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 수업 - 철학은 어떻게 삶의 기술이 되는가
라이언 홀리데이.스티븐 핸슬먼 지음, 조율리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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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 그 마음으로 삶을 돌아보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읽고 글도 쓴다. 아마도 우리는 평생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우리만의 답을 찾아나가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것처럼, 설레고, 두렵고, 실패와 작은 성공들이 반복되는 일일 것이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전혀 알 수 없는 채로 (오로지 직감에만 의존해) 몇몇 선택을 하게 될 것이며,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던 와중에도 깨달음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비단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로 먼저 세상에 다녀간 많은 이들도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갔다. 그리하여 우리는 남겨진 기록들을 더듬어, 그들이 만들어둔 삶의 지도를 꺼내본다. 그들과 우리가 다르고, 그들이 살던 때와 지금이 같지 않으므로- 그들의 지도가 아무리 그들에게 완벽했다 한들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그래도, 그 고민의 흔적들을 짚어보는 것은 우리가 '우리만의 지도'를 만들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기원전 3세기에 아테네에서 시작된 '스토아철학'을 살펴본다.



2천 년 전에도 조롱의 대상이었던 '글만 잘 쓰고 말만 잘 하는' 철학자들과 달리, 스토아학파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핵심적 질문을 던졌다. 유려한 말솜씨를 뽐내기보다 개인의 선택과 책임, 대의를 위한 공헌을 중시했고, 역경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 등 삶에 적용 가능한 행위를 고민했다. (본문 중에서, 5-6쪽) 다시 말해, 스토아철학은 덧없는 사상이 아닌 '쓸모 있는 삶의 기술'이다. 지혜, 열정, 윤리, 탐욕, 용기, 평정심, 성실함, 정의, 자유, 성찰 등의 키워드가 목차에 쓰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여기'서 성공적이고 기쁨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고, 그 방안을 실제로 제시했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한 삶의 방식을 따라 살고자 했다.



물론 그들도 인간인지라, 그들의 선택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이 분명했던 그들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 할지라도 보다 나은 방향을 찾아 방향키를 돌리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것은- 주어진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는 것뿐만 아니라, 평생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일 테다. 그들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두고 '최고'라 칭했다. 운이 좋아 외부적인 성취를 이룬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분야에서 탁월함을 보이는 것이 진정한 '최고'이자 '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고통을 묵묵하게 참아내는 극기심과 평정심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대체로 자기 삶에 충실하면서도 고난과 불행에는 당당하게 맞섰다. 전투의 최전선에서 용맹하게 적과 싸웠고, 유배지에서도 후학을 길러내고 의미 있는 작품을 집필했으며 늘 신념을 가지고 당당한 자세로 살아갔다. 타인의 평가나 세속적인 성공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정당하게 얻은 부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때문에 스토아철학은 '나 자신으로 살라'고도 이야기하고, '여성에게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결혼에 대한 견해도 현대적이었다.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 부부는 어떤 일이 있든 완전한 동반자 관계를 이루어야 하며,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자는 완전한 인간이 아닌 재산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겨지던 시기에 이런 주장을 펼친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토아 철학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법한 질문들을 오늘의 우리에게 던진다.


행복한 삶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인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한 번뿐인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 이 책 <스토아 수업>을 읽으면서, 무엇을 어떻게 '실천'해야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그저 많이 읽고 쓰는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우리 삶은 오늘도 흔들린다. 삶을 흔드는 바람결에 몸을 맡기지 않으면 우리 몸은 금새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니 바람에 몸을 맡긴다. 하지만, 바람이 우리를 실어 제 마음대로 날려버리는 것에는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지켜내겠다고 다짐한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기원전 3세기의, 스토아 철학자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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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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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내게는 너무 까마득한 그날들을 상상한다. 그 해, 인류는 처음으로 달 착륙에 성공했고, 전혀 알아볼 수 없는 형태이기는 하지만 인터넷이 탄생했으며, <이지 라이더>는 질주했고,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결혼했다. 그리고 그 해- 도쿄 대학은 입시를 중지했고, 비틀스는 <화이트>, <옐로 서브마린>, <애비 로드>를 발표했으며, 롤링스톤즈는 최고의 싱글 <홍키 통키 우먼>을 히트시켰다. 머리칼을 마구 기른 히피들이 사랑과 평화를 부르짖고 있던 그때, 파리의 드골은 정권에서 물러났고, 베트남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1969년은 그런 해였다. 이 소설 <69_ 식스티 나인>의 주인공인 야자키가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으로 진급했던, 그 해는 그랬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책은 무라카미 류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69년에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을 그러모아 소설 속에 배치시켰다. 등장인물들이 그의 실제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야자키가 내내 캐치프레이즈처럼 외치던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라는 것 역시 그때 그가 하던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무라카미 류의 '응답하라 1969'인 셈. 그런 마음으로 소설을 읽었더니, 어쩐지 이십 대 초반에 읽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읽혔다. 아마도- 그때는 이 책을 '즐겁게' 읽기에 너무 어렸던 것 아닐까. (영화에도, 음악이나 페스티벌에도, 이성에게도 진심이었던 열일곱 살의 야자키쪽에 더 가까웠을 테니까)



