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부부 오늘은 또 어디 감수광 - 제주에서 찾은 행복
루씨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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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그림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을까, 한참 고민하다 이 그림을 골랐다. 좌우로 길쭉하게 솟아오른 야자수와 그 아래 대칭 아닌 대칭으로 놓인 돌이 오묘한 안정감을 주었고, 두 마리 고양이 뒤로 펼쳐진 넘실대는 파도는 그들의 삶이 만들어내는 파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물론, 색감도 너무 좋았다. 민화이면서도,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민화였다. 아니, 이렇게 힙하다니! 이렇게 힙한 작가를 이제야 알았다니! 하는 마음으로 신나게 책장을 넘겼다.



이 책 <고양이 부부 오늘은 또 어디 감수광>은 제주를 민화로 그리고 있는 동양화가 루씨쏜의 에세이다. 제주의 아름다움에 반해 제주에 정착했다는 그녀는 제주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동시에 '루씨쏜 아뜰리에'라는 제주 민화 갤러리를 오픈해서 그림 수업도 하고, 전시도 한다. 남편과 아기, 고양이 도롱이도 돌본다. 책은 그녀의 삶 가운데 그녀가 했던 생각들이 어떻게 작업으로 이어졌는지, 그리하여 이 작품들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 차근차근 들려준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굉장히 사적인 도슨트랄까.


'고양이 식당'은 남편의 식당을 그린 것이고, '제주 플리마켓'은 세화해변에서 열리는 벨롱장에 참여했던 경험을 그린 것이다. 그녀가 남편과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시간들을 거쳐 부부가 되었고- 또 어떻게 제주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들었으므로, 그녀가 남편의 식당에서 어떤 생각을 할지, '고양이 식당'을 어떤 마음으로 그렸을지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그런 마음이라, 그저 예쁜 민화 한 점으로 그칠 수 없었다. 마당에 심긴 귤 나무, 뒤로 보이는 바다, 본인은 '개'이면서도 '고양이'를 좋아해서 고양이 식당을 열었다는 그 마음, 마당을 뛰노는 고양이 한 마리. 그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제주 플리마켓'도 마찬가지다. 그날, 그들이 누구에게 어떤 물건을 팔았는지, 또 다른 셀러들에게서 무엇을 샀는지- 우리는 다 공유했다. 그러니까 이 작품들은 내게도 '어떤 시간'이다.



매일 똑같아 보이는 일상의 풍경도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때때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삶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큰일처럼 느껴졌던 일들이 작은 점으로 느껴지고, 시끄러웠던 머릿속이 오름의 풍경처럼 고요하고 잔잔해진다. 누군가는 인생을 끝없는 오르막길이라고도 하고 소풍 길이라고도 한다. 기왕 걷는다면 소풍 길이라 여기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나를 위로하는 것도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도 모두 나다. 삶이 힘을 땐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높은 곳에 올라가 풍경을 바라본다. 거리를 두고 본 내 삶은 그 풍치만큼이나 언제나 아름답다. (본문 중에서, 51쪽)



저자가 우리에게 나누어 준 시간 가운데는 '행복'이 가득가득 들어차있다. 욕심 많은 성격이었던 그녀는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따라가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렸더라고 지난날을 회고했다. 숨차고 힘든 나날을 뒤로하고, 그들은 '내가 가진 숨만큼만' 살겠다고 결심했다.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우리는- 내가 가진 숨만큼만 살 때도 있지만, 가진 숨보다 많은 숨을 욕심내기도 한다. 이런 욕심은 때로 생각지도 못한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더 높은 확률로 나 자신을 힘들게 만든다. (숨을 욕심내면 당장은 많은 수확을 얻을지 몰라도- 오래 버티기 힘들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를 차분하게 건네는 저자의 목소리가 따뜻한 울림이 되어 돌아왔다.


물론, 힙하디 힙한 그녀의 작품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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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씽킹 WEALTHINKING (양장) - 부를 창조하는 생각의 뿌리
켈리 최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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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을 따라 쓴 보물지도 가운데 '돈'과 관련한 것은 딱 한 줄, '책 살 돈만 벌고 열심히 놀자'밖에 없다. 여기서의 '책'에는 비단 책뿐만 아니라 책으로 대표되는 문화생활 일체를 망라한 것이기도 하고, 책만 하더라도 적게 사는 편은 아니기에 구체적으로 수치화하지는 않았지만 '책 살 돈'이라는 게 아주 작은 금액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달에 얼마를 벌고, 나머지는 놀자! 가 아니라 '책 살 돈'만 벌고 나머지는 놀자라고 쓴 것은 돈에 연연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것은 돈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이미 쓸 만큼은 있어요, 이런 건 더더욱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늘 '돈 안되는 일'이었고, 그럼에도 그 일들이 내게 좋았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재미있는 일 쪽을 택하겠다는, 일종의 의지 표현이기도 했다.



