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갗 아래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에 관한 에세이
토머스 린치 외 지음, 김소정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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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7살 겨울, 나는 혹독한 나날을 보냈다. 그날 밤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내 몸의 일부가 완전히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저녁으로 먹은 것을 몽땅 게워냈고, 이후에는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다. 일주일 동안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나는 장이 내 몸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잠시라도 멈추면 나의 모든 일상이 흐트러진다는 것도.

우리는 누구나 몸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결코 몸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대개의 순간, 우리는 몸을 잊고 산다. 피부라는 경계 안의 우리 몸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또 늘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어 일상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몸에 대해 간과해왔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엄청난 경이로움에 사로잡혔다. 우리 몸에 관한 가장 아름답고, 또 가장 시적인 에세이집인 이 책 <살갗 아래>는 각각의 신체 부위를 고찰함으로써 인간이라는 지적인 동물을 이해하고자 한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15개의 신체 기관 중에는 눈, 코, 귀와 같이 비교적 명료하게 다가오는 것도 있지만, 담낭, 콩팥, 갑상샘과 같이 알지만 모르는 것도 있었다. 에세이집에 참여한 15명의 작가는 각자가 선택한 신체 기관에 대해서 깊게 사유하고 자기만의 것들을 풀어냈다.

 

눈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연결해주지만 아주 묘한 외로움을 드러내는 기관이기도 하다.

눈은 두개골 안에 자리 잡고 뇌라는 단독의 특이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것은 자기 자신만 알 수 있다는 특별함을 지닌다. (본문 중에서, 167-168쪽)

 

몰랐던 것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지식을 탐미했고, 종국에는 가장 시적인 형태로 사유했다. 해서 각각의 글 속에는 적당한 과학적(혹은 의학적) 지식이 포함되어 있다. 일전에는 전혀 알려고 들지 않았던 분야기 때문에 때때로 흥미로웠고, 때로는 지루했다. 하지만 그 과학적 지식들이 각자의 언어로 태어날 때는 늘 경이롭지 않을 수 없었다. 예컨대- 시가 그 시의 풍성함으로 읽는 사람이 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일시적인 호흡 장치라고 표현하며 '시의 호흡은 리듬이라는 형태로 우리 폐에 자극을 준다(51쪽)'라고 덧붙인 부분이나, '귀는 단순히 우리 몸 안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라고 부르는 모든 일이 일어나는 뇌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문이자 현관이다(77쪽)'라고 표현하며 <햄릿>의 한 장면을 재해석 한 부분, 프로메테우스 신화와 간의 재생 능력을 함께 서술한 부분에서 나는 완전한 지적 충격을 받았다.

우리 몸이 복잡하게, 하지만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책도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시가 '육체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된 만큼, 우리 몸과 정신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놀라웠다. 책은 내내 흉곽 안으로 들어간 공기를 전율하게 해 폐가 침착하게도, 성급히 돌진하게도 만들었다. 이 완벽한 리듬의 조화를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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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진실 - 우리는 어떻게 팩트를 편집하고 소비하는가
헥터 맥도널드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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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이다. 중국 정부는 2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확진 판정을 받았음을 공지했고, 이 수치는 시시각각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올라가고 있다. 우한의 어느 시장에서 시작되었다지만, 우한 어딘가에 있는 화학 연구소가 바이러스의 근원지라는 소문도 있고, 우한 내에만 이미 9만여명의 감염자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확진자 수가 현저하게 적은것은 시험 키트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돌고 있다) 들려오는 소식에 불안감은 가중된다. 예민해진만큼 귀를 쫑긋 세우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모두 (가짜 뉴스가 아니라) '진실'일 것이다. 조금만 각도를 틀어보면 전혀 달라보이는 진실의 실체는 이렇게- 우리를 불안으로 내몬다.

불안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정보를 갈구한다. ‘진실된 정보’가 있으면, 그래서 우리를 불안에 빠트리는 그것의 실체를 알고나면 불안이 해소될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진실은 우리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가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이슈가 되는 사안이라면 여러 측면의 진실을 품고 있게 마련이고, 그 중 어느 부분을 골라 이야기할지는 발언자 마음이다. 누가 어느 진실을 골라서 말하느냐에 따라 해당 문제에 대한 시각들이 바뀐다.

실시간으로 확진자가 늘어나는 와중에 우한시에 갇혀있는 사람들의 '오늘'이 유튜브에 끊임없이 업데이트된다. 그들은 저널리스트도 아니고 사회학자도 아니지만, 단지 우한시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뢰'를 얻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언제쯤 잠잠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 그들의 오늘은 강력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생생한 체감 수치가 된다. 하지만 어느 한 쪽이 '더 신뢰할만한 것'이라 여겨진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 영상을 지속적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진실의 어느 한 측면 내지는 어느 한 해석쪽으로 기울게 마련이다.

