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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장현도 지음 / 새움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만약 지금 네 수수료의 1,000배를 벌 수 있다면, 그 대가로 무엇을 바칠 수 있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그는 그 말이 개소리라고 했다. 사람들은 절대 위험을 먼저 판단한 다음에 이익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눈앞에 어마어마한 이익이 놓여있으면 우선 그것을 취한 다음 그에 따른 대가를 생각한다. 위험부터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신입 브로커인 익현에게 '번호표'의 존재도 그런 것이었다.
어마어마한 이익을 쉐어하며 '번호표'가 익현에게 지시한 일은 생각보다 간단한 것이었다. 익현은 그저 그가 지시한대로 주문을 넣기만 하면 됐다. 자판 몇 번 누르고, 클릭 몇 번 하는 것으로 수십억, 수백억이 왔다갔다 했다. 그 짧은 사이에 증시는 요동치고, 어떤 회사는 무너지기도, 또 어떤 사람은 목숨을 끊기도 했다. 익현이 하는 일은 그런 일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우리가 한참이 지나도록 그것을 몰랐던 것과 마찬가지로, 익현도 몰랐을 것이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 잘못한 일도 아니다. 그는 그저 브로커답게, 주문을 받았고 주문을 넣었을 뿐.
증권사에서 흔히들 쓰는 용어들은 낯설었다. 군데군데 친절하게 주석을 달아 설명을 더해두었지만, 그것을 읽어도 쉬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증권사의 분주한 긴장감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타닥타닥, 딸깍딸깍 하는 키보드와 마우스 소리,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 긴장된 목소리들. 그 사이에서 어느 날은 탄성이 나오기도 하고, 한숨이 나오기도 하는 그런 곳. 독자인 나는 사무실 구석 어디에서 믹스커피나 휘휘 저으면서 긴장감을 즐기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의도에 가면, 정말이지 동명증권이- 그 사무실 안에는 익현이 앉아있을 것만 같다. 증시라고는, 증권사 브로커라고는 전혀 관심없던 내게도 이 소설의 짜임새는 현실성을 얹어주었다. 그래서인지 읽는동안 여러번 김진명의 소설들이 떠올랐다. 동시에, 곧 스크린에서 만나게 될 익현과 번호표의 모습도 그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