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구왕 서영
황유미 지음 / 빌리버튼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툭."

공이 한 아이의 몸통을 맞췄다. 검투사의 생사를 가르는 소리이자 양 팀의 승패를 결정짓는 소리였다. 결과는 '우리 편'이 아닌 '남의 편'의 승리로 끝났다. 남의 편은 모두 얼싸안으며 환호했고, 마지막까지 훌륭하게 싸운 용사에게 일제히 달려들어 공로를 치하했다. 승부에서 진 '우리 편'은 떫은 표정으로 승리 팀의 환호만 멀거니 지켜봤다. (본문 중에서, 36쪽) 그래도 그 경우에는 좀 나았다. 우리 편이든 남의 편이든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많은 경우에 우리는 혼자 남아 그 상황을 맞는다. 불편한, 하지만 불편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황유미의 소설집 <피구왕 서영>에는 표제작 '피구왕 서영'을 포함해 다섯 편의 짧은 소설이 실렸다. 이야기마다 제각각의 개성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했지만, 몇 가지 또렷한 공통점이 보였다. 첫째, 여성이라는 것. 둘째, 불편한 순간을 인지했다는 것. 셋째, (불편한 순간을 견뎌야 하는 건 본인이지만) 그 상황을 야기한 건 결코 자신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그녀들은 상황에 맞서기로 했다. '피구왕 서영'의 서영은 옆에 있으면 학교생활이 편해지는 현지 대신, 친구들 사이에서는 왕따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더없이 편안하게 해주는 윤정을 선택했고, '물 건너기 프로젝트'의 주영은 어려서 들은 무당의 말을 보란 듯이 이겨내고 공항으로 향한다.

단 한 번도 편안했던 적 없는 하이힐을, 전혀 취향에 맞지 않지만 계절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사던 화려한 색감의 블라우스를 이제서야 버린다. 그녀들의 자기 인식이, 인식에 뒤따르는 행동이 나를 덩달아 변화시켰다.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폭력적인 세상인데, 왜 나는 불편하다고 말하지 못했던가. 우리의 삶이란 모두 각자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합의한 적 없는 피구 같은 단순한 규칙에 우리 모두의 삶을 몰아넣고 있는가, 하고. 그리고 다독인다. 몸통을 맞추고 툭, 떨어지는 피구공은 피구라는 세계에서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지만, 내 삶은 결코 피구라는 단순한 규칙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 좀 더 자유로워도 좋지 않겠는가. 어항에서만 살아온 금붕어는 어항 밖의 세상이 곧 죽음이라 생각할 테지만, 모를 일이다. 저수지는 어떤지, 강은 어떤지. 상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가 있을지도. 그러므로 응원한다. 서영, 윤정, 희수, 까만 옷을 입은 여자, 그리고 나, 우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