구, 구의역... 이 국가와 사회가 나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와 그리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슬픔. 무고한 죽음 앞에서 숨이 턱턱 막혀와도 또 오늘을 버텨냈던 시간들이 이제 와 한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책의 가장 좋았던 점은 제일 마지막 부분, 그러니까 '앞으로의 우리'를 말하는 부분이었다. 리셋하고 싶다, 리셋하자! 하는 것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리셋 이후, 리셋 너머의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고민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와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 '리셋 너머'일 것이다. 그 소중한 질문에 감사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일은 자기를 잃는 것이고, 가장 피곤한 일은 자기를 유지하는 것이다. (51쪽)

무-사유와 무-성찰성이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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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다운 게 어딨어 - 어느 페미니스트의 12가지 실험
에머 오툴 지음, 박다솜 옮김 / 창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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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맞다. 분명히 그랬다. 간호사는 아기의 기저귀를 풀어 생식기를 보여준 다음 "공주님이예요." 하고 내 아이의 성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때는 그녀의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것에 의구심을 품지 못 했다. 하지만 분명히, 그것이 시작이었다.

생식기의 모양에 따라, 우리의 몸은 우리를 정의하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다른 이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규정한다. 부호화되고 기호화된 신체는 우리를 남자인지 여자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 사회 내의 인위적인 구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어떤 젠더의 사람들이 정체성을 당당하게 수행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그러니 우리가 수행하는 '여자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그로부터 이득을 보는지.

이 책 <여자다운 게 어딨어>는 페미니스트인 저자가 '여성성' 혹은 '여자다움'에 대해 펼치는 12개의 실험에 대한 일종의 자기 보고서다. 남장을 하고서는 출 수 있는 가장 여성스러운 춤을 추는가 하면, 일 년 넘게 제모를 하지 않고, 나중에는 수북한 털을 그대로 둔 채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거리로 나섰다. 그녀가 남장을 하는 것, 삭발을 했던 것, 제모를 하지 않은 것은 사실 별것도 아닌 일이다. (나는 빼어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제모하지 않는다.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상징'으로 기능한다. 그러니까 짧은 머리는 동성애자, 긴 머리는 이성애자. 그것은 굉장히 비합리적이지만, 우리에게 아주 깊숙이 내면화된(그러니까 아주 익숙한 방식의) '젠더정체성'이다. 상징이 중요한 이유는 남들이 우리를 해석하고 대우하는 방식, 우리에 대해 기대하는 내용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 강력한 문화적 의사소통의 방식에 대해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살을 빼려 노력하고, 하이힐을 신고, 화장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액세서리로 몸을 치장하는 것. 그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만약 그 행동들이 여자들이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라 피상적이거나 장식적인 것, 그러니까 의상이나 분장 따위에만 관심을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당장 그 행동들을 모두 다 그만두어야 할까? 물론, 아니다. 진짜 문제는 상징이 아니라 그 상징들이 나타내는 바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진짜 중요한 일은 젠더와 관련한 상징들을 깨부숴버리는 것. 긴 생머리가 수동성을 의미해서는 안되고, 짧은 치마가 성적으로 자유로움을 의미해서도 안된다.

저자는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은 그저 공연일 뿐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생각에 동의한다. 물론 이는 꽤나 급진적인 생각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단언컨대 젠더 정체성은 불변하는 '나다움'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가 하는 행동으로써 빚어진다. 물론 이 행동이라는 것은 사회적 영향을 받는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좀 더 자유롭게 혹은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오늘의 우리를, 그러니까 여자로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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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엄청나게 행복한 마법의 숲 - 용감한 다섯 영웅이 펼치는 흥미진진하고 대단한 모험 이야기 스콜라 창작 그림책 5
매티 롱 글.그림, 김혜진 옮김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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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지난 토요일, 광장에 100만 명의 시민이 모였다.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요구한 것은 '대통령의 하야'. 하지만 '하야'가 끝이 아니다. '하야하라'는 구호 뒤에 숨겨진 진짜 본질은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 그래서 모두 다 같이 신나게 살자는 것. 설마, 했던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야 하겠어? 하는 일도 사실로 드러났다. 우리는 나라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마저 잃었고, 그 어느 노랫말처럼 길가에 버려졌다.

'행복한 세상'은 꿈같은 이야기일 뿐일까. 그런 세상은, 동화 속에나 나오는 걸까.
그런 생각에 '자괴감'이 들 무렵, 이 책 <아주아주 엄청나게 행복한 마법의 숲>을 만났다.


2. 그래, 너희라도 행복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림책을 열었는데, 웬걸- 여기에 오늘의 한국 사회가 그대로 녹아있다. 이야기인즉슨 이러하다. '아주아주 엄청나게 행복한 마법의 숲'에는 숲을 지켜주는 신비한 생명의 크리스털이 있는데, 어느 날 크리스털을 도둑맞은 것이다. 숲에서 가장 지혜로운 떡갈나무 할아버지는 재빨리 회의를 소집하고, 용감한 다섯 영웅을 뽑아 전장으로 내보낸다. 그들은 숲을 지켜내겠다는 사명감으로 꽁꽁 언 산봉우리에서도, 무시무시한 위험 속에서도 싸워 이긴다. 그리하야 도착한 악마의 탑. 심호흡 열 번 하고 그 문을 딱! 열었는데! 세상에, 평화로운 다과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3. 그리고는 반전, 이건 정말 대반전. 다섯 영웅들을 전장으로 보냈던 떡갈나무 할아버지의 고백. "영웅들은 멍청하게 헛수고를 한 거지. 나는 크리스털을 모두 팔아서 근사한 쾌속정을 살 거야!" 그 야심찬 고백에 쿵, 마음이 내려앉는다. 설마, 범인이 떡갈나무 할아버지일 줄이야. 숲을 지키는 크리스털과 맞바꾼 게 겨우 '쾌속정'일 줄이야. 이 실망감과 허탈함은 오늘의 우리 마음과 다르지 않다.

