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기차 여행
로버트 버레이 지음, 웬델 마이너 그림, 민유리 옮김 / 키위북스(어린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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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밤 기차'는 열다섯 살 때였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무궁화호 기차였는데, 일행과 의자를 마주 보게 돌려 앉아 야식을 나누어 먹고(삶은 달걀!), 간간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창밖을 내다보고, 그러다 깜빡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을 자꾸 내다보았던 것은 기차가 주는 덜컹거림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다는 감각을 상기시켰기 때문일 테다. (물론 당시엔 서울에 대한 판타지도 있었고, 또 엄마 아빠 없는 여행이었다는 점도-물론 선생님이 계셨지만- 설렘 포인트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칙칙폭폭 칙칙폭폭, 깊은 밤 어둠 속으로."

 

이 그림책 <밤 기차 여행>은 그날을, 그날의 나를 꼭 닮았다. 아이는 온통 까만색인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하나 둘 떠오르는 색깔들을 수집해나간다. 차단기에서 반짝이는 빨간 신호등, 멀리 보이는 헛간의 푸른 창, 하얗게 빛나는 별, 네온사인에서 빛나는 보라색 화살표, 노란 달님까지. 온통 까맣거나 회색이던 창밖 풍경이 눈부신 아침 햇살 에 닿자 세상이 눈부시게 빛난다. 어쩌면 기차는 어느 도시에서 또 다른 도시로 달려온 것이 아니라 어둠에서 빛으로, 깜깜했던 어제에서 눈부신 오늘로 달려온 것일지 모르겠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요"

 

일렁이는 꿈,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 색깔들, 빛과 그림자, 그리고 기차. 밤을 가로질러 앞으로- 또 앞으로 달려온 기차는 화려한 빛 속에 아이와 엄마를 내려주고 또 달려간다. 문득 아이의 '그날'이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아이는 밤 기차를 탔던 것일까. 그게 무엇이었건, 아이에게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일이 있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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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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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골이 오싹해지도록 공포가 내 몸을 덮치는 순간은 언제인가. 내 경우에 온몸의 털이 삐죽 솟는 순간은 아주 일상적인 때였던 것 같다. 억지로 만들어진 공포의 순간에는 의외로 좀 담담해진다. 그래서인지 공포 영화를 보거나 호러 소설을 읽어도 무덤덤했다. (호러보다 스릴러를 선호하는 편!)

 

실로 오랜만에 읽는 ‘호러’ 소설이었다. 한겨울에 출간된 호러 신간이라니- 조금 낯설다 싶었지만 읽고 보니 외려 겨울에 더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이 책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에 실린 소설들은 뭔가 좀 달랐다. 독자에게 ‘공포감’을 일으킨다는 중요한 미션을 안고 있으면서도 이야기를 공포로 가득 채우려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랬다. 공포의 여백을 메우는 것은 애틋하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한 어떤 감성이었다. 분명히 있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지랑이 같기도 하고 한 조각의 빛 같기도 했다. 그 일상성이 좋았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마주하게 되는 기이한 일들을 차곡차곡 잘 담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재가 다양했던 것, 주제가 깊었던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상대적으로 쉬이 휘발되고 마는 ‘공포’라는 감정이 '상실'과 '재생', '사랑' 등의 감정들과 결합하여 미묘한 기류를 생성해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이야기들이 가진 힘일 것이다. 단 한 방울로도 오래 존재감을 드러내는 향수처럼.

 

그제야 띠지에 적힌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슬프고도 기이한 서정 호러 미학의 정점'. 책을 읽기 전에는 어떤 느낌인지 와닿지 않던 것이 책을 읽고 나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동시에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그는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나.

이 책에 수록된 '이불 속의 우주'는 그런 점에서 나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이해하지 못할 세계는 아니지만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세계가 그렇게 만들어졌겠거니, 했다. 아무것도 없는 암흑 속에서 떠올라 어슴푸레한 상태로 작가의 의식 주변을 떠도는 그것을 양손으로 붙잡아 소중하게 끌어안았구나.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구나. 이제 그의 또 다른 이름이 쓴 연애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묘하게 퍼어렇고, 또 아슬아슬한 호러였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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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미트 - 인간과 동물 모두를 구할 대담한 식량 혁명
폴 샤피로 지음, 이진구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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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말할 수도 없이 오래된 이야기다. 인류는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사냥을 했고, 고기를 먹었다. 맞다. 우리는 고기를 좋아한다. 고기 중심의 식단이 우리 몸에 아무리 나쁜 영향을 준다 해도,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고기를 선택한다. 그러는 사이 수십억 마리의 닭과 수천 마리의 소가 도축되고 있다. 미국에서 식용으로 도축되는 소는 매해 3,500만 마리, 닭은 90억 마리라고 한다. 칠면조까지 포함시키면 미국에서만 매일 1초에 300마리에 가까운 숫자가 도축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단지 수치로만 환산할 문제가 아니다. 육우는 생애 초반을 방목지에서 보내고 비육장에 들어간 후에도 야외에서 돌아다닐 수 있다. 하지만 육용 닭이나 칠면조, 오리는 주로 창문 없는 창고에 수만 마리씩 평생 동안 갇혀 있다. 또한 도축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유전자를 변형한 탓에 급격하고 부자연스러운 체중 증가가 일어나 상당수는 만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본문 중에서, 209쪽)

