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 스톡홀름신드롬의 이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
롤라 라퐁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1974년 2월 4일, 영향력 있는 언론 재벌가의 상속녀 '퍼트리샤 허스트'가 납치된다. 그리고 두 달 뒤, 그녀는 그녀를 납치한 극좌파 무장혁명단체 SLA의 일원이 되어 소총으로 무장하고 샌프란시스코의 은행을 습격한다.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가족인 허스트가 사람들은 그녀가 SLA의 협박에 못 이겨 강도 행위를 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본 변호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협박을 당했다기보다는 그녀 스스로 SLA의 일원이 되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그녀를 변호해야 했던 허스트가는 진 네베바 교수에게 퍼트리샤가 무죄라는 사실을 입증할 보고서를 부탁하게 되고- 그의 보조로 비올렌이 뽑히면서 이 소설은 다시 1974년 2월 4일로 돌아간다.


진 네베바 교수와 비올렌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주. 하지만 소설의 제목이 보여주듯, 그들은 2주 안에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한다. 사건은 알면 알수록,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물음표투성이였다. 먼저- 재벌가의 상속녀를 납치했는데도 SLA는 몸값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조금 독특했다.


퍼트리샤의 아버지는 자기 딸을 구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모든 아이를 구하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할 것이다. 즉 은퇴자 카드나 실업자 카드, 퇴역 군인 카드, 장애인 카드, 전 재소자 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질 좋은 육류와 채소, 유제품을 1인당 70달러어치씩 받게 될 것이다. 만일 당신이 받아야 할 식량을 못 받게 될 경우 우리가 알 수 있게 길거리와 버스정류장, 영화관에서 불만을 토로하라. (본문 중에서, 61쪽)


사회적 약자들에게 질 좋은 음식을 제공하면 납치한 딸을 풀어주겠다니. 이 단체의 놀라운 지점은 계속된다. 그들은 분명히 무장혁명단체이지만, 납치한 퍼트리샤를 때리지도, 굶기지도, 겁주지도 않은 것 같다. (퍼트리샤의 녹음테이프에 의하면 그렇다) 게다가 SLA의 멤버는 대부분 여성이었고, 20명 내외의 작은 그룹이라는 것도 나를 놀라게 했다. 느낌표와 물음표가 계속되는 사이, 소설은 흔한 납치 소설에서 벗어나 다른 어떤 영역으로 옮겨졌다.


그녀들이 던진 질문의 답을 찾는 사이, 어쩌면 나는 SLA에 동조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의 방법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1974년 2월 4일, 그들은 저를 납치함으로써 저의 생명을 구해주었습니다.'라는 페트리샤의 말 이면에는 많은 말들이 생략되어 있을 것이다. 납치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SLA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페트리샤로서는 평생 모르고 살았을 세계들이 새롭게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미 본 이상, 알게 된 이상- 이전과 같을 수는 없다. 그것을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부른다면, 그거야 그거대로 어쩔 수 없겠다만- 이 이야기는 '스톡홀름 신드롬'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복합적인 사유와 감정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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