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다운 게 어딨어 - 어느 페미니스트의 12가지 실험
에머 오툴 지음, 박다솜 옮김 / 창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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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맞다. 분명히 그랬다. 간호사는 아기의 기저귀를 풀어 생식기를 보여준 다음 "공주님이예요." 하고 내 아이의 성별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때는 그녀의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것에 의구심을 품지 못 했다. 하지만 분명히, 그것이 시작이었다.

생식기의 모양에 따라, 우리의 몸은 우리를 정의하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다른 이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규정한다. 부호화되고 기호화된 신체는 우리를 남자인지 여자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 사회 내의 인위적인 구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어떤 젠더의 사람들이 정체성을 당당하게 수행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그러니 우리가 수행하는 '여자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그로부터 이득을 보는지.

이 책 <여자다운 게 어딨어>는 페미니스트인 저자가 '여성성' 혹은 '여자다움'에 대해 펼치는 12개의 실험에 대한 일종의 자기 보고서다. 남장을 하고서는 출 수 있는 가장 여성스러운 춤을 추는가 하면, 일 년 넘게 제모를 하지 않고, 나중에는 수북한 털을 그대로 둔 채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거리로 나섰다. 그녀가 남장을 하는 것, 삭발을 했던 것, 제모를 하지 않은 것은 사실 별것도 아닌 일이다. (나는 빼어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제모하지 않는다.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상징'으로 기능한다. 그러니까 짧은 머리는 동성애자, 긴 머리는 이성애자. 그것은 굉장히 비합리적이지만, 우리에게 아주 깊숙이 내면화된(그러니까 아주 익숙한 방식의) '젠더정체성'이다. 상징이 중요한 이유는 남들이 우리를 해석하고 대우하는 방식, 우리에 대해 기대하는 내용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 강력한 문화적 의사소통의 방식에 대해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살을 빼려 노력하고, 하이힐을 신고, 화장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액세서리로 몸을 치장하는 것. 그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만약 그 행동들이 여자들이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라 피상적이거나 장식적인 것, 그러니까 의상이나 분장 따위에만 관심을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당장 그 행동들을 모두 다 그만두어야 할까? 물론, 아니다. 진짜 문제는 상징이 아니라 그 상징들이 나타내는 바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진짜 중요한 일은 젠더와 관련한 상징들을 깨부숴버리는 것. 긴 생머리가 수동성을 의미해서는 안되고, 짧은 치마가 성적으로 자유로움을 의미해서도 안된다.

저자는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은 그저 공연일 뿐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생각에 동의한다. 물론 이는 꽤나 급진적인 생각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단언컨대 젠더 정체성은 불변하는 '나다움'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가 하는 행동으로써 빚어진다. 물론 이 행동이라는 것은 사회적 영향을 받는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좀 더 자유롭게 혹은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오늘의 우리를, 그러니까 여자로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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