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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평점 :
친애하는 벗 고갱에게,
내가 얼마 전 아를에 방 네 개짜리 집을 빌렸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소. 남부에서 작업할 마음이 있고, 수도승처럼 살아갈 화가를 찾게 된다면... 아주 기쁠 겁니다. 내 동생이 한 달에 250프랑씩 보내 주는 돈을 우리는 나눠쓰게 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내 동생에게 한 달에 한 점씩 그림을 보내면 되오. (스티븐 네이페,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에서 재인용)
이 소설 <아파트먼트>를 읽으면서 고흐의 이 편지가 떠오른 것은 나뿐일까.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법을 이어가던 두 사람이 같이 생활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고흐 역시도 무척이나 설레었던 것 같다. 그는 아를에서의 예술공동체를 꿈꿨더랬다. 어쩌면 영영 팔리지 않을 그림을 그리면서도 계속 그려야만 하는 명분은 필요했을 테고, 그런 그에게 동료는 분명 큰 힘이 되어줄 테니까. ... 이 소설 <아파트먼트>의 주인공 '나'도 어쩌면 고흐와 같은 생각으로 '빌리'에게 같이 살자는 제안을 던졌을 테다. 읽고 쓰는 일에 누구보다 진심인 그들은 웬만큼 성공하지 않고서는 글 쓰는 것으로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설 쓰기에 매달린다. 서로의 가장 첫 번째 독자이자 멘토이며 든든한 조력자이기를 자처한 두 사람은 정말이지 빠르게 친밀감을 형성해나간다.
두 명의 작가가 데이트를 하는 건 재앙을 초래하는 일일 거라고 언제나 생각해왔고(작가들은 연기를 하듯 자신을 과시하거나, 말이 없거나, 아니면 그 두 극단 사이를 미친 듯 왔다 갔다 했고, 우리가 할 얘기라고는 그날 뭘 썼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생산해 내지 못해서 얼마나 우울한지가 전부일 것이며, 그 모든 것이 고립된 섬 생활 같은 데다 근친상간적일 것이었다), 지리상으로 볼 때 장애물이 한둘이 아닐 것으로 예상되긴 했지만, 나는 클레어와 문학적인 삶을 함께하는 환상을 품기 시작했다. 그 환상이란 우디 앨런 영화들에서 도용해온 클리셰였는데, 우리가 서로의 작품을 고쳐주고, 낭독회와 작가 사인회에 함께 다니며, 그런 다음에는 내가 원 나이트 스탠드와 2주쯤 이어지는 가벼운 관계들의 역사에서 누구와도 해본 적 없는 그 모든 평범한 일들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본문 중에서, 102쪽)
그래, 이 소설은 예술가-버디 소설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봐오던 그것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그 '다름'은 '나'의 솔직한 욕망에 있었다. 아주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의 지원하에 글을 쓸 수 있었고, 어쩌면 곧 뉴욕의 아파트먼트를 갖게 될지도 모르는 '나'는 시골 출신에다 바텐더로 일하면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빌리'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할 줄 알며, 진지하면서도 날카롭고 유머러스한 통찰을 해낼만한 지식을 갖춘 '나'는 정제되지 않은 빌리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가 진심으로 성공하기를 기도할 줄도 안다. 그런 '내'가 빌리에게 방을 하나 주기로 결정한 건 어쩌면 그의 도덕적/경제적 우월감에서 나온 결정일지도 모른다. 넌 언젠가 크게 성공하고 말 거니까, 난 그런 너를 알아봤으니까-하는.
그것은 분명 진심이었을 테다. 하지만 빌리가 쓴 소설이 인정받았을 때, '나'는 아무리 해봐도 잘 안되는 관계들에서 빌리가 크고 작은 성공을 거둘 때, 그리하여 그 옆에 서 있는 '내'가 빌리보다 더 작아진다고 느낄 때 '나'는 종종 무너져내렸다. 모든 인간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며,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에게 느꼈던 최초의 매력이 변질되고 차이점은 두드러질 것이라는 생각은 '나'도 했지만, 그게-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나'의 인정투쟁기임과 동시에 패배의 기록들. ... 아프게도 작가는 '나'를 그냥 있는 그대로 두었다. 부러진 팔, 다리를 억지로 이어붙여 어찌어찌 '나'도 조금은 성공을 거두고 그리하야 두 사람의 우정은 영원했다,라는 식의 버디소설이 아니라서- 좋았고, 슬펐다. 그 슬픔은 아마도 또 다른 나에게서 나온 것. 지금의 나든, 언젠가의 나든- 나는 항상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었으니까.
빌리가 나간 자리의 외로움은 이전의 쓸쓸함보다도 훨씬 컸다. 그제야 '나'는 돌아본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거지. 우리의 좋았던 시절은 '환상'이었을까. 나는, 계속 글을 써도 괜찮은 걸까. ... 아니, 내게 다시 '빌리'같은 사람이 생길 수 있을까.
"날 받아줘서 정말 고마워."
"내가 그 방을 쓰지 않는다는 게 항상 마음에 걸렸었어."
"아파트 얘기만은 아니고. ... 난 뉴욕에서 날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줄 알았거든. 그랬더라면 그냥 혼자서 군인처럼 헤쳐나가야 하는 좀 외로운 시간이었을 텐데. 특히 지하실에서 보낸 처음 그 몇 주는. 그래서, 고맙다고, 친구."
"나도 마찬가지야." (본문 중에서, 1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