우리 의견에 담긴 내용은 내가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공간과 긴 시간, 수많은 대상에 걸쳐 있다. 그렇기 떄문에 내 의견은 '남들이 알려준 내용'과 내가 상상하는 내용을 끼워 맞춘 것일 수밖에 없다. (본문 중에서, 26쪽)

 

'남들이 알려준 내용'은 우리가 '지각하는 현실'을 구성한다. 우리는 각자의 지각을 바탕으로 행동을 취하기 때문에 남들이 알려주는 내용은 '객관적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경합하는 진실은 현실을 좌우한다. 경합하는 진실은 사고방식에 정보를 제공하고, 사고방식은 이후의 모든 선택과 행동을 결정한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은 정보로 구성되어 있다. 더 이상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이 세상의 정보를 정리해서 어느 게 더 중요한 진실이고, 어느 것은 오해를 의도한 거라고 알려주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직접 그 일을 해야만 한다. 내가 어떤 진실을 듣느냐가 내 사고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을 또렷하게 인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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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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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은 박완서 선생님의 모든 책, 그중에서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만을 모았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지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건너 뛰고 책을 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는 작가의 짧은 소회와 감사의 인사말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만을 한데 모아두니 왜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인지 알겠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글이 쓰이고 나서, 몇 번의 편집을 거친 후에야 쓰인다. 모르긴 몰라도 그 사이 꽤 많은 시간이 끼어들었을 것이다. 출간 제의를 받고 느꼈던 설렘, 글을 쓰면서의 괴로움, 탈고의 기쁨, 편집자와 숱한 의견이 오가던 사이의 수백 가지 감정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그 감정들의 끝에서 쓰는 글이었다. 그제야 왜 모든 작가들이 프롤로그에 감사의 인사말을 쓰는지 알 것 같았다. 지난하고 고된 작업이었더라도, 무사히 끝났음에- 그리하야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음에(또 누군가 그 프롤로그를 읽고 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동시에, 지난 십수 년 동안 그녀의 글을 읽어왔으면서도 그녀를 전혀 알지 못했던 내게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이 여기 있노라고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진솔하게 자기 얘기를 하고 계셨는데 전혀 눈치채고 있지 못했다니. 왠지 모를 죄송한 마음마저 일었다.

출판사에 대한 고마움, 편집자에 대한 미안함, 글에 대한 부끄러움이 동시에 읽혔다. 이걸 또 책으로 내도 되나, 하는 쑥스럽고 부끄러운 마음 사이에서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강한 자부심도 느껴졌다. 하고 싶은 말을 감추지도, 과장하지도 않은 담백하고 당당한 '프롤로그-에필로그'를 읽으며 아직 읽지 못한 선생님의 글이 많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완서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신지도 9주기가 지났다. 하지만 어쩐지 아직까지도 믿기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여전히 우리가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선생님의 문장 몇 개 사이에서 울고 웃기 때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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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유골을 먹고 싶었다
미야가와 사토시 지음, 장민주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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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무심결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만화는 오랜만이네, 하며 소파에 털썩 앉아 몇 장 넘기다가 이내 정자세로 고쳐앉았다. 책은 엄마와의 이별을 그리고 있었다. 암 선고를 받고 아팠던 엄마, 엄마의 장례식장, 엄마가 없는 일상들, 그리고 엄마의 추도 5주기까지- 읽는 내내 쓸쓸하고 슬펐지만, 동글동글한 작가의 그림체가 외려 그 슬픔을 눌러주는 듯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물이 팍, 하고 터져 나왔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 사이 해가 떴고, 아이가 일어났다.

