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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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고등학교 시절에 만나 사십 대가 된 지금까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는 진경과 세연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잔가지를 뻗어 은정의 이야기를, 채이, 경혜, 윤슬, 형은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닮은데라고는 전혀 없는 듯한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탓에 서사는 하나로 잘 뭉쳐지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이 소설이 세연이 쓰려고 했던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여성들의 우정’에 관한 책일지도 모르겠다고.

젊은 여성들은 분노하고, 나이든 여성들은 염려한다. 어떤 여성들은 그들에게 강요되었던 꾸밈노동을 거부하는 탈코르셋을 실천하고, 다른 여성들은 탈코르셋이 또 하나의 규범이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다. 전업주부와 워킹맘, 기혼녀와 비혼녀는 개인의 선택의 범주를 넘어 서로 절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다. 서로의 입장과 처지가 너무나도 다르기에 선뜻 서로에게 다가갈 수 없다. 그저 서로를 흘깃거리며 ‘쯧쯧’하고 혀를 차거나, 그녀들의 삶이 나의 삶보다 낫기를 아주 잠깐 기도할 뿐.

소설 속에는 그 쭈삣거리는 시간들이 생생하게 녹아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싶지만, 전혀 이해되지 않던 시간들. 지레짐작으로 오해했던 시간들이 살아있다. 사회가 만들어 씌운 ‘진짜 페미니스트 vs 가짜 페미니스트’, ‘과격한 꼴페미 vs 개념녀’ 구도를 벗겨내니 그들은 모두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것 뿐이었다. 누구의 엄마이거나 아내이기 이전에, 그저 한 여성으로서의 ‘내 삶’이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 희미한 지점들을 소중하게 발견해 겹쳐놓으니 익숙하지만 새로운 여성들의 세계가 펼쳐졌다.

 

물과 기름이라고 생각했던 적대적인 관계에 아주 약간의 점성이 생기는것을 발견하니 마음이 뜨끈해졌다. 약간의 점성을 만들어준 매개가 ‘대화’라는 점에는 별을 백개쯤 그려두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152쪽 즈음부터 시작되어 164쪽까지 이어지는 세연과 진경의 대화를 몇번이고 반복해 읽었다. 서로를 향해 처음으로 있는 힘껏 뻗은 두 손은 뜨거웠다. 그 뜨거움의 경험이 두 사람의 관계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한때의 나는 탈코르셋 운동을 보고 ‘저렇게 까지 해야하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각자의 방식이 다를 뿐, 우리는 모두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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