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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1969년, 내게는 너무 까마득한 그날들을 상상한다. 그 해, 인류는 처음으로 달 착륙에 성공했고, 전혀 알아볼 수 없는 형태이기는 하지만 인터넷이 탄생했으며, <이지 라이더>는 질주했고,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결혼했다. 그리고 그 해- 도쿄 대학은 입시를 중지했고, 비틀스는 <화이트>, <옐로 서브마린>, <애비 로드>를 발표했으며, 롤링스톤즈는 최고의 싱글 <홍키 통키 우먼>을 히트시켰다. 머리칼을 마구 기른 히피들이 사랑과 평화를 부르짖고 있던 그때, 파리의 드골은 정권에서 물러났고, 베트남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1969년은 그런 해였다. 이 소설 <69_ 식스티 나인>의 주인공인 야자키가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으로 진급했던, 그 해는 그랬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책은 무라카미 류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69년에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을 그러모아 소설 속에 배치시켰다. 등장인물들이 그의 실제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야자키가 내내 캐치프레이즈처럼 외치던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라는 것 역시 그때 그가 하던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무라카미 류의 '응답하라 1969'인 셈. 그런 마음으로 소설을 읽었더니, 어쩐지 이십 대 초반에 읽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읽혔다. 아마도- 그때는 이 책을 '즐겁게' 읽기에 너무 어렸던 것 아닐까. (영화에도, 음악이나 페스티벌에도, 이성에게도 진심이었던 열일곱 살의 야자키쪽에 더 가까웠을 테니까)
십수 년을 사이에 두고, 서른여섯이 되어 다시 읽는 <69_식스티 나인>은 오로지 '즐거움'으로 읽혔다. 오로지 지금을 즐겁게 살고 있냐, 그렇지 않냐만을 기준으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 지은 이 세계관 안에서는 '지금, 즐겁지 않은 자-모두 유죄'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선생님이나 형사, 어른들, 또 어른들 말을 잘 듣는 학생들은 철저하게 나쁘게 그려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쪽은 그들이기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우리가 그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곤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밖에 없다. 그들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에너지로.
해서 소설은 마냥 즐겁다. 가끔은 '쟤네 지금 왜 즐거운 거야?'싶게 자기들끼리 깔깔거린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나의 사고방식으로는 야자키와 친구들이 지금 왜 깔깔거리는지, 그게 왜 그렇게까지 진지할 일인지 어리둥절할 때도 많다. 그래도 넋 놓고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들의 황당한 웃음들에, 괜한 비장함에 동조하게 되고 만다. 그게 비록 어른의 눈으로 봤을 때는 정말 '별거 아닌' 일일지라도- 그들에게는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전쟁을 싫어하세요? ... 싫어한다면 반대해야지요. 비겁합니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관계있습니다. 미군은 지금 우리 항구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말이죠."
"자네가 생각할 그런 문제가 아니야."
"그럼 누가 생각해야 할 문제인가요?"
"야자키, 그런 일은 대학을 나오고 취직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만들고 어른이 된 다음 말하도록 해."
"어른이 아니면 전쟁에 반대할 수 없단 말인가요? 그럼, 전쟁에서 어린이는 죽지 않습니까? 고등학생은 죽지 않나요?" (본문 중에서, 46쪽)
'페스티벌'과 '마쓰리'는 다르다. 세 살배기 야자키를 사로잡은 큰 북의 울림은 마쓰리의 그것이었겠지만, 열일곱 살의 야자키는 더 이상 마쓰리의 큰 북을 탐하지 않는다. 대신 록사운드가 울리는 페스티벌을 꿈꾼다. 큰 북이 록사운드로 변해가는 사이- 야자키는 성장했고 세계는 변화했다. 이미 어떤 변곡점을 지나온 그들은, 다시 이전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이전의 세계가 자기 안에 남아있다는 것. 더 이상 마쓰리를 알리는 큰 북의 울림이 야자키의 심장을 뛰게 하지는 않지만, 어떤 울림으로 인해 심장이 뛰었던 기억만은 생생하게 남아있어 오늘의 록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아마도- 오늘을 살고 있을 것이다. 1969년은 그렇게 지났고, 이미 삼십대가 되어버린 야자키에게 '오늘의 큰 북'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