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이상하든
김희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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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올라갈 때는 계단 가장자리를 밟아 소리 나지 않게 하기, 맨홀은 피해 다니기, 출근하기 전에는 맞은편에 사는 멋진 언니 보고 가기. 침실에 드리운 그림자마저 반듯해서 좋다는 그녀의 이름은 '정해진'이다. 그런 그녀의 일상에 어딘지 하나씩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난다. 잠들지 못해 '불면증'이라는 편의점을 계속 확장해나가는 사장님, 외출이 싫어 집 앞 편의점에서도 배달을 시키는 극작가, 공항 가까이만 가면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려 7년째 영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영국인 마크, 사용하지 않는 우체통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매일 편지를 쓰는 초등학생 다름이. 아, 수녀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동갑내기 배우 지망생 승리까지. 그리고 급기야는 사람이면서도 사람이 아닌, 만초씨까지 말을 걸어온다.


판타지이면서도 판타지가 아닌 해진의 세계는 알 수 없는 묘한 매력을 가졌다. '에이, 말도 안 돼'를 중얼거리면서도 그녀의 오후가, 그녀의 내일이 궁금해 자꾸 책을 들추게 되는 것도 그래서였다. 마치 처음 자취를 시작하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부모님과 함께 생활할 때보다 모든 것이 축소되거나 생략되기 일쑤였는데, 그런 것들이 불편하기는커녕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자취하던 원룸을 베이스캠프 삼아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좀 더 멀리 나의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저쪽 골목으로 돌아서면 무엇이 있을까?'하는 호기심은 나를 무작정 앞으로 걷게 했다. 그랬던 시절이 새삼스럽게도 떠올랐다. '정해진'대로 삶을 꾸리는 것 같지만, 승리를 집 안에 몰래 들인다거나, 짙어졌다가 옅어지기도 하는- 사람인 것 같지만 사람은 아닌 존재 '만초씨'와 친구가 되는 과정이 그랬다.​


그런 해진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었던가,를 생각했다. 스무살이 되면,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을 하면, 서른쯤 되면 막연히 어른이 되었을 거라는 청소년기의 기대와는 달리- 그 시기를 지나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만 커리어라고 우기고 싶은 시행착오와 반성, 후회, 반짝였던 기대 같은 것들이 남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꼭 그때가 아니라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수없이 펼쳐질 것임을 이제는 안다. 아마도 이렇게 평생을 성장하고 좌절하다가 고통과 고독 속에서, 혹은 상처와 슬픔 속에서 삶의 본질을 깨달아갈 것이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삶의 롤러코스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아닐까)


'우리 둘 다 한걸음 더 나아가있기!'


라던 승리의 소원은 이루어진 것 같기도 하고,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굳이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이뤄졌다는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해진은 맨홀 뚜껑을 밟을 수도, 밟지 않을 수도 있게 되었고- 숨어지내던 승리는 해진의 가족과 함께 마음껏 감탄하며 해물잡채만두를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보다 좀 더 울컥한 장면이 마지막에 등장하는데, 그건 리뷰에서는 못쓰겠다. 읽어보시기를!)​


그런 작은 나아감들 사이에서 위로받는다. 어른이면서도 어른이 아닌 우리는, 어른이 뭐지? 언제 어른이 되지?를 고민하는 스무살 앞에서 말을 잃는다. 동시에, '언제 어른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어른이 되느냐'가 중요하겠다는 그녀들의 통찰 앞에 조용히 밑줄을 긋는다. 그들의 성장을 응원하며, 나의 오늘에 나아감이 있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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