우리가 카트에 담는 고기와 우유, 달걀을 얻기 위해 사육되는 동물들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좋았을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육류 소비의 문제점은 비단 '동물의 공장식 사육'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건강, 기후 변화, 식품 안보, 지구의 자원과 관련한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공장식 사육은 신선한 물을 고갈시키고, 항생제를 과잉 소비하게 하고, 삼림 파괴를 주도하며, 사람들을 먹이는 효과적인 방법도 아니다. 가축에 들어가는 곡물은 인간의 수요를 뛰어넘는다. 그렇다면 우리, 이 광기를 멈춰야 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고기를 좋아한다. 해서 누군가는 생각했다.

"근육을 배양해서 키우면 어떨까? 세포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바로 만들어내는 거지."

 

그렇게 배양 고기가 만들어졌다. 근육을 만들어내는 근위성세포를 추출하여 배양 고기를 만드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는 이 고기는 아직까지는 너무 비싸고, 많은 법적 규제에 걸려 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누가 그 고기를 먹는단 말이야? 난 '자연스러운' 고기가 좋다고.)- 이 모든 것들이 금세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우리가 먹는 것 중에 진정으로 '자연에 가까운' 식품이란 이미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럽지 않은 방법으로 길러낸 크고 달콤한 사과 대신 작고 파삭파삭한 사과를 먹을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물론 청정 고기가 시장에서 인기를 끌지라도 '구식 생산 기법'으로 만든 고기를 먹고 싶은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년 억 단위로 증가하는 인구 중 상당수는 더 효율적이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생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고기를 기꺼이 선택할 것이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읽으면서는 확신이 들었다. 이것이야말로 고기의 미래라고. 자동차가 말과 마차, 그리고 그를 둘러싼 우리의 생활양식을 송두리째 바꾸었듯 축산업도 바뀔 것이라고. 배양 고기가 일상이 될 미래에는 가축을 먹는 행위는 상상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상도, 이제는 해봄직하지 않은가.

"참치, 호랑이, 소, 돼지 등 어떤 동물이든 줄기세포를 티백 형태로 판매하여 부엌에서 편안하게 나만의 고기를 키울 수 있습니다.(본문 중에서, 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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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나라의 헬리콥터 맘 마순영 씨
김옥숙 지음 / 새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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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났을 때, 작디작은 몸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제 몸이 자라는 만큼 먹고, 자고, 배변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예뻤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몸을 뒤집고, 흥밋거리를 찾아 몸을 움직이는 모습은 그 자체로 완벽했다. 그랬던 마음이 아이가 조금씩 커가면서 희미해진다. 어떤 아이는 벌써 제 이름을 쓸 줄 안다던데, 어떤 아이는 혼자 책을 읽는다던데, 어떤 아이는 원어민과 대화를 나눈다던데-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안 하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는?'하고 비교하게 된다. 내 아이가 그 아이보다 낫다 싶으면 이상한 안도감이 들고, 내 아이가 부족하다 싶으면 불안함에 입술을 살짝 깨물게 된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그 정도의 감정이 내 일상을 갉아먹지는 않지만- 아이가 좀 더 크고, 본격적으로 학업의 세계에 뛰어들 나이가 되면 나의 마음이 또 어떻게 변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 좀 무섭기도)

소설 <서울대 나라의 헬리콥터 맘 마순영 씨>는 서울대에 대한 남다른 로망을 가지고 있다. 본인은 갈 수 없었던 그곳에 아들 영웅이만은 꼭 보내겠노라고 결심하고, 그날을 위해 달린다. 마순영 씨는 공부를 잘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부만 잘하면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다고, 용이 될 거라고 믿었다. 세상이 아무리 금수저의 것이라 해도,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은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믿음 아래 영웅이는 서울대에 꼭 가야만 했다.

다행히도 영웅이는 똑똑한 아이였다. '넘사벽 엄친아'처럼 모든 면에서 완벽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공부를 곧잘 했다. (수업 시간에는 맨날 자지만, 시험은 잘 보는 아이랄까)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줄 알았더니, 중학교 입학 배치 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해 엄마를 기대하게 하고, 내신을 완전히 망쳐 과학고와 멀어지나 싶더니- 또 과학집중반이 있는 명문고에는 척하고 붙는다. 그럴 때마다 마순영 씨는 속이 탔다. 빠듯한 살림을 더 꽉 쥐어짜 영웅이의 교육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들쭉날쭉한 영웅이의 성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로마법 안 따라도 잘만 살고 있잖아. 난 반 모임 그런 데 절대 안 나가. 나가보면 괜히 속 시끄러워.

엄친아, 엄친딸 이야기 듣고 오면, 내 애가 괜히 못나 보이고, 다른 애들 사교육 뭐 시킨다는 이야기 들으면 내 아이도 시켜야 할 것 같고,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해지거든. 옆집 엄마가 기준이 된단 말이지.