그렇게 살아왔다. 충분한 돈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나-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원하는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책도 실컷 봤다. 빌려보기도 하고, 사서 읽기도 하고, 서평단이나 가끔 출판사에서 조건 없이 책을 보내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도움들을 빌어 한량처럼 살 수 있었다. 원했던 삶이었고, 충분히 좋았다. 이만하면 만족스러우니, 돈을 더 바랄 이유도 없다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게 됐다. 만약 내게 돈이 많았더라면, 나는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현실은 우리가 아는 원리, 그러니까 돈이 돈을 벌고, 배경 좋은 사람들이 기회를 잡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돈과 배경을 이길 수는 없는, 그런 원리로 흘러갈지 모른다. 우리는 자주 그런 서글픈 현실을 목도해왔다. 그래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우리는 절대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못할 거라 지레짐작하고 포기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본문 중에서, 72쪽)



아주 솔직히는 '돈이 많은 사람'이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돈이 돈을 번다는, 개인의 재능과 노력이 돈과 배경을 앞서기 힘들다는 현대사회의 경제 논리에는 동의하더라도 굳이 '돈이 많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해서, 이 책이 던지는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보았다. 나에게 부자란 무엇인가, 나에게 돈이란 무엇인가 하고. 나열한 것 가운데 욕망하는 워딩은 없었지만, 부정하는 워딩도 없었다. 내게 돈은 그런 것이었다. 어떤, 도구.



하여, '돈'이라는 도구로 말미암아 더 좋은 것들을 많이 나눌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이 책이 매력적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냥 돈을 많이 벌자, 어떻게 하면 많이 벌 수 있다! 하는 것보다- 돈을 벌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가운데 '나눔'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실로 돈을 버는 일 또한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이뤄내기 힘들다. '나'만을 생각하던 것에서, '너'를 생각하고, 그리하야 내가 가진 것 가운데 '네가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줄 수 있을 때 돈이 필요하고, 돈이 벌린다. 그 묘한 관계의 순환 사이에 돈이 오고 간다는 게 새삼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뭐랄까, 이런 게 돈 버는 일이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뭔가 돈을 버는 일을 '온라인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왜 그렇게까지? 그냥 나누어 드릴게요, 싶은 마음이었는데- '잘' 벌고, 잘 흘려보내면 그보다 더 좋은 경제활동도 없겠다는 생각이다. 자, 이제 뭘 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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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 박서련 일기
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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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친구가 있다. 어느 날은 봤다가, 어느 날은 보지 않았다가- 그렇게 띄엄띄엄 친구의 일상을 만났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동생이 그 친구의 일기를 매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 그래? 하고 물었을 때는 조금 놀라서였고, 재밌어서!라고 했을 때는 어쩐지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친구는 그저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일종의 의식처럼 일기를 쓴다고 했다. 너무 오래 해온 일이라 빼먹은 날이면 어쩐지 찜찜하다고. 그래서 날짜가 며칠 지났더라도 기어코 그날의 일기를 쓴다고 했더랬다. 지구력이라고는 약에 쓸래도 찾아볼 수 없는 나로서는 친구의 오랜 습관이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런 습관이 내 친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네?



이 책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는 작가 박서련의 일기 모음집이다. 그가 이제까지 써왔던 무수한 일기 가운데 이 정도면 모두에게 공개해도 되겠지? 싶은 것들을 추린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기는 일기라 굉장히 사적인 기록이다. 그와 일면식도 없고, 접점을 찾기도 힘든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꽁꽁 숨어있는 무언가를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새벽시간의 탐앤탐스, 마라샹궈, 맥모닝, 위트앤시니컬같은 것. 내게도 어느 순간의 키워드가 될만한 것들을 바위 아래 숨겨진 보물을 찾듯 꺼내와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폈다. 글 쓰고, 게임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 커피와 맥주를 마시는 작가이면서 청년이면서, 한국인인 박서련은 그렇게 나와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평행선을 그어갔다.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이 좀 그려지려나, 싶기도 했지만 끝내 그런 일은 없었다. 뭔가 암호화되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사실 그녀의 일상을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을 만큼 집중해서 읽지도 못했다. 다만, 그 경쾌한 기분이- 어깨에 힘을 다 빼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써 내려갔다는 '느낌'만이 남아 '일기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아, 연말연시에 일기 쓰고 싶은 일기라니, 너무나도 적절했다!)



