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회사 오신 날 - 사무실에서 따라 하면 성과가 오르는 부처의 말씀들
댄 지그몬드 지음, 최영열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5월
평점 :
절판


(킥킥킥) 일단 제목이 재미있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서류를, 다른 한 손에는 노트북을 들고 있는 표지 일러스트도 흥미롭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기대 부처님이 회사에 오신다면 어떨까 잠시 상상해보았다. 과연 그는 어떤 동료가, 또 어떤 상사나 후임이 될까? ... 사실 부처는 평생 단 하루도 일하지 않았다. 약 2500년 전 고대 인도에서 왕자로 태어난 싯다르타는 부유한 삶을 버린 채 떠돌이 수도승이 되었고, 존경받는 영적 스승으로 일생을 마쳤다. 급여를 받는 일은 고사하고, 어쩌면 평생 돈을 만져보지 않고 살았을지도 모른단다. 그런 부처가 우리의 '회사 생활'에 어떤 조언을 건넬까.



짧게 요약하자면 '올바른 생계'다. 스스로는 돈을 위한 일을 한 번도 한 적 없다만, 부처는 일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일을 해야 했다. 깨달음을 얻는 것이 온전히 수도자의 몫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부처는,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만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일을 '올바르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올바른 생계란, 우리를 지치게 하는 일이 아닌 진정으로 깨어나도록 하는 일을 하는 것. 나에게 적합한, 건강과 정신에 이로운, 나아가 세상에 이로운 어떤 일.



사실 이렇게 쓰고 보니 진부하기 그지없다. 종교적이거나 영적인 것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주의를 기울여라, 균형을 찾아라, 잘 먹고 잘 자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라, 건강한 목표를 세워라. 꼭 부처님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숱하게 들어왔던 조언들이다.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조언을 이미 오래전에 얻고도- 또 다른 조언을 찾아 헤매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나의 삶에 변화가 없기 때문. 그렇다면 부처가 되기 위해 절에라도 가봐야 하는 걸까. 아니, 이 책은 우리에게 불교신자가 되기를 권하지 않는다. (부처 역시 우리가 불교신자가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것 같다고도 쓰고 있다) 단지, 우리 스스로가 부처가 되기를 바랄 뿐.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불교는, 주의를 기울이고, 자신을 돌보고, 깨어나는 것의 중요성을 믿는다. (이는 어느 종교를 믿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부처는 실용적이었고, 유연했으며, 긍정적이었다. 때문에 그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사후 세계보다는 당장의 화살을 빼는 것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숨을 거두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을 섬으로, 피난처로 삼아라"고 말했다. '너 자신을 믿으라'니. 묘하게도 스스로가 조금은 단단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다른 무엇인가와 마찬가지로 '비어 있다'. 우리와 관련된 모든 것은 쉴 새 없이 변하고, 우리는 그 모든 것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한때 내 것이었던 것은 다음 순간 사라진다. 그런 신기루 같은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본질적인 자아를 형성할 수 있을까. 한때 사람을 만나면 '무슨 일을 하는지'를 먼저 물어봤었다. 국적이나 종교, 고향 같은 것보다 훨씬 그를 그답게 만들어주는 요소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지 않고, 많은 경우- 우연히, 혹은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더 이상 '무슨 일을 하는지'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짜 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까. 여기에는 지름길이 없다. 많은 대화를 나누어보고, 오래 겪어야 희미하게 드러난다. '진짜 나'를 만나는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모를 뿐, 진정한 자신을 정의하는 불변의 요소가 누구에게나 있다.



당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처의 말은 몸이나 정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몸과 정신은 존재한다. 단지 그것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 안에 '당신'은 없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것들을 볼 때마다 매번 조금씩 다른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170쪽)



어쩌면 우리는 '비어있는 상태'를 견디지 못해, 무엇이라도 채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보다, 딱히 원하지 않는 것이라도 무엇인가를 해서 고단한 하루를 지내는 편이 '좋은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존재는 매일 무엇인가를 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잘 먹고 잘 자면서, 딱히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은 채로 나를 내버려 두는 것이 나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어떤 생각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때' 떠오른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명상이려나. 에이 모르겠다. 일하러 가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