십수 년을 사이에 두고, 서른여섯이 되어 다시 읽는 <69_식스티 나인>은 오로지 '즐거움'으로 읽혔다. 오로지 지금을 즐겁게 살고 있냐, 그렇지 않냐만을 기준으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 지은 이 세계관 안에서는 '지금, 즐겁지 않은 자-모두 유죄'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선생님이나 형사, 어른들, 또 어른들 말을 잘 듣는 학생들은 철저하게 나쁘게 그려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쪽은 그들이기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우리가 그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곤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밖에 없다. 그들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에너지로.



해서 소설은 마냥 즐겁다. 가끔은 '쟤네 지금 왜 즐거운 거야?'싶게 자기들끼리 깔깔거린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나의 사고방식으로는 야자키와 친구들이 지금 왜 깔깔거리는지, 그게 왜 그렇게까지 진지할 일인지 어리둥절할 때도 많다. 그래도 넋 놓고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들의 황당한 웃음들에, 괜한 비장함에 동조하게 되고 만다. 그게 비록 어른의 눈으로 봤을 때는 정말 '별거 아닌' 일일지라도- 그들에게는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전쟁을 싫어하세요? ... 싫어한다면 반대해야지요. 비겁합니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관계있습니다. 미군은 지금 우리 항구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말이죠."


"자네가 생각할 그런 문제가 아니야."


"그럼 누가 생각해야 할 문제인가요?"


"야자키, 그런 일은 대학을 나오고 취직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만들고 어른이 된 다음 말하도록 해."


"어른이 아니면 전쟁에 반대할 수 없단 말인가요? 그럼, 전쟁에서 어린이는 죽지 않습니까? 고등학생은 죽지 않나요?" (본문 중에서, 46쪽)



'페스티벌'과 '마쓰리'는 다르다. 세 살배기 야자키를 사로잡은 큰 북의 울림은 마쓰리의 그것이었겠지만, 열일곱 살의 야자키는 더 이상 마쓰리의 큰 북을 탐하지 않는다. 대신 록사운드가 울리는 페스티벌을 꿈꾼다. 큰 북이 록사운드로 변해가는 사이- 야자키는 성장했고 세계는 변화했다. 이미 어떤 변곡점을 지나온 그들은, 다시 이전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이전의 세계가 자기 안에 남아있다는 것. 더 이상 마쓰리를 알리는 큰 북의 울림이 야자키의 심장을 뛰게 하지는 않지만, 어떤 울림으로 인해 심장이 뛰었던 기억만은 생생하게 남아있어 오늘의 록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아마도- 오늘을 살고 있을 것이다. 1969년은 그렇게 지났고, 이미 삼십대가 되어버린 야자키에게 '오늘의 큰 북'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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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 스톡홀름신드롬의 이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
롤라 라퐁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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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74년 2월 4일, 영향력 있는 언론 재벌가의 상속녀 '퍼트리샤 허스트'가 납치된다. 그리고 두 달 뒤, 그녀는 그녀를 납치한 극좌파 무장혁명단체 SLA의 일원이 되어 소총으로 무장하고 샌프란시스코의 은행을 습격한다.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가족인 허스트가 사람들은 그녀가 SLA의 협박에 못 이겨 강도 행위를 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본 변호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협박을 당했다기보다는 그녀 스스로 SLA의 일원이 되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그녀를 변호해야 했던 허스트가는 진 네베바 교수에게 퍼트리샤가 무죄라는 사실을 입증할 보고서를 부탁하게 되고- 그의 보조로 비올렌이 뽑히면서 이 소설은 다시 1974년 2월 4일로 돌아간다.


