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게는 70년대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다. 한국 고전영화를 보면서부터 시작된 이것은 '한국 영화 볼 거 뭐 있어?'하던 엄마 아빠 세대의 야유를 뛰어넘는 날카로운 것이었다. (엄마 아빠 세대의 한국 영화란 80년대의 것으로, 실로 80년대의 한국 영화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상품에 가깝다) 이 책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70년대를 배경으로 쓰인 작품이다. 오늘을 살면서 50년 전의 그때를 돌이켜 쓴 것이 아니라, 바로 그때- 당대의 이야기를 쓴 것이기 때문에 싱싱하기가 이를 데 없다.

70년대가 흥미로운 것은, 그때의 한국 사회가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면적으로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던 때이므로, 그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각양각색이었다. 누군가는 변화를 빠르게 감지하고 땅을 사고 아파트를 사들였던가 하면, 누군가는 어리둥절한 채로 사라지는 흙에 오줌을 누었다. '급변'이라는 두 글자에 미처 다 담지 못할 만큼 커다란 변화가 매일같이 일어났으므로, 여성 잡지에 기고되었다는 이 짧은 콩트도 그것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외려 그 가운데 있었다 해야 정확할지 모르겠다) 속물적인 인간상이 등장하고, 물신주의가 태동하던 때- 앞 동에 사는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어 남편에게 앞치마를 입히고, 저는 소파에 다리 꼬고 앉은 모양새는 그 자체로 콩트가 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여성'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었다. 아들을 가진 예비 시어머니의 고압적인 태도라던가, 맞선 자리에 선 남녀의 상반된 태도, 워킹맘들끼리의 저녁 모임, 가족보다 '식구'가 먼저 떠오른다는 그녀까지. 소설 속에는 구시대적 모성관과 여성의 역할부터 지금 당장 광화문 광장에서 외쳐도 낯설지 않을 페미니즘적 구호까지 한데 담겨 있었다. 계몽적이다 못해, 당시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이었을 그 글들을 2019년에 읽으며 나는 밑줄을 박박 그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선영이나 고스펙을 가진 후남의 삶이 녹록지 않은 것이 단지 시대적인 배경이라 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살 수 있는데도 같이 살고 싶은 남자를 만남으로써 결혼은 비로소 아름다운 선택이 되는 것이지 혼자 살 수가 없어 먹여 살려줄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결혼이란 여자에게 있어서 막다른 골목밖에 더 되겠느냐는 게 후남이의 생각이었다.

박완서,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 3' 중에서

 

동시에, 50년 전에도 그랬던 것이 여전하다면- 내 딸아이가 살아갈 30년 후의 나날들도 오늘 같을까 걱정이 되었다. 작가는 "사람 사는 집은 다 비슷하단 사실이 놀랍고 유쾌하다."썼지만, 한편으로는 무섭고 소름 돋기도 했다. 이제는 모두 사라졌을 것 같은 가부장적 태도, 고부갈등, 아들 선호 사상 같은 것들이 여전히 어딘가에는 남아 은근슬쩍 옆구리를 후비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명절을 지나면서 이 책을 읽게 되어 다행이라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이유로, 이번 명절은 잘 보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