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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기쁨과 슬픔 - 너무 열심인 ‘나’를 위한 애쓰기의 기술
올리비에 푸리올 지음, 조윤진 옮김 / 다른 / 2021년 5월
평점 :
언젠가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느 집에 가든, 그 집의 개수대만 보면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개수대에 설거지가 쌓여있는가 아닌가,라는 단순한 척도로 그 집 주인을 평가하는 것 같아서 상당히 기분이 언짢았는데- 이 기분 나쁨의 실체는 사실 우리 집 개수대에 (지금도) 설거지 거리가 쌓여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모름지기 설거지란, 물에 불려두면 훨씬 쉽게 할 수 있고- 컵 두어 개를 씻는 것과 거기에 식기 너덧개가 더해진 것 사이에는 크게 설거지를 하는 시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설거지는 그때그때 해야 한다는 거죠?
베짱이를 경멸하고 개미를 본받으라고 배운 우리들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전전긍긍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현재를 즐기라는 말이나, '오늘만 산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동시에 '코인'과 '주식'에 용돈과 월급을 밀어 넣고 전전긍긍하는 것도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말로는 오늘만 살면서, 실은 모두 내일을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자기계발서는 오늘도 불티나게 팔린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유명해질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그 가운데 횡횡하는 '1만 시간을 투자해 보라'던지, '간절히 원하라'든지 하는 말은 그저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를 탓하는 화살로 돌아온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 <노력의 기쁨과 슬픔>은 '너무 애쓰지 말라'고 말한다. '오늘 밤에는 기필코 10시 전에 아이를 재우겠어!'라고 백만 번 되뇌어 봐야, 아이는 잠들지 않는다. '내일부터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스페인어 공부를 해야지!'하는 목표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10시 이전에 자는 것, 내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스페인어 공부를 하는 것은 아주 허무맹랑한 목표는 아니다.(할 수도 있겠지)(그랬던 날도 있고) 하지만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없지도 않은 이 목표는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하는' 나를 만들지 않고(또는 그것을 '해야 하는' 나를 만들지 않고) 목표만 세웠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그냥 나라는 존재 자체에 만족하면 돼. 나무는 열매를 맺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잖아. 누가 그 열매를 먹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이야. 감사 받으려고 선물을 주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좋으니까 주는 거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유지해야 해. 어떠한 경우에도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 행동하지 마. 자유롭게 행동하며 철저히 무심한 태도를 유지하는 게 더 좋은 전략이 될 거란 뜻이야. 최소한 나 자신의 모습을 지킬 수는 있을 테니까. 그리고 사랑이라는 게 꼭 사람을 향하지만은 않잖아. 사람을 사랑할 땐 언제나 상호성이 문제가 되니, 사람 대신 이런저런 것들, 이런저런 활동들을 사랑할 수도 있을 거야. 산책, 달리기, 수영, 독서, 요리 같은 것들을 사랑할 수 있겠지. 그림, 음악, 자연을 사랑할 수도 있을 테고. 자기가 사랑하는 일에 완전히 몰입하면, 주변의 상황이나 최종적인 목표를 인지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감정에 빠지기 때문에 그 일을 잘할 수밖에 없게 돼. 신기하게도 나 자신이 다른 것에 완전히 빠져 있을 때 내 모습이 가장 빛나는 거지. 어떤 모순인지 알겠지? 아무것도 보지 않고 눈앞의 일에만 열정적으로 몰입할 만큼 무언가에 푹 빠지면, 효율이 높아질 뿐 아니라 아주 매력적으로 보이게 돼.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잊고 마치 아무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그 순간에 비로소 가장 나다워지는 거야."
"이번에도 그 얘기네요.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지 않아야 이룰 수 있다는..."
"맞아. 사랑에 있어서는 그 효과가 특히 두드러져. '목표'는 자신이 목표물이 되었음을 아는 순간 다르게 행동하거든. 만약 목표에 지나치게 신경 쓰면, 목표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말 거야." (본문 중에서, 217-218쪽)
목표를 세우지 말라니! 세상만사에 호기심으로 가득한 나로서는 쉬이 그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관심의 폭을 넓히고 쉽게 새로운 일에 빠져들었다가 또 쉽게 식기도 하는 나였다. 무엇인가를 꾸준히 해야 어딘가에 닿을 수 있다면 있는 그대로의 나는 아무 곳에도 닿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런데, 아니었다. 꾸준히 하고자 '목표'로 삼았던 것들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냥 하던 것, 목표도 무엇도 아니지만 빼놓을 수 없는 루틴이 내게도 있었다. 예컨대 책을 읽고 감상을 남기는 것, 메모하는 것. 아무 생각 없이 이어오던 어떤 행동들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는- 아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와,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하는 지인의 감탄에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하고 무심하게 대답할 수 있는 그것. 바로 그것이 오늘의 당신이며, 그것만으로 당신은 충분하다고. 그러니까 이 책은, 매사에 너무 열심인 우리에게 '노력의 쓸모없음'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은 태도와 상상, 그리고 전치사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맞서거나, 그 안에 푹 빠졌거나, 위에 올라타거나, 함께하거나. 물론- 긴장하거나, 애쓰거나, 경쟁할 수도 있겠지만- 긴장을 내려놓고 받아들이고 굴복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조금 내려놓는다면- 삶은 스스로 정렬될 것이며,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거라고 이야기한다. 이게, 오늘의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