진 네베바 교수와 비올렌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주. 하지만 소설의 제목이 보여주듯, 그들은 2주 안에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한다. 사건은 알면 알수록,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물음표투성이였다. 먼저- 재벌가의 상속녀를 납치했는데도 SLA는 몸값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조금 독특했다.


퍼트리샤의 아버지는 자기 딸을 구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모든 아이를 구하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할 것이다. 즉 은퇴자 카드나 실업자 카드, 퇴역 군인 카드, 장애인 카드, 전 재소자 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질 좋은 육류와 채소, 유제품을 1인당 70달러어치씩 받게 될 것이다. 만일 당신이 받아야 할 식량을 못 받게 될 경우 우리가 알 수 있게 길거리와 버스정류장, 영화관에서 불만을 토로하라. (본문 중에서, 61쪽)


사회적 약자들에게 질 좋은 음식을 제공하면 납치한 딸을 풀어주겠다니. 이 단체의 놀라운 지점은 계속된다. 그들은 분명히 무장혁명단체이지만, 납치한 퍼트리샤를 때리지도, 굶기지도, 겁주지도 않은 것 같다. (퍼트리샤의 녹음테이프에 의하면 그렇다) 게다가 SLA의 멤버는 대부분 여성이었고, 20명 내외의 작은 그룹이라는 것도 나를 놀라게 했다. 느낌표와 물음표가 계속되는 사이, 소설은 흔한 납치 소설에서 벗어나 다른 어떤 영역으로 옮겨졌다.


그녀들이 던진 질문의 답을 찾는 사이, 어쩌면 나는 SLA에 동조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의 방법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1974년 2월 4일, 그들은 저를 납치함으로써 저의 생명을 구해주었습니다.'라는 페트리샤의 말 이면에는 많은 말들이 생략되어 있을 것이다. 납치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SLA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페트리샤로서는 평생 모르고 살았을 세계들이 새롭게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미 본 이상, 알게 된 이상- 이전과 같을 수는 없다. 그것을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부른다면, 그거야 그거대로 어쩔 수 없겠다만- 이 이야기는 '스톡홀름 신드롬'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복합적인 사유와 감정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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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건너뛰기 트리플 2
은모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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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꿈꾸던 시절, 틈만 나면 영화제에 가서 하루 종일 상영관을 지키곤 했었다. 빽빽한 상영 스케줄 사이에서 요리조리 보고 싶은 영화들을 골라(무려 1순위, 2순위, 3순위까지 매겨가며) 상영관에 들어서면 묘한 성취감과 안도감에 취하게도 됐더랬다. 그때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작품들, 그 가운데는 '단편영화'도 있었다. 섹션별로 정리된 단편영화는 러닝타임이 짧다는 특성상 세 편에서 네 편- 많을 때는 다섯 편까지도 한 섹션에 묶였다(두 시간 정도의 전체 러닝타임을 맞추기 위해서다). 모더레이터는 일면식도 없을 영화들을 한데 묶어 어떤 타이틀을 붙이곤 했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이라던가, '희극지왕'이라던가. ... 영화제에서 하루에 네 편씩 꽉꽉 채워 영화를 보던 시절이야 이제는 까마득하지만- 불현듯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이 책 <오프닝 건너뛰기>가 마치 그렇게 잘 꾸려진 '단편영화선'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 <오프닝 건너뛰기>에는 표제작 '오프닝 건너뛰기'를 포함하여 세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있다. 신혼부부인 수미와 경호, 적당한 연애 상대를 찾지 못해 아직 혼자인 은우,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 일정을 함께하게 된 세영과 가람.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살면서 한 번쯤은 겪어봤거나 가까운 누군가의 경험담으로 들어봤음직한 소재를 그린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삼십 대 중반으로 살고 있다면- 누구나 고개를 열 번쯤은 끄덕일만한 이야기들. 막 결혼한 부부이거나 연애하지 않고 사는 중이거나, 이전의 연애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이거나. 혹은 취업, 연애와 결혼, 출산과 양육으로 이어지는 '삼십대의 미션'을 도장 깨기 하듯 하나씩 해보려는 중이거나, 혹은 해보려는 데 마음처럼 쉽지 않아 불안해하는 중이거나 외면하는 중이거나. 서로는 서로의 삶을 힐긋거리며 '아, 왜 나만...'하고 한숨을 쉬고 창 너머의 타인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나는 언니, 아무래도 나랑 잘 안 맞는 사람이랑 결혼한 거 같아. 그걸 왜 살아보고 나서야 알았을까? 머리가 나빠서 그런가. 내가 멍청한 걸 가지고 누굴 탓할 수도 없고 참..."


