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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미야가와 사토시 지음, 장민주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월
평점 :
이른 아침, 무심결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만화는 오랜만이네, 하며 소파에 털썩 앉아 몇 장 넘기다가 이내 정자세로 고쳐앉았다. 책은 엄마와의 이별을 그리고 있었다. 암 선고를 받고 아팠던 엄마, 엄마의 장례식장, 엄마가 없는 일상들, 그리고 엄마의 추도 5주기까지- 읽는 내내 쓸쓸하고 슬펐지만, 동글동글한 작가의 그림체가 외려 그 슬픔을 눌러주는 듯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물이 팍, 하고 터져 나왔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 사이 해가 떴고, 아이가 일어났다.
아이의 머리를 묶어주면서 평소보다 더 오랫동안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말없이 안겨있다가 "엄마, 걱정하지 마. 어린이집 갔다가 금방 올 거야!"라고 말했다. 아이를 등원시킨 후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먼저 전화했는데, 엄마는 연신 내 걱정만 했다. 끼니를 제때 챙기라는 잔소리를 오늘도 또 들었다. 벌써 15년째 듣고 있는 잔소리가 오늘은 왠지 귀찮지 않았다. 아마도 오늘 아침에는, 언젠가 내게도 올 '엄마가 없는 일상들'을 상상했기 때문에.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엄마가, 또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를 자주 상상해왔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 하는지, 타지에 나와서 살고 있는 내가 어떻게 고향에 가야 하는지,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 장례식이 끝나면 무엇을 정리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곤 했다. 그게 맏이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마냥 눈물만 흘리고 있을 수는 없을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책을 보며 생각했다. 그런 다짐이 다 무슨 소용일까, 백만 번 그 상황을 상상해본들 닥쳐올 그날은 새로운 것. 엄마, 아빠가 건강한 오늘- 그날을 막연히 '상상'하는 것과 그날이 '현실'이 된 어느 날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게다가 나는- 단 한 번도 '엄마가 없는 일상들'을 생각해본 적 없다는 것도, 책을 읽는 동안 알았다. 진짜 슬픔은 북적대는 장례식장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온 후에 찾아온다는 것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달을 눈물로 지낸 엄마가 보고 싶었다.
'내 딸이니까' 뭐든 잘 될 거라고 얘기해준, 언제나 내 편인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뭐랄까, 엄마의 유골을 먹고 싶었다는 작가의 마음도 어렴풋이 알겠다고나 할까. 그런 마음이었다.
언젠가 나도 죽어서 이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질 테고 무르고 새하얀 뼈만 남게 되겠지.
하지만 그때가 되면 아프거나 힘들거나 하는 세상의 일에서 해방된 후일 테니 나쁘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나를 불쌍하게 여기지는 않아도 된다.
네가 몹시 슬픈 이유는 틀림없이 아직 네 안에 ‘죽음‘과 ‘외로움‘이 뒤섞여 있는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1년쯤 지나면 ‘죽음‘을 외로움과 떨어뜨려 놓고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죽음‘의 정체를 알게 되면 그 외로움도 조금씩 치유되어 갈 거야. ‘시간이 약‘이지.
나는 네가 ‘죽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의식을 가지기 바란다.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할수록 ‘죽음‘에는 의미가 더해져 간다.
나도 요새 어쩐지 죽음에는 에너지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부모의 죽음에는 아이의 인생을 움직일 정도로 엄청난 힘이 있어.
슬프다, 슬프다 하면서 울다가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새로운 일들이 시작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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