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지막 히어로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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빰 빠바밤 빠바밤...

<Eye of the Tiger>의 전주곡이 그녀의 관자놀이를 때리고 목구멍에 이어 가슴을 치다가 온몸에서 울린다. 스탤론이 어찌할 바를 모른다. 스탤론이 샌드백을 친다. 스탤론이 뛴다. 그녀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샌드백을 치고 그와 함께 뛰는 것 같다. 덥다. 땀이 난다. 조금만 더... 더는 할 수가 없다. 입이 마르고 목이 탄다. (본문 중에서, 12쪽)

 

영화 초반의 록키 발보아처럼 되는 대로 살면서 죽어가고 있던 리즈는 록키 발보아처럼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게 해준 그 영화, 그 장면. 그녀는 다시 훈련을 시작하는 록키 발보아처럼 의과대학 공부를 다시 시작해 의사가 되었다. 독립을 했고, 결혼을 했으며, 아이를 낳았다. 그녀의 삶이 변화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스탤론이 출연하는 모든 영화를 보러 다닐 것이다.’라는 약속을 지켜냈다. 스탤론 덕분에 그녀의 인생이 달라졌으니, 그에게 빚을 진 것이나 다름없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스탤론 덕분에 권투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남편 ‘장’을 만났으니까)

 

리즈가 스탤론을 보며 힘을 내고, 다시 일어나고, 그를 걱정하는 것을 보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히어로를 생각했다. 서재응. 그가 처음으로 나를 일으켜 세운 순간은 마운드 위에서가 아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상대 타자에게 홈런을 맞고 교체되던 투수를 위로해주러 마중 나온 때였다. 그는 진심을 다해 동료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을 때도, 잘못했을 때도 언제나 거기에 그가 있었다. 상대의 마음을 미리 읽고 배려하는 것이 몸에 짙게 베인 사람이라 좋았다. 그가 던지는 공은 어떨까 궁금했다. 그의 성적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만한 무엇은 안되었지만, 그가 은퇴할 때 타이거즈 팬들은 마음으로, 한 방울쯤의 눈물은 다들 흘렸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 모두, 그로부터 (우리 눈물 한 방울보다 더 진한) 위로와 에너지를 받았으니까.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 해, 야구장에 가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나의 히어로를 생각하며 소설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그제야 보였다. 그녀의 (언젠가 스탤론에게 돈이 필요할 경우를 위해 준비한) 비밀 계좌는 그녀를 '그녀로' 살게 해주는 원동력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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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구왕 서영
황유미 지음 / 빌리버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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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공이 한 아이의 몸통을 맞췄다. 검투사의 생사를 가르는 소리이자 양 팀의 승패를 결정짓는 소리였다. 결과는 '우리 편'이 아닌 '남의 편'의 승리로 끝났다. 남의 편은 모두 얼싸안으며 환호했고, 마지막까지 훌륭하게 싸운 용사에게 일제히 달려들어 공로를 치하했다. 승부에서 진 '우리 편'은 떫은 표정으로 승리 팀의 환호만 멀거니 지켜봤다. (본문 중에서, 36쪽) 그래도 그 경우에는 좀 나았다. 우리 편이든 남의 편이든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많은 경우에 우리는 혼자 남아 그 상황을 맞는다. 불편한, 하지만 불편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황유미의 소설집 <피구왕 서영>에는 표제작 '피구왕 서영'을 포함해 다섯 편의 짧은 소설이 실렸다. 이야기마다 제각각의 개성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했지만, 몇 가지 또렷한 공통점이 보였다. 첫째, 여성이라는 것. 둘째, 불편한 순간을 인지했다는 것. 셋째, (불편한 순간을 견뎌야 하는 건 본인이지만) 그 상황을 야기한 건 결코 자신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그녀들은 상황에 맞서기로 했다. '피구왕 서영'의 서영은 옆에 있으면 학교생활이 편해지는 현지 대신, 친구들 사이에서는 왕따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더없이 편안하게 해주는 윤정을 선택했고, '물 건너기 프로젝트'의 주영은 어려서 들은 무당의 말을 보란 듯이 이겨내고 공항으로 향한다.