난 처음 한두 번 가보고 그냥 이건 아니다 싶어서 안 나가기로 마음먹었잖아. 그러니 속 편해. (본문 중에서, 104쪽)

 

알면서도 잘 안됐다. 이미 마순영 씨 안의 '불안함'이 너무나도 커져버린 뒤였기 때문이다. 영웅이를 서울대에 보내야겠다는 마음은 어디에 내놓아도 안 빠지는 번듯한 상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일지 몰랐다. 실패해도, 넘어져도 괜찮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는 순영 씨였기에. 실패해서, 넘어져서 너무 힘들었던 순영 씨였기에. 소설이 오로지 마순영씨의 입장에서 쓰였기 때문인지, '서울대'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에도, 영웅이를 괴롭히는 엄마의 기대감과 압박에도 그리 큰 거부감이 일지 않았다. 영웅이가 걱정되었지만, 영웅이는 엄마가 꽉 움켜쥔다고 쥐어지는 아이는 아니었으므로- 제 나름의 즐거운 청소년기를 보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다만 마순영씨가 슬프고, 안타까웠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비교만 하지 않으면 모든 존재는, 모든 아이는 그 자체로 완벽하며,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으며- 또 존재 자체가 찬란한 빛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 높고 낮고, 빠르고 느리고, 크고 작고, 많고 적고, 못하고 잘하고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모든 아이가, 모든 존재가 달라서 더욱 특별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비교만 하지 않으면 아이는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으며 그 존재만으로도 이미 충분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비교가 지옥을 만든다는 것도 역시, 알지 못했다.

너무 오래 걸리면 나오기 힘드니까, 밖에서 좀 도와줘야 해.

안에서 병아리가 이렇게 껍질을 깨면, 이렇게 밖에서도 잘 깨지도록 도와줘야 해.

 

영웅이가 유정란을 부화기에 넣고 실험하던 장면이 깊게 남았다. 부화 직전, 마순영 씨와 영웅이는 꿈틀대는 알을 사이에 놓고 '줄탁동시'를 이야기했다. 그 순간, 마순영씨가 나올 준비도 안된 병아리를 꺼내려고 껍질을 깨버린 어리석은 짓을 했던 엄마가 바로 자신이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했던 것처럼- 나도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자라고 있던 불안함과 시기심 같은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이에게는- 도움이 꼭 필요한 순간에만, 도움을 원할 때만 손을 내밀겠다고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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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간선언 - 증오하는 인간, 개정판
주원규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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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광화문 광장 단상에 목사님이 오르셨더랬다. 경제(대기업)와 정치가 유착되어 있는 것이야 모르는 이 없지만, 정치적 결단을 바라는 어느 집회에서 목사님이 마이크를 잡고 종북을 이야기하는 걸 보니 조금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의 논리는 그만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것이었다. 나는 당최 그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설 <반인간선언>은 기업과 정치, 종교가 어떻게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지를 추리물의 형식을 차용해 보여준다. 이야기는 서희가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의 자리를 채우면서 시작된다. 그날,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던 날- 서희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벌써 이혼한 지 1년 된, 전 남편의 손이 광화문 광장에서 발견되었다는 것. 이후 서희에게 남편 정상훈의 발과 귀, 입, 눈, 머리 심장이 차례대로 보내지고, 보인다. 깔끔하게 도려내어져 소독된 전 남편의 신체에서 서희는 무엇을 발견해낼까. 대체 누가, 상훈의 몸을 잘라내 광장에 전시하고 있는 것일까. 대체 왜.

인류는 이윤이란 단어에 매력과 천박함을 동시에 느끼지. 하지만 이윤은 그 자체로는 '무'야. 소멸의 없음이 아닌 무의미로서의 없음인데 인류의 공생, 지속 가능한 번영을 지향하면 무의미는 의미가 되고, 그 반대 경우라면 무의미의 무의미가 되겠지. 기업이 사투를 벌이는 방향은 무의미의 의미화야.

무의미는 의미 없음이고, 의미가 없다는 건 의미를 모른다는 거야. 의미는 흡사 살아 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정신처럼 존재하지. 그런데 존재하는 것을 없다고 주장하고 그렇게 믿는 존재들이 섬기는 신은 재앙이네. 여기서부터 종교의 역할이 필요하네. (본문 중에서, 83쪽)

챕터가 끝날 때마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모호한 인터뷰가 조각조각 실렸다. 누구의 말인지 모르는 것은 둘째치고, 그 내용을 읽어도 의중이 쉬이 파악되지 않았다. 종교인이 기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슥- 읽었을 때는 끄덕여지다가도 곱씹을수록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상훈이 남긴 메세지의 비밀번호를 풀어, 서희가 그 원문을 확인한다. CS 화학 사보에 실린 정영문 사회통합위원장의 인터뷰였다. 그는 상훈의 양아버지이기도 했다. 두 번 버려진 아이들을 그러모아 제 사람으로 만들었던 정영문은 CS 화학, 또 정치인들과 함께 어떤 일을 꾸미고 있었던 것일까. 그의 아들이면서도, 그의 행각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했던 상훈과 승호는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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