"너 요가에서 이제 호흡이 좀 되는 것 같다고 했었지."


"응. 시선에 신경 쓰느라 호흡이 자꾸 흐트러졌는데 이제 좀 좋아지고 길어지고 그런 것 같아."


"그런 거지 뭐. 평생 숨을 쉬고 살지만, 막상 요가에서 호흡 제대로 하려면 시간이 걸리잖아. 누구랑 살아보기도 전에 파악이 다 되겠어? 그래도 너희 집 미대 오빠는 손맛은 좋다며." (본문 중에서(오프닝 건너뛰기), 54쪽)



당연한 것 아닌가. 서로를 흘긋거리게 되는 시선도, 나에게 유난히 뾰족해지는 잣대들도.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 지금은 무려 2021년이라고.'라며 친구의 어깨를 무심하게 토닥일 수는 있지만, 막상 내게 쌓여온 문제들은 묵직하게 오늘도 내려앉는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 잡은 오래된 기대들은 오늘의 나와 불협화음을 내며 괜히 마음 한구석을 긁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는- 낯선 풍경을 향해 홀연히 떠나고 싶다가도, 풍경에 감탄하는 것에 지루해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누군가 나를 포근하게 맞이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그게,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지 알면서도.



다섯 명의 주인공들이 겪는 오늘의 마음 쓰임들이, 딱히 불안할 것도 없는데 불안해지는 무엇이, 오늘의 나를 툭, 하고 건드렸다. 그 모든 것들이 삼십대여서 그런 것이라면- 우리 같이 조금 더 흔들려도 좋지 않은가, 하고 맥주캔을 따보겠다. 이 모든 흔들림이 모두-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일 거라고 믿으며. (어쩌면, 십 년 뒤에도 어른 되기는 틀렸어,라고 깔깔깔 웃어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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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추리반 - 청소년을 위한 그림 속 세계 역사
송병건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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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는 어렵다. 몇 천년의 시간과 전지구라는 넓은 영토, 다양한 문명의 이야기가 모두 얽혀있기 때문이다. 한국사도 듬성듬성 구멍 난 부분이 많은데, 몇 년경에 어디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를 아는 것은 내게 너무나도 소원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세계사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지난해부터 겪어온 코로나로 우리가 개별적인 존재가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다행하게도- 손만 뻗으면 세계사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잘 정리된 책과 자료들이 있지만(구글링이나 유튜브를 통해서도 세계사를 압축된 버전으로 훑을 수 있겠고!), 몇 권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 이 많은 정보들이 내 안에 축적될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구 반대편에서 아주 옛날에 일어난 어떤 일이 지금을 사는 '나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해 외면하지 않고,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 지금-여기를 사는 '나'는 그때-거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시간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서론에 서술한 역사 공부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역사는 주입식과 가장 거리가 멀어야 하는 과목입니다. 역사 공부란 어떤 사건이 중요한지, 그 사건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거기서 누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탐구하는 활동이에요.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한 사건이 다른 사건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 사건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곰곰이 따져보는 활동인 것입니다. 역사 공부의 핵심은 과거의 사건을 해석하는 것이지 마구잡이로 암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달리 말하면 역사를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호기심 가득하고 분석력 뛰어난 '탐정'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셜록 홈스처럼 말이에요. (본문 중에서, 4-5쪽)



책은 역사의 탐정이 되기 위한 사료로 그림을 선택했다. 그림은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부터 사람들의 표현 수단으로 기능해왔다. 문명이나 언어가 달라도 '그림'은 즉각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오늘의 우리는 시각자료를 보는 데 굉장히 익숙하므로 낯선 세계사를 탐구해가는데 흥미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선택한 그림이 유명한 화가가 그린 명화에 국한되지 않고 삽화나 포스터, 광고물 등 다양한 시각자료로 확장된 것 역시 좋았다. 특히 '현대' 파트에서는 잡지나 신문에 실린 이미지가 많아, 만나게 되는 숱한 이미지들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역사적 사료를 살펴 추리하고, 사료가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말해주지 않는 것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하며 역사에서 있었던 비슷한 상황을 놓고 유추해보는 경험들은- 모두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어떤 사료도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을 수 없다.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행간'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빈틈을 채우는 상상들이 모이면 그때-거기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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