단 한 번도 편안했던 적 없는 하이힐을, 전혀 취향에 맞지 않지만 계절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사던 화려한 색감의 블라우스를 이제서야 버린다. 그녀들의 자기 인식이, 인식에 뒤따르는 행동이 나를 덩달아 변화시켰다.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폭력적인 세상인데, 왜 나는 불편하다고 말하지 못했던가. 우리의 삶이란 모두 각자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합의한 적 없는 피구 같은 단순한 규칙에 우리 모두의 삶을 몰아넣고 있는가, 하고. 그리고 다독인다. 몸통을 맞추고 툭, 떨어지는 피구공은 피구라는 세계에서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지만, 내 삶은 결코 피구라는 단순한 규칙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 좀 더 자유로워도 좋지 않겠는가. 어항에서만 살아온 금붕어는 어항 밖의 세상이 곧 죽음이라 생각할 테지만, 모를 일이다. 저수지는 어떤지, 강은 어떤지. 상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가 있을지도. 그러므로 응원한다. 서영, 윤정, 희수, 까만 옷을 입은 여자, 그리고 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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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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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육체로 각자의 삶을 산다. 성실하게 맡은 바를 다하고, 가정을 꾸리며 행복과 자존심을 지켜간다. 그것은 손에 잡히는 소소한 행복이다.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것이지만 그를 위해서는 깊은 곳에서부터 꿈틀거리는 열정을 억눌러야 할 때가 많다. 달궈진 마음을 한곳에 온통 쏟아붓다 보면, 가까이 있는 누군가는 비워진 자리를 또 다른 힘으로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는 도전해보기로 했다. '우주인'이 되어보기로,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해보기로 한 것이다.

 

우주인을 공개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그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4차까지 합격하게 되었고, 이제 실전 훈련을 하러 러시아로 떠난다. 소설은 그 과정들을 그리고 있다. 일상의 중력에서 벗어나 꿈을 향해 끝까지 가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험기, 혹은 성장기쯤 되겠다. 입에서 나온 치약 거품도 일일이 거즈로 잡아내야 한다는 우주선 속의 일상은 평범한 우리에게 차라리 판타지에 가깝다. 가상으로라도 평생 한번 체험해보기도 어려운 그것을 열심히도 중력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구체적으로 묘사된 우주인 훈련 과정은 그들의 노력을 만질 수 있는 것으로 형상화시켜 주었다. 그 톡톡한 현실감 덕분에, 조여오는 듯한 긴장감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우주인은 물론이고 우주선, 아니- 평소에 하늘 한번 제대로 쳐다보지 않는 나는 그들 중 누가 우주인으로 선발될 것인지에 큰 관심이 없었다. 누구라도 되겠지, 싶었다. 네 명이 최종 훈련을 받게 되었고, 그중 두 명이- 아니 한 명만이 우주선에 탑승하게 된다고 했을 때, 그제서야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묘한 긴장감이 생생했다. 경쟁이 있는 동안에는 살얼음을 딛듯이 조심하고, 말을 겸손하게 아껴야 한다. 선량하게 책임을 다하려고만 하면 상대는 나의 급소를 찔러온다. 그 관계들이, 마치 '중력'같다고 생각했다. 중력은 바람과 강, 밀물을 당길 때는 공평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갈 때는 오로지 개별적일 뿐이다.

 

그러다 유진이 우주인으로 최종 선발되었을 때, 또 한 번 앗차 싶었다. 읽는 동안 왜 이소연을 기억해내지 못했을까. 괜한 마음에 '하지만 여자들이라고 해서 왜 그런 꿈이 없었겠어요. 소년잡지의 화보나 과학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꿈을 가졌다가도 현실이 허용하지 않겠다고 어렴풋이 깨달으면서 마음을 접고 한때 동경했다는 사실마저 차츰 잊어버리는 것이지요.(본문 중에서, 252-253쪽)'하고 이야기했던 부분을 다시 찾아 읽었다.

 

오늘의 나는 아무런 긴장감 없이 우주선의 카운트다운을 바라보고 있는, 아니 지나가던 인터넷 뉴스에서 슬쩍 보고 마는 어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스쳐 지나가는 순간 사이에 누군가의 끓어오르는 마음이 있었구나, 생각하니 나의 오늘을 돌아보게 됐다. 그래서인지 "너는 끝까지 가보았으니까, 꿈이 스러져가도 최대치를 다했으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야..."하는 말은 위로가 되었다가 절망이 되었다가 했다. 나는 끝까지 가보지 못했으니까, 아니- 어떤 방향으로 가보면 좋을지도 잃어버렸으니까. 그럼에도 힘을 얻는 것은 그들 역시 때가 되면 지상으로 돌아와 평범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무중력은 잠시- 중력은 오래 우리를 지킬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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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도 지음 / 새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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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지금 네 수수료의 1,000배를 벌 수 있다면, 그 대가로 무엇을 바칠 수 있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그는 그 말이 개소리라고 했다. 사람들은 절대 위험을 먼저 판단한 다음에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눈앞에 어마어마한 이익이 놓여있으면 우선 그것을 취한 다음 그에 따른 대가를 생각한다. 위험부터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신입 브로커인 익현에게 '번호표'의 존재도 그런 것이었다.