지난 일기를 읽은 H가 왜 일기에 자기 얘기는 안 써주냐고 했다. 만나야 쓰지, 하고 심드렁하게 대꾸하고 나서 어떤 사람 생각을 했다. 스무 살 때 이글루스 블로그 쓰던 나한테 누가 영화예매권 두 장을 선물한 적이 있다. 오로지 내 일기에 언급되고 싶어서. 그게 뭐라고 이런 짓을 하나요, 물었더니 네 일기는 재미있고 네 일기에 내 이름이 나오면 나도 재미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뭐 그런 대답을 들었던 기억이다. 그 사람에 대한 최종적인 인상이 아주 나쁜 것과는 별개로, 이 하나는 내게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기억되고 있다. (본문 중에서, 137-138쪽)



나란 사람은 워낙 충동적이면서도 재미는 없는지라- 아무리 어깨에 힘을 빼고 쓴다 한들 그렇게 가볍고 유쾌한 일기가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의식의 흐름을 좇다 보면, 어? 언제 내가 여기에 닿았어? 하는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르고, 그것이 내게 재미있는 자극이 될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재미있어하고, 나를 살리고, 내가 먹는, 혹은 잊을 수 없는 일들. 뭐, 그런 것들 모두가 나하고 나 사이의 일이니까, 나와 나 사이의 어떤 지점들을 내 마음대로 써보려고 한다. (재미없으면 뭐 또 어때, 그것 또한 어쩔 수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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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프리퀀시 트리플 9
신종원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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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가는 실제 보드게임의 공용 장비인 구각뿔 주사위 두 개를 반드시 사용할 것.


2) 텍스트는 주사위를 굴려 나온 합: 0~99 사이의 값만큼만 전진할 수 있다.


3) 주사위를 굴리는 횟수는 열 번으로 제한하는데, 열 개의 평면 픽션을 새로운 십면체 주사위의 눈으로 구부려 접기 위함이다.


4) 위의 세 가지 게임 규칙은 석촌동에 거주하는 게임 기자이자 보드게임 마스터 이명규의 마스터링 아래 협의되었다. (아나톨리아의 눈, 본문 47쪽)



1.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를 좋아한다. 세 편의 소설이 한 권에 모이는 방식을 통해 작가는 일반적인 소설집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해볼 수 있을 테고, 독자는 당대의 새로운 시도들을 시차 없이 마주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하여 이 책도 반가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하지만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오랫동안 덮어두었다. 나는 또 한 번 나의 난독증을 의심해야 했다. 그러다 어제, 새해 첫 외출을 준비하면서 이 책이 다시 눈에 띄었다. 가방에 넣기 좋은 적당한 사이즈와 볼륨감... 때문이기도 했으나, 한 살 더 먹었으니 지난해의 내가 못 했던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영민하게, 해설부터 읽었다.



2. 나보다 먼저, 깊게 이 소설을 마주한 문학평론가 이소는 감탄이거나 낙담인 사이에 이 소설이 있을 것이라고 썼다. 그 말에 기대감이 일었다. 먼저의 경험은 낙담에 가까웠으나, 감탄이 될 수도 있을까? 싶었다. 그 문장에 기대 세 편의 소설을 읽었다.



3. 책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은, 다른 색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같은 팔레트를 쓴다. '아나톨리아의 눈' 서두에 등장하는 게임 규칙이 세 편의 소설에 모두 적용된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보기도 했더랬다. 소설가인 그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로 성실하게 게임 규칙을 따르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이번에 굴릴 주사위에 어떤 숫자가 나올지 그도, 나도-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고, 그러니 이야기는 어디로 향하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그것이 처음에는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더랬고, 나중에는 아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세 편의 소설이 모두 같은 규칙으로 쓰여진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 데는 화자와 직접 대결하는 외부의 목소리가 설정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였다. '고스트 프리퀀시'의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저자는 그의 내부를 돌아다니며 청각에, 시각에, 혹은 꿈에 결함을 일으키는 목소리를 작품 내부에 직접 내려앉히는 방식으로 작품을 써나갔다. 그리하여 세 편의 소설은 누군가의 독백인 것 같으면서도, 대화인- 하지만 누구와 나누는지 모를 어떤 대화처럼 빚어졌다.



