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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육체로 각자의 삶을 산다. 성실하게 맡은 바를 다하고, 가정을 꾸리며 행복과 자존심을 지켜간다. 그것은 손에 잡히는 소소한 행복이다.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것이지만 그를 위해서는 깊은 곳에서부터 꿈틀거리는 열정을 억눌러야 할 때가 많다. 달궈진 마음을 한곳에 온통 쏟아붓다 보면, 가까이 있는 누군가는 비워진 자리를 또 다른 힘으로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는 도전해보기로 했다. '우주인'이 되어보기로,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해보기로 한 것이다.
우주인을 공개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그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4차까지 합격하게 되었고, 이제 실전 훈련을 하러 러시아로 떠난다. 소설은 그 과정들을 그리고 있다. 일상의 중력에서 벗어나 꿈을 향해 끝까지 가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험기, 혹은 성장기쯤 되겠다. 입에서 나온 치약 거품도 일일이 거즈로 잡아내야 한다는 우주선 속의 일상은 평범한 우리에게 차라리 판타지에 가깝다. 가상으로라도 평생 한번 체험해보기도 어려운 그것을 열심히도 중력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구체적으로 묘사된 우주인 훈련 과정은 그들의 노력을 만질 수 있는 것으로 형상화시켜 주었다. 그 톡톡한 현실감 덕분에, 조여오는 듯한 긴장감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우주인은 물론이고 우주선, 아니- 평소에 하늘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 않는 나는 그들 중 누가 우주인으로 선발될 것인지에 큰 관심이 없었다. 누구라도 되겠지, 싶었다. 네 명이 최종 훈련을 받게 되었고, 그중 두 명이- 아니 한 명만이 우주선에 탑승하게 된다고 했을 때, 그제서야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묘한 긴장감이 생생했다. 경쟁이 있는 동안에는 살얼음을 딛듯이 조심하고, 말을 겸손하게 아껴야 한다. 선량하게 책임을 다하려고만 하면 상대는 나의 급소를 찔러온다. 그 관계들이, 마치 '중력'같다고 생각했다. 중력은 바람과 강, 밀물을 당길 때는 공평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갈 때는 오로지 개별적일 뿐이다.
그러다 유진이 우주인으로 최종 선발되었을 때, 또 한 번 앗차 싶었다. 읽는 동안 왜 이소연을 기억해내지 못했을까. 괜한 마음에 '하지만 여자들이라고 해서 왜 그런 꿈이 없었겠어요. 소년잡지의 화보나 과학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꿈을 가졌다가도 현실이 허용하지 않겠다고 어렴풋이 깨달으면서 마음을 접고 한때 동경했다는 사실마저 차츰 잊어버리는 것이지요.(본문 중에서, 252-253쪽)'하고 이야기했던 부분을 다시 찾아 읽었다.
오늘의 나는 아무런 긴장감 없이 우주선의 카운트다운을 바라보고 있는, 아니 지나가던 인터넷 뉴스에서 슬쩍 보고 마는 어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 사이에 누군가의 끓어오르는 마음이 있었구나, 생각하니 나의 오늘을 돌아보게 됐다. 그래서인지 "너는 끝까지 가보았으니까, 꿈이 스러져가도 최대치를 다했으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야..."하는 말은 위로가 되었다가 절망이 되었다가 했다. 나는 끝까지 가보지 못했으니까, 아니- 어떤 방향으로 가보면 좋을지도 잃어버렸으니까. 그럼에도 힘을 얻는 것은 그들 역시 때가 되면 지상으로 돌아와 평범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무중력은 잠시- 중력은 오래 우리를 지킬 것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