4. 이야기는 우리가 상상한 대로 전개된다. 숲을 지키는 다섯 영웅은 진짜 악당을 물리치고, 크리스털을 되찾아온다. 영웅들이 승리한 것이다. 숲은, 당연하게도 예의 그 '아주아주 엄청나게 행복한 마법의 숲'으로 돌아왔다. 알록달록 오밀조밀 예쁘게도 그려진 그림책을 읽으며 오늘의 한국 사회를 투영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지난주 광화문에 나온 다섯 살 꼬마 아가씨의 손피켓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아이는 크레파스로 위쪽에는 '박근혜는 하야하라'를 쓰고, 그 아래쪽에 들판과 활짝 핀 꽃, 나비를 그려넣었다. 이 그림책의 그림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밝고 예쁜 톤으로. 아이는 '하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을까. 이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있을까. 아이에게 대통령의 하야가 꽃이 핀 동산이라는 것이 묘하게 슬펐다. 아가, 어른들이 미안해) 아이가 바라는 세상을, 아이에게 주고 싶은 세상을 다시 한번 '꿈꾸게 된다'.

그림책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100만, 아니 4,000만 영웅들이 승리하기를.
그래서 이 나라도, '아주아주 엄청나게 행복한' 곳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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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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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 사장님이 어떤 분인지 내가 딱 한 가지만 얘기해줄까? 만약에 사람이 손발이 다 묶인 채 흙구덩이에 파묻혔다, 이거야. 한 마디로 산 채로 매장을 당한 거지. 그것도 삼 일씩이나. 그러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당연히 죽겠죠.
-그래, 보통 사람 같으면 죽겠지. 그런데 사장님은 죽지 않았어. 파묻힌 지 사흘 만에 구덩이를 꿇고 살아 나왔거든.
-어, 어떻게요?
-그건 나도 몰라. 어떻게 살아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살아 나왔어. 그러고 나서 자기를 파묻은 놈들을 한 명씩 찾아다녔지. 사장님을 직접 파묻은 놈들은 물론, 파묻는데 옆에서 지켜본 놈들, 파묻혔다는 걸 알고 박수치면서 좋아한 놈들, 파묻는 데 쓴 삽을 빌려준 놈들까지 몽땅! 한 놈도 빼놓지 않고 다 찾아내서 죄다 인천 앞바다에 던져버렸어. 허리에 큰 돌을 하나씩 매달아서. 그리고 이 바닥을 통일한 사람이야. (천명관,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10-12쪽)

'카더라' 전설이 난무한 인천 연안파의 양 사장. 뒷골목의 노회한 조폭 두목인 그는 다이아몬드를 밀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그걸 노린 전국 각지의 건달들은 인천으로 몰려온다. '나 몰라? 나 인천 연안파 양 사장이야!'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음에 늙은 두목은 어쩔 수 없는 노화와 무상감에 시달리고, 그의 얼굴도 쳐다보지 못 했던 어리고 순박한 건달 꿈나무는 두목의 심부름을 갔다가 우연히 다른 건달 두목 소유인 35억짜리 종마를 훔쳐와 몰래 키우게 된다. 여기에다 도박 빚을 갚으려 강도 짓을 하는 대리운전기사들, 삼류 포르노 영화감독, 조선족 마사지사로 행세하는 유흥가 출신 여성, 감옥에서 만난 남자를 사랑하게 된 조폭 중간 보스 등이 얽히고설켜 한바탕 난장이 펼쳐진다.

천명관이 무려 4년 만에 펴낸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4개월 동안 카카오 페이지에서 사전 연재를 통해 독자들과 먼저 만났다. 문학보다 장르소설이 사랑받는 플랫폼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8만여 독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영화로 만들어달라는 댓글이 쇄도했었다고 한다. (실로 이 소설은 장르소설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 비슷한 성격을 띠기는 한다) 읽어보면, 역시 천명관 특유의 흡입력이 있다. 건달들의 삶을 한껏 희화화시켜 조롱하면서도 특유의 문체와 입담으로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하는(자의인지 타의인지는 모르겠다만) 남자들의 거친 삶을 표현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인천 뒷골목 건달-하면 딱 떠오르는 그 이미지의 건달들이, 딱 상상할 수 있는 거기까지의 일들만 한다. 웹 소설로 쓰였기 때문일까.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의 구미에 딱 맞게, 아니 더 정확히는 스마트폰으로 슬슬 스크롤 해 가며 읽기 좋도록 쓰였다. 그러니까 쉽고 간결하게. 문체뿐만 아니라 서사도, 인물들도. 해서 종이책으로 만났지만 같은 방식으로 술술 책장을 넘겼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긴 했는데, 다 읽었을 때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던가, 마음 가는 인물이라던가, 다시 한번 더 보고 싶은 장면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술술 넘어가다가 탁, 하고 덮었다. 간혹 키득거리기는 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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