4. 그 대화의 밖에서, 온전히 제3자의 눈으로 소설을 읽는 나로서는- 그러므로,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듣고 있는 소리가 내게는 들리지 않고, 그에게는 보이는 것이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의 꿈같이, 그에게는 분명히 보인다는 변기 위의 귀신같이. 그럼에도 어떤 장면들은 아주 흥미로웠다. 특히 따옴표를 쓰지 않고 66과 99를 쓰던 친구는 오래 남았다. 그가 대학에 가서 쓴 빈 페이지들을 보며 적잖이 감탄했다. 그건, 아무나 내보일 수 없는 용기니까.



무언가 픽션이 되면 그것은 사라진다. 소설가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든 목소리는 굽이치는 파흔을 남기게 마련이며, 그러므로 글쓰기는 오래전부터 잉크를 빌려 목소리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안티노이즈로 사용되어왔던 것이다. 따라서 소설가는 다시 불을 끈다. 주위를 더듬어 의자에 다가가 앉는다. 거기서 그가 하는 것은 단지 듣는 것이다. 어둠 또는 희미한 분광의 심박을 헤아려보듯, 작은 녹음기의 두 귀를 앞으로 내민 채.


3, 2, 1... REC [●] (고스트 프리퀀시, 98-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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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와쿠다 미카 지음, 오현숙 옮김 / 길벗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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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는 거의 안 읽는 편이지만, 육아서는 가끔 먼저 찾아 읽게 된다. 내 고민에 대해서는 '조금 돌아가면 어때, 그 안에서도 분명 얻는 게 있을 거야.'하고 너그러워지는 부분도 아이에 대해서만큼은 왠지 모르게 불안하거나 조급한 마음이 드는 것은- 아이의 어제가 오늘과 완연하게 다르다고 느껴질 만큼 아이의 성장이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아이의 오늘은 나의 오늘과 그 가치가 같다고 느껴지지 않게 되고, 아이의 시간이 빨리 흐르는 만큼이나 뭔가 더 해줘야 할 것 같은, 혹은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우리 집 꼬맹이는 여섯 살. 이제 보름 뒤면 '예비 초등'이라는 일곱 살이 된다. 일곱 살을 앞두니 주위에서 "채니는 요즘 어떤 거 해?", "내년엔 어떻게 할 거야?", "학원은 어디 안 보내고?" 하는 말들을 심심찮게 듣게 된다. 내년에도 학습 관련한 계획이 전혀 없는 나는 '그냥 올해처럼 지내는 거지, 뭐'하고 말지만, 그들의 머리 위에 뜬 물음표는 쉽게 내게 전염되어 '뭔가 해야 하는 건가?'하는 생각을 또 한 번 하게 된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특별한 계획도 없으면서 아이는 다그치는 상태'가 되었다. 자주 잔소리를 늘어놓게 되고, 이유 없는 화가 치밀기도 했는데- 그 원인이 모두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면서,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왜 나는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못했을까?

'아이가 말을 안들어요'가 아니라,

'엄마가 내 말을 안 들어줘요'는 아닐까?


칭찬을 하든, 꾸짖든- 중요한 것은 '훈육'이고, 억지로 바꾸려고 한다고 해서 아이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지난 5년간의 육아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자꾸만 꾸짖는 목소리가 입 밖으로 먼저 튀어나왔다. 인정하고, 가르치고, 전달하고, 생각하게 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시키겠다고 머리로는 다짐해도, 실천은 잘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잘 안됐다. 요즘 아이의 서사는 캐릭터 하나로 시작해 끝도 없이 공상의 세계로 빠졌다가 30여 분을 무중력의 상태로 헤매고 나서야 맺어지기 마련인데, 그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이야기의 짜임새가 탄탄할 리 없으니, 자꾸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등장하거나 갑자기 사건이 종결되고 다른 상황으로 점프하기도 하고=_=) 그럼에도, 들어줘야지. 암요 암요. 책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이가 흡족한 얼굴로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이야기를 들어주라고. 그런 경험들이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줄 테고, 부모와 신뢰가 쌓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모두 맞는 말이라 굳이 줄을 그을 것도 없었다. 괜히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한 번 더 들여다보며, 오늘은 너의 티니핑 세계관을 꼭 집중해서 들어줄게!하고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이 다짐은 눈녹듯 사라지고 없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경청'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정말이지 의식적으로라도 노력해 봐야겠다고는 생각한다. 눈 녹듯 사라지고 없으면, 내일 다시 결심할게. (아이뿐만 아니라- 남편에게도, 주위 사람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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