어마어마한 이익을 쉐어하며 '번호표'가 익현에게 지시한 일은 생각보다 간단한 것이었다. 익현은 그저 그가 지시한대로 주문을 넣기만 하면 됐다. 자판 몇 번 누르고, 클릭 몇 번 하는 것으로 수십억, 수백억이 왔다갔다 했다. 그 짧은 사이에 증시는 요동치고, 어떤 회사는 무너지기도, 또 어떤 사람은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익현이 하는 일은 그런 일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우리가 한참이 지나도록 그것을 몰랐던 것과 마찬가지로, 익현도 몰랐을 것이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 잘못한 일도 아니다. 그는 그저 브로커답게, 주문을 받았고 주문을 넣었을 뿐.

증권사에서 흔히들 쓰는 용어들은 낯설었다. 군데군데 친절하게 주석을 달아 설명을 더해두었지만, 그것을 읽어도 쉬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증권사의 분주한 긴장감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타닥타닥, 딸깍딸깍 하는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 긴장된 목소리들. 그 사이에서 어느 날은 탄성이 나오기도 하고, 한숨이 나오기도 하는 그런 곳. 독자인 나는 사무실 구석 어디에서 믹스커피나 휘휘 저으면서 긴장감을 즐기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의도에 가면, 정말이지 동명증권이- 그 사무실 안에는 익현이 앉아있을 것만 같다. 증시라고는, 증권사 브로커라고는 전혀 관심없던 내게도 이 소설의 짜임새는 현실성을 얹어주었다. 그래서인지 읽는동안 여러번 김진명의 소설들이 떠올랐다. 동시에, 곧 스크린에서 만나게 될 익현과 번호표의 모습도 그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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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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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70년대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다. 한국 고전영화를 보면서부터 시작된 이것은 '한국 영화 볼 거 뭐 있어?'하던 엄마 아빠 세대의 야유를 뛰어넘는 날카로운 것이었다. (엄마 아빠 세대의 한국 영화란 80년대의 것으로, 실로 80년대의 한국 영화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상품에 가깝다) 이 책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70년대를 배경으로 쓰인 작품이다. 오늘을 살면서 50년 전의 그때를 돌이켜 쓴 것이 아니라, 바로 그때- 당대의 이야기를 쓴 것이기 때문에 싱싱하기가 이를 데 없다.

70년대가 흥미로운 것은, 그때의 한국 사회가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면적으로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던 때이므로, 그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각양각색이었다. 누군가는 변화를 빠르게 감지하고 땅을 사고 아파트를 사들였던가 하면, 누군가는 어리둥절한 채로 사라지는 흙에 오줌을 누었다. '급변'이라는 두 글자에 미처 다 담지 못할 만큼 커다란 변화가 매일같이 일어났으므로, 여성 잡지에 기고되었다는 이 짧은 콩트도 그것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외려 그 가운데 있었다 해야 정확할지 모르겠다) 속물적인 인간상이 등장하고, 물신주의가 태동하던 때- 앞 동에 사는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어 남편에게 앞치마를 입히고, 저는 소파에 다리 꼬고 앉은 모양새는 그 자체로 콩트가 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여성'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었다. 아들을 가진 예비 시어머니의 고압적인 태도라던가, 맞선 자리에 선 남녀의 상반된 태도, 워킹맘들끼리의 저녁 모임, 가족보다 '식구'가 먼저 떠오른다는 그녀까지. 소설 속에는 구시대적 모성관과 여성의 역할부터 지금 당장 광화문 광장에서 외쳐도 낯설지 않을 페미니즘적 구호까지 한데 담겨 있었다. 계몽적이다 못해, 당시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이었을 그 글들을 2019년에 읽으며 나는 밑줄을 박박 그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선영이나 고스펙을 가진 후남의 삶이 녹록지 않은 것이 단지 시대적인 배경이라 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살 수 있는데도 같이 살고 싶은 남자를 만남으로써 결혼은 비로소 아름다운 선택이 되는 것이지 혼자 살 수가 없어 먹여 살려줄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결혼이란 여자에게 있어서 막다른 골목밖에 더 되겠느냐는 게 후남이의 생각이었다.

박완서,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 3' 중에서

 

동시에, 50년 전에도 그랬던 것이 여전하다면- 내 딸아이가 살아갈 30년 후의 나날들도 오늘 같을까 걱정이 되었다. 작가는 "사람 사는 집은 다 비슷하단 사실이 놀랍고 유쾌하다."썼지만, 한편으로는 무섭고 소름 돋기도 했다. 이제는 모두 사라졌을 것 같은 가부장적 태도, 고부갈등, 아들 선호 사상 같은 것들이 여전히 어딘가에는 남아 은근슬쩍 옆구리를 후비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명절을 지나면서 이 책을 읽게 되어 다행이라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이유로, 이번 명절은 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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