아이의 머리를 묶어주면서 평소보다 더 오랫동안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말없이 안겨있다가 "엄마, 걱정하지 마. 어린이집 갔다가 금방 올 거야!"라고 말했다. 아이를 등원시킨 후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먼저 전화했는데, 엄마는 연신 내 걱정만 했다. 끼니를 제때 챙기라는 잔소리를 오늘도 또 들었다. 벌써 15년째 듣고 있는 잔소리가 오늘은 왠지 귀찮지 않았다. 아마도 오늘 아침에는, 언젠가 내게도 올 '엄마가 없는 일상들'을 상상했기 때문에.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엄마가, 또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를 자주 상상해왔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 하는지, 타지에 나와서 살고 있는 내가 어떻게 고향에 가야 하는지,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 장례식이 끝나면 무엇을 정리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곤 했다. 그게 맏이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마냥 눈물만 흘리고 있을 수는 없을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데 책을 보며 생각했다. 그런 다짐이 다 무슨 소용일까, 백만 번 그 상황을 상상해본들 닥쳐올 그날은 새로운 것. 엄마, 아빠가 건강한 오늘- 그날을 막연히 '상상'하는 것과 그날이 '현실'이 된 어느 날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게다가 나는- 단 한 번도 '엄마가 없는 일상들'을 생각해본 적 없다는 것도, 책을 읽는 동안 알았다. 진짜 슬픔은 북적대는 장례식장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온 후에 찾아온다는 것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달을 눈물로 지낸 엄마가 보고 싶었다.

'내 딸이니까' 뭐든 잘 될 거라고 얘기해준, 언제나 내 편인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뭐랄까, 엄마의 유골을 먹고 싶었다는 작가의 마음도 어렴풋이 알겠다고나 할까. 그런 마음이었다.

언젠가 나도 죽어서 이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질 테고 무르고 새하얀 뼈만 남게 되겠지.

하지만 그때가 되면 아프거나 힘들거나 하는 세상의 일에서 해방된 후일 테니 나쁘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나를 불쌍하게 여기지는 않아도 된다.

네가 몹시 슬픈 이유는 틀림없이 아직 네 안에 ‘죽음‘과 ‘외로움‘이 뒤섞여 있는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1년쯤 지나면 ‘죽음‘을 외로움과 떨어뜨려 놓고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죽음‘의 정체를 알게 되면 그 외로움도 조금씩 치유되어 갈 거야. ‘시간이 약‘이지.

나는 네가 ‘죽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의식을 가지기 바란다.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할수록 ‘죽음‘에는 의미가 더해져 간다.

나도 요새 어쩐지 죽음에는 에너지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부모의 죽음에는 아이의 인생을 움직일 정도로 엄청난 힘이 있어.

슬프다, 슬프다 하면서 울다가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새로운 일들이 시작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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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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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고등학교 시절에 만나 사십 대가 된 지금까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는 진경과 세연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잔가지를 뻗어 은정의 이야기를, 채이, 경혜, 윤슬, 형은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닮은데라고는 전혀 없는 듯한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탓에 서사는 하나로 잘 뭉쳐지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이 소설이 세연이 쓰려고 했던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여성들의 우정’에 관한 책일지도 모르겠다고.

젊은 여성들은 분노하고, 나이든 여성들은 염려한다. 어떤 여성들은 그들에게 강요되었던 꾸밈노동을 거부하는 탈코르셋을 실천하고, 다른 여성들은 탈코르셋이 또 하나의 규범이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다. 전업주부와 워킹맘, 기혼녀와 비혼녀는 개인의 선택의 범주를 넘어 서로 절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다. 서로의 입장과 처지가 너무나도 다르기에 선뜻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다. 그저 서로를 흘깃거리며 ‘쯧쯧’하고 혀를 차거나, 그녀들의 삶이 나의 삶보다 낫기를 아주 잠깐 기도할 뿐.

소설 속에는 그 쭈삣거리는 시간들이 생생하게 녹아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싶지만, 전혀 이해되지 않던 시간들. 지레짐작으로 오해했던 시간들이 살아있다. 사회가 만들어 씌운 ‘진짜 페미니스트 vs 가짜 페미니스트’, ‘과격한 꼴페미 vs 개념녀’ 구도를 벗겨내니 그들은 모두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것 뿐이었다. 누구의 엄마이거나 아내이기 이전에, 그저 한 여성으로서의 ‘내 삶’이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 희미한 지점들을 소중하게 발견해 겹쳐놓으니 익숙하지만 새로운 여성들의 세계가 펼쳐졌다.

 

물과 기름이라고 생각했던 적대적인 관계에 아주 약간의 점성이 생기는것을 발견하니 마음이 뜨끈해졌다. 약간의 점성을 만들어준 매개가 ‘대화’라는 점에는 별을 백개쯤 그려두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152쪽 즈음부터 시작되어 164쪽까지 이어지는 세연과 진경의 대화를 몇번이고 반복해 읽었다. 서로를 향해 처음으로 있는 힘껏 뻗은 두 손은 뜨거웠다. 그 뜨거움의 경험이 두 사람의 관계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한때의 나는 탈코르셋 운동을 보고 ‘저렇게 까지 해야하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각자의 방식이 다를 뿐, 우리는 모두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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